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8일 화요일

‘독립’ 위해 하나된 종교 화합의 장을 돌아보다

‘독립’ 위해 하나된 종교 화합의 장을 돌아보다
공원이 된 학교와 신문사 자리엔 표석만 남아


(협)마을대학종로는 「2024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에 선정된 ‘종로, 역사의 라이벌’ 프로그램을 5월부터 10월까지 4차례에 걸쳐 운영한다. 그 첫 순서로 지난 5월 18일(토) 수송동, 견지동, 인사동, 경운동 등을 탐방하며 천도교를 중심으로 선조들의 독립운동 발자취를 따라가 보았다. 이날 탐방은 증조할아버지(김승학)와 아버지(김계업)에 이어 3대째 독립운동사의 가학을 잇고 있는 김병기 선생이 해설을 맡아주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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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jongno-mn.com/news/articleView.html?idxno=3569

①수송공원(壽松公園)

명종의 며느리이자 순회세자의 세자빈인 공회빈 윤씨가 머물던 종로구 수송동 옛 용동궁 자리에 천도교 인쇄소인 보성사(普成社) 표석이 있다. 1919년 2월27일 밤, 보성사에서 최남선이 쓴 독립선언서를 인쇄하던 중 종로경찰서 소속의 조선인 형사 신승희(일명 신철)가 들이닥쳤다. 이종일 사장으로부터 상황의 심각함을 전해들은 손병희 교조가 급히 거금 5천원을 준비했고, 이를 건네받은 신철은 만주로 떠났다. 이렇게 하여 독립선언서 3만5천부 인쇄가 무사히 완료됐다.
1914년 4월1일, 일제는 중부 수진방(壽進坊)의 수동(壽洞)과 송현(松峴·솔고개) 등을 병합해 새로이 수송동 이름을 작명했다. 1980년대 초 숙명여고(1981)와 중동고(1984)가 강남으로 이전한 공간에 빌딩들이 들어서고 자투리에 다양한 수종의 나무를 심어 공원을 조성했다.
보성사 표석은 현재 수송공원 안에 있지만, 보성사는 원래 지금의 조계사 대웅전 앞 회화나무 언저리에 보성전문학교와 함께 있었다. 공원 내에는 보성사 터 표석과 기념탑, 옥파 이종일 동상, 중동학교 옛터, 숙명여학교 옛터, 신흥대학 터를 알리는 표석이 세워져 있다. 또한 대한매일신보 창간사옥 터, 화가 심전 안중식과 고희동 등의 활동지임을 알리는 표석이 좁은 공간에 산재해 있다. 시간적 배경을 달리해 여러 학교와 인쇄시설이 있던 곳임을 알리는 종합 안내판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5월18일(토) 오전, 종로구 수송공원 내 이종일 동상 앞에서 ‘종로, 역사의 라이벌’ 참여자들이 기념촬영 하고 있다.


②우정총국(郵政總局)

금석 홍영식은 1881년 신사유람단, 1883년 보빙사의 일원으로 일본과 미국을 방문하고 고종에게 근대 우편제도의 필요성을 건의했다. 고종은 건의를 받아들여 1884년 3월27일, 우정총국을 설치하고 홍영식을 초대 우정총판으로 임명했다. 1884년 12월4일 밤 우정총국 낙성식에서 김옥균, 홍영식,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등 개화파는 정변을 일으키고 왕과 왕후의 신변을 확보해 경우궁으로 모셨다. 그러나 12월5일, 고종 내외가 창덕궁으로 환궁하면서 수구파의 반격이 본격화됐다. 12월6일, 위안스카이가 지휘하는 청군이 창덕궁으로 들어가면서 개화파를 지원하던 일본군이 철수했고, 개화당의 갑신년(1884) 정변은 3일 만에 종말을 고했다.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등은 일본 망명길에 오르고 홍영식은 고종을 수행해 북묘(北廟)까지 갔다가 청군에 살해되었다.
본채를 제외한 건물이 소실된 우정총국은 개국 20일만에 폐쇄되고 1893년에야 전우총국(電郵總局)이란 이름으로 우편업무를 재개했다. 1905년 이후에는 한어학교, 중동야학교, 경성 중앙우체국장 관사 등으로 사용되었다. 광복 이후엔 개인주택이었다가 1956년 체신부에서 매입해 1972년부터 ‘우정총국체신기념관’으로 사용했다. ‘14개조 개혁정강’에서 보듯이 갑신정변은 자주적 근대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 최초의 정치개혁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다.



③태화관(泰和館)

우정국로 건너편 인사동5길로 나아간다. 헌종 임금이 총애한 후궁 경빈김씨가 거처하던 순화궁(順和宮)은 1907년 8월, 경빈 사후 궁내부대신 이윤용이 차지하였다. 나중엔 이복동생 이완용이 별장으로 쓰다가 1915년 1월, 대규모 호텔 ‘태화관’이 들어섰다. 이후 1918년 대한제국 전선사(궁중음식 담당부서) 장선 출신의 안순환이 인수해 명월관 분점을 개점했다.
이곳 조선요리옥 자리에선 1905년 이완용과 이토 히로부미의 을사늑약 밀의, 1907년 7월 고종 강제퇴위 음모, 1910년 병탄조약 논의가 진행됐다. 3·1만세운동 당시 민족지도자들은 이러한 모의가 벌어진 장소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여 모든 매국적인 조약이 무효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태화관은 1921년 미국 남감리교 여자선교부가 매입해 국내최초 사회복지기관인 ‘태화여자관’을 설치하고 태화여학교를 운영했다. 1936년 화가 이숙종이 태화여학교를 인수해 성신여대로 발전했다. 지금 태화관 자리엔 감리회 태화복지재단의 태화빌딩이 들어서 ‘크게 화합함’이라는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

1919년 3월 1일 태화관의 독립선언에는 민족대표 33명 중 29명이 참석했다.
 


④승동교회(勝洞敎會)

인사동 실내포장마차 거리를 따라 인사동3길을 지난다.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인 새뮤얼 무어(한국명 모삼열)가 1893년 지금의 소공동 롯데호텔 자리인 옛 곤당골에 세운 작은 한옥에서 승동교회가 출발했다. 동네에 고운 담(곤담)이 둘러쳐져 있어 고운담길·곤당골이라고 부르던 것이 그대로 교회 이름(곤당골교회)이 됐다. 무어 선교사가 양인(良人) 교인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인근의 백정(白丁)들을 받아들여 ‘백정교회’로도 알려졌다. 2대 당회장인 이눌서(W.D. Reynolds) 목사 때인 1904년 10월, 인사동에 한옥을 사들여 이사하고 1912년 지금의 본당 골격을 갖췄다. 박공 지붕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붉은 벽돌건물은 1959년 증축공사로 초기의 모습을 잃었다.
인근 인사동·종로2가 일대를 가리키던 승동(承洞)이 1907년 연합부흥회(길선주 목사) 때 “인근 절골(寺洞)과의 영적인 싸움에서 이기는 교회가 되자”는 의미의 승동(勝洞)으로 교회이름을 바꾸어 부르게 됐다고 전한다.
3·1운동 학생단 대표인 연희전문학교의 김원벽 등이 다니면서 승동교회는 하층 기도실에 모여 학생들이 비밀회합을 갖고 학생동원을 점검하는 등 독립선언서 배포에 거점 역할을 수행했다.



⑤탑골공원

세조가 고려의 흥복사 절터에 건립한 원각사 자리에 1897년(광무1) 대한제국 최초의 도시공원인 파고다(pagoda·塔婆)공원이 조성되었다. 광장이 없던 황도에 근대 공(public·公)적 공간이 들어선 것이다.
1919년 3월1일 오후 2시, 탑골공원에 모인 청년·학생들은 “집결할 파고다공원에서 선언식을 가질 경우, 자칫 폭동으로 비화할 수 있다”면서 타이르는 태화관의 민족대표들과 행동을 달리하기로 결정했다.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 조선(朝鮮)의 독립국(獨立國)임과 조선인(朝鮮人)의 자주민(自主民)임을 선언(宣言)하노라”라며 경신학당 출신의 해주 사람 정재용이 팔각정에 올라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다. (탑골공원에서 민족대표를 대신해 독립선언서를 처음 낭독한 인물이 경성의학전문학교 모 학생이라는 주장도 있다.) 공원에 모인 5천여 명이 일시에 내지르는 “대한독립만세” 외침에 수만의 군중이 호응하면서 만세운동은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요사이엔 3·1운동 성지인 탑골공원(사적 제354호)의 역사적 위상에 걸맞도록 이름을 바꾸고 담장을 없애 보다 개방적인 구조로 재구조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⑥천도교 중앙대교당(天道敎 中央大敎堂)

중앙대교당이 자리한 종로구 경운동 88번지 입구 우편에 ‘독립선언문 배부터’라는 표석이 있다. 보성사 이종일 사장의 집이 있던 곳이다. 좌편의 ‘개벽사(開闢社) 터’ 표석과 ‘세계 어린이운동 발상지’ 표석엔 소춘 김기전과 소파 방정환의 흔적이 담겨있다.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천도교의 총본산이다. 교세가 확장하면서 송현동에 있던 중앙총부를 이전하고 300만 교도의 성금을 모아 1921년 준공했다. 건평 212평의 화강석 기초에 붉은 벽돌을 쌓아 올린 단층건물로 식민지 시기에는 명동성당, 조선총독부와 함께 서울의 3대 건축물로 꼽혔다. 기둥을 두지 않은 내부는 아치형 천장을 철근 앵글로 엮은 뒤 바로크풍 지붕을 덮었다.
대교당 우편에 자리한 15층의 수운회관은 1971년 건축됐다. 박정희 군사독재에 협력한 최덕신이 1967년 천도교 교령 자리에 오르고 한국종교협의회장을 맡은 이후의 일이다.

1,000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종교행사는 물론 지금도 노동자, 여성, 참사피해자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시국강연회, 음악회, 학술대회가 열리고 있다.

105년 전 3·1만세운동은 우리나라 천도교, 개신교, 불교 세 종단이 주도하여 ‘독립’이라는 단일한 대의를 위해 하나로 뭉쳤던 민족의 소중한 경험이다.
해설자 김병기 선생이 용인땅 우봉이씨 선산 자락에서 기어코 두계 이병도의 무덤을 찾은 사연, 무장투쟁을 주장한 묵암 이종일과 비폭력주의자 의암 손병희의 논쟁, 변절자 여암 최린의 회한 이야기는 참가자들에게 약이 되고 밥이 되는 훌륭한 약밥이었다.
이날 탐방이 일본 식민지배를 미화하고 바른 역사를 왜곡하는 부류가 우리 사회의 주류인양 힘을 과시하는 이 시점에 자칫 흔들릴 수 있는 역사인식을 바로 잡는 계기가 되었기를 소망한다.

2024년 5월 15일 수요일

줄탁동시(啐啄同時)

레드와 핑크 카네이션에 꽃화분과 달콤한 산머루주, 색종이로 손수 접은 카네이션에 자작 시집까지… 세종 임금님 덕에 말단 후학도 축하받고 호사를 누렸다.
모진 세월 거치며 오라버니와 남편, 자녀들 뒷바라지 마치고 이제사 늦사리하는 열정으로 힘겹게 줄(啐)하는 망팔 망구 늦깎이분들이다. 배움의 수준이 높고 가르침의 수준도 높은데 더하여 부추김과 나눔, 본보기의 수준까지 높은 탁(啄)을 꿈꾼다.



2024년 5월 11일 토요일

노나메는 「장산곶매 이야기」

“나는 통일꾼이요.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서나니
옛날 겟적 꼬꼬지 옛날 겟적 한거리 벅적 달구름에
우리말은 인류문화의 어먹한 다락이다.”

그저께 목요일(5.9) 오후, 공모사업 협약식을 마치고 명륜4가 ‘백기완마당집’을 방문했다. 선생의 옛살라비에서 옮겨온 짧은 문장은 흔히 접할 수 없는 낱말로 꾸려져 있다.
새로 나온 「장산곶매 이야기」 두 권이 후학의 우리말 공부를 노나(나누어) 메기(먹이다)는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조만간 모란공원 묘소로 찾아봬야겠다. 불쌈꾼의 영면에 삼가 고개를 숙인다.

백기완, 「장산곶매 이야기」, 노나메기, 1·2권 각 1만5천원

2024년 5월 1일 134주년 노동절에 공식 개관한 ‘백기완마당집’




2024년 5월 10일 금요일

2024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 협약식

서울은 한성백제 위례성과 고려의 남경, 조선의 도읍을 거치면서 시·공간의 층위가 켜켜이 쌓인 역사도시이다. 그런 만큼 당대를 살아간 인물이 만들어 간 사회·역사적 경험은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는데 그 중심 층위에 종로가 있다. 번영의 시기이건 혼란의 시기이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인물들의 역할이 컸고, 그 속에서 주동인물과 반동인물이 겯고틀기를 반복했다. 종로라는 배경에서도 어김없이 많은 인물이 부침을 거듭했다. 이러한 ‘인물’을 알면 우리 ‘역사’와 ‘종로’를 더 잘 볼 수 있다.

이번에 우리 조합은 조선시대와 근대시기까지 라이벌 관계에 있던 몇몇 인물을 통해 역사의 중심무대였던 종로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서로 다른 선택을 했던 양자의 입장을 비교함으로써, 각 인물의 다른 시작과 말로, 삶의 여정은 물론 각 시대를 뜨겁게 달궜던 갈등과 쟁점을 돌아볼 예정이다.






2024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 협약식 성료
11월까지 이웃소통 17팀, 지역문제해결 13팀 사업수행

http://www.jongno-mn.com/news/articleView.html?idxno=3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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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구청장 정문헌)는 9일 오전 좋은공연안내센터 다목적홀(동숭동)에서 ‘2024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 협약식’을 가졌다.

주민소통 공모사업은 종로구에 거주 또는 근무하는 3인 이상의 주민모임 및 단체가 지역문제를 스스로 찾아내 해결하고 이웃 간, 세대 간 소통을 증진할 수 있도록 구에서 지원하는 공동체 활성화 사업이다.

행정자치과 강현영 과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협약식은 △국민의례 △내빈소개 △추진경과 및 사업소개 △협약서 전달 △구청장 인사말 △구의회의장 축사 △기념촬영 △우수사례발표 △향후일정 안내 △소통지원가 상견례 순으로 이어졌다.

정문헌 구청장은 “많지 않은 지원금액에 새로 바뀐 회계처리(보탬e)까지 부담을 드리는 것 같아 죄송스럽다”면서 “종로를 향한 애향심으로 의미 있는 결실을 맺는 길을 함께 걸어나가겠다”고 말했다.

공모사업은 초기 단계의 이웃소통사업과 발전 단계의 지역문제해결사업으로 구성돼 있다.

올해 주민소통 공모사업은 지난 2월 사업공고(2.1) 이후 총 42개 팀이 응모했다. 심사단은 1차 서류 및 현장심사(3.14), 2차 면접심사(4.2)를 거쳐 최종 30개 팀(이웃소통 17, 지역문제해결 13)을 선정(4.4)했다. 예산집행지침 및 보탬e시스템 교육(4.26)까지 마친 선정 단체는 100만 원에서 300만 원까지 지원받아 5월부터 11월까지 사업을 진행하게 된다.

한편, 종로마을N을 발행하고 있는 (협)마을대학종로는 2022년 「사라진 싱아를 찾아서」, 2023년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에 이어 올해에도 「종로, 역사의 라이벌」을 주제로 3년 연속 지역문제해결사업을 운영한다.

※ 신청링크 - https://forms.gle/WEDAYEzeFM9LPySSA

2024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 「종로, 역사의 라이벌」 by (협)마을대학종로


2024년 5월 6일 월요일

당신 때문에 우리가 문맹이 되었잖아!

석기시대, 한 사람이 돌 위에 무엇인가 긁적거리고 있다.
이것을 본 다른 사람들이 신기한 듯이 묻는다.
“당신, 무얼 하고 있는 거야?”
“나는 지금 글자를 발명했어!”
“그래? 글자를 발명했다고? 대단한 일을 했구나.”
…
잠시 뒤에,
“그런데 당신 때문에 우리가 문맹이 됐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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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교육, 본질과 현장의 접점 찾기」 보수교육 진행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 문해교육관계자 역량강화 통한 문해교육 질 향상 모색

http://www.kw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387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원장 직무대행 구종원, 이하 서평원)이 ‘문해교육, 본질과 현장의 접점 찾기’를 주제로 2024년 상반기 문해교육 관계자 보수교육을 개최했다. 서울특별시문해교육센터(팀장 최종성)가 마련한 이번 보수교육에는 관내 문해교육 관계자 및 교·강사 60여 명이 참석했다.

교육은 지난 4월27일(토) 오전 1시부터 5시까지 그레이프 라운지 을지로점(중구 청계천로 100) 세미나룸에서 1부와 2부로 나누어 진행됐다.

1부 「문해교육에 빙의되다」는 이희수 교수(중앙대학교)의 기조강연 ‘평생교육 원류로서의 문해교육’과 ‘평생교육 물줄기로서의 문해교육’으로 이뤄졌다.

4월27일 열린 ‘2024년 상반기 서울시 문해교육관계자 보수교육’에서 이희수 교수가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현장 맞춤형 그룹 네트워크 교육으로 꾸려진 2부 「문해교육에 빠져들다」는 정찬남 교장(한국여성생활연구원), 서화진 교감(푸른어머니학교), 이미애 센터장(YDP성인문해교육센터)이 각각 세션의 강좌를 맡았다.

△학습자 상담 및 중도 탈락 예방법 △문해교육 교재(교구) 구성 및 활용법 △문해교육 포트폴리오 구성 및 제작을 주제로 강의와 토의가 이어졌다.

4월27일 열린 ‘2024년 상반기 서울시 문해교육관계자 보수교육’에서 푸른어머니학교 서화진 교감이 세션2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마지막 3부는 ‘서울형 문해교육 콘텐츠 맛보기’ 순서로 진행됐다. 최지혜(지역평생교육사업팀) 담당이 술술 이야기 읽기 교재의 추가 배포 및 활용 계획, 신규 문해교육 콘텐츠 개발 계획을 안내했다.

이날 보수교육 참석자들에게는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기획한 △문해교육과 평생교육(이희수 著) △성인문해와 성인문해능력조사(허준 著) △성인문해학습자(이지혜 著) 등 문해교육개론서 3종 중 선택하는 1종 책자가 제공됐다.

4월27일 열린 ‘2024년 상반기 서울시 문해교육관계자 보수교육’에서 최지혜 담당이 신규 문해교육 콘텐츠 개발 계획을 안내하고 있다.


2024년 4월 21일 일요일

용산 도시산책

Part 1. 오염으로 바라본 용산 다크투어

지난 4월13일, 녹색연합 그린프로젝트팀이 진행한 용산미군기지 담벼락을 따라 걷는 다크투어에 동행했다. 첫 포스트는 이태원광장에 있는 지하수 집수정이다. 상단부를 높인 철제 구조물에 알록달록 그라피티 작업을 해놓았는데, 뒤로 돌아가보니 기름냄새가 풍겨나왔다. 겉으로 보아서는 이것이 인근의 미군기지에서 흘러나온 오염된 지하수를 모아놓는 시설이라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다.

녹사평역 1번출구에서 전쟁기념관으로 향하는 철조망 담장길을 “라일락 꽃향기 맡으며(이문세)” 걸었다. 미군정청 자문관으로 근무하던 엘윈 M. 미더(Elwin M. Meader)가 1948년 북한산 백운대에서 털개회나무 씨앗을 채집해 미국으로 돌아가 개량하였다. 그리곤 자문관 시절 자신의 사무보조원이었던 한국 여성의 성을 따 ‘미스킴 라일락(Miss Kim Lilac)’으로 이름 지었다. 구상나무처럼 우리나라 토종식물이 외국에서 교배되어 역수입된 안타까운 사례다.

메인포스트와 사우스포스트를 잇는 구름다리 밑을 지나 전쟁기념관으로 향한다. 한강로1가 삼각지파출소 옆 골목부터는 적산가옥이 수십 미터 이어져있다. 횡단보도를 건너 한진중공업 건물로 향하는 왼편 공사부지에서 또하나의 ‘킴(Kim)’을 확인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조선육군창고’로 조성한 곳에 2019년까지 캠프 킴(Camp Kim)이 자리했다. 주한미군을 지원하는 한국노무단(KSC)에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미군이 운용한 지하저장탱크에서 기름이 새 지하수를 타고 퍼졌다. 토양에서는 맹독성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이 검출된 바 있다. 그런데 정화작업은 서울시가, 정화비용은 중앙정부가 떠맡고 있다.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의 구속력 없는 관련 규정을 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이 평택의 캠프 험프리(Camp Humphrey)로 이전해 간 후 미군위문협회(USO) 건물을 2020년 12월까지 ‘용산공원 갤러리’로 운영했었다. 이제 땅값만 4조원인 이곳 한강로1가 1-1번지 금싸라기 터에 초고층 빌딩숲이 들어설 전망이다.

투어팀은 완공 시한을 넘겨 아직도 공사중인 남영동 대공분실을 확인하고 삼각지역으로 선회했다. 1939년 일제가 설치한 삼각지 로터리는 한강, 서울역, 이태원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배호의 히트곡 「돌아가는 삼각지」의 “삼각지 로터리를 헤매 도는 이 발길” 노랫말처럼 1967년 용산 방면이 추가되어 4방향의 타원형식 입체교차로 역할을 하다가 1994년 오히려 급증한 교통체증과 노후화로 철거되었다.

마무리 포스트는 2023년 5월4일 개방된 ‘용산어린이정원’이다. 이곳은 각자가 웹사이트에서 예약한 후 직접 방문해보길 권한다. 百聞不如一見. 직접 겪어봐야 한다. 왜군(임진왜란)과 청군(병자호란·임오군란)이 주둔했던 땅을 다시 일본군(청일전쟁·러일전쟁)이 장악하고 이어서 미군(해방·한국전쟁)이 들어와 차지했다. 용산의 중첩된 시·공간을 생각하매 가슴이 답답해온다.




Part 2. 미군기지와 도시산책

4월20일 어제는 아임스토리가 마련한 ‘저자와 함께 떠나는 용산 역사문화 산책길 투어’에 함께했다. 용산도시기억전시관 2층 세미나실에서 저자의 사전강의를 들은 후 아세아아파트 예정지(부영건설)부터 용산가족공원 태극기광장 북쪽까지 3㎞ 빗길을 걸었다.

일본제국주의가 조선지배와 대륙침략의 핵심 인프라로 건설한 용산역은 경의선(경성~신의주)과 경원선(경성~원산)의 출발지이자 경부선·경인선이 경유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용산역 주변에 일본군 사령부(1907), 통감부 철도관리국(1906), 철도관사, 철도병원, 철도학교 등이 설치된 이후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용산은 경성부의 일부로 편입하고 신흥도시로 변모했다. 원래의 용산을 밀어낸 신용산의 탄생이다.

공사장 높은 펜스가 늘어선 골목을 지나 용산세무소 마당에 섰다. 남쪽 뚝방선로 위로 이촌역을 향하는 경의중앙선 전동차가 마치 한 세기전 화륜거마냥 기묘한 인상으로 다가온다. 서빙고로 건너편 파크타워 아파트 106동 뒤편 벤치에서 10시 방향 1.2㎞ 전방까지 뻗은 서빙고근린공원 산책로를 조망할 수 있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 북면에서 미8군도로를 따라 좌우로 늘어선 사우스포스트와 메인포스트의 주요 건물과 멀리 남산서울타워까지 바라보았다.

「용산 미군기지와 도시산책」은 △용산기지 △한강대로 △남산자락 △독립의지 △시대전환 △마을부군 △서빙고로 등 7개 꼭지로 구성돼 있다. 김홍렬 저자는 ‘조선통신사 사행길’이 빠져있다고 말하는데… 개인적으로는 2018년 3월, 서울시 주무관 시절의 저자가 안내하는 팀에 합류하여 숭례문에서 이태원부군당까지 걸었었다. 그리고 2019년 6월에는 캠프 킴(Camp Kim) 자리의 ‘용산공원 갤러리’에서 대면했던 기억도 있다. 자칭 ‘용산김씨 시조’ 김홍렬 저자의 쉼 없는 열정과 다년간의 수고에 박수를 보낸다. 사진과 지도를 꼼꼼하게 체크하고 첫 투어를 마련해준 아임스토리 분들도 수고 많으셨다. 이번 신간이 대중에게 용산 공간을 바로 인식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용산 미군기지와 도시산책」 안쪽면에 ‘용산산책지도’가 인쇄돼 있다. 책 띠지가 이렇게나 유용하게 활용된다.

아임스토리 남정인 대표와 용산김씨 김홍렬 저자.

4월20일 오후, ‘저자와 함께 떠나는 용산 역사문화 산책길 투어’ 사전강의에서 김홍렬 저자가 자료사진을 설명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동편, 용산가족공원 내 태극기광장 북쪽에서 우중 단체촬영(사진=아임스토리 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