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11일 월요일

함양기행 6 - 영농보조인

2일(土) 오후 1시 45분… 함양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도킹 후 학사루길 도라지식당(☎055-963-8760)에서 유황오리탕으로 거한 점심.
김사부님의 그라인더 부속품을 사기 위해 길을 물어 동위천길 흥원종합상사(☎055-964-0945)에 찾아갔으나 2,7장날임에도 문을 닫아 중기마을로 회귀.


명상의집에 들어서니 작은 솜사탕 같은 갓털이 수북한 민들레 무리가 반겨준다. 이곳엔 우리 토종 민들레와 서양 민들레가 섞여 군락을 이루고 있다.
민들레는 속씨식물이기 때문에 생식세포인 홀씨(포자)가 아니라 민들레 씨앗에 갓털이 붙어 바람을 타고 수십킬로미터 퍼져나가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1985년 제6회 MBC 강변가요제에서 박미경이 불러 장려상을 수상한 ‘민들레 홀씨 되어’는 과학적으로 맞지 않는다.

토종 민들레는 노란 민들레와 흰 민들레가 있다. 토종 민들레 꽃은 얼핏 보면 쇠서나물처럼 생겼다.

100여 년 전 유입된 노란색 서양 민들레는 환경이 여의치 않으면 자가수분도 하기 때문에 번식력이 강하다.
토종 민들레는 타가수분으로 수정하기에 상대적으로 번식력이 떨어진다. 더구나 노란색 토종 민들레가 서양 민들레의 꽃가루로 수정할 경우 그 2세는 서양 민들레화하기 때문에 노란 토종 민들레는 상당히 귀하다. 하얀 토종 민들레는 하얀 민들레 꽃가루만 받아 수정하기 때문에 번식률은 높지 않지만 100% 순수혈통을 유지할 수 있다.
서양 민들레는 총포(꽃의 밑동을 감싸고 있는 비늘 모양의 조각)가 아래로 처져 있지만, 토종 민들레는 총포가 위로 향해 있다. 또한 서양 민들레는 자잘한 꽃잎 200개가 촘촘하지만 토종은 60~80개 정도에 머문다.
한방에서 민들레는 해열, 소염, 이뇨 등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

(위)큰개불알풀,  (아래)애기똥풀

네이버 스마트렌즈를 통해 이름을 알아낸 조그만 두해살이 꽃이다. 꽃잎이 4장이면 얘도 십자화(十字花)과일까. 지름 1㎝ 정도의 파란색 꽃이 예쁘기만 한데, 왜 ‘큰개불알풀’이란 요상한 이름이 붙었는지 모르겠다. ‘봄까치풀’이란 이칭이 더 어울린다. 큰개불알풀과 큰개불알꽃은 전혀 다른 종이다.
노란 애기똥풀(까치다리)… 줄기를 자르면 노란 액체가 뭉쳐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었단다. 이 아이도 두해살이다. 봄까치풀, 까치다리… 둘 다 별칭에 ‘까치’가 들어가 있다.
사부님은 이곳 휴먼스쿨 명상의집은 3~4년마다 꽃과 풀의 종류가 자연스레 바뀐다고 하시는데 곰곰 헤아려보니 맞는 말씀 같다. 정말이지 오묘한 현상이다.


쌉싸름한 머위잎은 훌륭한 쌈채소가 되고, 머위줄기는 고구마줄기처럼 껍질을 길게 벗겨 들깨가루, 들기름에 볶아낸다.
비가 개인 4일(月) 오전, 앞마당 비탈 우편엔 아침바람에 춤을 추듯 흔들거리는 작약이 이슬을 머금고 활짝 피었다.


고구마는 뿌리식물이고, 감자는 줄기식물이다. 미니멀한 알감자가 딱 방울토마토 만한 사이즈다.
… 씨를 심자. 누나가 손으로 다지고 나면 바둑이는 앞발로 다지고 괭이가 꼬리로 다진다. 우리가 눈 감고 한 밤 자고 나면 이슬이 나려와 같이 자고 가고, 우리가 이웃에 간 동안에 햇빛이 입 맞추고 가고…
뿌리는 고구마, 땅속줄기는 감자, 땅위줄기는 토마토가 열리는 하이브리드 식물을 상상해봤다.
가마솥 가득 물부은 아궁이 빠알간 장작불에 은박호일에 싸서 꺼멓게 숯을 바른 군고구마 만들어 먹는 재미도 쏠쏠~


3일(日)에는 예보대로 2시간 내리고 1시간 쉬고 하는 식으로 하루 종일 꽤 많은 양의 봄비가 내렸다. 1일(金) 발생한 고성군 토성면 산불의 잔불을 확실하게 진화하는 고마운 봄비님이다. 자연은 때를 알고, 적절하게 일을 한다. 씨를 심기에는 오히려 좋은 조건이다.
괭이질을 하다가 부러진 괭이자루를 김사부님이 훌륭하게 새것으로 뚝딱 수선해주셨다. 쑥쑥 자라고 있는 부추 옆으로 괭이질, 쇠스랑질로 기다랗게 밭고랑과 밭이랑을 다시 내고 아욱, 비트, 강낭콩, 완두콩, 머루콩, 고추, 감자, 생강 등속을 심었다. 컨테이너 쪽으론 호박과 고수, 수세미도 심었다. 봄비의 기운을 받아 무럭무럭 자라주길 바란다. 지난해 가을 미처 다 줍지 못한 은행열매를 통에 담았다.

노랑 민들레와 하양 나비. 하얀 갓털이 수북한 민들레꽃씨가 날아갈 준비를 마치고 바람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번처럼 함목사님이 기꺼이 취사반을 이끌어주셨고, 크레센시아 선생님은 달달한 식혜에 막걸리까지 담그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부엌의 고장난 대형 냉장고를 들어내고, 컨테이너에서 오래된 금성 브라운관 TV도 어영차 빼내왔다. 모니카원장님이 애써 구입한 흰색 시트지가 토방벽에 붙질 않아 밀가루풀을 쑤어 장롱에서 찾아낸 누런 종이를 발랐더니 오히려 더 잘 어울린다.

농업을 경영하는 사람을 영농인(營農人)이라 한다면 그에 대해 보조하는 역할이 영농보조인(營農補助人)일 것이다. 업무에 큰 차이가 있을까 싶지만 간호사(看護師, Nurse)와 간호조무사(看護助務士)와의 관계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남도 함양땅 520고지 중기마을의 짧은 영농생활… 부족하지만 이만하면 밥값은 한 영농보조인이었노라 자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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