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3일 월요일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이게 뭔가. 컨테이너 쪽 가시오가피, 창고 쪽 매화나무가 모두 사라졌다. 실한 과실을 뽐내던 앵두나무와 대추나무, 호두나무도 보이지 않는다. 산수유, 목련, 모과나무가 다 잘렸다. 넓은 그늘을 드리워 주던 두 그루 커다란 은행나무가 밑동만 남았다. 단심(丹心)을 겨루던 목단(목본)과 작약(초본)도 지워졌다. 원추리 쌈의 서늘한 단맛, 매실청의 새콤달콤한 순정이 심상 속으로 가라앉는다.

경작은 폐허마저 갈고 짓는구나. 별관이라 부르던 고옥의 두터운 몸통을 자랑하던 느티나무도 베어지고 통시는 무너져 내렸다지. 말년의 사부님은 이 정경을 담지 못하셨으니 그나마 다행일지도… 백전면 중기 새터마을 시골집의 봄날은 그렇게 희미해져 간다. 문득 토머스 울프의 마지막 장편이 떠오른다.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You Can’t Go Home Again

2026년 4월 12일 일요일

‘거짓에 죽고 참에 산다’ 「춘암 박인호 평전」 출판기념회 개최

‘빛나되 번쩍거리지 않는’ 참 동학인의 삶 기려

(사)춘암박인호선생기념사업회(이사장 이용길)는 11일(토) 오후,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춘암 박인호 평전」 출판기념식을 개최했다.

이날 중앙대교당에는 천도교 박인준 교령과 춘암박인호선생기념사업회, 예산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회장 박성묵), 전국동학농민혁명연대(대표 고재국),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대표 박길수) 등 관계자와 내빈, 교인 8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과보고, 축사, 유족 인사 등의 순서를 이어갔다.

춘암 박인호는 1855년 충남 덕산군 막동리(현 예산군 삽교읍 하포리)에서 출생하여, 1883년 동학에 입도하였다. 1894년에는 충청 내포지역에서 기포했고, 1919년 3·1독립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후 1922년 의암 손병희로부터 교주의 직임을 물려받았다. 이후 6·10만세운동과 멸왜기도운동을 이끌다가 1940년 종로구 내수동에서 환원하였다. 1990년 정부는 춘암의 공을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김삼웅 선생이 펴낸 평전은 머리말을 서두로 총 34개 꼭지를 선보이며 덧붙이는 말로 마무리한 349쪽 분량이다. 김삼웅 선생은 인사말에서 ‘빛나되 번쩍거리지 않는다’는 도덕경의 광이불요(光而不耀)를 인용하며 춘암의 품성을 기렸다.

▲ 11일(토) 오후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열린 「춘암 박인호 평전」 출판기념식에서 춘암박인호선생기념사업회 이용길 이사장[위]과 김삼웅 선생[아래]이 발언하고 있다.

이날 출판기념회는 식전 축하공연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연희와 동동친구들이 사물판굿을 펼쳐 참가자들의 흥을 돋웠다. 춘암박인호선생기념사업회는 참가자 전원에게 「춘암 박인호 평전」을 증정했다.

▲ 김삼웅 저, 「춘암 박인호 평전」,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2026

2026년 4월 9일 목요일

디아스포라 큰 숲(大林) 탐방

「비 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지만, 오늘은 대림동으로 향했다. 서울외국인주민센터가 진행하는 ‘일상 속 세계정거장’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대방동과 도림동에서 한 자씩 따와 큰 숲(大林)이라는 동네가 작명된 듯하다.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 박동찬 소장의 안내에 따라 인력사무소 밀집거리 → 대림동 먹자골목 → 대림중앙시장 → 다사랑어린이공원 → 대동초등학교를 경유해 시따따(习大大) 대림점에서 시장기를 달랬다. 얇게 썬 돼지고기에 감자전분을 입혀 바싹하게 튀긴 탕수육 꿔바로우(锅包肉), 계란토마토볶음(계토볶), 오징어를 볶은 간볜유위(干煸鱿鱼) 등 7가지 중국음식이 가성비가 좋다.

카페 로스톤(Lost stone)은 고만고만한 층고의 노후한 주택과 녹지 없는 상가가 늘어선 대림동 골목에서 유일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건축물로 생각된다. 한국과 중국 산수화의 전통에서 나타나는 기암절벽의 풍경을 건축적으로 재해석해 차이나타운의 장소성을 드러내고 한중 문화교류의 역사적 맥락에 연결코자 했다는 것이 건축가(정의엽)의 변이다. 길게 늘어선 직업소개소·인력사무소 골목에서 고단한 외국살이의 단면을 본다. 대동초등학교는 유입·유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재학생의 95%가 ‘이주배경학생’이라고 했다.

A부터 H까지 한국비자의 종류, GNI와 연동한 한국영주권 취득조건 등을 알게 됐는데, 이른바 ‘별따기’로 불리는 영주권(F-5) 자격을 획득하고 3년이 경과한 18세 이상의 외국인이라도 총선과 대선은 불가하고, 극소수가 지선에서만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중국 포함)외국인 표가 당락을 좌지우지한다”는 国民の力류의 주장은 무지하거나 혐오감, 덮어씌우기가 투영된 거짓말이다.

대림동은 영등포구, 구로구, 동작구, 관악구가 중첩되는 경계 지역이다. 함민복 시인은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고 했다. 양쪽을 가로질러 아우르는 화해와 포용의 지점이 될 수 있을 터이다. 틈을 보아 맑은 날에 대림3동과 대림2동을 다시 둘러보고 싶다.

2026년 1월 15일 목요일

훈민정음 창제일 vs. 반포일

國之語音(국지어음)이 異乎中國(이호중국)하여 與文字(여문자)로 不相流通(불상유통)할새 故(고)로 愚民(우민)이… 고등학교 한문 숙제로 어제 서문을 외웠었다.

세종실록 102권 세종 25년 계해(1443) 12월 30일(경술) 기사는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字)를 지었는데 … 이를 훈민정음이라 부른다.(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 … 是謂訓民正音)”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이달’에 해당하는 1443년 12월 1일과 30일을 그레고리력으로 환산하면 각각 1443년 12월 30일, 1444년 1월 28일이 된다. 북한에서는 이들 날짜의 중간인 1444년 1월 15일을 창제일로 기념하여 조선글날로 삼고 있다.

세종실록 113권 세종 28년 병인(1446) 9월 29일(갑오) 기사는 “이달에 훈민정음이 이루어졌다.(是月, 訓民正音成)”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1940년 경북 안동에서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 말문에 “정통 11년 9월 상한에 … 신 정인지는 두 손 모아 절하고 머리 조아려 삼가 씀.(正統十一年九月上澣 … 臣鄭麟趾拜手稽首謹書)”이라고 했다. 9월 상한(상순의 마지막 날, 즉 9월 10일)을 그레고리력으로 환산하면 1446년 10월 9일이 되는데, 이를 근거로 기념하는 것이 한글날이다.

요컨대 훈민정음 반포일과 창제일 모두 명시적 날짜는 기록돼 있지 않다. 출생신고일(반포일) 못지않게 실제 출생일(창제일)은 큰 의미가 있다. 두 날을 함께 기리면 좋겠다.

2026년 1월 10일 토요일

縄, なわ, 나와, The Rope

밧줄과 막대기는 인간의 가장 오랜 도구다. 밧줄로 좋은 것들을 끌어당기고, 막대기로 나쁜 것들을 멀리할 수 있었다. 이들은 우리가 발명한 최초의 친구들이었다. 인간이 있는 곳이라면, 밧줄과 막대기 역시 존재했다.

―아베 고보(安部公房)의 단편 「縄(なわ, 나와 / The Rope)」

2026년 1월 7일 수요일

1월의 크리스마스

그레고리력을 채택한 서방교회(가톨릭)와 달리 율리우스력을 고수하는 동방교회(정교회)는 지역에 따라 1월 6일, 7일이 성탄절이다. 여기에는 1582년 춘분 날짜의 보정, 1054년 동서교회의 분열 등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다.

동방 가톨릭 중에서는 아르메니아 교회가 1월 6일에 성탄을 기념한다. 사실 가톨릭에는 24종의 개별교회가 존재한다. 1개의 서방 가톨릭교회와 23개의 동방 가톨릭교회가 로마 주교의 수위권(교황)을 인정하며 교리를 공유한다. 동방 가톨릭교회와 동방 정교회를 같은 것으로 혼동하기 쉽다. 동방 정교회는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하지 않는 완전히 독립된 교회인 반면, 동방 가톨릭교회는 교황과 결합해 있는 가톨릭의 하나다.

아무튼 오늘은 가톨릭이나 개신교보다 13일 늦은 1월의 크리스마스다. 성탄절(Christmas)은 그리스도(Christ)의 미사(mas)라는 뜻을 담고 있다. 전쟁의 총성을 멈추고, 고통받는 이들을 보듬는 제자의 길에 모자람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