1961년 5월 16일 새벽 3시20분, 일본제국 육군 관동군 출신의 박정희 소장을 추종하는 일단의 병력이 한강 인도교를 건넜다. 34년 후인 1995년에 또다른 독재자 전두환에 대해 검찰이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내린 불기소 처분의 선험적 사건이었다. 박정희 세력의 이른바 ‘구국’을 위한 거사는 사전에 이미 인지되고 있었으나 결국 3,600명에 불과한 병력으로 헌정을 파괴하며 국가 장악에 성공한 것이다.
박정희는 3차례에 걸친 개헌(5차·6차·7차)과 심복·거수기관(국가재건최고회의·중앙정보부·통일주체국민회의 등)을 통해 영구적 유신왕국을 꿈꾸었으나 김재규의 38구경 리볼버에 맞아 흙먼지로 돌아갔다.
요 며칠 한홍구의 유신(한겨레출판/2014), 김상구의 5.16 청문회(책과나무/2017)를 읽고 있다. 반면교사(反面敎師), 타산지석(他山之石)이다.
박정희는 3차례에 걸친 개헌(5차·6차·7차)과 심복·거수기관(국가재건최고회의·중앙정보부·통일주체국민회의 등)을 통해 영구적 유신왕국을 꿈꾸었으나 김재규의 38구경 리볼버에 맞아 흙먼지로 돌아갔다.
요 며칠 한홍구의 유신(한겨레출판/2014), 김상구의 5.16 청문회(책과나무/2017)를 읽고 있다. 반면교사(反面敎師), 타산지석(他山之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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