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9일 목요일

디아스포아 큰 숲(大林) 탐방

「비 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지만, 오늘은 대림동으로 향했다. 서울외국인주민센터가 진행하는 ‘일상 속 세계정거장’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대방동과 도림동에서 한 자씩 따와 큰 숲(大林)이라는 동네가 작명된 듯하다.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 박동찬 소장의 안내에 따라 인력사무소 밀집거리 → 대림동 먹자골목 → 대림중앙시장 → 다사랑어린이공원 → 대동초등학교를 경유해 시따따(习大大) 대림점에서 시장기를 달랬다. 얇게 썬 돼지고기에 감자전분을 입혀 바싹하게 튀긴 탕수육 꿔바로우(锅包肉), 계란토마토볶음(계토볶), 오징어를 볶은 간볜유위(干煸鱿鱼) 등 7가지 중국음식이 가성비가 좋다.

카페 로스톤(Lost stone)은 고만고만한 층고의 노후한 주택과 녹지 없는 상가가 늘어선 대림동 골목에서 유일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건축물로 생각된다. 한국과 중국 산수화의 전통에서 나타나는 기암절벽의 풍경을 건축적으로 재해석해 차이나타운의 장소성을 드러내고 한중 문화교류의 역사적 맥락에 연결코자 했다는 것이 건축가(정의엽)의 변이다. 길게 늘어선 직업소개소·인력사무소 골목에서 고단한 외국살이의 단면을 본다. 대동초등학교는 재학생의 95%가 ‘이주배경학생’이라고 했다.

A부터 H까지 한국비자의 종류, GNI와 연동한 한국영주권 취득조건 등을 알게 됐는데, 이른바 ‘별따기’로 불리는 영주권(F-5) 자격을 획득하고 3년이 경과한 18세 이상의 외국인이라도 총선과 대선은 불가하고, 지선에서만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중국인 표가 당락을 좌지우지한다”는 国民の力류의 주장은 무지하거나 혐오의 감정이 내재한 명백한 거짓이다.

대림동은 영등포구, 구로구, 동작구, 관악구가 중첩되는 경계 지역이다. 함민복 시인은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고 했다. 양쪽을 가로질러 아우르는 화해와 포용의 지점이 될 수 있을 터이다. 틈을 보아 맑은 날에 대림3동과 대림2동을 다시 둘러보고 싶다.

2026년 1월 15일 목요일

훈민정음 창제일 vs. 반포일

國之語音(국지어음)이 異乎中國(이호중국)하여 與文字(여문자)로 不相流通(불상유통)할새 故(고)로 愚民(우민)이… 고등학교 한문 숙제로 어제 서문을 외웠었다.

세종실록 102권 세종 25년 계해(1443) 12월 30일(경술) 기사는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字)를 지었는데 … 이를 훈민정음이라 부른다.(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 … 是謂訓民正音)”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이달’에 해당하는 1443년 12월 1일과 30일을 그레고리력으로 환산하면 각각 1443년 12월 30일, 1444년 1월 28일이 된다. 북한에서는 이들 날짜의 중간인 1444년 1월 15일을 창제일로 기념하여 조선글날로 삼고 있다.

세종실록 113권 세종 28년 병인(1446) 9월 29일(갑오) 기사는 “이달에 훈민정음이 이루어졌다.(是月, 訓民正音成)”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1940년 경북 안동에서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 말문에 “정통 11년 9월 상한에 … 신 정인지는 두 손 모아 절하고 머리 조아려 삼가 씀.(正統十一年九月上澣 … 臣鄭麟趾拜手稽首謹書)”이라고 했다. 9월 상한(상순의 마지막 날, 즉 9월 10일)을 그레고리력으로 환산하면 1446년 10월 9일이 되는데, 이를 근거로 기념하는 것이 한글날이다.

요컨대 훈민정음 반포일과 창제일 모두 명시적 날짜는 기록돼 있지 않다. 출생신고일(반포일) 못지않게 실제 출생일(창제일)은 큰 의미가 있다. 두 날을 함께 기리면 좋겠다.

2026년 1월 10일 토요일

縄, なわ, 나와, The Rope

밧줄과 막대기는 인간의 가장 오랜 도구다. 밧줄로 좋은 것들을 끌어당기고, 막대기로 나쁜 것들을 멀리할 수 있었다. 이들은 우리가 발명한 최초의 친구들이었다. 인간이 있는 곳이라면, 밧줄과 막대기 역시 존재했다.

―아베 고보(安部公房)의 단편 「縄(なわ, 나와 / The Rope)」

2026년 1월 7일 수요일

1월의 크리스마스

그레고리력을 채택한 서방교회(가톨릭)와 달리 율리우스력을 고수하는 동방교회(정교회)는 지역에 따라 1월 6일, 7일이 성탄절이다. 여기에는 1582년 춘분 날짜의 보정, 1054년 동서교회의 분열 등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다.

동방 가톨릭 중에서는 아르메니아 교회가 1월 6일에 성탄을 기념한다. 사실 가톨릭에는 24종의 개별교회가 존재한다. 1개의 서방 가톨릭교회와 23개의 동방 가톨릭교회가 로마 주교의 수위권(교황)을 인정하며 교리를 공유한다. 동방 가톨릭교회와 동방 정교회를 같은 것으로 혼동하기 쉽다. 동방 정교회는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하지 않는 완전히 독립된 교회인 반면, 동방 가톨릭교회는 교황과 결합해 있는 가톨릭의 하나다.

아무튼 오늘은 가톨릭이나 개신교보다 13일 늦은 1월의 크리스마스다. 성탄절(Christmas)은 그리스도(Christ)의 미사(mas)라는 뜻을 담고 있다. 전쟁의 총성을 멈추고, 고통받는 이들을 보듬는 제자의 길에 모자람이 크다.

2025년 12월 31일 수요일

서글픔

“섣달 그믐밤의 서글픔,
그 까닭은 무엇인가?”

―광해군 8년(1616) 증광시 책문

2025년 12월 24일 수요일

성탄제(聖誕祭)

―― 흥! 너두 벨수가 없었던 모양이로구나? 그러게 내 뭐라던? ……내남직할 것 없이 입찬소리란 못하는 법이다……

흥! 하고 또 한 번 코웃음을 치고, 문득 고개를 들자, 그곳 머리맡 벽에 가 걸려 있는 십자가가 눈에 띈다. 영이는 입을 한 번 실룩거리고 중얼거렸다.

“이 거룩한 밤에 주여! 바라옵건대 길을 잃은 양들에게도 안식을 주옵소서. 아아멘. ……흥?”

이렇게 기도를 드려두면 순이도 꿈자리가 사납다거나 그런 일은 없을 게다……

―― 흥!  (박태원, ‘성탄제(聖誕祭)’, 1937년 12월 「여성」 21호)


1930년대 식민지 경성, 남달리 사이가 나쁜 네 살 터울의 자매가 있다. 카페 여급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다가 사생아를 낳고 집안에 들어앉은 언니 영이와, 언니 덕에 여학교에 다니면서도 뭇 사내들에게 시달리며 웃음이나 파는 언니를 경멸하고 여배우가 되겠다며 학교를 자퇴하는 동생 순이의 딱한 이야기.

크리스마스라고 교회당에 간다며 초저녁에 나간 순이는 자정이 넘어 언젠가의 영이처럼 남자를 끌고 집에 들어왔다. 눈치를 챈 영이는 순이와 함께 쓰던 건넌방을 내주고 안방으로 들어가 드러누운 어머니와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부모는 지금 건넌방에서 순이의 몸 위에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고 있겠지만 이미 놀라지도 슬퍼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인생이란 것이냐?” 영이는 동생마저 자기와 같은 신세로 전락하는 현실이 서러워 눈물을 흘렸다. 영이는 머리맡 십자가를 보며 기도한다. “이 거룩한 밤에 주여! 바라옵건대 길을 잃은 양들에게도 안식을 주옵소서, 아아멘” 이제 꿈자리가 사납지는 않을 터였다. 동생도, 자기도…

생존이 윤리를 내모는 궁핍한 시대, 가난한 사람들의 막막함에 몸이 으스스 추워진다. 성탄절날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