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16일 월요일

동작동 국립묘지 역사문화트레킹

지난 토요일(10월 14일) 제36차 역사문화트레킹은 국립서울현충원과 남관왕묘를 둘러보는 코스였다. 4호선 동작역 4번출구로 나와 육교를 건너서 9호선 8번출구 방향으로 500여 미터를 걸어 현충원 입구에 도착했다.
M1 카빈 소총과 M16을 든 충성분수대의 군인상이 인상적이었다.


현충문 지붕 위에는 경복궁 근정전(勤政殿)과 같은 7개의 잡상이 올라가 있었다. 현충탑 앞 제단에서 향을 올리고, 열십자 통로의 위패봉안관을 경건한 마음으로 둘러보았다.


장병묘역… 전장을 누볐던 부하들과 사후까지 함께 하고자 했던 채명신 중장의 의기가 느껴져 숙연한 생각이 든다.


애국지사묘역 하단 우측… 헤이그 이위종 참서관의 숙부인 이범윤(1863~1940) 간도관리사,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에 함께 한 우덕순(1876~1950) 의사, 제3대 총독으로 부임하던 사이토 마코토에게 투폭한 대한노인단의 강우규(1855~1920) 의사, 제국신문 창간자이자 태화관 독립선언서 낭독자인 이종일(1858~1925) 선생, 종로경찰서에 투폭 후 효제동 일대에서 일경을 상대로 전설의 1대 1000 총격전을 벌인 김상옥(1890~1923) 의사, 2015년에 1200만을 돌파한 영화 <암살>에서 전지현이 열연했던 모델 남자현(1872~1933) 지사의 묘소를 참배하였다.



애국지사묘역 하단 좌측으로 이동… 캐나다의 감리교 선교사로 화성 제암리 학살사건의 참상을 보도한 석호필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Frank William Schofield, 1889~1970) 박사, 고종의 강제퇴위와 군대해산을 당하여 자결한 박승환(1869~1907) 시위대 제1대대장, 태백산 호랑이 신돌석(1878~1908) 의병장의 묘소를 참배하였다.


애국지사묘역 상단 우측으로 이동…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아나키스트 이회영(1867~1932) 선생, 남만주 일대 조선혁명군의 총사령 양세봉(1896년~1934) 장군, 조선통감부 외교고문 더럼 화이트 스티븐스(Durham White Stevens)를 공격한 전명운(1884~1947), 장인환(1876~1930) 의사의 묘소를 참배하였다.


임정요인묘역으로 이동… 독립군 비행사를 양성한 노백린(1875~1926) 장군, 서로군정서와 정의부의 참모장을 지낸 김동삼(1878~1937) 지사, 북만주 한국독립군과 임시정부 한국광복군 총사령 지청천(1888~1957) 장군, 배설(어니스트 베델)과 함께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양기탁(1871~1938) 선생,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을 지낸 한국독립운동지혈사의 박은식(1859~1925) 선생, 임시정부의 첫 국무령 이상룡(1858~1932) 선생의 묘소를 참배하였다.



국가유공자 제2묘역으로 이동… 한글연구에 헌신한 한힌샘 주시경(1876~1914) 선생, 애국가 작곡자와 일제 협력자의 양가감정을 갖게 하는 안익태(1906~1965)의 묘소를 둘러보았다.


2009년 8월 서거한 김대중 대통령 묘역은 이승만이나 박정희의 그것에 비해 상당히 협소하다. 최근엔 언론보도를 통해서 MB정권 시절 DJ의 노벨평화상 수상 취소 청원을 도모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김대중 묘역 바로 옆 1시 방향으로 중종의 후궁이자 선조의 조모인 창빈안씨(昌嬪安氏)의 묘가 있다. 하성군 균(鈞)은 왕좌에 오른 후 아버지 덕흥군 이초(李岹)를 덕흥대원군으로, 할머니 숙용 안씨를 정1품 창빈으로 추존하여 각각 덕릉과 동작릉으로 능호를 올리려고 시도하였다 한다. 서달산을 주산으로 하여 공작이 날개를 펴고 있는 형상의 명당이라는데 좋아보이기는 했다. 그런데 알림판의 ‘Lady Changbin An’이라는 영어 표현이 맞는 건지 모르겠다. 2012년 개봉한 조여정 주연의 영화 <후궁: 제왕의 첩>에서는 ‘The Concubine’이라 표현하더구만…


통일신라 말기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갈궁사(葛弓寺)는 조선 선조 때 창빈안씨의 원찰로 지정되면서 화장사(華藏寺)로 개칭되었고, 1983년에 다시 호국지장사(護國地藏寺)로 변칭되었다. 능인보전(能仁寶殿) 옆으로 지장보살입상이 자리하고 그 뒤편으로 3천의 작은 지장보살이 좌열해 있다.


현충원 사당출입문으로 내려오면 정유재란 시기인 선조 31년(1598)에 건립된 남관왕묘(南關王廟)로 갈 수 있다. 보통은 남묘(南廟) 현판이 달린 정문이 빼꼼히 열려 있다. 정문 안쪽에는 관성묘(關聖廟) 편액이 걸려 있다.


정전에는 현성전(顯聖殿) 현판이 달려있는데, 이건 동묘(東廟)에서도 본 거 같다. 경내에 금잡인(禁雜人), 재단법인(財團法人), 대소인원개하마(大小人員皆下馬)가 새겨진 석물이 보인다. 남묘는 일제강점기 때 남묘유지사(南廟維持社)라는 단체로 불하되었다고 하는데 이후의 소유권 문제는 자세히 모르겠다. 하여간 개인주택화 되어있는 듯하니 방문시에는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이번 서울현충원 트레킹은 유난히 노쇼(No-Show)가 많아 허탈하다. 분명 을(乙)이 아닐진대 갑질을 당한 공허하고도 처참한 기분…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으니 결국은 소정의 참가비를 책정하고 사전에 입금을 받는 방향으로 가야할까보다. 그도 아니면 사전답사 없는 혼행으로 다니면 그만이지. 외로움보다는 고독이 훨 익숙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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