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도시농업네트워크에서 진행한 민통선 생명평화여행에 참가했다.
아침 9시 30분… 일산동구청에서 집결 후 왼편으로 장항습지를 두고 자유로를 달려서 찾아간 곳은 동이대교 아랫쪽의 주상절리(柱狀節理, columnar joint).
동이리 주상절리는 27만~10만년 전 북한 평강지역 오리산과 부근 680고지에서 흘러온 용암이 임진강을 만나 역류해 생성된 주상절리대의 일부분인데, 2015년에 환경부에서 우리나라 7번째 지질공원으로 등록한 한탄·임진강 지질공원의 한 축인 곳이다. 지질공원은 국립공원 등 여타 자연공원에 비해 재산권 제약이 까다롭지 않다고 한다.
교각 주변엔 갈대밭도 있었는데, 보통 갈대는 물이 있는 습지에서 자라는 반면 억새는 산과 들에서 많이 자란다. 하지만 물가에 사는 물억새도 있어서 헷갈리기 쉬운데, 이럴 경우엔 잎사귀로 구분해야 한다. 꽃도 갈대꽃 쪽이 좀더 복슬복슬한 느낌이다.
다시 버스를 타고 11시 방향으로 이동하여 연천 유엔군 화장장 시설에 도착했다.
1952년 6·25전쟁 당시 영국군과 벨기에군이 연천 금굴산 전투에 투입되었는데, 이때 희생된 유엔군의 유해를 화장하여 본국으로 송환하기 위해 영국군이 막돌 허튼층 쌓기로 마련한 7m 높이의 굴뚝과 부속 화장시설이다.
1993년에 지역의 향토사학자가 발견했다고 알려졌다. 2008년에 등록문화재 제408호로 지정되었고 현재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이기도 하다.
UN군 화장장에서 500m쯤 서쪽에 당포성(堂浦城)이 있다.
원래는 백제의 성이었겠지만 5세기 경에는 남진에 성공한 고구려의 요새가 되었을 것이다. 다시 6세기 이후에는 나제연합군에 밀리면서 북퇴한 후 100년 넘게 신라와 마주한 고구려의 임진강 방어선이 되었을 것이다. 1992년 발견된 당포성은 해자만 해도 폭 6m에 깊이 3m가 된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기다란 이등변삼각형 형태의 절벽 위에 축조했는데, 수직벽이 아닌 동쪽에는 현무암을 가지고 다듬돌 바른층 쌓기로 축성하였다. 안내판에는 6m 높이라고 쓰여있지만 그보다는 낮아 보였다. 당포성은 2006년에 사적 제468호로 지정되었다. 1500여년의 풍상을 헤쳐온 고구려의 요새를 문화상품화하면 좋은 줄거리가 나올 법도 하다.
다시 서쪽으로 1㎞쯤 이동하니 고려왕조의 종묘랄 수 있는 숭의전이다.
정문인 천수문(天授門) 앞쪽으로 수령 550년이 넘은 20m짜리 느티나무 2그루가 서있다. 그러고보니 왕건이 사용한 연호가 천수(天授)였네.
정전인 숭의전(崇義殿)은 고려 태조, 8대 현종, 11대 문종, 24대 원종 등 4황제의 위패와 왕건의 어진을 모시고 있다. 배신청(陪臣廳)은 고려 16공신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복지겸·홍유·신숭겸·유금필·배현경·서희·강감찬·윤관·김부식·김취려·조충·김방경·안우·이방실·김득배·정몽주가 배향돼 있다.
6·25전쟁 때 전각이 소실되었는데, 연천 숭의전지는 1971년에 사적 제223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매년 봄가을에 한 차례씩 개성왕씨종친회 주관으로 춘계대제와 추계대제가 봉행되고 있다.
600m 길이의 숭의전 둘레길은 평화누리길 11코스와도 연계되어 있다. 잠두봉에서 참나무 6형제(졸참나무·갈참나무·굴참나무·신갈나무·떡갈나무·상수리나무)를 확인해 보았다.
숭의전으로 올라가는 하마비와 홍살문 아래쪽에 어수정(御水井)이 있다. 태봉국의 신하로 녹을 먹던 시절의 왕건이 마시던 물이라고 한다.
길 맞은편으로 식당 2개가 나란히 붙어 있다. 우리는 왼편의 왕자회관에서 점심을 먹었다. 버섯전골 맛이 좋았고, 밑반찬이 맛깔났으며 무엇보다 주인아주머니가 친절하게 서비스해 주셨다.
예전엔 장군교가 지나던 장군여울 위쪽에 설치된 임진강 두루미 생태관찰대에서 탐조망원경으로 철새를 탐조했다.
천연기념물 제202호인 두루미(red-crowned crane)는 울음소리에 따라 명명되었는데, 정수리에 붉은 점이 있다. 두루미·학·단정학(丹頂鶴)은 같은 새의 다른 이름이다. 천연기념물 제203호인 재두루미(white-naped crane)는 눈 주변이 붉은 색이다. 길 잃은 새(迷鳥, stray bird)로 추정되는 시베리아 흰두루미(Siberian white crane) 2마리도 관찰하는 행운이 따랐다. 망원경 렌즈에 스마트폰을 대고 철새 사진을 박아보았는데 생각보다 잘 나온 듯하다.
아름다웠다. 오늘 일정 중에서 초등생 등 아동과 청소년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활동이 아니었나 싶다. 스완구스(swan goose)… 기러기의 일종으로 거위의 조상쯤 된다는 개리(또는 게리) 얘기도 재미있었다. 성삼이와 덕재의 ‘단정학’이 생각났다. 폴 사이먼의 ‘철새는 날아가고(El condor pasa)’도 생각났다.
빙애여울을 지나 민통선(민간인통제선) 내 제28보병사단 태풍부대로 들어갔다.
중서부전선 264m 비슬산 정상의 태풍전망대는 155마일 휴전선에 설치된 크고 작은 12개 전망대 중 북한과 가장 근접한 전망대다. 남쪽으로 흐르는 임진강 사이로 배티고지, 노리고지 등이 보였다. 흐린 날씨임에도 1600m 전방의 북한 초소와 북한군 병사가 총을 맨 모습까지 렌즈 너머로 볼 수 있었다.
오늘 함께 탐방길에 오른 명례방협동조합 여섯 식구들과 태풍전망대 앞에서 포즈 잡고 한 컷~
태풍전망대에서 4시 방향으로 5㎞ 직선거리에 군남홍수조절지가 있다. 북한 황강댐의 무단방류에 대응하기 위해 조성된 댐이라고 한다. 안내를 맡은 박평수 선생님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실질적으로 홍수조절 역할을 하는 댐은 소양강댐과 충주댐 2개소라고 한다. 오늘 본 군남댐은 26m까지 채워져 있었다.
연강나룻길 두루미 테마파크가 있는 곳인데, 조형물만 있을 뿐 실제 두루미는 볼 수가 없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주판알 튕기면서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표리부동한 정치인을 빗대 ‘철새족’이라 하는 것은 철새에 대한 심각한 모욕이자 명예훼손이다.
37번 국도를 타고 7시 방향으로 30㎞쯤 달리면 도로변에 적군묘지(敵軍墓地)가 있다. 왼편 1묘역에는 북한군이, 오른편 2묘역에는 북한군 일부와 중공군이 묻혀 있다.
원래는 1968년 1·21사태를 도발하여 사살된 김신조의 124군부대 무장공비들의 가묘가 있던 곳인데 제네바 협약 제120조 등에 따라 YS 시절인 1996년 7월, 전국에 산재한 적군묘를 모아 지금처럼 조성하여 전 세계에서 유일한 적군(enemy)의 묘지가 탄생하였다.
‘무명인’이란 이름이 새겨진 30×25㎝의 화강암 비석에는 ‘○○지구 전투’라는 지역명도 적혀 있다. 벌초 등 깔금하게 관리된 모습이었다.
재임 초기인 2013년 베이징을 방문한 박근혜는 중국군의 유해를 송환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2014년 3월 27일 중국으로 인도된 437구의 유해는 선양에 있는 항미원조열사릉에 안치됐다고 한다. 사진의 빈 공간은 중공군들의 유해가 묻혀있던 곳이다.
태풍전망대, 유엔군 화장장 시설, 적군묘지는 전쟁의 비극과 아물지 못한 상처를 일깨워주고 있어 마음이 무겁고 아프다.
당일치기 짧은 한 번의 여행에 생명, 평화, 안보, 생태라는 거대담론을 조금씩 담아낸 보람있는 일정이었다.
아침 9시 30분… 일산동구청에서 집결 후 왼편으로 장항습지를 두고 자유로를 달려서 찾아간 곳은 동이대교 아랫쪽의 주상절리(柱狀節理, columnar joint).
동이리 주상절리는 27만~10만년 전 북한 평강지역 오리산과 부근 680고지에서 흘러온 용암이 임진강을 만나 역류해 생성된 주상절리대의 일부분인데, 2015년에 환경부에서 우리나라 7번째 지질공원으로 등록한 한탄·임진강 지질공원의 한 축인 곳이다. 지질공원은 국립공원 등 여타 자연공원에 비해 재산권 제약이 까다롭지 않다고 한다.
교각 주변엔 갈대밭도 있었는데, 보통 갈대는 물이 있는 습지에서 자라는 반면 억새는 산과 들에서 많이 자란다. 하지만 물가에 사는 물억새도 있어서 헷갈리기 쉬운데, 이럴 경우엔 잎사귀로 구분해야 한다. 꽃도 갈대꽃 쪽이 좀더 복슬복슬한 느낌이다.
다시 버스를 타고 11시 방향으로 이동하여 연천 유엔군 화장장 시설에 도착했다.
1952년 6·25전쟁 당시 영국군과 벨기에군이 연천 금굴산 전투에 투입되었는데, 이때 희생된 유엔군의 유해를 화장하여 본국으로 송환하기 위해 영국군이 막돌 허튼층 쌓기로 마련한 7m 높이의 굴뚝과 부속 화장시설이다.
1993년에 지역의 향토사학자가 발견했다고 알려졌다. 2008년에 등록문화재 제408호로 지정되었고 현재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이기도 하다.
UN군 화장장에서 500m쯤 서쪽에 당포성(堂浦城)이 있다.
원래는 백제의 성이었겠지만 5세기 경에는 남진에 성공한 고구려의 요새가 되었을 것이다. 다시 6세기 이후에는 나제연합군에 밀리면서 북퇴한 후 100년 넘게 신라와 마주한 고구려의 임진강 방어선이 되었을 것이다. 1992년 발견된 당포성은 해자만 해도 폭 6m에 깊이 3m가 된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기다란 이등변삼각형 형태의 절벽 위에 축조했는데, 수직벽이 아닌 동쪽에는 현무암을 가지고 다듬돌 바른층 쌓기로 축성하였다. 안내판에는 6m 높이라고 쓰여있지만 그보다는 낮아 보였다. 당포성은 2006년에 사적 제468호로 지정되었다. 1500여년의 풍상을 헤쳐온 고구려의 요새를 문화상품화하면 좋은 줄거리가 나올 법도 하다.
다시 서쪽으로 1㎞쯤 이동하니 고려왕조의 종묘랄 수 있는 숭의전이다.
정문인 천수문(天授門) 앞쪽으로 수령 550년이 넘은 20m짜리 느티나무 2그루가 서있다. 그러고보니 왕건이 사용한 연호가 천수(天授)였네.
정전인 숭의전(崇義殿)은 고려 태조, 8대 현종, 11대 문종, 24대 원종 등 4황제의 위패와 왕건의 어진을 모시고 있다. 배신청(陪臣廳)은 고려 16공신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복지겸·홍유·신숭겸·유금필·배현경·서희·강감찬·윤관·김부식·김취려·조충·김방경·안우·이방실·김득배·정몽주가 배향돼 있다.
6·25전쟁 때 전각이 소실되었는데, 연천 숭의전지는 1971년에 사적 제223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매년 봄가을에 한 차례씩 개성왕씨종친회 주관으로 춘계대제와 추계대제가 봉행되고 있다.
600m 길이의 숭의전 둘레길은 평화누리길 11코스와도 연계되어 있다. 잠두봉에서 참나무 6형제(졸참나무·갈참나무·굴참나무·신갈나무·떡갈나무·상수리나무)를 확인해 보았다.
숭의전으로 올라가는 하마비와 홍살문 아래쪽에 어수정(御水井)이 있다. 태봉국의 신하로 녹을 먹던 시절의 왕건이 마시던 물이라고 한다.
길 맞은편으로 식당 2개가 나란히 붙어 있다. 우리는 왼편의 왕자회관에서 점심을 먹었다. 버섯전골 맛이 좋았고, 밑반찬이 맛깔났으며 무엇보다 주인아주머니가 친절하게 서비스해 주셨다.
예전엔 장군교가 지나던 장군여울 위쪽에 설치된 임진강 두루미 생태관찰대에서 탐조망원경으로 철새를 탐조했다.
천연기념물 제202호인 두루미(red-crowned crane)는 울음소리에 따라 명명되었는데, 정수리에 붉은 점이 있다. 두루미·학·단정학(丹頂鶴)은 같은 새의 다른 이름이다. 천연기념물 제203호인 재두루미(white-naped crane)는 눈 주변이 붉은 색이다. 길 잃은 새(迷鳥, stray bird)로 추정되는 시베리아 흰두루미(Siberian white crane) 2마리도 관찰하는 행운이 따랐다. 망원경 렌즈에 스마트폰을 대고 철새 사진을 박아보았는데 생각보다 잘 나온 듯하다.
아름다웠다. 오늘 일정 중에서 초등생 등 아동과 청소년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활동이 아니었나 싶다. 스완구스(swan goose)… 기러기의 일종으로 거위의 조상쯤 된다는 개리(또는 게리) 얘기도 재미있었다. 성삼이와 덕재의 ‘단정학’이 생각났다. 폴 사이먼의 ‘철새는 날아가고(El condor pasa)’도 생각났다.
빙애여울을 지나 민통선(민간인통제선) 내 제28보병사단 태풍부대로 들어갔다.
중서부전선 264m 비슬산 정상의 태풍전망대는 155마일 휴전선에 설치된 크고 작은 12개 전망대 중 북한과 가장 근접한 전망대다. 남쪽으로 흐르는 임진강 사이로 배티고지, 노리고지 등이 보였다. 흐린 날씨임에도 1600m 전방의 북한 초소와 북한군 병사가 총을 맨 모습까지 렌즈 너머로 볼 수 있었다.
오늘 함께 탐방길에 오른 명례방협동조합 여섯 식구들과 태풍전망대 앞에서 포즈 잡고 한 컷~
태풍전망대에서 4시 방향으로 5㎞ 직선거리에 군남홍수조절지가 있다. 북한 황강댐의 무단방류에 대응하기 위해 조성된 댐이라고 한다. 안내를 맡은 박평수 선생님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실질적으로 홍수조절 역할을 하는 댐은 소양강댐과 충주댐 2개소라고 한다. 오늘 본 군남댐은 26m까지 채워져 있었다.
연강나룻길 두루미 테마파크가 있는 곳인데, 조형물만 있을 뿐 실제 두루미는 볼 수가 없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주판알 튕기면서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표리부동한 정치인을 빗대 ‘철새족’이라 하는 것은 철새에 대한 심각한 모욕이자 명예훼손이다.
37번 국도를 타고 7시 방향으로 30㎞쯤 달리면 도로변에 적군묘지(敵軍墓地)가 있다. 왼편 1묘역에는 북한군이, 오른편 2묘역에는 북한군 일부와 중공군이 묻혀 있다.
원래는 1968년 1·21사태를 도발하여 사살된 김신조의 124군부대 무장공비들의 가묘가 있던 곳인데 제네바 협약 제120조 등에 따라 YS 시절인 1996년 7월, 전국에 산재한 적군묘를 모아 지금처럼 조성하여 전 세계에서 유일한 적군(enemy)의 묘지가 탄생하였다.
‘무명인’이란 이름이 새겨진 30×25㎝의 화강암 비석에는 ‘○○지구 전투’라는 지역명도 적혀 있다. 벌초 등 깔금하게 관리된 모습이었다.
재임 초기인 2013년 베이징을 방문한 박근혜는 중국군의 유해를 송환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2014년 3월 27일 중국으로 인도된 437구의 유해는 선양에 있는 항미원조열사릉에 안치됐다고 한다. 사진의 빈 공간은 중공군들의 유해가 묻혀있던 곳이다.
태풍전망대, 유엔군 화장장 시설, 적군묘지는 전쟁의 비극과 아물지 못한 상처를 일깨워주고 있어 마음이 무겁고 아프다.
당일치기 짧은 한 번의 여행에 생명, 평화, 안보, 생태라는 거대담론을 조금씩 담아낸 보람있는 일정이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