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23일 일요일

종교답게, 종교인답게

요산 김정한(1908~1996)의 단편 「사하촌」…
1930년대 보광사(普光寺)의 아랫마을(寺下村)인 성동리의 주민 대부분은 일제 식민체제와 결탁한 보광사의 땅을 부치고 살아가는 소작농이다. 치삼 노인은 복 받는다는 중의 꾐에 빠져 물길 좋은 두 마지기 논을 보광사에 시주하고 지금은 그 논을 소작하는 신세다. 극심한 가뭄이 들었지만, 중들의 횡포로 성동리 소작인들은 논에 물을 대기가 어렵다. 반면, ‘절 사람들’인 보광리 주민들은 보광사의 권세를 등에 업고 해수욕이나 다니면서 흥청거린다.

농민들의 간절한 기우제도, 부녀자들의 돈푼을 거둬 법석 떤 보광사의 기우불공도 영험 없이 가뭄은 계속된다. 수도저수지 출장소에서는 농민폭동이 염려되어 잠깐 물길을 트지만, 생색만 내는 정도여서 서로 물을 대려는 乙들의 다툼만 격화한다. 보광사가 소작을 주는 논은 그 수입을 농민들과 나누어야 하지만, 직영하는 논은 모조리 절의 수입이 된다. 그래서 절 사람들은 가뭄으로 물이 부족해지자 소작농의 어려운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물을 독점한다.

가을이 되었으나 추수할 것이 없는 흉작임에도 보광사에서는 예전과 똑같이 소작료를 요구하고 이에 성동리 소작인 대표들이 찾아가 선처를 호소하지만 묵살당한다. 논에는 ‘입도 차압’이라는 팻말이 붙는다. 사하촌 성동리에는 얻어맞고 죽고 미치고 도주하는 일들이 속출한다. 극한 상황으로 내몰린 성동리 농민들은 볏짚단과 콩대 메밀대를 들고 차압 취소와 소작료 면세를 탄원하러 보광사로 향한다. 행렬의 꽁무니를 따르는 철없는 아이들은 절 태우러 간다고 부산히 떠들어댄다.

소설 서두에 나오는 ‘지렁이’는 극심한 가뭄과 승려들의 착취로 꿈틀꿈틀 고통받는 성동리 농민을, ‘개미 떼’는 그런 농민들을 무자비하게 착취하는 보광사 승려를 상징한다. 절집이 극락왕생을 빌미로 땅을 시주받고, 시주한 불자를 소작농으로 전락시켜 과도하게 소작료를 착복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인가? 사찰 문화재를 관람할 의사가 전혀 없이 단순히 등산을 즐기러 온 사람에게까지 사찰이 산 입구에서 문화재관람료(통행세)를 징수하는 것이 진여(眞如) 추구 교리에 마땅하고 옳은 일인가?

조계종 스(님)들은 사바세계를 거대한 노다지 사하촌으로 여기는 듯하다. 자승(慈乘)류의 사판(事判)은 자박(自縛)으로 귀결할 수 있음을 모르는 것일까. 그런데 ‘조계종’ 자리에 다른 종단을 대입해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종교계가 잃어버린 사회적 신뢰를 단기간에 회복하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종교계는 신앙의 정수와 전통을 지키면서도 시대와 사회의 요청에 옳게 응답하는 자세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종교는 물론 ‘가난한’ 종교를 지향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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