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파 백정기(1896.1.19~1934.6.5) 의사 순국일이다. 의열사(義烈祠) 사당문은 닫혀 있고, 묘역을 찾는 이도 보이지 않고, 흐릿한 날씨에 작은 화환 5개만 놓여있는 쓸쓸한 88주기다. 이대남 시절에 3·1만세운동을 경험한 구파는 1921년 베이징으로 망명한 후 1924년 덴노를 암살하려 도쿄로 갔으나 실패하고, 1925년 상하이로 건너가 아나키스트 연맹에 가입하고 농민운동에 투신했다.
1932년 자유혁명가연맹을 조직해 흑색공포단(BTP, Black Terrorist Party)으로 개칭하고 일제기관 파괴와 침략원흉 처단 등의 대일투쟁을 전개했다. 4월29일 매헌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虹口) 공원 폭탄투척 당시에 구파도 같은 의거를 준비했지만, 출입증을 기다리는 사이에 매헌의 거사가 먼저 터져나왔다.
1933년 3월17일, 상하이 훙커우의 음식점 육삼정(六三亭)에서 주중일본대사 아리요시가 중국의 군벌들과 회합을 갖는다는 기밀을 입수한 8명의 동지들은 3월5일, 거사를 수행할 사람을 가리기 위해 제비뽑기를 했다. ‘有’를 뽑은 구파는 이강훈, 원심창과 함께 단행하기로 하고 육삼정에서 가까운 송강춘에 모였으나 종업원으로 위장한 일경에 체포됐다. 주동자를 자처하며 젊은 동지들을 보호했던 구파는 동지들의 구명운동에도 불구하고 무기징역을 언도받고 이사하야 감옥에서 복역하던 중 지병이던 폐병이 재발, 악화되어 1934년 6월5일 오후 11시, 39세로 옥중 순국하였다.
낚시를 좋아했다는 송대의 神品 조맹부(1254∼1322)의 별호가 구파(鷗波)였다. 일제의 강점이 아니었다면 백정기 의사는 당신의 號처럼 고향땅 부안 변산 바다의 ‘파도 위를 날으는 갈매기’와 같이 유유자적한 구파의 삶을 살았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