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 5일 월요일

어떤 하루

세일즈맨 김경재 씨. 불혹 마흔.
그는 어느 날 아파트 18층 옥상에서 투신, 이 지상의 삶을 마감합니다.
양복 주머니에선 “어떻게 할 수 없는 이 몸 괴롭다.”고 적힌 쪽지가 있었습니다. 월부 책값을 받아야 할 고객 명단이 적힌 명세표 한 장도 꼬깃꼬깃 접혀 있었습니다.

김씨는 원래 지방 명문대 졸업생이었습니다. 서른이 넘어서까지 고시 공부에만 매달렸습니다. 그러나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입니까? 어어 하는 사이에 늦장가를 들고 어찌어찌 하다가 또 세일즈맨이 되었습니다. 공부밖에 몰랐던 김씨에게 세상엔 만만한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네 식구 밥먹고 살기도 힘들었습니다. 더구나 아내는 이런 답답한 남편과 못 살겠다고 가출해 버렸습니다.

마침내 김씨는 어느 날 밤 잠든 두 아들들을 보며 노트에 편지를 써내려 갔습니다. “너희들을 지켜보지 못하고 먼저 가는 아버지를 용서해 다오… 세상이 모두 허락해 주는 것은 아니구나… 고아원에 가더라도 훌륭한 사람이 돼야 한다.”

동네 사람들은 그를 하나같이 ‘말없이 착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언제 들고 나는지도 모를 정도였어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검은 가방을 들고 나가긴 했는데 그 성격에 어디 가서 책이나 팔았는지…” 어떤 아주머니는 쯧쯧쯧 혀를 차며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허름한 한옥 월세 14만원짜리 단칸방. 아빠를 잃은 열두살, 일곱살짜리 두 아들은 이불을 둘러쓰고 훌쩍이고 있었습니다.

누렇게 바랜 묵은 신문 스크랩에서 한 중년 사내의 피눈물을 읽습니다. 아이들이 고아원에 갈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처절한 절망감이 내 가슴을 대못이 되어 찌릅니다.

거친 강호의 광풍에 등 떼밀려 착하게만 살아온 김씨. 김씨는 과연 누가 죽였습니까? 눈을 감고 생각해 봅니다. 김씨는 어쩌면 책에서 배운 대로만 산 ‘현대판 법가’(法家)일지도 모릅니다. 그는 그가 배운 법대로 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세상이 모두 허락해 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아내도 그런 답답한 법가는 참을 수 없었습니다. 강호엔 법이 없습니다. 낯 두껍고 속 시꺼먼 무리들이 세상을 멋대로 말아 먹고 있습니다. 책에서 배운 대로 사는 ‘쪼다’들은 여지없이 깨져 버립니다.
도대체 정의는 있습니까, 없습니까? 사마천 형님이 비분강개하여 울부짖는 소리가 들립니다. “나는 몹시 생각이 헷갈린다. 소위 하늘의 도리라고 하는 것은 도대체 옳은 것이냐 그른 것이냐… 여심혹언 소위천도 시야비야(余甚惑焉 所謂天道 是耶非耶)”

모르겠습니다. 역사는 정의가 반드시 승리하는지, 진리는 언젠가 이기게 돼 있는지… 나도 생각이 몹시 헷갈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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