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3일 월요일

홍암 나철… 잃어버린 역사의 복원자

전남 보성군 벌교읍 칠동리 금곡마을 출신의 홍암(弘巖) 나철(羅喆, 1863~1916.8.15)은 29세에 문과에 장원급제하고 승정원 가주서(假注書), 승문원 권지부정자(權知副正字)를 지냈다. 나철은 1905년 가쓰라 태프트 밀약(7.29) 이후 포츠머스 조약(9.5)을 앞두고 외부대신 이하영을 찾아가 대한제국 대표로 회담에 참석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회담 참석이 무산되자 메이지 덴노에게 보내는 격문(대한매일신보 1905.11.4)을 통해 ①동양3국의 평화 ②조선의 주권·영토 보존 약속 ③일본인의 경제적 침탈방지 이행을 요구했다.

을사조약(1905.11.17) 후인 1907년 비밀결사 자신회(自新會)를 조직하고 전국적으로 200여 동지를 규합했다. 사재를 털고 모금을 벌여 권총 50정을 구입해 을사5적의 처단을 결의, 매국대신 암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배형을 받았다. 나철은 국운이 기울어가는 절망스런 상황에서 간절한 독립의 열망을 담아 1909년 1월15일(양력 2월5일) 단군을 국조로 한 단군교(檀君敎)를 중광(重光)하고 이듬해 대종교(大倧敎)로 개칭했다.

만주 독립군의 상당수가 대종교 출신이며, 대한민국임시정부의 2대 국경일이 ①3월1일 독립선언일(삼일절) ②10월3일 건국기원절(개천절)이었다. 박정희 군사정부는 1962년 1월1일(단기 4294년 12월31일)부로 단기(檀紀) 연호를 폐지하고, 공식적으로 서기 연호를 사용했다. 단 하루 사이에 2333년이란 시간이 사라졌다.

창덕궁과 원서공원 사이 창덕궁길에 들어서 금호문(金虎門)을 지나 50m쯤 가면 「개천절 행사 발상지」 표지판을 볼 수 있다. 표지판에는 “1909년 대종교에서 음력 10월 3일을 환웅이 지상에 내려왔다 하여 개천절로 정하고 이곳에서 첫 행사를 치렀다. 1949년 대한민국 정부는 양력 10월 3일을 국경일로 정했다.”라는 설명이 쓰여 있다. 개천절(開天節)은 ‘하늘이 열려 세상을 다스리는 질서’를 기념하는 날이다. ①환웅이 처음 신시(神市)를 연 날이자 ②단군이 처음으로 개국한 날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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