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5일 목요일

애바? 에바? 한다요.

“야, 18 존나 재수없어. 담탱이한테 걸려서 열라 혼났는데, 그래도 졸라 재밌었어!”
아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노라면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육두문자를 써야 친해진다고 생각하는 건지, 아님 일종의 반항심 때문인지 대화 자체에 욕설이 가득하다. 격한 감정의 분출이든, 모방심리나 자기우월감이든, 또래집단과 어울리기 위한 방편이든… 습관적으로 욕설을 쓰다 보면 성향 자체가 폭력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커질텐데… 학원에서 오지랖 넓게 타임아웃 기법 같은 걸 사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무래도 일차적 책임은 가정과 학교에 있지 않겠나.

하기사 성인들의 언어습관도 별반 다를 바는 없지. 소주 한잔 하려고 주점에 앉아있다 보면 건너편이나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상스런 소리에 귓청이 얼얼하고 미간이 찌푸려지는 일이 흔하지 않나.

아이들은 알아듣기 어려운 은어나 신조어도 즐(?) 사용한다. “헐~”이라는 말은 기본이고, 한동안은 “애바”라는 말도 크게 유행했는데, 검색을 해보니 ‘애벌레·바퀴벌레’의 준말이더군. “애바”가 아니라 “에바”라고 우기는 아이들도 있지만 에바(Eva)는 독일쪽 여자 이름 같으니 풀이대로라면 “애바”가 맞을 거 같기도 한데 요게 발전해서 “세바”란 말도 신규 출시됐다. “~해요”를 “~한다요”로 귀엽게 바꾸어 말하기도 하고, 그냥 “크다ㆍ정말 크다”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개(엄청) 크다”라고 격하게 표현하기도 한다요.^^

카카오톡이 대세로 자리잡으면서 줄임말도 즐겨 사용한다. 문상(문화상품권), 김천(김밥천국), 노페(노스페이스 점퍼), 버카충(버스카드 충전), 센케(센 척하는 캐릭터ㆍ잘 나가고 잘 노는 人), 병맛(말도 안됨), 현시창(현실은 시궁창), 열폭(열등감 폭발), 시망(시원하게 망했음), 느님(전지전능 하느님), 현질했어(현금 질렀어), 돋네(정말 그렇네), 갈비(갈수록 비호감), 얼척(어처구니ㆍ어이없음), 갠소(개인적으로 소장한), 남소(남자친구 소개), 파덜어택(父에게 꾸중들음), 글설리(글쓴이를 설레게 하는 리플),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질 것 같은), 초글링(초등학생)ㆍ장미단추(장거리 미녀 단거리 추녀)ㆍ찐찌버거(찐따·찌질이·버러지·거지의 합성어)와 같이 다른 사람을 비하하는 말, 안여돼(안경 여드름 돼지)ㆍ안여멸(안경 여드름 멸치)와 같이 못생긴 아이를 비하하는 말 등등 쉽게 의미를 알 수 없는 낱말들이 넘쳐난다. 그래도 아이들과 매일 대면하다시피 하니 이 정도 아는 것이지 아마 일반 학부모들은 절대 해석하지 못할 것이다. 하여간 이같은 줄임말은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태도가 좋은 나쁘든 아이들 사이에서 이미 하나의 프로토콜로 자리잡은지 오래. 남학생·여학생을 불문할 뿐더러 연령도 낮아지고 있다.

기분이 좋아도 “쩔어(대단해)”, 기분이 나빠도 “쩔어”를 되뇌는 아이들. 학부모들은 아이들의 언어교육을 학교에 의지하는 경향이 있지만 솔직히 학교라고 해서 이렇다할 해결책을 가지고 있지는 못할 것인데… 아무래도 신조어의 순기능이니 역기능이니 하는 가방끈식 접근으로는 답이 보이지 않을 거 같군. 그럼에도 결국 아이들의 언어 습관은 부모와 교사의 몫으로 남을 거 같으니 어이하면 좋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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