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17일 수요일

그 푸른 계절에 떠났지

1988년 5월15일, 명동성당 청년단체연합회의 가톨릭민속연구회 회원 한 사람이 교육관 옥상에 올랐다. 김제 출신의 서울대생 조성만(요셉)이었다. 전주 해성고 시절 중앙성당에서 문정현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영원한 우방인 줄만 알았던 미국이 5·18광주민중항쟁의 배후에 있었다는 견해가 대두하던 무렵, 대학 언더서클에서 만난 김세진의 분신 죽음을 목도한 24살 청년은 조국의 통일과 한반도 평화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고민했다.

“척박한 땅, 한반도에서 태어나 인간을 사랑하고자 했던 한 인간이 조국 통일을 염원하며 이 글을 드립니다. (중략) 지금, 이 순간에도 떠오르는 아버님, 어머님 얼굴. 차마 떠날 수 없는 길을 떠나고자 하는 순간에 척박한 팔레스틴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한 인간이 고행 전 느낀 마음을 알 것도 같습니다.”

1988년 5월15일 명동성당은 예수승천대축일을 기해 유가협·민가협의 양심수 석방운동과 본당 청년들의 마구달리기 발대식 등으로 떠들썩했다. 오후 3시30분, 조성만은 준비한 자필유서를 뿌리고 ‘광주학살 진상 규명’을 외치며 명동성당 교육관 옥상에서 자신의 배를 찌른 후 긴 그림자를 남기며 12m 아래로 몸을 던졌다. 백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저녁 7시20분경 세상을 떠났다.

일요일엔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 참배한 후 어제는 35주기 추모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명동성당에 왔다. 관할 주교나 본당 신부의 재가가 있었기에 미사가 봉헌되는 것이렷다. 하지만 명동성당 역사관에 조성만 요셉 형제의 이름은 없다. 2018년 교황청이 국제순례지로 승인했다는 천주교 서울순례길은 물론이고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서소문순례길, 중구에서 운영하는 명동역사문화투어에서도 해설사는 조성만을 언급하지 않는다. 명동 일대 답사를 진행하게 되면 내가 얘기해보련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어야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음을 알게 될까?

1988년 조성만(요셉) 형제의 장례미사는 명동성당에서 봉헌되지 못했다. 가톨릭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에 대해 공식적인 추모미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죽음은 하느님의 영역이기에 사람이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교회의 공식적인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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