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6일 일요일

아쉬운 『광개토태왕』 종영

외출을 하지 않은 주말 저녁이면 사극을 보곤 한다. MBC에서 무신』을 시청한 후 바로 KBS로 채널을 돌리면 10분 정도 겹치기는 하지만 광개토태왕』을 볼 수 있었는데… 지난 일요일 분을 최종회로 드라마 광개토태왕이 종영되었다. 기존의 대하사극 태조 왕건』, 대조영』, 불멸의 이순신』 등에 비해 스케일이 떨어진다든가 용어 사용 등에서 몇가지 문제점도 드러났으나 『태왕사신기』에서와 같은 지나친 판타지는 배제되었기에 나름 흥미있게 지켜보던 드라마였는데, 아쉽게 됐다.

논란이 있을 수도 있으나 우리 역사에서 ‘대왕’ 호칭을 듣는 왕은 딱 두분 뿐이다. 세종대왕과 광개토대왕… 더더구나 광개토대왕은 왕 중의 왕(King of Kings) 태왕 아니신가.

태왕께서 18세의 나이로 등극한 391년 무렵은 국가적 난제가 산적한 위기 상황이었다. 조부 고국원왕이 백제 근초고왕에게 전사하였고, 증조부 미천왕이 차지했던 황해도 지방 또한 백제에게 빼앗기고 그 시신마저 선비족인 전연에게 탈취당했으니 어릴 때부터 백제와 전연을 계승한 후연 등에 대한 뿌리 깊은 원한과 ‘다물’(옛 땅을 회복하다)에 대한 사명감을 뼛속 깊이 새기면서 성장했을 것이다. 그나마 백부 소수림왕의 안정적인 내치가 유일한 발판이 되었으리라.

드라마를 보면서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고구려 수군이 강력했다는 것이다. 태왕은 396년에 수군을 거느리고 백제 토벌에 나섰는데, 드라마에서는 관미성 전투 등으로 묘사되었다. 이렇게 보면 인천상륙작전을 최초로 성공시킨 사람은 맥아더가 아니라 광개토태왕이 된다.
아래 지도는 윤명철 교수가 서술한 고구려 수군의 백제 한성 공격로이다. 1로가 한강수로직공작전, 2로는 인천상륙작전, 3로는 남양만 상륙작전이다.


담덕(談德)이라는 이름처럼 어질고 큰 덕을 지니신 분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 여기서 國罡上은 장지명, 廣開土境平安은 업적을 의미한다. ‘나라의 언덕 위에 묻히신 영토를 넓게 개척하고 백성들을 평안하게 해주신 좋고 크신 왕’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 분이 태어나 성장하고 왕이 되어 고구려를 다스렸던 시기는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이라는 강대국에 둘러싸인 우리가 사는 현시대와 너무나 닮은 어려운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왕께서는 국민들에게 끊임없이 비젼을 제시하고, 그 모든 역경과 난관을 이겨내면서 차곡차곡 강대한 고구려의 그랜드 플랜을 이루어나갔던 것이다.

역사학은 미래학이라고 하지 않던가. 올해 2012년은 광개토태왕이 서거(412년)한 지 1600주년이 되는 해다. 새삼 ‘다물’이라는 고구려말이 뜨겁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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