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5일 목요일

몽염 열전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는 모두 130권인데, 그 가운데 서(書) 8권과 표(表) 10권을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인물 이야기이다. 12본기(本紀)는 제왕들의 이야기이며, 30세가(世家)는 제후·신하들의 이야기이고, 70열전(列傳)은 ‘정의를 북돋우고 재주가 뛰어나서 때를 잃지 않고 공명을 천하에 세운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사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열전은 선과 악, 거짓과 진실이 서로 얽혀 엮어진 인간 드라마이며, 사마천의 세계관이자 역사관이기도 하다.
이릉사건으로 궁형을 당한 사마천이 그 치욕을 이기고 살아 남는 까닭을 이 문장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서라 한다.
본기의 ‘기’와 열전의 ‘전’을 따서 이름을 붙인 ‘기전체’라는 역사 서술 형식의 효시가 되었다. 참으로 매력있는 잘 읽히는 책이다.

사기 열전 중 4대강 사업을 몰아붙이는 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대목이 있어 발췌하여 옮겨 적는다. 제 28권 「몽염 열전」이다.

몽염(蒙恬)은 그 조상이 제나라 사람이다. 시황 26년에 몽염은 집안에서 대대로 장군을 지낸 관계로 진나라 장군이 되어, 제나라를 공격하여 크게 격파하고 그 공으로 내사(內史)가 되었다.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뒤에 몽염에게 명하여 30만 대군을 거느리고 북쪽으로 가서 융적(戎狄)을 내어쫓고, 하남을 점령하여 장성(長城)을 쌓게 했다. 지형에 따라 험난한 곳을 이용하여 성채를 쌓았는데, 임조(临洮)에서 시작하여 요동(辽东)에 이르기까지 연장이 일만여리나 되었다. 시황제는 몽씨 일족을 매우 존중하고 총애했으며, 그들을 신임하고 현명하게 여겼다.

시황제가 천하를 순행하려고 했는데, 구원에서 길에 올라 곧바로 감천까지 가고 싶어했다. 그래서 몽염을 시켜 구원에서 감천까지 길을 뚫게 했다. 몽염은 산을 깍아내리고 골짜기를 메워 1,800리를 뚫었지만, 길은 완성되지 않았다. 시황 37년 겨울에 황제가 길을 떠나 회계산에 노닐다가, 바닷길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 낭야(琅邪)로 향하였다. 그러나 도중에 병이 나서, 사구에서 붕어했다. 그러나 비밀에 부쳤으므로 다른 신하들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이때 좌승상 이사(李斯)와 공자 호해(胡亥), 중거부령 조고(趙高)가 늘 황제의 곁을 따라다녔다. 조고는 본래부터 호해의 총애를 받고 있었으므로, 호해를 황제로 세우려 하였다. 그래서 승상 이사, 공자 호해와 음모하고는, 호해를 세워서 태자로 삼았다. 호해는 태자가 되자 공자 부소와 몽염에게 사자를 보내어서 그들에게 죄를 씌워 죽음을 내렸다.

몽염이 길게 한숨쉬고 말했다.
“내가 하늘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잘못도 없이 죽어야 한단 말인가?”

한참 있다가 천천히 말했다.
“나의 죄는 참으로 죽어 마땅하다. 임조에서 공사를 일으켜 요동에 이르기까지 장성을 만여리나 쌓았으니, 그 가운데 어찌 지맥을 끊어놓지 않았겠는가? 이게 바로 나의 죄이다.”

그리고는 약을 삼키고 죽었다.

요컨대 진시황의 충복으로 만리장성 축조를 진두지휘한 장군 몽염이 2세 황제 호해에게 죽임을 당함에 1만여리 장성을 쌓는 동안 지맥을 끊어놓은 자신의 죄과가 크다고 통탄했다는 줄거리다.
그러나 사마천은 태사공의 입을 빌어 몽염의 비극적 말로의 본질이 그 반시대적ㆍ반시민적 행보에 있음을 다음과 같이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태사공은 말한다.

나는 북쪽 변경지방에 갔다가 직도(直道)를 통해 돌아왔다.
길을 가면서 몽염이 진나라를 위해 쌓은 만리장성의 요새를 보니, 산을 깍아내리고 골짜기를 메워 직도를 통하게 했다. 참으로 백성들의 노고를 가볍게 여긴 짓이다.
진나라가 제후들을 멸망시킨 초기에는 천하의 민심이 아직 안정되지 못했고, 상처를 입은 자들도 아직 낫지 않았다. 그런데 몽염은 명장이면서도 이러한 때를 당해 강력히 간언하여 말리지 못했다. 백성의 궁핍을 구제하고 노인과 고아를 부양하여, 모든 백성들에게 평화를 주려고 힘쓰지 않았다. 시황제의 야심에 추종하여 커다란 공사를 일으켰다. 그들 형제(몽염·몽의)가 사형당한 것도 또한 마땅하지 않은가? 어찌 지맥 끊은 것에다 죄를 돌리려 하는가?

몽염의 망상은 22세기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작금의 한반도 남쪽에 재현되고 있다.
강물은 흐르는 것이 자연의 순리일진대, 오늘도 쇠 귀에 경 읽은 기분이다. 역사를 뒤돌아보는 능력도 의지도 없는 일당들에게는 배워지는 것이 없겠으니 말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