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인정 중학과정 1단계 사회 5단원을 마무리하는 시간…
민사재판, 형사재판, 행정재판, 가사재판, 선거재판, 소년보호재판, 군사재판 등 재판의 종류를 공부했다. 이어서 민사재판 법정과 형사재판 법정의 모습을 대조하며 설명해 드렸는데, 고령의 학습자분들이 생각보다 잘 이해하신다.
”기소의견 (검찰)송치”라는 표현이 뉴스에 심심찮게 등장한다. 그렇기에 ▲범죄가 발생했을 경우 범인을 찾고 증거를 수집하는 수사 ▲수사의 대상이 되는 피의자 ▲경찰이 피의자·수사기록·증거물을 검찰에 보내는 검찰 송치 ▲검사가 일정한 형사사건에 대하여 법원의 심판을 구하는 기소(공소제기) ▲검사가 공소를 제기하지 않는 불기소 처분(기소유예·혐의 없음·죄가 안됨) 등의 관련 개념을 교과서에 실어놓으면 좋겠다. 문해교육은 생활에 밀착한 형태로 진행해야 한다.
요즘 사법부의 판단에 부쩍 회의가 든다. 고무줄 잣대와 널뛰기 형량, 정치적 주판 튕기기와 화염 출세욕으로 공정성에 의심을 품게 하는 재판이 이어진다. 법정에서 사람을 내려다보는 굴절된 엘리트의식은 정말이지 치유가 어렵다. 억울함을 풀어낼 길이 막히니 ‘제멋대로 원님 재판’에 대한 불신은 증폭할 수밖에 없다. 2017년 9월, “평생 재판만 한 사람의 내공을 보여주겠다”던 김명수의 취임 일성은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2022년 1월 27일 목요일
사법불신
2022년 1월 23일 일요일
종교답게, 종교인답게
요산 김정한(1908~1996)의 단편 「사하촌」…
1930년대 보광사(普光寺)의 아랫마을(寺下村)인 성동리의 주민 대부분은 일제 식민체제와 결탁한 보광사의 땅을 부치고 살아가는 소작농이다. 치삼 노인은 복 받는다는 중의 꾐에 빠져 물길 좋은 두 마지기 논을 보광사에 시주하고 지금은 그 논을 소작하는 신세다. 극심한 가뭄이 들었지만, 중들의 횡포로 성동리 소작인들은 논에 물을 대기가 어렵다. 반면, ‘절 사람들’인 보광리 주민들은 보광사의 권세를 등에 업고 해수욕이나 다니면서 흥청거린다.
농민들의 간절한 기우제도, 부녀자들의 돈푼을 거둬 법석 떤 보광사의 기우불공도 영험 없이 가뭄은 계속된다. 수도저수지 출장소에서는 농민폭동이 염려되어 잠깐 물길을 트지만, 생색만 내는 정도여서 서로 물을 대려는 乙들의 다툼만 격화한다. 보광사가 소작을 주는 논은 그 수입을 농민들과 나누어야 하지만, 직영하는 논은 모조리 절의 수입이 된다. 그래서 절 사람들은 가뭄으로 물이 부족해지자 소작농의 어려운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물을 독점한다.
가을이 되었으나 추수할 것이 없는 흉작임에도 보광사에서는 예전과 똑같이 소작료를 요구하고 이에 성동리 소작인 대표들이 찾아가 선처를 호소하지만 묵살당한다. 논에는 ‘입도 차압’이라는 팻말이 붙는다. 사하촌 성동리에는 얻어맞고 죽고 미치고 도주하는 일들이 속출한다. 극한 상황으로 내몰린 성동리 농민들은 볏짚단과 콩대 메밀대를 들고 차압 취소와 소작료 면세를 탄원하러 보광사로 향한다. 행렬의 꽁무니를 따르는 철없는 아이들은 절 태우러 간다고 부산히 떠들어댄다.
소설 서두에 나오는 ‘지렁이’는 극심한 가뭄과 승려들의 착취로 꿈틀꿈틀 고통받는 성동리 농민을, ‘개미 떼’는 그런 농민들을 무자비하게 착취하는 보광사 승려를 상징한다. 절집이 극락왕생을 빌미로 땅을 시주받고, 시주한 불자를 소작농으로 전락시켜 과도하게 소작료를 착복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인가? 사찰 문화재를 관람할 의사가 전혀 없이 단순히 등산을 즐기러 온 사람에게까지 사찰이 산 입구에서 문화재관람료(통행세)를 징수하는 것이 진여(眞如) 추구 교리에 마땅하고 옳은 일인가?
조계종 스(님)들은 사바세계를 거대한 노다지 사하촌으로 여기는 듯하다. 자승(慈乘)류의 사판(事判)은 자박(自縛)으로 귀결할 수 있음을 모르는 것일까. 그런데 ‘조계종’ 자리에 다른 종단을 대입해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종교계가 잃어버린 사회적 신뢰를 단기간에 회복하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종교계는 신앙의 정수와 전통을 지키면서도 시대와 사회의 요청에 옳게 응답하는 자세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종교는 물론 ‘가난한’ 종교를 지향해야 하지 않을까?
2022년 1월 14일 금요일
가마귀 눈비 마자
취금헌 박팽년(1417~1456)은 성공한 쿠데타(계유정란)를 발판으로 마침내는 왕위까지 찬탈한 최고권력자 수양에 맞서 상왕의 복위를 도모하다 동료 김질(金礩)의 고변으로 붙잡혀 고문을 받고 옥사했다. 사후에는 오마분시(五馬分尸)의 거열형까지 당하고 효수됐다. 일가 남자들은 연좌제로 인해 모두 죽임을 당하고 여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노비로 전락했다.
시집이 멸문지화를 당하고 친정인 대구 관아의 관비로 보내진 둘째 며느리 성주 이씨가 아들을 출산했다. 남자아이면 죽이고 여자아이면 노비로 삼는다는 국명이 떨어진 상황이었는데, 때마침 친정의 여종이 낳은 딸과 바꾸어 살육을 면했다. 이렇게 박팽년의 혈손은 박비(朴婢)라는 이름으로 종의 자식이 돼 살았다. 성종 대에 이르러 사육신은 옳은 일을 했다는 여론에 따라 박비는 신원되고, 새로 ‘일산(壹珊)’이라는 이름을 받는다. 박일산은 후손이 없는 외가의 재산을 물려받아 묘골에 정착한 뒤 종택을 짓는다. 대구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 사육신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육신사(六臣祠)가 있다.
1월14일 오늘은 마침 남영동 박종철 열사와 톤즈 이태석 신부의 35주기와 12주기여서 두루 이야기를 엮어 나갔다. 문해반 어머니들의 눈가가 반작이고 슬픈 것으로 그렁그렁하다.
박팽년, 박종철, 이태석… 시대를 떨어 울린 깊고 맑고 파란 영혼들의 숭고한 삶과 죽음 앞에 고개가 숙여진다.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어요?” 87학번 연희(김태리 분)는 무얼 바라 오늘을 살아가고 있나.
2022년 1월 9일 일요일
열공 熱工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 보물 제1411호)은 1934년 5월4일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금장리 석장사(錫杖寺) 터 부근에서 발견된 돌이다. 비문(碑文)의 첫머리에 壬申年이라는 간지(干支)가 있어 명확하지는 않으나 화랑도가 번창하던 552년(진흥왕 13), 또는 612년(진평왕 34) 임신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국 두 화랑이 부끄럼 없이 살 것과 나라에 충성할 것, 학문에 전념할 것을 맹세한 내용으로, 구획선 없이 5행(行) 74자의 한자가 새겨져 있는데, 한자 배열이 국어 어순 투로 되어 있다.
서천전(誓天前, 맹세한다. 하늘 앞)이 아니라 천전서(天前誓, 하늘 앞 맹세한다.)와 같이 서술어가 목적어나 보어, 부사어 앞이 아니라 뒤에 오는 차자(借字) 표기법인 서기체(誓記體)가 사용됐다. 서기체에 따르면 ‘책을 읽는다’는 ‘독서’가 아닌 ‘서독’이 된다. 서기체는 후에 조사와 어미까지 표기하여 문장의 의미 및 문맥을 분명히 하는 이두(吏讀)로 발전한다.
고약한 남이야 멸공 노빠꾸든 공멸 직진하든…
나는 “열라 공부”하고 “뜨겁게 사랑”하는 임인년 흑범을 만들어가자.
#열공 #맹서
2022년 1월 7일 금요일
금순이는 어디에
문해반 중학국어 2학년 마지막 7단원은 ‘문학작품에 나타난 시대적 상황’을 살펴보는 과정으로, 첫 시간인 오늘은 「굳세어라 금순아」를 공부했다.
「굳세여라 今順아」는 항미원조(抗美援朝)의 기치 아래 6·25전쟁에 개입한 중공군에 밀려 전세가 불리해지자 1950년 12월15일부터 24일까지 10일간 흥남항에서 미군 10군단과 국군 1군단이 10만명의 피란민을 수송선에 실어 남쪽으로 피란시켰던 흥남철수작전(Hungnam evacuation)의 비극적 사연을 노래하고 있다.
흥남 부두, 일사 이후 등의 낱말이 노래의 시대적 배경을 말해준다. 흥남철수 당시 부두에서 어린 누이를 잃어버리고 홀로 부산에 내려와 국제시장에서 노점으로 생계를 꾸리는 삼팔따라지 화자가 재회를 고대하며 잃어버린 누이를 애타게 찾고 있는 모습이 그려졌다. “피눈물을 흘리면서 나 홀로 왔다”는 절규는 사건의 처절성을 상징한다.
대구에서 창작활동을 하던 강해인(1911~1985)은 1950년대 초반 양키시장(교동시장)에서 1·4후퇴 직전 흥남에서 월남한 ‘금순’이란 처자를 만났다. 그녀는 부산 국제시장에서 구제옷 장사를 하다가 대구로 옮겨왔는데, 흥남부두에서 오빠와 헤어진 뒤 부산 영도다리에서 재회하기로 약속했지만 만나지 못했다는 사연을 들려주었다.
이 얘기를 바탕으로 강해인은 가사를 구상했고, 같은 오리엔트레코드사(이병주 설립, 1947~1955) 소속의 박시춘(1913~1996)에게 넘겼다. 원고를 넘겨받은 박시춘은 기타를 연주해가며 악보를 다듬은 후 현인(1919~2002)에게 연습을 시켰다. 이들은 오리엔트레코드사와 같은 건물 2층에 있던 오리엔트다방에서 창문에 군용담요를 여러 겹 둘러쳐 방음을 하고 밤을 새가며 녹음을 마쳤다. 이렇게하여 실향민의 애환과 이산가족의 아픔이 녹아난 전시(戰時) 유행가가 탄생하게 된다.
아버지 고향이 흥남이다. 눈보라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 가보지는 못했지만 그 노래만은 너무 잘 아는건 내 아버지 레파토리 때문이다. 소주 한 잔과 함께하시던 그때 그 넋두리가 이젠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민족의 오래고 지긋지긋한 불행… 더 늦기 전에 이 대결과 갈등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종전선언 #한국전쟁마침표 #한국전쟁끝 #이산가족 #실향민 #흥남부두 #흥남철수작전 #국제시장 #영도다리
「굳세어라 금순아」 악보. 대구에 가게 되면 1900년대 초부터 1950년대까지 대구의 모습을 한데 모아 놓은 ‘향촌문화관’은 물론이고, 중구 화전동 14-7(교동길 14)번지에 들러 오리엔트레코드사의 흔적을 확인해보고 싶다(미리내 수입의류). 대구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 3번 출구 인근이다. |
2022년 1월 3일 월요일
어찌 우물쭈물 망설이는가. 이미 다급하고 다급하거늘.
초사(楚辭)와 더불어 중국 고전시의 원천으로 존중받는 시경(詩經)은 약 3천년 전부터 주(周) 왕실의 관리들이 기록을 시작하고 서기전 5세기경 공자가 정리·편집하여 전해지는 시가집이자 유고의 경전이다. 그런데 내겐 고대 그리스人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詩學)과 비교하면 오히려 아는 바가 없다.
그제 밤 「옷소매 붉은 끝동」 종영(17화) 때 의빈 성덕임(이세영 분)이 정조 이산(이준호 분)에게 시경 구절을 읊어주는 장면이 5화에 이어 다시 등장했다. 시경 중 국풍(國風) 패풍(邶風)편에 실린 시구가 죽음 후에야 완성되는 두 사람의 애절한 사랑이야기에 겹치어 마음을 흔든다. 동짓달, 섣달에 연이어 효창공원을 돌아봤다. 날이 해사해질 때면 서삼릉에 가봐야겠다.
북풍기량(北風其涼)이며 우설기방(雨雪其雱)이로다
혜이호아(惠而好我 )로 휴수동행(攜手同行)호리라
기허기사(其虛其邪)아 기극지차(旣亟只且)로다
북풍은 차갑게 불고 눈은 펄펄 쏟아지네.
사랑하여,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손 붙잡고 함께 떠나리.
어찌 우물쭈물 망설이는가. 이미 다급하고, 다급하거늘.
북풍기개(北風其喈)며 우설기비(雨雪其霏 )로다
혜이호아(惠而好我)로 휴수동귀(攜手同歸)호리라
기허기사(其虛其邪)아 기극지차(旣亟只且)로다
북풍은 차갑게 휘몰아치고, 눈비는 훨훨 휘날리네.
사랑하여,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손 붙잡고 함께 돌아가리.
어찌 우물쭈물 망설이는가. 이미 다급하고, 다급하거늘.
막적비호(莫赤匪狐)며 막흑비오(莫黑匪烏)아
혜이호아(惠而好我)로 휴수동거(攜手同車)호리라
기허기사(其虛其邪)아 기극지차(旣亟只且)로다
붉지 않다고 여우가 아니며, 검지 않다고 까마귀 아니런가.
사랑하여,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손 붙잡고 수레에 오르리.
어찌 우물쭈물 망설이는가. 이미 다급하고, 다급하거늘.
#옷소매붉은끝동 #새피엔딩 #이산 #성덕임 #문효세자 #효창공원 #효창원
2022년 1월 1일 토요일
피맺힌 기러기의 눈물
https://youtu.be/XZFOHzXeBVw
그러나… 힘들게 날아온 기러기는 철책에 부딪히며 철책선 사이에 끼었다. 밤새 이 위기를 벗어나려고 죽을힘을 다해 날개짓을 했지만, 추위와 분단의 상징 철책선은 기러기를 죽음으로 이끌었다. 밤새 퍼덕이던 날개는 얼어 버렸다. 기러기는 고통의 눈물을 흘렸고 그 눈물은 고드름이 되었다.
피맺힌 기러기의 눈물.
철책에 꺾인 기러기의 죽음… 분단이 만들어 낸 DMZ의 또다른 자연의 얼굴이다. ―DMZTV, 취재: 전영재, 편집: 차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