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27일 월요일

이이화를 키운 건 민중과 함께 부대낀 거리였다

故이이화 선생의 기일인 3월18일, 3주기 추모식에 다녀왔다. 선생이 생전 가장 좋아했던 별호가 ‘역사 할아버지’였다고 한다. 「이이화 역사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 이야기」 시리즈. ○○○ 안에는 집 그릇 발효 명절 관혼상제 뒷간 지킴이 도깨비 인쇄 천문학이 있다.
폭폭하다.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추모영상 속 몇 구절로 기리는 마음을 대신한다.

…그를 키운 건 학교와 연구실이 아닌 민중과 함께 부대낀 거리였다. 그의 발길은 우리 민족이 걸어온 숱한 고난과 역경의 현장에 닿아 있었다.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역사에, 왕의 역사가 아닌 백정과 노비의 역사에 관심을 가진 건 그가 바로 민초였고 민중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남긴 한국통사 22권은 왕조사와 정치사가 아닌 백성의 이야기이자 민중의 역사, 새로운 한국사였다. 역적의 누명을 벗겨내고 억울한 죽음의 한을 풀어내고 그들의 명예와 인권을 되찾고 귀 막은 권력자들에 맞서 민중의 역사를 기록한 그는 맨손의 투사이자 역사운동가였다.
생활력은 빵점인 남편이지만 다정한 아버지였고 어린이들에겐 유쾌한 역사할아버지로 살아온 그는 길 위의 역사가이자 진정한 민중사학자였다. 이이화 선생님, 편히 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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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화 선생 3주기 추모식 열려
민중과 함께 부대낀 진정한 길 위의 역사가 추모


변자형 기자 | 승인 2023.03.19 19:58

http://www.kw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229

재야 역사학계의 거목 이이화(李離和, 1936~2020) 선생 3주기 추모식이 18일(토)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조계사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열렸다.
추모식은 역사 학술단체와 동학 관련 단체, 고교 동문, 유가족, 일반 시민 등 14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사, 추모공연, 헌화와 유고집 증정, 감사인사 순으로 2시간가량 진행됐다.

㈔전봉준의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두관 국회의원은 개회사에서 “역사 대중화에 큰 업적을 남긴 선생은 어려운 시기마다 민족정신을 일깨우는 일에 앞장서 왔다”며 “선생이 남긴 정신을 실천으로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18일(토) 오후 조계사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열린 이이화 선생 3주기 추모식에서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추모영상(4:13)이 상영되고 있다.

주영채 회장(동학농민혁명유족회)은 “선생은 혁명 100주년인 1994년을 전후하여 동학정신 현양에 매진해 재단과 유족회 창립에 헌신했다”면서 “진정한 명예혁명으로 자리매김하는 날까지 척양척왜(斥洋斥倭)의 동학사상과 민족통일 완성의 뜻을 이어가겠다”고 추모사를 전했다.
조희연 교육감(서울시)은 “이 땅의 변방, 약자와 함께 부대껴온 삶에서 벼려진 날카로운 시각은 늘 귀감이 되었다”며 “어느 때보다 역사의식이 중요한 시점에 선생의 빈 자리를 채우는 일은 후학의 몫이 되었으니 더 치열하게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추모식에서는 선생을 기리는 추모공연도 이어졌다. 김연 명창은 “조상님들이 광명천지에 공명정대한 세상을 이미 소리 속에 넣어놓았더라”며 「사철가」와 「심청가」 中 심봉사 ‘눈 뜨는 대목’을 열창했다.
노관우 밴드(보컬 박상훈)는 항일음악 330곡집(노동은 著)에 수록된 「새야새야 파랑새야」 「광복군 아리랑」을 현대적으로 편곡해 선보였다.

▲故 이이화 선생의 기일이기도 한 3월18일 오후, 조계사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열린 3주기 추모식에서 참석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아래는 교유서가에서 발간(2020)한 선생의 유고집 「동학농민혁명사」 3권 세트(사진=성남역사문화답사회 손병주 회장 제공).

짧은 추모강연에 나선 배항섭 교수(성균관대)는 “선생이 바라본 민중사는 단순히 억압과 저항·투쟁으로만 양분하지 않은 결이 다른 민중사였다”고 추억하며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하는 시점에 선생의 민중을 바라보는 남다른 감각을 조명하는 제대로 된 자리가 마련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김영희 氏(이이화 선생의 부인)는 “남편은 돈을 많이 벌게 되면 없는 사람을 불리하게 만드는데 머리가 돌아간다”고 말해 왔다면서 “좀 더 친절하지 못하고 돈 많이 안 갖다준다고 투덜댔던 것이 참 미안하다”며 담담하게 속마음을 전했다.

감사인사에 나선 임헌영 소장(민족문제연구소)은 “지금 故 박현채 선생 등을 만나 술잔을 기울이고 계실 듯하다”면서 “일본의 악독함을 정부에 제대로 알리고 더욱 힘차게 촛불을 들어야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서중석 前이사장(역사문제연구소)은 “세상 좋은 인간미와 어린애 같은 웃음으로 기억되는 선생이지만 최근의 한일관계를 아시면 관에서 벌떡 일어나실 듯하다”며 “두렵고 험악한 시대에 선생의 유지를 이어나가자”고 독려했다.

단체 기념촬영으로 추모식을 마친 참석자들은 이이화 선생이 건립위원회 이사장으로 제막을 주도했던 전봉준 장군 동상 앞(서울 지하철 종각역 사거리)까지 이동해 민속문화연구회 탈(성공회대 학내 동아리)의 풍물공연과 함께하며 추모행사를 마무리했다.


2023년 3월 26일 일요일

천지가 전율한 안중근 의거

1910년 일본 사상가 고토쿠 슈스이(幸徳秋水, 1871~1911)는 안중근 의사의 사진엽서에 하얼빈 의거를 기리는 4언체 한시를 썼다.

舍生取義(사생취의)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하며
殺身成仁(살신성인)  몸을 죽여 인을 이루네.
安君一擧(안군일거)  안 군의 의거 한 번에
天地皆振(천지개진)  천지가 다 진동하네.

           -秋水 題(추수 제)  슈스이 지음.


「혁명전설(革命伝説)」 제3권(1970) 156쪽에 수록돼 있다.

義士시여, 이 나라를 보소서~

JUNG-KEUN AN
The Korean Martyr who killed Prince Ito at Harbin. As seen in this picture, the cut off Ring-Finger of the left hand represents the oath of at regicide, according to the old custom of the Koreaus.
The characters of the upper corners of the picture is facsimile of the Poem written by D. KOTOKU, a proni-Lent Japanese Anarchist, praising the brave conduct of the marty.

神崎 清. 大逆事件の人びと 革命伝説3 ― この 闇黑裁判. 카미자키 키요시. 대역사건의 사람들 혁명전설3 ― 이 어둠의 재판. (사진=김창덕)


2023년 2월 20일 월요일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어떤 분이 톡방에 등재한 춤비평가 이만주(1949~ ) 님의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2022)를 공유한다. 홍상수 감독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2015)를 뒤집어놓은 현실 직시의 제목을 아프게 기록하고 냉철히 기억한다. 역시나 깨끗하고도 변치 않는 것은 水 石 松 竹 月 뿐이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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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의 투사라는 사람들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지도자들이 조국이 독립한 후 집권자가 되어서는 과거 종주국의 총독이나 관리들보다도 더 강권정치를 한다.
민주화의 투사라는 사람들이 민주화운동 했다는 리더들이 민주화가 된 후 집권해서는 과거 독재자나 수하들보다 더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개념이 없다.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싸웠다는 사람들이 사회적 평등을 주장하던 이들이 사회주의 정권의 집권자나 관리가 되면 인민과 평등은 아랑곳없이 제 배, 제 곳간 채우기에 여념이 없다.

그들 모두가 과거의 명분은 구호였을 뿐 집권자가 되면 임금으로 착각하고, 행세하며 전제왕정의 군주들보다 더 권력에 취한다.
그들 모두가 권력을 잡으면 지저분해져 물불 안 가리는 축재를 한다. 특히, 사회주의 리더와 관리들의 축재와 부정부패에는 넌덜머리가 난다.
독립, 민주화, 사회주의 다 구호였을 뿐이다. 지나고 보니 그들 모두가 집권욕, 권력욕의 화신이었을 뿐이다. 권력이라는 마약에 취한 마약쟁이들이었을 뿐이다.

젊어서부터 탄압받고 29년간, 옥에 갇혔던 이력으로 조금만 술수를 썼더라면 종신집권 할 수 있었는데도 한 번만 집권하고 사랑을 찾아 나선 만델라가 한없이 우러러진다.

―이만주(2022). 「괴물의 초상」. 현대시학.

2023년 2월 16일 목요일

습한 간(肝)을 펴서 말리우자

윤동주 문학사상 선양회… 종로구 운니동을 지나다 발견한 간판이다. 선양회는 윤동주 문학을 아끼는 사람들이 모여 2000년도에 출범했다는데, 의아하게도 과학기기나 과학실험키트를 취급하는 ‘경성과학’이 들어서 있다.
1941년 11월20일(목) 「서시」를 노래한 東柱는 1945년 2월16일(금) 천상계로 돌아갔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이란 무엇일까?
훼절한 양심, 습한 간肝을 펴서 말리는 시간… 거북이야, 다시는 용궁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


2023년 2월 8일 수요일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오늘 중3 국어시간에는 하근찬의 전후 단편 「수난이대」를 공부했다. 작가는 일제강점기 남양군도에 징용으로 끌려가 다이너마이트 폭발사고로 왼팔을 잃은 아버지 박만도와, 6·25전쟁 중 수류탄 쪼가리에 맞아 한쪽 다리가 절단된 아들 박진수 부자의 이야기를 담담하고 간결한 문체로 그려나간다.
한쪽 팔과 한쪽 다리를 잃은 두 사람이 건너가야만 하는 외나무다리는 이들이 앞으로 겪어야 할 고난과 시련을 상징한다. 외팔이 아버지 만도가 외다리 삼대독자 진수를 업고 외나무다리를 건너가는 장면은 자신들 앞에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극복하고 말겠다는 의지를 형상화한 것이다.

진수: (독백) 나꺼정 이렇게 되다니 아부지도 참 복도 더럽게 없지. 차라리 내가 죽어 버렸더라면 나았을 낀데…
만도: (독백) 이제 새파랗게 젊은 놈이 벌써 이게 무슨 꼴이고. 세상을 잘못 만나서 진수 니 신세도 참 똥이다 똥.
진수: 아부지! 이래 가지고 나 우째 살까 싶습니더. 차라리 아부지같이 팔이 하나 없는 편이 낫겠어예. 다리가 없어노니 첫째 걸어 댕기기가 불편해서 똑 죽겠심더.
만도: 야야, 우째 살긴 뭘 우째 살아. 목숨만 붙어 있으면 다 사는 기다. 그런 소리 하지 마라. 나 봐라, 팔뚝이 하나 없어도 잘만 안 사나. 남 봄에 좀 덜 좋아서 그렇지, 살기사 와 못 살아. 걸어 댕기기만 하면 뭐 하노. 손을 제대로 놀려야 일이 뜻대로 되지. 그러니까 집에 앉아서 할 일은 니가 하고, 나댕기메 할 일은 내가 하고, 그라면 안 되겠나.

아버지와 아들의 2대에 걸친 전쟁을 수난으로 연결시키며 개인적 차원의 고난 극복이 민족적 차원으로 확대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자연물(용머리재)의 시선이 탁월하게 묘사돼 있다. 우리에게 당면한 ‘외나무다리 건너기’는 남남갈등을 해소하고 남북적대를 극복하는 것이다. 문득 재미교포 작가 이민진의 장편 「파친코(Pachinko)」의 첫 문장이 떠오른다. “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 역사는 우리를 망쳐 놨지만(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만도는 아랫배에 힘을 주며 끙 하고 일어났다. 아랫도리가 약간 후들거렸으나 걸어갈 만은 했다. 만도는 아직 술기가 약간 있었으나, 용케 몸을 가누며 아들을 업고 외나무다리를 조심조심 건너가는 것이었다. 눈앞에 우뚝 솟은 용머리재가 이 광경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2023년 1월 31일 화요일

일사당천(一士當千)의 경성 피스톨… 김상옥 의사

불령선인(不逞鮮人) 김상옥 의사의 일기당천(一騎當千) 신화를 기념하는 「1대1000 항일 서울시가전 승리 100주년 기념식」에 다녀왔다. 7~8명이 앉는 원형 테이블 15개에 주변 입석까지 더하면 전체적으로는 200명 정도가 참석한 듯하다. 기업인(BBQ 회장)이 새로 기념사업회장을 맡아서인지 뭔가 분위기가 다르다.

몇 년 전 효제동 생가지(대학로 36-8)와 순국지, 후암동 항거지에 가보았는데, 영덕철물점이 있던 자리(창신동 493번지)도 찾아보고 싶다. 기념식에서 김상옥 의사의 훈격 승급에 관한 얘기가 나왔는데, 필립 제이슨이 1등급 건국공로훈장 대한민국장인 마당에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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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옥 의사 「1대1000 항일 서울시가전 승리 100주년 기념식」 거행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 후 일본 군경 1000명과 시가전 끝에 순국한 경성 피스톨


변자형 기자 | 승인 2023.01.31 23:27

http://www.kw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200

김상옥 의사(金相玉, 1989~1923)를 기리는 「일對천 항일 서울시가전 승리 100주년 기념식」이 31일 오후 2시, 백범김구기념관 컨벤션홀에서 거행됐다.
김상옥의사기념사업회(12대 회장 윤홍근) 주관으로 열린 기념식에는 유족과 보훈 관련 인사, 국회의원, 일반시민 200여 명이 참석했다.

민승 前 기념사업회장(10대)은 ‘약전봉독’을 마무리하며 정부에 김상옥 의사의 서훈 상향을 요청했다. 이어서 김 의사의 증손 김지원氏(34)가 ‘의거 이유’를 낭독했다. 유족대표로 단상에 오른 외손자 김세원氏(75)는 “순국 일백년이 지났으니 이제는 좀 달라져야 하지 않겠나.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합당한 평가와 지원을 바란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31일 백범김구기념관에서 태극기를 들고 무대에 오른 38명의 역사어린이합창단원이 율동을 곁들여 힘차게 노래하고 있다.

2부 축하공연 순서에는 뮤지컬 배우 류비·박선영이 무대에 올라 ‘대한이 살았다’ ‘영웅’ ‘그날을 기약하며’를 열창했다. 이어 역사어린이합창단이 ‘태극기’ ‘압록강 행진곡’ ‘독립군가’ 세 곡을 연달아 부르며 참석자들의 박수를 이끌어냈다.

1889년 한성부 동부 건덕방 어의동(현 효제동) 출생인 김상옥 의사는 대장간 소년노동자로 일하면서 후일 공립효제국민학교로 계승되는 동흥야학(1907)을 설립하여 교육계몽운동에 힘썼다. 1912년(23세) 종로구 창신동에 영덕철물점을 개점하여 사업가로 활동하면서 3·1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후 비밀결사 혁신단을 조직하여 일제 고관 처단, 기관 파괴 등을 추진하다 실패하고 만주·상해로 건너가 김원봉·조소앙·김구·이시영·신익희 등과 교류하며 독립의지를 다졌다.

1922년(33세) 12월 초 의열단원으로 권총과 폭탄 등 무기를 갖추고 서울로 잠입, 매부 고봉근의 삼판통(현 후암동) 집을 근거로 거사를 준비하던 중 1923년(34세) 1월12일 종로경찰서에 투탄한 후 일제 군경 1000여 명을 상대로 치열한 효제동 시가전을 벌이다 1월22일 마지막 남은 1탄으로 자결 순국하였다. 정부는 김상옥 의사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2015년 개봉한 영화 「암살」의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扮)이 김상옥 의사를 모티브로 연출된 캐릭터였다.

▲31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김상옥 의사 1 대 1000 항일 서울시가전 승리 100주년 기념식」에서 김상옥의사기념사업회 및 보훈 관계자, 유가족, 역사어린이합창단, 시민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성남역사문화답사회 손병주 회장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