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31일 일요일

베텔스만 북클럽 사이트 클로징


베텔스만 북클럽....
90년대 말에 베텔스만 한국지사가 설립된 후, 회원 모집을 시작하여 베텔스만 http://www.thebookclub.co.kr/ 사이트를 통해 책 소개 및 판매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초대 사장은 인도 사람이었던 거 같은데 이름은 기억이 가물가물. 때맞춰 보내주는 카탈로그를 열심히 모으기도 했는데, 이사를 하는 와중에 모두 정리했었지.



나도 2000년대 초반에 회원 가입했었고.. 당시에는 분기에 한권씩 해서 한해에 도합 4권의 책을 의무적으로 구입해 읽어야하는 일종의 강제 규정이 존재했었는데 그리 나쁘지 않았지.
2005년인가 운영 주체가 ‘베텔스만 코리아’에서 ‘대교’로 넘어가면서 명칭도 ‘북스캔’으로 바뀌고, 언제부턴가 강제구입 규정도 없어졌었다.
이제 2010년 11월 1일을 기해 리브로(libro.co.kr)로 통합된다는 공지네.



한동안 적립해 놓은 마일리지로 북스캔에서의 마지막 책을 1,510원에 구입했다.
왼편의 검정색 가방은 베텔스만 북클럽 회원이라면 하나 쯤은 소지하고 있을 배낭이다. 우리집에 2개가 있다.



통합되는 리브로 사이트를 이용할지 여부는 아직 미정.
어차피 같은 회사에서 운영하는 사이트 간의 통합이라 크게 문제될 것은 없겠지만, 도서 분야도 그렇고 괜찮은 아이템과 서비스의 중소 규모 회사들이 자꾸만 문을 닫는 경우가 늘어만 가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네.

2010년 10월 29일 금요일

1143번 버스사고


어제 오전.. 출근하기 전에 우리집 뚜비 녀석과 당현천 길을 산책하다가 “쾅” 하는 소리가 나길래 돌아봤더니 아래 사진과 같은 장면이 보였다.



사진을 좀더 확대해 봤다. 건너편은 ‘신광상운’인가 하는 택시회사다.



1143번 버스가 양지교 횡단보도 언저리에서 신호등과 분전함, 가로수를 들이받고 멈춰선 모양인데.. 승객들은 아직 그냥 타고 있다. 요즘 애들 말로 얼마나 ‘식겁’ 했을까. 이상한 건 1시간이 지나도 경찰은 보이지 않더라는 것이다.

‘안전제일’이라는 푯말 밑에 버스사고....
버스기사의 졸음운전이 아닐까 싶은데, 만일 사고 원인이 급발진이나 정비불량의 문제라면 얘기는 더욱 심각해진다. 1143번은 흥안운수에서 노원구 일대를 운행하는 지선버스다.

얼핏 크게 다친 사람은 없어 보이는데, 추후라도 승객 중에 허리가 아프다든가 하면 보험 관련 부분이 어떻게 처리 될른지도 궁금하네.

오늘 아침에는 을지로에서도 시내버스 2대가 정면 충돌해서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던데.. 난데없이 천연가스 버스가 폭발하지 않나 요즘 버스사고 진짜 많이 난다. 이눔의 대중교통.. 정말 ‘안전불안’ 아닌가.

2010년 9월 30일 목요일

빵이 없어? 그럼 케이크를 먹어!

엊그제 대형마트에서는 배추 한 포기 값이 1만3800원, 재래시장에서는 무려 1만5000원까지 치솟았다는 소식이다.
그 때문인지 자기 밥상에 값비싼 일반 김치 대신 양배추 김치를 올리도록 지시했다는 MB 가카.. 오늘도 서민들 가슴에 염장을 질러댔다. 여기에 장단 맞춰 농림수산식품부 당상관께서는 “배추 값이 올랐으니 김장김치를 한 포기 덜 담궈달라”고 했단다. 이쯤되면 가히 천하무적의 환상적인 복식조라고 할 수 있겠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마리 앙뜨와네뜨 왕비는 굶주린 백성들에게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고 훈수했단다. 참으로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인가 보다.

2010년 9월 4일 토요일

[책] 남한산성


병자호란은 비교적 오래 계속되지 않고 두 달만에 끝났으면서도 임진왜란과는 다른 각도에서 깊은 상처를 남겼다.
세손과 비빈들이 피난갔던 강화도가 함락됐다는 소식과 함께 47일간 버티어 온 인조가 삼전도로 나가 항복하기까지의 경과는.. 발설하기가 무척 어려웠지만 비화로 덮어두지 못하고 경험자의 증언을 통해 널리 알리고 그 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었을 터였다.
청의 실제적 파워와 명에 대한 명목적 의리 가운데 그 어느 쪽에도 의존하지 않고, 민족의 위기를 타개할 역량을 발휘하자는 여망은 해결하기 어려운 논란의 소용돌이를 피하기 위해서도 지면상에 표현되어야만 했다.
때문에 병자호란 때의 일을 기록한 글은 풍성하고 다양하다.

남한산성에서 직접 수난을 겪은 사람들의 실기는 실제로 있었던 일을 충실하게 기술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다. 김상헌의 <남한기략>은 난의 경과를 간략하게 정리한 일기이고, 최명길의 <병자봉사>는 자신의 주장을 임글에게 올린 글이다. 그 중에서도 <산성일기>라고 통칭되는 문헌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음은 물론이다.

홍익한, 윤집, 오달제 척화파 3학사는 심양으로 잡혀가 처형되었지만, 당상관 김상헌은 끌려가 고초는 겪었을지언정 처형되지는 않아서 자기의 처지와 심경을 술회할 수 있었다. 조선땅을 떠나면서 읊었던 유명한 시조 ‘가노라 삼각산아~’는 북한에서도 애국적 기개를 점층적으로 강조한 작품으로 높이 평가하고 있단다.

소설은 비교적 잘 읽혔지만, 읽는 내내 답답했다.
“임금이 남한산성에 있다”는 사관의 반복되는 기록이 지루함을 더한다.
척화신으로 오랑캐의 칼날을 받겠다고 상소한 서른살 먹은 교리 윤집과 스물일곱의 수찬 오달제....
예조판서 김상헌이 일개 대장장이 서날쇠에게 남한산성 밖의 조선군들에게 연통의 세작을 청하며 나누는 대화가 인상깊다.

김상헌: 다녀오겠느냐?
서날쇠: 조정의 막중대사를 대장장이에게 맡기시렵니까?
김상헌: 민망한 일이다. 하지만 성이 위태로우니 충절에 구천이 있겠느냐?
서날쇠: 먹고 살며 가두고 때리는 일에는 귀천이 있었소이다.
김상헌: 이러지 마라. 네 말을 내가 안다. 나중에 네가 사대부들의 죄를 묻더라도 지금은 내 뜻을 따라다오.
서날쇠: 소인이 임금의 문서를 지닌 채 적에게 사로잡히면 어찌 하시겠습니까?
김상헌: 안 될 말이다. 그러니 너에게 간청하는 것이다.
서날쇠: 대감, 어찌 대장장이를 믿으십니까? 삼전도에는 적에게 붙은 사대부들도 만다던데......
김상헌: 그렇다. 그러니 너에게 말하는 것 아니냐.
서날쇠: 나라에서 하라시니, 천한 백성이 어쩌겠습니까.

김상헌은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수치심.... 아이러니하게도 5.18과 5공에 대한 김훈의 태도와 오버랩된다.



중국으로서는 굴기에 대한 대우를 받고자 하는 욕망은 점차적으로 증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나치게 미국이라는 백그라운드(?)를 믿고서 중국이나 아랍권을 자극하는 모양새를 고집하며 긴장감을 조성하는 정책은 한번 더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역사의 교훈은 번번히 무시되기 일쑤지만, 그래도 역사는 가장 훌륭한 거울이다.

 

2010년 8월 31일 화요일

미국, 러시아, 중국, 북한의 소총


군대 담론.... 얼마 전 EBS 인기 국어강사 장희민씨의 동영상 강의 때 나온 발언으로 또한번 크게 이슈가 됐었다.
젊은층의 언어변화를 설명하면서 남자는 주로 비표준형을 만들고, 여자들은 주로 표준형을 만든다면서 곁들인 말이....

“남자들은 폭력적이고 좋지 않아요. 남자들은 군대 갔다왔다고 좋아하죠. 자기 군대 갔다왔다고 뭐 해달라고 맨날 떼쓰잖아요. 그걸 알아야죠. 군대 가서 뭐 배우고 와요. 죽이는 거 배워오죠. 여자들이 그렇게 힘들게 낳아 놓으면 걔넨 죽이는 거 배워오잖아요. 뭘 잘했다는 거죠. 도대체가? 자, 뭘 지키겠다는 거죠. 죽이면서. 그냥 처음부터 그런 거 안 배웠으면 세상은 평화로와요........ 너무 남존여비가 거꾸로 가고 있죠.”

였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다른 내용은 다 집어치우고,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제대한 입장에서 보면 말인즉슨 군대에서 죽이는 기술을 배운다는 것 자체는 맞는 말이다. 그게 군대라고 하는 조직의 존재 이유니까. 007식으로 얘기하자면 일종의 ‘살인면허’ 같은 거 아닌가.
비근한 예로 총검술을 배우는 과정에서 구령에 따라 열심히 “찔러총”을 해대고 있는 나에게 교관이 그러더라구. 그냥 단순히 앞으로만 찔러대서는 타격을 주지 못한다. 시계방향으로 약간 돌리듯이 하면서 찔러야 깊숙하게 박히면서 뽀다구도 난다구.... 헐~~

감히 ‘군대’ 라는 성역을 건드렸다는 이유로 나이브한 발상의 그 강사가 비난받아야 한다면, 국기에 대한 경례 하나 제대로 못하는 영부인에게도 마찬가지의 비난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대통령, 국회의원 등등 소위 파워 엘리트 계층에 속하는 자들은 병력이 모자란다고 떠들어 대면서 정작 본인과 자식들은 왜 그 ‘성역’에 입성하지 않는가. 고매하게도 사람 죽이는 기술 배우기를 거부해서인가. 군복입고 훈장차고 썬글라스 쓰고 LPG 가스통 들고 위협적으로 시위하는 투사 아저씨들.... 왜 청와대와 국회 앞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나.
문제는 역시나 텍스트와 콘텍스트의 문제로 환원된다.


‘소총’ 하면 금방 떠오르는 것이 M16, K2 인데.... 찾아보니 세계 각국에서 엄청나게 많은 개인화기를 자체 개발해 놓고 있더군. 지면이 좁은 관계로 미국, 러시아, 중국, 이란, 이라크, 북한의 소총 몇자루만 소개해 본다.


미국 소총




러시아 소총




중국 소총




이란 소총




이라크 소총




북한 소총



북한의 소총은 크게 PPSH계열과 AK계열로 분리할 수 있다.

가장 먼저 사용된 ‘PPSH-41’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의 주요 개인화기로 AK계열 출현 전까지 사용됐다. 한국전쟁 당시 소련의 지원을 받아 북한군 개인화기로 사용한 덕분에 6·25 배경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고 ‘따발총’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PPSH-41 후속 모델로 생산된 ‘PPSH-43’은 소련에서 개발돼 60년대 북한군이 주로 사용했다. 특히 68년 1월 21일 청와대 습격사건 당시 침투 공비들이 휴대했다. 총열집에 7개의 구멍을 뚫어 공기 냉각이 편리하도록 설계됐는데 분당 650발의 사격이 가능하고 탄알을 장전했을 때 무게는 3.93㎏이다.

‘58식 자동보총’이 도입되면서 북한의 주력 소총은 PPSH계열에서 AK(Automat Kalanishkov)계열로 전환된다. 북한군은 소련에서 개발된 AK-47 소총을 도입해 주력화기로 제작했는데 58년과 68년에 생산돼 각각 ‘58식·68식 자동보총’으로 명명됐다.

총 몸체 왼쪽에 숫자와 한글로 58식·68식으로 각각 표기돼 있고 조정간에는 ‘단·련’이 한글로 표기돼 있다. 북한은 ‘소총’이란 용어 대신 보병이 사용한다 해서 ‘보총’이라는 용어를 붙였다.

AK소총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소련 침공을 계기로 독일군의 우수한 개인화기였던 MP-40을 제압할 수 있는 돌격용 소총을 연구하던 소련 전차부대 부사관 칼라니쉬코브가 설계, 제작했다.

소련의 기존 주력화기였던 시모노브소총(10발 내부장착 탄창)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20·30발 분리형 탄창이 장착됐다. 조작방법이 간단한 데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고장이 없는 장점 덕분에 47년 최초로 개발된 이후 소련의 영향권 아래 있던 공산권 국가를 중심으로 전 세계에 걸쳐 확산됐다.

특히 일교차가 심하고 모래 바람이 많은 아랍권을 비롯한 아프리카 지역에서 주로 사용됐다. 현재 우리 우방국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에서 AK소총의 변종 형식을 취한 자체 개발 총기가 사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7.62×39㎜ 탄을 사용하는 58·68식과 달리 5.45×39㎜ 탄을 사용하는 AK-74(북한의 경우 88식 자동보총)가 제작돼 신형 대체 총기로 확산되고 있다. AK소총은 아카보소총·돌격소총·칼라니쉬코브 소총·7.62㎜ 소총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다.

2010년 8월 28일 토요일

스펙과 스팩의 차이


최근 스펙이라는 단어가 많이 쓰이고 있다.
하지만 스펙(Spec)과 스팩(SPAC)은 전혀 다른 의미다.
한번 알아보자. (M25 vol.150 p.6 참조)


스펙(Spec, Specification)
본래 제품설명서나 제품의 구체적인 사양·제원을 뜻하는 말이지만 최근엔 그 사람의 학력이나 경력을 통틀어 의미하는 말로 쓰인다. 복수전공을 ‘보험’ 처럼 해두며, 취업 준비생들에게는 학력과 학점, 어학시험 점수, 교내외 활동 이력, 인턴십 이력 등이 스펙에 포함된다. ‘맨땅에 헤딩’ 하는 격으로 우르르 고시에 몰려들고, 심지어 자원봉사도 스펙쌓기의 도구가 된다. 중앙대로 대표되는 대학 현장은 취업양성소로 전락한 지 오래다.

직장인들에게는 더하여 회사에서의 담당 업무와 실적 등이 포함된다. 최근 자신의 스펙을 높이기 위한 샐러던트(공부하는 직장인)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연봉이나 근무 환경 등이 조금 더 나은 직장으로 이직하기 위한 사람, 지금까지 일했던 곳이 아닌 새로운 분야로 이직하기 위한 사람, 현재의 직장에서 승진하기 위한 사람 등 샐러던트가 되는 이유도 다양하다.

현대판 음서제도의 화려한 부활.... 그나마 상승의 기회가 되어주던 고시마저 관료조직의 혁신이라는 미명하에 스펙으로 무장한 상류층에게 다 내어주게 생겼다. 더하여 청년실업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는 고졸 이하나 대학 중퇴 등 ‘비대졸자’는 아예 관심 영역 밖으로 철저히 소외되어 있다. 이들에게 대학생들의 스펙 경쟁은 화려한 사치일 뿐이다.

“이게 아닌데 내 맘은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이라는 폭주 기관차에서 뛰어내릴 용기도 비젼도 없다. 누적적이며 불가역적인 스펙의 차이는 곧 계급의 격차로 확대되어 전 생애를 통해 점차 벌어질 가능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스팩(SPAC, Special Purpose Acquisition Company)

스팩은 한마디로 기업인수목적회사, 즉 기업 인수·합병(M&A)만을 목적으로 설립된 명목상의 회사다. 공모를 통해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상장시킨 뒤 쓸 만한 비상장기업을 인수 합병해 수익을 나눠갖는 일종의 페이퍼컴퍼니(명목상 회사)다. 따라서 M&A성과 외에는 뚜렷한 상승동력이 없는 종목이다.

만약 기업 합병에 실패하면 스팩은 청산되고 투자자들은 남아 있는 돈을 돌려받는다. 하지만 상장 초기 투자과열 양상까지 빚어졌던 스팩의 인기가 급속히 식어가고 있다. 공모가를 하회하는 종목이 늘고, 공모주 청약에선 미달사태도 나타났다. 아예 공모일정을 미루는 스팩까지 나오고 있어 ‘백조에서 미운 오리새끼’가 되는 형국이다. 증권사들이 내놓는 스팩들이 대체로 엇비슷해 투자자들의 관심을 모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국내에 새로 도입된 스팩이 최종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점도 투자심리를 낮추고 있다고. 적정가격의 성장잠재력이 있는 기업을 찾아내기도 쉽지 않은 작업인데다 그 결정이 투자자들에게도 믿음을 줘야 하기 때문이라는데.
그래서 무작정 투자하는 건 위험하다. 위험 부담을 줄이고 싶다면 경영진의 투자 경력과 과거 실적을 꼼꼼히 살펴 투자해야 한다. 간접투자인 스팩펀드에 투자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단다.
(뭔 소린지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