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27일 일요일

다시 꿈꾸는 백년

한자 투성이에다 붙여쓰기를 한 기미독립선언문은 의미 파악은 물론 읽는 것도 쉽지 않다. ― “吾等은玆에我朝鮮의獨立國임과朝鮮人의自主民임을宣言하노라此로써世界萬邦에告하야…”
국한문 혼용의 강건체 문장을 한글로 옮기고 띄어쓰기를 적용하면 그럭저럭 읽기는 가능하지만, 여전히 오등(吾等), 자(玆), 차(此)와 같은 어휘가 독해를 방해한다. ― “오등은 자에 아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차로써 세계만방에 고하야…”
딸깍발이 이희승 선생이 국역한 문장은 이해가 쉽다. ―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한다. 이로써 세계 만국에 알리어…”

3·1만세운동 100주년을 앞둔 2018년 9월18일, 서울지하철 3호선 안국역이 독립운동 테마역으로 재탄생하면서 △100년 하늘문 △100년 계단 △100년 기둥 △100년 강물 △100년 헌법 △100년 승강장 △100년 걸상 △3·1운동 청색지도 등이 설치됐다. 특히 19190301–20190301을 26개의 계단으로 잇고 있는 ‘100년 계단’은 한글학자 이희승이 풀어 쓴 3·1독립선언문 2,167자를 자음과 모음으로 분리하여 푸른색 UHPC(초고성능 콘크리트)로 제작해 붙였다. 안국역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우리 시대의 독립과 해방을 생각한다. 3·1만세를 부른 자(순절), 부르지 않은 자(거절), 부르다 만 자(변절)들은 100년의 간극을 넘어 현재도 저마다의 선택을 이어 나간다. 아예 꿈도 꾸지 않을 것인가, 꿈을 꾸었으나 중도에 꺾을 것인가, 아니면 계속 꿈을 꾸며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한다. 이로써 세계 만국에 알리어…” 한 글자를 2칸(리)이나 4칸(우·선) 또는 6칸(는)으로 구성했는데 주사위에 세 핍 기호(⚂)는 블랭크(blank)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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