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군 북면 마차공소(磨磋公所)에서 주일미사에 참례했다. 이번 7월부터 매월 첫째주에 원주교구 영월성당에서 신부님(김진형 세자요한)이 나오셔서 4시 미사를 집전하는 일정이 잡혔는데, 운 좋게 날짜를 맞추게 됐다. 가톨릭교회에서 공소(公所)는 공적인 사무를 처리하는 장소라는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 본당(本堂)보다 작은 규모의 교회 단위를 가리킨다. 공소에는 사제가 상주하지 않기에 공소회장을 중심으로 미사를 대신한 공소예절이 거행된다. 요컨대 공소예절은 성찬의 전례가 빠진 미사 형식이다.
북면 마차리의 영월광업소(마차탄광)는 1935년에 문을 연 영월탄전으로 일제강점기 조선전력주식회사가 건설한 영월발전소의 연료원을 공급하기 위해 개발됐다. 영월광업소는 48개 철탑이 받쳐주는 가공삭도(架空索道)를 통해 12㎞ 떨어진 영월화력발전소로 석탄을 운반하며 전성기(1952년 전후 7천명 직원)를 구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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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마차공소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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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마차공소 내부 |
광산의 호황과 함께 인구가 증가하며 신자수가 100여 명에 이르자 ‘원주교구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대화성당의 故이영섭(프란치스코) 신부가 마차공소를 짓기 시작하여, 1962년(10.16)에 축성식을 가졌다. 이후 대한석탄공사로부터 지금의 자리를 기증받아 현 공소 건물과 사제관 등을 새로 지었다. 1965년(9.8)에는 영월본당에서 독립해 원주교구 내 14번째이자 교구 설정 후 1번째인 마차본당으로 승격하고, 마차6리2반 1107-1번지에 새 성전을 신축했다(주보 한국순교복자 79위). 하지만 사양길로 접어든 탄광산업을 따라 인구가 줄고 신자수도 급감하면서 불과 3년 뒤인 1968년(7.17)에 1대 본당신부 재임 중 다시 영월본당 관할 공소로 격하되었고 오늘까지 그때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요컨대 마차공소(마차리 1107-4)는 영월 마차탄광촌의 흥망성쇠를 모두 지켜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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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 후 23년 동안 마차공소의 공소회장를 맡아온 신대식(다니엘) 선생님 댁에서 사모님이 내어주신 체리차를 마셨다. 신 회장님은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회원이다. 號를 東天으로 하여 다수의 작품을 발표했다. [상] 동천 선생님이 쓴 서산대사의 禪詩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하] 「하늘새」 작품 하나를 선물로 주셨다. 고고한 鶴의 자태가 절묘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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