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29일 월요일

옛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보안분실 탐방

13일 토요일 오전 11시, 지인들과 함께 번개 투어를 갔다. <1987> 영화를 관람한 뒤 급조한 탐방 일정임에도 모두 16명이 함께 했다. 37번째 역사문화트레킹이자 명례방협동조합의 2번째 번개야행이기도 하다.


고 박종철 군이 참고인 신분으로 연행된 1987년 1월 14일 수요일의 최저기온은 영하 15.1℃… 당시 이곳 용산구 갈월동 88번지의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에서 고문치사(拷問致死)가 벌어졌고 이후 은폐조작이 자행됐다.


‘○○해양연구소’라는 위장 간판을 달았던 이 음습하고 음침한 건물은 1976년 당시 내무부의 발주에 따라 김수근이 설계하였다. 그나마 참여정부 때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로 현판을 바꿔달면서 ‘인권’을 표방하였으나, 용산·쌍용·밀양·강정·백남기의 사례에서 보듯 이명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인권은 거추장스러운 장애물 수준으로 전락하고 만다.
박종철이 물고문을 당하고 숨져간 509호실에 대비되어 김근태가 고문기술자 이근안으로부터 전기고문을 당했던 515호실은 원형 보존이 되어 있지 않아 아쉽다.




1987년 4월 13일 대통령 전두환의 호헌선언에 부역했던 영혼없는 공직자들의 뿌리는 깊다. 현재까지도 강력하게 이어지고 있는 이들에 대한 청산 없이는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 따위는 요원한 허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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