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29일 수요일

기록되어 있다

28일(화) 어제 #종로마을N 제4기 기자아카데미 4회차 강좌는 하동훈 사진작가가 잡힐 듯 또는 안 잡힐 듯한 이미지의 감성을 들려주었다. 단순히 사진 잘 찍는 스킬을 나열할 것으로 예상했던 나는 크게 한 방 먹었다. 「곁에서 바라보기」라는 주제로 △잘 찍은 사진(?) △이미지 퀄리티(빛) & 내용(대상과 프레임) △관점 △시점 △초점으로 이어가는 하동훈 작가의 말하기(telling)와 보여주기(showing)는 한 편의 인문학 강의를 연상케 했다.

아래 사진은 하동훈이 2013년에 1년간 서아프리카의 부르키나 파소(Burkina Faso)에 머물며 그네들의 평범한 일상을 담고 있을 때, 자동차정비소에서 일하는 한 아이가 고장난 카메라로 하 작가를 찍어주겠다며 장난치던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이 작품은 아프리카인사이트가 공모한 「내가 만난 아프리카」展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아이의 해맑은 미소에서 가난, 기아, 질병, 고통, 전쟁 같은 고정된 부정적 관념은 쉬이 연결되지 않는다.

문학과 마찬가지로 사진을 대할 때에도 표현론이 어쩌니 반영론, 효용론이 어떻느니 하는 것들은 한낱 언어의 사변에 그치게 된다. ♬느낌 그대로를 말하고 생각한 그 길로 움직이면 되는 것𝅗𝅥 

기자학교 수강생은 다음 시간까지 「내가 사랑하는 것」을 주제로 10장 내외의 사진을 제출해야 한다. 다음주에는 강좌를 마치고 한잔하기로 했다. 오징어 데치고 전 부치는 소리가 추임새 되는 22년 장마, 종로거리 천장 낮은 허름한 주점에서 서로 작가가 되고 독자가 되어 술잔을 기울일 게다. 

시선과 교감

하동훈 작가는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파울로 코엘료(Paulo Coelho)의 「연금술사」(1988)를 꼽았다. 하 작가는 이 책에 자주 등장하는 아랍어 마크툽(Maktub)을 왼팔뚝에 문신했다. 「연금술사」 100쪽에는 ‘그건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이미 씌어있는 말이다’ ‘어차피 그렇게 될 일이다’라는 의미로 해석돼 있다.


2022년 6월 25일 토요일

그대들의 조국은 안녕하신가?

경술국치를 당한 그해 10월, 만해 한용운은 대륙으로 넘어갔고, 1911년 만주 동북삼성(東北三省)에서 김동삼을 만나게 된다. 일송 김동삼은 만주벌판 말을 달리던 무장투쟁의 지도자로서 무오독립선언과 민족유일당촉진회를 주도했다. 일송은 경학사, 신흥학교, 부민단, 백서농장, 서로군정서 참모장 활동을 거쳐, 1923년 국민대표회의 의장으로 선출되었듯이 독립운동계의 지도자로 활약했다. 그러나 1931년 하얼빈에서 일경에 피체돼 조선으로 송환된 후 경성감옥에서 복역 중 1937년 4월13일, 만 59세로 옥중 순국하며 불굴의 삶을 마감한다.

만주지역 독립운동진영에서 ‘통합의 화신(化身)’, ‘만주벌 호랑이’라 불리며 일생을 조국의 독립에 헌신한 일송이었지만, 서슬 퍼런 식민치하의 공포 분위기 속에서 누구도 선뜻 불령선인(不逞鮮人)의 주검을 수습해 가지 않았다. 이때 만해 스님이 나서서 일송의 시신을 심우장으로 모셔와 5일장을 지내며 극락왕생을 발원했다. 5일장을 치르면서 다녀간 조문객은 고작 20여 명뿐. 만해는 영결식에서 방성대곡했다. 만해가 일생에서 눈물을 흘린 것은 이때 한 번뿐이었다고 전한다.

오후 1시, 성북동 尋牛莊에서 극단 더늠의 창작뮤지컬 「심우」를 관람했다. 뮤지컬은 만해가 재혼해 얻은 딸 영숙의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전개된다. 딸자식이 일제의 교육을 받는 것을 단연히 거부하는 아버지를 모셨기에 영숙은 보통학교에 다니는 대신 심우장의 화초와 나무를 벗삼아 소일하는 홈스쿨러다. 속을 알 수 없는 괴팍한 아버지를 ‘땡중’이라 호칭하기도 하지만, 「나룻배와 행인」 「차라리」를 낭송하며 관객에 자랑하기도 한다.

1937년 음력 3월, 영숙은 제자들이 전하는 일송의 부음을 듣고 크게 상심하는 아버지가 걱정스럽다. 일송의 장례를 치르면서 만해가 제자들에게 묻는다. “몇 명이나 왔더냐?” 1937년 당시 일송의 마지막을 지켜본 이는 20여 명에 불과했고, 85년이 지난 2022년 오늘 공연엔 60여 명이 함께했다. 그렇담 100년이 되는 시점엔 몇이나 동참하며 기억할까?

오후 3시에 경운동 천도교대교당에서 「김지하 시인 추모문화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며칠 전부터 듣고 있었지만 숙고할 것도 없이 성북동 심우장을 택했다. 김지하의 변신 혹은 변절이 없었다면 표절 시비는 크게 불거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1937년 당시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끌려가고, 2022년 당년엔 국가보안법에 걸리면 잡혀가는 역사가 재현되고 있다. 신천(信天) 함석헌 선생이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하고 읊은 것처럼 민주화운동, 통일운동, 사회운동에 매진한다는 분들께 감히 여쭌다. “한 살 터울의 만해와 일송이 보여준 뜨거운 同志愛를 당신들은 가졌는가?”

빙허 현진건의 단편 「고향」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신민요 가사가 후퇴하는 민주주의, 민영화로 치닫는 경제정책, 분단조국의 고착화 등 나락으로 떨어지려는 당금의 현실과 겹친다. “볏섬이나 나는 전토는 신작로가 되고요/ 말마디나 하는 친구는 감옥소로 가고요/ 담뱃대나 떠는 노인은 공동묘지 가고요/ 인물이나 좋은 계집은 유곽으로 가고요”

극 중 만해가 “그대들의 조국은 안녕하신가?”라며 앞줄 관객에게 물었고, 그분은 “잘 나가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난 속으로 조아렸다. “후손들이 못나서 먹구름이 몰려오는데도 방비를 못하고 있습니다.”

만해의 또다른 대사가 먹먹함을 준다. “목 놓아 울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미친 듯이 웃어라. 그도 아니면 가만히 묵념이라도 해라.” 하 수상한 시절이어도 만해 스님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잃어버린 소를 찾아나서야(심우) 한다.

http://www.kw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103


2022년 6월 23일 목요일

정말 지루한 장마였다

‘장마’는 고어에 ‘댱마ㅎ’라고 했으니, ‘댱’은 ‘길다(長)’는 뜻이고, ‘마ㅎ’는 ‘비’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는데 글자 그대로 ‘긴 비’라는 뜻이겠다.

윤흥길의 중편 「장마」는 6·25전쟁기의 장마철을 시간적 배경으로 국민학교 3학년 아이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국군으로 참전했다가 전사한 아들(외삼촌)을 둔 외할머니와 인민군으로 참전했으나 소식이 없는 아들(삼촌)을 둔 친할머니의 갈등은 장마와 더불어 시작되고 장마가 끝날 무렵 화해로 해소된다.

‘온 세상을 물걸레처럼 질펀히 적시는’ 장마는 가족사의 오랜 불행을 상징하며, 나아가 우리 민족에 닥친 전쟁의 비극적 상황이 계속되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소설의 끝문장은 “정말 지루한 장마였다.”로 과거형이다. 더 많은 깨친 사람들이 지혜롭고 영험한 구렁이로 化하면 이다지도 지긋지긋한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파탄 없이 융화로 인도해나갈 수 있을까.


2022년 6월 21일 화요일

서도소리 배뱅이굿 직관

지난 토요일(18일) 오후, 서도소리 배뱅이굿을 처음 직관했다. 故 이은관 명인을 사사한 운보 김경배 예능보유자가 1인 다역을 소화한 「국가무형문화재 제29호 찾아가는 문화재 공연」이 남양주시 수동 멀티스포츠센터에서 열렸다. 운니동 팔도강산국악예술단 몇 분이 찬조공연에 나서게 되어 따라가 일일사진사 역할을 수행했다.

배뱅이굿의 줄거리는 탁발 나온 상좌중과 사랑에 빠진 정승댁 무남독녀 배뱅이가 상사병을 앓다 죽자 부모가 딸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팔도의 무당을 불러 모아 굿을 하는데 건달 청년이 가짜 무당행세로 횡재한다는 내용이다. 배뱅이굿을 완창할 경우 2시간이 넘게 소요되는데, 굿에 나오는 노래만 해도 36곡이란다. 기억해야 할 것은 배뱅이굿은 굿이 아니라는 것이다. 남도의 판소리(북 반주)처럼 소리꾼이 장구 반주에 맞춰 배뱅이 이야기를 서도의 기본 창법을 바탕으로 민요와 무가, 재담 등을 섞어 해학적으로 엮어낸다. 나이를 먹어가는 것인지 우리 가락이 점점 정답고 흥겨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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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소리 배뱅이굿이 왔구나, 왔소이다!
남양주 수동면 물골안공동체 주민들 열띤 호응

한국여성연합신문 | 변자형 기자 | 승인 2022.06.21 11:33
http://www.kw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095

팔도강산국악예술단이 함께한 「국가무형문화재 제29호 찾아가는 문화재 공연」이 성황리에 종료됐다.

팔도강산국악예술단(단장 이춘화)은 국가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배뱅이굿 예능보유자 김경배가 주최하고 ㈔배뱅이굿보존회가 주관하여 남양주시 수동 멀티스포츠센터에서 개최한 「찾아가는 문화재 공연」이 18일(土)일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고 밝혔다.

공연에는 배뱅이굿 예능보유자와 이수자, 전수장학생 등 출연진과 찬조 출연진이 무대에 올라 배뱅이굿 중 △둥둥타령(배뱅이의 출산과 성장) △사랑타령(배뱅이와 상좌중의 만남과 사랑) △어머니의 곡(배뱅이의 죽음) 등을 열창했다. 또한, △내 이름은 배뱅이 △불쌍한 배뱅이 등의 창작곡(양진희 사, 김경배 곡)을 더해 서사의 완성도를 높였다. 출연진은 번갈아 무대에 올라 △상여소리 △무당소리 △태평가 △난봉가 △풍구타령 △뱃노래 등을 선보였다.

이날 공연장을 찾은 수동면 물골안 공동체(회장 이희원) 주민 100여 명은 서도의 기본 음악 어법을 바탕으로 민요와 무가, 재담 등을 버무린 배뱅이굿 특유의 구성진 노랫가락에 손뼉을 치며 호응했다.

한 주민(70대·여)은 “배뱅이가 죽는 장면이 너무 슬펐지만, 어렸을 때 봤던 일도 기억나고 재미있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이번 공연은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원장 이경훈)과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최영창)이 주최, 운영하여 국가무형문화재 전승자들이 기량을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국가무형문화재 공개행사’와 무형문화유산의 대중화 및 전승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한 전승자의 자유로운 기획을 지원하는 ‘전승자 주관 전승활동 기획행사’의 하나로 펼쳐졌다.

한편, ‘서도소리’란 황해도 지방이나 평안도 지방에서 불리어 온 노래를 아울러서 부르는 이름이다. 이날 공연된 서도소리 배뱅이굿의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서울 장안의 최정승이 명산대찰을 찾아가 정성껏 빌어서 겨우 얻은 무남독녀 배뱅이가 탁발을 나온 상좌중과 눈이 맞아 사랑을 하게 되는데, 다시 온다고 약속하고 떠나간 상좌중이 돌아오지 않자 시름시름 앓다가 죽게 된다. 이에 최정승 내외는 각도의 무당을 불러 죽은 딸자식의 넋이나 듣자고 굿을 하게 되는데, 마침 평안도 건달이 주막집에 들렀다가 주모에게 배뱅이네 집 내력을 듣고 굿판에 들어가 배뱅이가 살아 돌아온 것처럼 꾸민다. 여기서 “왔구나, 왔소이다.”라는 널리 알려진 대목이 나온다. 

18일, 팔도강산국악예술단은 「서도소리 배뱅이굿」 공연에 상여소리와 부채춤 등으로 무대에 올랐다.

18일(土) 오후, 「국가무형문화재 제29호 찾아가는 문화재 공연」 출연진이 관객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2022년 6월 20일 월요일

영월 장릉의 ㄱ자형 참도, 세호 없는 망주석

세조 3년(1457) 영월 관풍헌에 거처하던 노산군(魯山君)이 유배 4개월 만에 16세로 세상을 떠나자, 영월호장 엄흥도(嚴興道)가 시신을 거두어 현재의 자리에 가매장하였다. 사후 59년이 지난 중종 11년(1516)에야 봉분을 갖추었다. 이후 숙종 7년(1681)에 노산대군(魯山大君)으로 추봉하고, 숙종 24년(1698)에 묘호를 단종(端宗)으로 복위, 추존하면서 노산군묘를 능제에 맞게 다시 조성하고 능호를 장릉(莊陵)이라 하였다.

장릉의 진입공간에는 여타 조선왕릉과 다르게 단종의 충신들을 위한 건축물이 있다. 노산군의 시신을 거두어 묘를 만든 엄흥도의 정려각(旌閭閣), 노산군묘을 찾아 제를 올린 영월군수 박충원(朴忠元)의 뜻을 기린 낙촌비각(駱村碑閣),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종친, 신하, 환관, 궁녀, 노비 등 268人의 위패를 모신 장판옥(藏版屋)과 이들에게 제사를 올리는 배식단(配食壇)이 있다.

신로(神路)와 어로(御路)는 지형에 맞게 조성하여 ㄱ자로 꺾여 있다. 그 밖에 장명등, 망주석, 문석인, 석수 등은 정종의 후릉(厚陵)의 능제에 따라 작게 조성하였으며, 무석인은 생략하였다.

사적 제196호 영월 장릉(寧越 莊陵)

영월 장릉은 처음부터 왕릉으로 택지된 곳에 조성한 능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적인 조선왕릉의 구조와 다른 점이 많다. 홍살문에서 정자각으로 이어지는 참도(參道, 左신로+右어로)는 일자형으로 조성되지만, 영월 장릉은 ㄱ자형으로 꺾여 있다.

능침에는 추존왕릉 제도에 따라 병풍석과 난간석을 생략하였고, 능침 주변의 석양과 석호도 한 쌍만 조성했다. 무력으로 폐위된 왕이기 때문에 다른 왕릉과 달리 무인석이 없다. 또한 봉분 좌우에 세우는 망주석(望柱石)은 조선왕릉 중 유일하게 세호(細虎)가 없다.

박충원 낙촌비(朴忠元 駱村碑)는 영월군수이던 낙촌 박충원이 노산묘를 찾은 사연을 기록한 기적비이다. 엄흥도 정려각(嚴興道 旌閭閣)은 영조 2년(1726)에 어명으로 세운 비각으로, 엄홍도의 충절을 기리는 정려각이다. 1970년 장릉 경내로 옮겨 세웠다.

장판옥(藏版屋)은 충신위(忠信位) 32인, 조사위(朝使位) 186인, 환관군노위(宦官軍奴位) 44인, 여인위(女人位) 6인 등 총 268인의 합동 위패를 모셔놓은 곳이다. 정조 15년(1791)에 건립했다. 배식단(配食壇)은 단종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충신, 조사, 환자군노, 여인의 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매년 단종제향과 함께 제사를 지내는 제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정순왕후 송씨(定順王后 宋氏, 1440~1521)의 사릉(思陵)에 있는 소나무들은 하나같이 가지를 동쪽으로 향하고 있는데 이는 왕후가 남편이 있는 영월 쪽을 바라보기 때문이라 하여 1999년 4월9일 남양주 사릉의 소나무 하나를 영월 장릉에 옮겨 심고, 정령송(精靈松)이라 명명했다. 정순왕후 사후 478년 만의 일이다.


2022년 6월 19일 일요일

훌륭한 인터뷰의 요건

(협)마을대학종로 조합원 엄광용 작가의 “인터뷰 요령과 기사작성” 강의… 엄광용 작가는 조합원으로 만나기 전에 중학교 아이들 국어 교과서에 실린 전기문 「화가 이중섭」을 통해 먼저 함자를 접했다. 이 분 별호가 광파(曠坡)인데, 이런 이름을 얻게 된 비화가 흥미롭다. 뒤풀이 자리에서 전해 들은 「무진기행」의 김승옥이 절필한 숨은 사연, 이후 순복음교회에 귀의한 얘기가 삶의 변화무쌍을 느끼게 한다.

“인터뷰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인터뷰어)에 의해 좌우된다.”(Oriana Fallaci) “훌륭한 인터뷰의 요건은 난처한 질문들을 거침없이 던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Mike Wallace) “인터뷰 담당자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Ted Koppel) 등의 문장을 새기며 외람된 기레기의 행태를 반면교사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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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지역주민 목소리 듣고 기사화하는 인터뷰 방법 익혀
기자아카데미 2강… 인터뷰 요령과 기사 작성법 강좌 성료

종로마을N  변자형 기자  승인 2022.06.19 07:40
http://www.jongno-mn.com/news/articleView.html?idxno=2806

14일(화) 오후 5시, 도심권 50플러스센터 강의장(수표로26길 28 동의빌딩)에서 종로마을N(발행인 정숙연) 제4기 주민기자아카데미 2회차 강좌가 열렸다.

70여 권의 저서를 출간한 엄광용 작가가 오랜 기자생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터뷰 요령 △인터뷰 질문지 작성 △인터뷰 기사 작성 등에 대해 강의했다. 특히, 좀처럼 이야기를 풀어놓지 않거나 질문의 요지에서 한참 비켜나는 지점으로 빠지는 난감한 인터뷰 대상자를 대처하는 노하우에 수강생들의 눈과 귀가 쏠렸다.

이날 주민기자아카데미에는 초등 4학년 어린이부터 70대 중반 액티브 시니어까지 종로와 연관된 다양한 연령층의 예비기자 15명이 참석해 기자아카데미의 열기를 이어갔다.

강좌에 참여한 한 60대 예비기자는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동네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야말로 소중한 뉴스라는 걸 알았다”라면서 “힘든 시절을 살아왔고 앞으로 살아갈 동네 소식을 전하는 일에 함께하고 싶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2022년 종로마을N 주민기자아카데미는 6월21일, 권기봉 여행작가의 ‘종로 스토리텔링화’로 3회차 강좌를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