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G.K. 체스터튼(Chesterton)은 전기에서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St. Francis of Assisi, 1182~1274)와 성 토마스 아퀴나스(Saint Thomas Aquinas, 1225~1274)를 이렇게 비교하고 있다.
성 프란치스코는 여위고, 날씬하며, 실같이 가냘프고 활의 줄같이 진동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일평생은 돌진과 질주의 연속이었다. 거지를 뒤쫓아가고, 벌거벗고, 수풀 속으로 뛰어들고, 낯선 배에 올라타는가 하면, 회교군주의 천막 속에 덤벼들었고, 불 속에 투신할 것을 자청하기도 했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줄기만 앙상한 나무에 매달려 바람 앞에서 끝없이 춤추는 가을잎 같았다. 그러나 사실은 바로 그 자신이 바람이었다.
반면에 성 토마스는 비대하고 육중한 황소같은 사람이었다. 비만하고 동작이 느리고 과묵했다. 지극히 온화하고 관대하였으나, 별로 사교적은 아니었다. 때때로 경험하지만 깊이 숨겨온 황홀상태나 무아지경은 그만두고라도, 그는 뭔지 모호해 보이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갑자기 그가 나타났을 때는 성직자들까지도 그를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성 토마스는 그가 늘 다니던 학교의 학자들까지도 저능아라고 생각할 정도로 우둔했다. 참으로 그는 자기의 꿈을 적극적이고 활발한 사람들에게 침해당하기보다는 오히려 자기가 저능아로 알려지기를 원하는 학생같았다.
성 프란치스코의 패러독스가 시에 대해서는 흥미를 가지면서도 서적에 대해서는 불신했던 것이라면, 성 토마스가 책을 사랑하고 책으로 살았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그는 「캔터베리 이야기」 속에 있는 성직자 혹은 학자들과 똑같은 생활을 했으며, 이 세상의 어떤한 재물보다도 아리스토텔레스의 1백권의 책과 그 철학을 소유하기를 원했다. 신에게 무엇에 대해 가장 많이 감사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한 마디로 “내가 지금까지 독서한 모든 페이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사람들이 아리스토텔레스를 오해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절대적인 것과 우연적인 것에 대한 모든 세세한 구분과 연역(演繹)을 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 폴 데이비스 저, 류시화 역, 「현대물리학이 발견한 창조주」, 정신세계사,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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