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15일 일요일

대은시조(大隱始祖) 묘소 참배

수년 만에 시조 할아버지 할머니를 뵈었다. 남양주시 지세사거리에서 2시 방향으로 진건오남로를 200m가량 이동하다가 왼편 사릉로620번길의 지새(芝沙)에 들어서면 창고와 비닐하우스가 늘어선 사이로 멀리 봉분이 보인다. 홍살문 우편으로 불굴가 시비와 함께 황패강 학술기념비가 있다. 일영 황패강 교수가 김천택의 청구영언에 실린 불굴가(不屈歌)가 변안열의 단가라고 밝힌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홍살문 좌편에는 대제학 정경세가 문장을 지은 신도비, 박정희가 고유(告由)한 고유비가 세워져 있다.


1334년 심양에서 아버지 변량(邊諒)과 어머니 곽씨 사이에서 차남으로 출생한 변안열은 1351년 원의 무과에 장원급제하고 형부상서에 올랐다. 1352년 노국공주를 따라 귀국하였다. 공민왕은 추밀원사 원의(元顗)의 딸과 혼인케 하고 원주를 관향으로 하사하니 이로부터 원주변씨의 시조가 되었다.


고려 원천부원군(原川府院君) 대은(大隱) 변공안열(邊公安烈), 진한국부인(辰韓國夫人) 원주원씨가 잠들어 있는 이곳은 원주변씨의 성소라 할 수 있다. 묘비, 상석과 고석, 장명등과 망주석, 석양, 문석인 등이 쌍분 형식의 묘소에 배치돼 있다. 홍살문 뒤편의 장방형 연지(15×17m)는 몇 년 전보다 좌측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비각 안에는 1580년에 세운 3.25m의 묘표비가 있다. 이수 전면 상부에 방아 찧는 달(月) 속 토끼, 후면 상부에 해(日) 속 삼족오 문양이 새겨져 있어 차별성을 보인다.


나의 직계 할아버지인 별좌공(別坐公)묘에도 참배했다. 진건읍 용정리 지사산 기슭은 시조와 아들(二世) 3형제(판사공·총제공·훈련공)와 손자(三世)까지 3대가 한 경내에 모셔진 흔치 않은 묘역이다. 포은 정몽주는 단심가를, 대은 변안열은 불굴가를 지어 고려에 대한 충절을 보였다고 전한다. 변안열은 신정왕후 강씨 소생 이방번(무안대군)의 장인이기도 했다.

오늘은 진건읍, 다음엔 진접읍이다. 조선 태종의 별궁인 풍양궁(豐壤宮) 터로 길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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