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24일 토요일

태양을 향해 던져라

내 이름은 독고탁 「태양을 향해 던져라」의 역경극복 모티브가 떠올랐다.

간코쿠징이냐 죠센징이냐 가르는 것은 우선순위가 아니다. “공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너의 마음을 던져”서 야마토(大和) 땅에 고시엔(甲子園) 우승기를 휘날렸다는 것이 먼저이고 축하할 일이지.

이 와중에도 NHK는 교토국제고 교가 스크립트에서 동해를 ‘동쪽의 바다’(東の海)로, 한국의 학원을 ‘한일의 학원’(韓日の学び舎)으로 스리슬쩍 바꾸어 놓았다.

훌륭한 선수, 훌륭한 관중, 훌륭한 기자가 되기 이전에 우선 사람이 돼야 한다. 그러려면 올바로 배워야 하고.

동대문의 서울운동장 야구장 시절을 어슴푸레 기억한다. TV 중계로 본 경북고와 선린상고의 결승전은 그야말로 명승부였지. 글러브가 어디 있더라. 캐치볼을 해본 적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2024년 8월 21일 수요일

울분으로 관람한 「1923 간토대학살」

오후에 「1923 간토대학살」을 울분과 애상으로 관람했다.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관동대지진 직후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넣었다, 폭동을 일으켰다, 방화하였다, 강간하였다 등등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가운데 일본군경과 자경단 등이 조선인 6,661명을 무참하게 학살하였다. 100년 전 당시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일본 정관계 인사들은 진정성 있는 추도 의사가 전혀 없다.

늘 그렇듯 폐륜범죄에 이은 은폐조작… 식민지배의 가해자인 일본인들은 스스로 가해를 긍정하기 위해 피해자인 척한 지 오래다. 이들은 피해자로서의 우위성을 내세우기 때문에 그 보복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허황된 욕구는 일본 내 역사 수정주의자들 사이에 공유되며 언동에 기세를 올리고 관련 정책을 입안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잊히고 지워진다. 기억하고 기리는 것은 다짐하기 위해서다. 학살 희생자들이 묻혔던 도쿄 아라카와 강변의 넋전사위가 영령들에게 작으나마 위로가 되었기를 바란다. 영화 막바지에 몇몇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추모사업단 함인숙 대표님, AOK 정연진 대표님, 참으로 좋은 일 하셨다.

2024년 8월 15일 목요일

당신의 Main Battleground는 어디인가?

 어제 오후엔 정동 기림일 미사에 참례하고, 저녁엔 서린동 김남주 30주기 추모제에 함께하려고 했으나… 31일에 합창하는 어머니들 악보를 큰 글씨로 바꾸는 작업이 길어지는 바람에 모두 어긋남.

결국 교장선생님께 포획되어 충무로 래일하제 펍시네마바에서 흑맥주 넉 잔 흡입. 다시 관람한 「주전장(主戰場)」은 NR로 치닫는 사회 분위기처럼 2019년 첫 관람 때와는 느낌이 많이 다름.

“한국은 시끄럽게 구는, 버릇없는 꼬마처럼 귀여운 나라”라며 내지르는 기름기 좔좔 倭인의 능글맞은 면상을 냅다 후려치고 싶은 울분이 솟구침.

박인희 사회자가 소감을 물어오기에 故백기완 선생님의 어록으로 갈음.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서나니.”

당신의 Main Battleground는 어디인가?

―인(원인)과 연(조건)이 날 손짓하는 종삼행 전철 안에서

2024년 7월 28일 일요일

외젠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여신으로 의인화된 자유(Liberté)가 오른손에 프랑스혁명 정신을 상징하는 삼색기와 왼손에 총을 들고, 뒤따르는 민중을 뒤돌아보며 전진을 독려하는 유명한 그림…

많은 사람이 프랑스혁명을 얘기하면서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1798~1863)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Liberty Leading the People)을 삽입하곤 한다. 하지만 이 그림은 1789년 바스티유감옥 습격(7.14)으로 촉발된 프랑스혁명이 아니라 1830년 7월혁명(7.27~29)을 그린 것이다.

1814년, 루이16세의 동생인 루이18세가 빈 회의를 통해 부르봉 왕가의 통치를 재건한다. 1824년, 뒤를 이은 또다른 동생 샤를10세가 보수적 반동정치를 실시(의회 해산, 언론과 출판의 자유 억압 등)하자 파리에서는 41년만에 다시 혁명이 일어나게 되었다. 1830년 7월 27일, 시민들은 시내 곳곳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하며 국왕군과 시가전을 벌였다. 들라크루아의 그림은 혁명 이틀째인 7월 28일의 파리 거리를 묘사하고 있다. 29일에는 시민들이 왕궁으로 진입하며 영광의 3일(Trois Glorieuses)로 불리는 혁명이 성공한다. 1884년 조선의 三日天下(12.4~6)와 대비되는 지점이다. 혁명은 불합리한 세상을 바라보는 정신의 각성이다.

2024년 6월 23일 일요일

‘거꾸로 읽는 동두천사’ 전시연계 역사유적탐방

어제는 동두천시 지행동, 광암동, 보산동, 상봉암동 일대를 탐방했다.

지행역 인근 동두천생태평화갤러리 더꿈에서 파견작가들의 동두천역사문화공원추진을 위한 기금마련展 작품을 감상했다. 「숲은 어린 짐승들을 기른다」라는 전시 표제에서 얼마전 읽은 유키코 노리다케의 키큰이 책 「형제의 숲(Forêt des frères)」을 떠올렸다.

광암로17번길을 달려 턱거리마을로 이동했다. 캠프 호비 정문 왼편의 담벼락길에서 1971년 스스로 생을 마감한 한 여성의 묘 앞에 섰다. 비문은 글자가 흐릿하고 띄어쓰기도 이상한데 대략 이런 내용이다. 가독성을 위해 임의로 마침표를 넣어 보았다. “SOONJA REYNOLDS DIED 7 FEB 1971. MY LOVE REST IN PEACE AND THINK OF ME FOR. I AM THINKING OF YOU FOREVER. AND OUR HEARTS ARE JOINED TO GET HER. 박순자 가지 말아주오. 1971年 2月 9日.”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힘겨운 기지촌을 떠나 미군병사 레이놀즈와 함께 새로운 삶을 꿈꾸던 순자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한 군인의 애달픈 순애보가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마음을 적신다.

단일 궁궐로 보면 경복궁이 가장 규모가 크지만, 창덕궁과 창경궁을 합한 동궐의 면적은 북궐을 넘어선다. 순자묘소 앞 담장 너머는 430만평을 자랑하는 캠프호비(Camp Hovey)다. 인근의 캠프케이시(Camp Casey) 역시 430만평 규모로 이 둘을 합치면 무려 860만평이 된다. 미군의 해외 단일기지 가운데 세계 최대규모로 알려진 평택 캠프험프리스(Camp Humphreys)의 450만평 규모를 가뿐히 압도한다. 동두천시는 현재 시 전체 면적의 42%인 40.63㎢(1천2백3십만평)를 미군측에 공여하고 있다.

캠프호비 동편의 순자묘(광암동 산 92-8). 50여년 전의 사부곡(思婦曲) “순자 레이놀드 1971년 2월7일 사망하다. 내 사랑 평화롭게 쉬기를, 그리고 날 기억해 주오. 우리의 마음은 결합돼 있고 나는 영원히 당신을 생각하고 있으니, 박순자 가지 말아주오. 1971年 2月 9日.”

길을 돌아 나와 쇠목교4거리에서 쇠목계곡으로 향했다. 산촌농원으로 들어가는 작은 삼거리에 ‘주한미군 공여지 반환운동 기념비’가 있다(광암동 87-7). 1996년 3월에 주한미군이 사유지에 어떤 협의나 동의도 없이 미8군 탱크사격장으로 사용하겠다며 과녁용 구형탱크를 밭에 가져다 놓았다. 이에 쇠목마을 주민과 동두천민주시민회의 격렬한 저항을 초래했고 결국 1998년 우리나라 최초로 600만평의 공여지를 반환받게 된다. 이를 계기로 전국의 주한미군기지가 있는 지역마다 공여지 반환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쇠목길을 따라 ‘쇠목마을 미군공여지 반환운동’ 당시 미군탱크의 마을 진입을 저지하기 위해 주민들이 쌓아 만든 몇 기의 돌탑(해원비)이 주욱 서 있다.

쇠목 공여지 반환기념비(동두천시 광암동 87-7). 이곳은 1996년 우리나라 주한미군공여지 반환운동의 시발점이다. 2005년 7월16일 세워진 기념비는 새의 등에 촛불이 올려진 형상이다. 불꽃의 세로글씨는 故신영복 교수의 쇠귀체.

1992년 10월28일, 26세의 기지촌 여성이 미육군 제2보병사단 케네스 마클(Kenneth Lee Markle Ⅲ) 의무이병에게 무참하게 살해당한다. 윤금이의 죽음으로 미군범죄와 불평등한 사법처리 문제가 불거지며 사회일반의 인식전환을 가져오고 SOFA를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동력을 얻게 되었다. 2001년 4월, 결코 충분하지 않지만 살인, 강간, 유괴, 마약거래, 마약생산, 방화, 흉기휴대 강도, 폭행·상해 치사, 음주운전 치사, 뺑소니 등 12개 중대범죄를 저지른 미군 피의자의 신병인도 시점이 재판종료 후에서 기소시점으로 앞당겨진다는 내용을 포함한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개정이 이루어졌다.

30여 년 전 사건현장(보산동 431-50)은 현재 철공방이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사찰 아래에는 사하촌(寺下村)이나 절골, 사동(寺洞), 탑동(塔洞) 등이 번창하고, 향교나 서원 소재지에는 향교촌(鄕校村), 서원촌(書院村)이 들어서는 것이라면 軍기지 주변에 기지촌(基地村, military camp town)이 생활권을 형성하는 것은 지극히 기계적인 물리현상인지도 모르겠다. 미군뿐만 아니라 문무 신라와 연합했다는 정방 당군이나 선조 조선을 원조왔다는 天兵 명군처럼 어쩌면 이 땅에 외국군대가 주둔한 자리는 대개 그러했을 터. 일본군위안부만 생각해 오다가 대뜸 미군위안부라는 개념을 맞닥뜨린 충격이 크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동두천시 상봉암동 경기북부어린이박물관 쪽에서 바라본 옛 성병관리소. 본관 앞쪽에 감시용 초소가 보인다.

소요산역 1번출구를 나와 ‘홍덕문 추모비’가 있는 5거리를 지나서 자유수호평화박물관으로 향하는 우측(남쪽) 도로를 올라가기 전에 철망 등으로 통행을 봉쇄한 곳을 만나게 된다. 구역 안쪽으로는 천막과 차양막 등으로 덮어놓은 건물이 보이는데 얼핏 봐서는 용도를 짐작할 수 없다. 이 수상한 건물의 이름은 옛 성병관리소다. 멀리서나마 정면으로 보기 위해선 경기북부어린이박물관 데크길을 이용해야 한다.

1965년 양주군 조례에 따라 동두천에 처음으로 설치된 성병관리소가 1973년 2,000평 부지의 현 위치로 이전하며 2층 막사가 세워졌다. 이 ‘언덕 위의 하얀 집’의 성격은 성병검진에서 양성판정을 받은 기지촌 여성들을 끌고와 감금하고 학대했던 ‘낙검자수용소’다. 미군들은 ‘Monkey House’로 불렀다는데, 다분히 동양인 폄하적인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과도한 페니실린 투여량으로 사망한 여성이 많았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1996년 3월 폐쇄된 이곳은 동두천시가 신한대학(구 신흥대학)으로부터 부지를 매입하면서 현재 철거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은 옛 성병관리소의 평화적 전환과 활용을 위한 아이디어를 공모하고 학계·문화계 전문가의 의견을 모아 근현대사의 비극을 기억하기 위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거꾸로 읽는 동두천사’ 전시연계 역사유적탐방 참가자들(2024.6.24. 오후 2~5시). 참 열정적인 사람들이다.

김대용 대표님은 學자나 勝자, 官이 아닌 저항하고 기억하는 民에 의해서 역사가 진보한다고 믿고 있다. 기억되지 않은 일들은 일어나지 않은 일과 같으며 다시 반복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우중에도 차량 운전을 해주신 고경환 선생님과 연대의 힘을 보여준 여러 작가분들께 고마움 전한다. 역사의 필연은 종종 우연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 그러하다.

2024년 6월 16일 일요일

금곡홍유릉상점가상인회… 제3회 상상더이상 금곡 페스티벌 개최

제3회 상상더이상 금곡 페스티벌 개최
남양주시 금곡홍유릉상점가 상인회 주최, 지역 상권 활성화에 이바지

http://www.kw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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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홍유릉상점가상인회(회장 이희문)가 ‘2024 제3회 상상더이상 금곡 FESTIVAL’을 개최했다.

오전 11시부터 시작한 이날 페스티벌은 다양한 체험 부스, 먹거리 부스, 상인회 부스, 지역공동체 홍보부스와 각종 공연, 경품 등을 마련해 풍성한 먹거리와 즐길거리를 선보였다.

오후 5시 무렵부터는 취타대를 앞세운 어가행렬이 이석영광장을 출발하여 금곡로를 행진하며 주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이번 금곡 페스티벌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시장경영패키지 지원사업’ 및 경기도와 경기관광공사에서 추진하는 ‘경기도 작은축제 육성지원사업’에 선정돼 추진되었다.

15일 오후, 종로와룡대취타보존회(단장 이춘화) 단원들이 금곡홍유릉상점가 일원을 행진하며 전통 취타대 공연을 펼쳐 주민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15일, 금곡 FESTIVAL 취타대 공연을 마친 종로와룡대취타보존회원들이 리멤버1910 앞에서 기념 촬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