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 이원록(1904.5.18~1944.1.16)은 안동시 도산면 원촌마을의 여섯형제(원기·원록·원일·원조·원창·원홍) 중 둘째로, 진성이씨 퇴계 이황의 14대 손이다. 의사는 대구감옥 수인번호 264를 마음에 새겨 일제에 강점당한 비통한 역사를 찢어 죽이겠다는 의미의 죽일육 역사사, 육사(戮史)를 필명으로 썼다. 허나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뜻이 위험하다는 친척 어른의 제안에 따라 뭍육 육사(陸史)로 바꾸었다. 의열단원 석정 윤세주로부터 가입을 권유받고 대일항쟁 최전선인 만주벌을 누비며 비밀공작원으로 활동했다. 1943년 피체된 후 북경 일본총영사관 감옥에서 순국했다.
어제는 은빛신문 코디를 마치고, 문화공간이육사 앞 264예술공원으로 향했다. 육사는 1939년 성북구 종암동 62번지로 이사해 3년간 머물면서 청포도, 횡액, 절정, 교목 등의 시를 썼다. ‘이육사 탄생 119주년 기념문화제’ 펼침막의 “푸른 하늘에 다을드시”는 「교목」의 첫 구절이다. 세월에 불타고, 낡은 거미집을 휘두르고, 호수 속 깊이 거꾸러져도 우뚝 남아 선 교목(喬木)은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암담한 시대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화자의 단호한 저항의지를 상징한다.
가랑비가 흩뿌리는 중에도 문화제에는 녹색풍선을 띄우고, 청포도 알사탕과 녹색 종이모자가 구비됐다. 개회 시점(2시30분)에 대략 70명의 참가자가 보였는데, 정·관계 인사와 기념관·공연 관계자가 50명 다수를 점하고, 지역민은 10여 명이다. 1941년, 5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을 하숙했던 윤동주에 대해 종로구와 지역주민·관광객이 갖는 진한 애정, 뜨거운 관심과 대조적이어서 서늘한 감정이 든다. 폴리티션 옆자리에 앉은 이옥비(李沃非) 외동따님이 세월처럼 안쓰럽다.
지나가던 중년의 한마디가 들려온다. “어이구, 날을 잡아도 이런 날을 잡아가지고…” 생일날 생일잔치 여는 게 잘못된 일인가? 연관 조직의 지속적인 대중강연과 홍보 미비, 지역민의 역사의식 부재는 여지없다. 조국독립을 위해 한평생 초인(超人)적인 삶을 살다 가신 순국지사에 대한 예우가 이리도 박하다…… 이러매도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린 청포선비의 매화향기는 고고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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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육사 탄생 119주년 기념문화제가 열린 성북구 종암동의 264예술공원. [하]청포도 시비. 육사는 “내고장은 조선이고 청포도는 우리 민족인데, 청포도가 익어가는 것처럼 우리 민족이 익어간다. 일본도 곧 끝장난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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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에 개관한 문화공간이육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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