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rror Movie~ 닭 닭 보듯
2023년 9월 17일 일요일
2023년 9월 5일 화요일
간토학살과 박열-가네코 후미코의 반천황제 투쟁
지난 금요일(9월1일) 문경에서 열린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과 대역사건」 학술회의 일정에 동행했다. 주최 격인 박열의사기념사업회 소위 윗분들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이날로 100주기를 맞은 간토학살이 논의의 중요한 축임에도 행사에서는 학살희생자를 위한 묵념이나 애국가 제창이 식순에서 제외돼 의식있는 일반 참가자들의 반감과 항의를 불러왔다. 기념관에 전시된 자료에도 아나키즘을 ‘무정부주의’로 표기하고 있어 일반의 오해를 사고 대중에 대한 확장성을 스스로 막아서고 있다.
유토피아(utopia)의 u가 ‘없다’인 것처럼 아나키(anarchy)의 a 역시 ‘없다’는 뜻이다. 때문에 각각 ‘장소가 없다’, ‘지배가 없다’는 의미가 된다. 그래서 아나키즘은 왜곡된 번역 ‘무정부주의’가 아닌 진정한 자유와 평등의 연대와 공동체를 지향하는 ‘무권력주의’ ‘무강권주의’로 보아야 자연스럽다.
재해로 죽었는데도 ‘학살’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이상하다며 사과를 거부하는 日本정부나 세월호, 이태원, 오송, 내성천 등지의 일은 ‘사고’일 뿐이라며 책임을 부정하는 韩国정부나 피차일반 도긴개긴. 우리 시대의 불령한인(不逞韓人)으로 살아야 하는 걸까. 함께하며 바른 소리를 내어주신 모든 분께 고마운 마음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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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w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289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과 대역사건」 학술회의 열려
간토대학살과 박열-가네코 후미코의 반천황제 투쟁 짚어
박열의사기념사업회(이사장 박인원)는 1일(금), 간토학살 100주기를 맞아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과 대역사건」을 주제로 한·일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프로그램은 오전에 문경시 마성면의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 1903~1926) 여사 묘소를 참배하는 것으로 일정을 시작했다.
가네코 후미코는 남편 박열과 함께 불령사(不逞社)를 조직하여 일본 제국주의를 부정하고, 아나키즘(무강권주의) 사상을 전파하였다. 그러던 중 1923년 간토대지진 직후 체포되어 1924년 2월15일 ‘천황폭살’, 이른바 ‘대역사건’으로 기소되었다. 재판과정에서 가네코는 일제의 탄압정책을 비판하고 조선 독립운동을 옹호하였다. 1926년 사형선고를 받고 바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지만 1926년 7월23일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2018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수여되었다.
헌화를 마친 참가자들은 기념공원 내 박열의사기념관을 찾아 일제 사법부의 갖은 협박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은 박열-가네코 후미코 부부의 투쟁정신을 살펴보고 박열의사생가지를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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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1일(금) 오전,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과 대역사건」 학술회의에 참석한 일본인 6명(앞줄)이 가네코 후미코 묘소에서 참배하고 있다. |
9월1일(금) 오전,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과 대역사건」 학술회의에 참석한 일본인 6명(앞줄)이 가네코 후미코 묘소에서 참배하고 있다.
오후 1시30분부터 문경관광호텔 무궁화홀에서 열린 학술회의는 박인권 이사장의 개회사와 이용수 경북북부보훈지청장, 이종찬 광복회장(영상), 이문창 선생의 축사를 시작으로 총 3부로 나눠 이어졌다.
우성민 학예연구사의 사회로 진행된 주제발표 순서에는 한·일 양국에서 각각 2명의 발표자가 동시대에 일어난 ‘조선인 학살’과 박열-가네코 후미코의 ‘대역사건’ 간 관계를 조명했다.
첫 발표에 나선 성주현 교수(청암대학교)는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 언론에 비친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을 주제로 관동대지진 직후의 조선인 학살과 관련 재판, 진상규명에 대한 언론보도를 살폈다. 성 교수는 ‘조선인 폭동설’ 등의 유언비어 전파와 자경단의 학살 양상을 유추할 수 있는 보도 사례도 제시하였다.
이어진 발표에서 김명섭 교수(단국대학교)는 ‘1923년 간토 조선인대학살과 박열사건’을 고찰했다. 대지진으로 인한 공포와 혼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일본당국의 재일한인 학살과 검속 와중에 검거된 박열-가네코 후미코는 폭탄투척계획이 누설돼 대역죄를 적용받았으나, 이를 회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반천황제 투쟁을 벌여나갔음을 강조했다.
세 번째 주제발표에선 가메다 히로시(일본사회문학회)가 ‘1922년 시나노가와 조선인 학살사건과 박열-가네코 후미코. 일제에 대한 투쟁의 시작’에서 천황을 정점으로 한 폭력장치가 피지배민과 피지배지역을 억압했다고 지적하며, 박열-가네코 후미코의 삶은 지금도 계속되는 ‘편견과 차별’에 항거하는 생활양식으로 우뚝 서 있다고 밝혔다.
마지막 주제발표에 나선 구리하라 야스시(도호쿠예술공과대학)는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의 역사적 배경과 가네코 후미코의 사상’을 통해 한국병합(1910)과 러시아출병(1918)의 경험이 홉스적 세계관을 현실화하면서 학살의 배경을 형성했다고 진단했다. 이에 대해 가네코 후미코는 아나키즘과 니힐리즘, 센티멘탈리즘을 뿌리 삼아 다시 없는 ‘지금’을 사는 것으로 대항한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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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오후, 문경관광호텔 무궁화홀에서 열린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과 대역사건」 학술회의에 참석한 발표자와 토론자들. 왼쪽부터 이양희, 김창덕, 강정훈, 김병기, 성주현, 김명섭, 가메다 히로시, 구리하라 야스시氏 |
주제발표에 이어진 종합토론은 김병기 편찬위원장(대한독립투쟁총사)이 좌장을 맡아 진행하였고, 세 명의 패널이 차례로 토론에 나섰다.
먼저 강정훈 교수(경상국립대학교)가 1923년 조선인 학살 당시 유언비어가 생성·유포되어 선동·살육으로 이어지는 정황들을 확보·발굴할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으로 서두를 열었다. 이어서 김창덕 이사(국민문화연구소)가 박열 의사의 폭탄 반입 성공 여부를 질문했다. 마지막으로 이양희 교수(충남대학교)는 조선인학살의 역사적 배경 간 연계와 확장을 언급하면서 재향군인회 중심의 자경단에 대한 일본군의 영향을 질의했다.
이날 학술회의에는 국민문화연구소 회원, 한터역사문화연구소 회원, 일본인 연구자 등 60여 명이 함께했다. 박열의사기념관 우성민 학예연구사는 “이번 학술회의는 관동대지진 당시의 조선인학살과 박열-가네코 후미코 대역사건에 대해 한일 양국 시민이 서로 의견을 밝히고 공유하며 향후 교류 방안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컸다.”고 전했다.
2023년 8월 22일 화요일
런던의정서 위반
지난달 치른 성인문해 중학과정 사회(2학년 1학기) 기말시험에 교육과정에 따라 ‘국제환경협약’ 관련 문제를 출제했다. 공지한 대로 런던협약(1972년 체결)을 포함했다. 런던협약에 대한 1996년 개정의정서는 종전의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에 더하여 저준위 방사성 물질을 포함한 모든 방사성 폐기물의 해양투기 금지를 명시하여 강화했다.
결국, 일본이 다시 한번 파국의 범죄를 저지르기로 작정한 모양새다.
#日本人が地球の井戸に毒を入れた。 일본인이 지구의 우물에 독을 넣었다. The Japanese poisoned the earth's well. #Fukushima
2023년 8월 13일 일요일
제국의 비애
지난주에는 하계 창의체험 활동으로 대한제국의 흔적을 쫓아보았다. 경운궁은 월산대군의 사저로 시작하여, 환도한 선조의 시어소(정릉동행궁), 인목왕후의 유폐지(서궁), 인조의 즉위지(즉조당)를 거쳐 고종이 자주 독립국임을 대외에 선포하면서 제국의 정궁이 되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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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화문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중화문을 바라보며… |
단청 없는 2층집 석어당의 소박함과 다양한 동식물 문양으로 꾸며 놓은 정관헌의 이국적 풍광 사이로 야영지에 있어야 할 외국 스카우트 대원들이 지나다녔다. 덕홍전, 정관헌, 석조전의 오얏꽃문양을 확인하면서 조동탁의 「봉황수」 시구를 떠올리는데 망국의 설움이 전이되어 절로 한숨이 나온다. 광장 건너 Westin Josun호텔의 정원 조경물쯤으로 전락한 환구단 터를 걷다 보니 목은 선생이 부벽루에 올라 돌계단에 기대어 휘파람 불던 심정을 헤아릴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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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6년 석조전에서 열렸던 미소공동위원회와 남북분단의 고착화를 되새겨보았다. |
이러매도 중립외교, 국권침탈, 자주독립 주제어 학습에 열중했다. 제국의 법궁인 경운궁은 1904년의 대화재와 일제의 의도적인 훼철로 뭔가 많이 허전하고 텅 빈 느낌이 든다. 태풍 카눈이 몰고 온 장대비 속에서도 공부에 대한 열정을 실천한 고령의 어머님들이 참 고맙다. 이번주 창체수업엔 명동성당과 명동일대를 답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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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무황제는 1899년 환구단의 북쪽에 3층 팔각정 황궁우(皇穹宇)를 건립하였다. |
2023년 8월 8일 화요일
하는 말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말은 크고 높았다. …말은 기름진 뱀과 같았고, 흐린 날의 산맥과 같았다. …말은…똬리 틈새로 대가리를 치켜들어 혀를 내밀었다. 혀(=말)들은 맹렬한 불꽃으로 편전의 밤을 밝혔다. …말들은…보이지 않는 산맥으로 치솟아 시야를 가로막고 출렁거렸다.
오랜만에 「남한산성」을 펼쳐 보았다. 「칼의 노래」 「현의 노래」를 잇는 역사소설의 첫 단락 처음 6개 문장의 주어가 ‘말’이다. 가히 「말의 노래」라 할 만하다. 작가는 ‘하는 말’을 통해 “말로써 정의를 다툴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고통 받는 자들의 편이다.”라고 적었다. “말들이 창궐해서 주린 성에 넘”친다.
2023년 8월 1일 화요일
한 개의 행복을 찾기 위한 고독한 산책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8월1일… 구보(仇甫)의 날이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에 나오는 레오폴드 블룸이 1904년 6월16일 하루동안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 시내를 거닐었던 블룸스 데이(Bloom’s Day)가 원형이다. 30년 뒤인 1934년 8월1일 유학파 고학력 실업자 구보는 식민지 조선의 수도 경성을 배회하며 당대의 세태를 포착했다.
지난 주말… 이른바 도시 산책자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속 종로네거리와 청계천변, 황금정, 남대문통, 장곡천길, 태평통을 답사하며 관찰하고 기록하고 촬영하는 고현학(考現學)을 수행했다. 용산과 이태원, 양평, 오송, 서초, 평택을 돌아보고 탐구하고 기억하는 것도 우리 시대의 모더놀로지(modernology)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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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의 행복을 찾기 위한 고독한 산책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② 박태원 고현학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http://www.jongno-mn.com/news/articleView.html?idxno=3333
“마치 사우론(Sauron)의 거대한 눈이 떠있는 탑처럼 보인다.” 한 참가자의 말이다. 듣고 보니 정면에서 바라보는 종로타워는 J.R.R. 톨킨이 「반지의 제왕」에서 묘사한 것처럼 고층부의 스카이라운지를 세 개의 탑이 떠받들고 있는 형상이다.
1999년 종로타워가 들어선 자리는 일제강점기 화신백화점이 영업하던 곳이다. 1931년 화신상회의 경영권을 장악한 유통왕 박흥식은 20평짜리 ‘문화주택’을 경품으로 거는 등 파격적인 마케팅을 선보였다. 1932년 바로 옆에 들어선 동아백화점을 인수합병하여 동관으로 부르고 기존 화신 건물은 서관으로 삼아 육교로 연결했다. 초창기부터 두 개의 탑이었던 셈이다.
구보는 화신백화점 승강기 앞에서 너댓 살 아이를 데리고 백화점식당으로 올라가는 젊은 내외를 바라보며 부러움을 느끼고 행복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발 가는 대로 전찻길 안전지대 위에서 머엉하니 서있다가 동대문행 전차에 뛰어오른다. 그러나 89년 전 구보의 행적을 쫓는 16인의 추적자는 동선을 변경해 SC제일은행 본점으로 향했다. 악명 높은 경성종로경찰서가 있던 곳이다. 서편의 주상복합건물 그랑서울이 건축된 자리에 제비다방이 있었다. 박태원은 제비가 조선광무소 건물 1층에 있다는 기록을 남겼다.
1929년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이상은 총독부 건축과 기사로 들어갔다. 각혈을 다스리기 위해 황해도 배천온천으로 요양하러 갔다가 운명의 여인 금홍을 만났다. 이듬해인 1933년 이상은 백부의 유산으로 제비다방을 개업하고 금홍을 불러올려 마담으로 앉히고 동거를 시작했다. 이상은 거리쪽 벽면을 전면 유리로 꾸미고 실내 공간은 흰색으로 칠했다. ‘도스토옙스키의 방’이라 부르던 골방에 구인회 멤버들이 모여 예술과 문학을 논했다. 1934년 이상은 조선중앙일보에 난해시 「오감도·烏瞰圖」를 연재하면서 비슷한 시기 같은 신문에 연재된 박태원 중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 ‘하융’이란 이름으로 삽화를 그렸다.
녹두장군이 갇혔던 전옥서 터를 돌아 광교를 건너 인제서야 소설의 출발지에 다다른다. 한국관광공사 서울센터 앞쪽 다옥정 7번지는 부친(박용환)의 공애당약방과 숙부(박용남)의 공애의원이 좌우에 자리한 2층 구조의 한옥상가로 작가 박태원의 실제 집이자 소설 속 산책자 구보의 집이다. 1934년 무렵에는 박태원을 비롯해 어머니와 가업을 이은 형(박진원)·형수, 동생(박문원), 안잠자기, 약방아이 등 적어도 10명가량이 기거했다. 복개와 도로확장 이전에는 남쪽천변의 약방 사환 창수와 북쪽천변의 이발소 아이 재봉이가 청계천을 사이에 두고 얘기를 나눌 정도로 천폭이 좁았다.
어려서부터 시력과 청력이 좋지 않은 ‘몹쓸 체력’의 박태원은 어깨 너머로 습득한 의학지식을 발휘해 급우·선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래서 당시 경성의전 해부학교실 구보(久保) 교수의 이름을 따와 박태원을 호명하는 구보(仇甫)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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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23일(일) 오전, 세찬 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2023년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 참가자들이 청계천 광교 남쪽 옛 다옥정 7번지 앞에서 구보씨의 흔적을 쫓고 있다. |
1934년 8월1일 수요일 오정, “일즉어니 들어오너라”는 어머니의 당부를 뒤로 하고 다옥정 집을 나서는 스물여섯의 미혼 룸펜(Lumpen)1) 구보의 차림새를 상상해 본다. 앞머리를 일자로 자른 갓빠머리에 동그란 안경을 썼다. 노타이셔츠와 신사바지에 구두를 신고 단장과 대학노트를 들었다. 시계를 차거나 모자를 쓰거나 우산을 챙기지는 않았다. 그러고는 격렬한 두통을 느끼며 ‘아무렇게나 내어놓았던 바른발이 공교롭게도 왼편으로 쏠렸기 때문에’ 아무런 사무도 갖지 않은 종로네거리로 향하게 된다.
우리는 구보가 동대문에서 한강행 전차를 갈아타고 지나갔을 남대문 1정목·2정목을 걷는다. 노구치 시타가후가 건축한 반도호텔(1938·롯데호텔), 고리대출로 배를 불린 민간총독부 조선식산은행(1918·롯데백화점 본점), 조지야백화점(롯데영플라자) 등을 거쳐 조선은행(1912·화폐박물관) 앞까지 빗길을 주유했다.
한국은행 앞 교차로는 당시 조선은행, 경성우편국(1915·서울중앙우체국), 미쓰코시 경성지점(1930·신세계백화점)이 트라이앵글을 이루며 ‘센긴마에 히로바(鮮銀前 廣場)’로 불렸다. 여기서부터 황금정에 이르는 좌우 지역은 ‘경성의 월스트리트’로 식민지 조선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이자 제국주의 경제침략의 상징이었다. 그렇기에 광복 후 이충무공의 동상은 광화문이 아니라 이곳에 세웠어야 했다.
이토 히로부미의 머릿돌 글씨 ‘定礎(정초)’를 확인하고 11시 방향으로 경성치의전 터, 경성부립도서관 터를 지나며 장곡천길(소공로)을 따라 오른다. 구보가 조선일보 사회부에서 근무하는 친구 김기림에게 전화하려고 들어간 양복점(본전양복점)이 있었음 직한 곳 인근에 제이제이안토니(JJ.ANTONY) 소공점이 보인다.
세종대로18길 건너 북쪽에는 구보가 꼽추화가 구본웅을 만나려고 들른 골동점(우고당) 터다. 구본웅의 나이 어린 이모 변동림은 구본웅의 친구 이상과 짧은 결혼생활을 했다.
이곳에서 더플라자호텔 뒤편길을 돌아나오면 스타벅스(소공동점) 맞은편에 낙랑파라 자리가 있다. 1931년 도쿄 유학파 이순석 화가가 고대국가 ‘낙랑’에 응접실을 뜻하는 ‘파라’(parlour의 일본식 표기)를 합성해 카페 이름을 지었다. 소설에서 구보는 세 번에 걸쳐 낙랑파라에 출입한다. ‘일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 틈에 끼어 가배차를 마시고 담배를 태우며 「율리시즈」를 논하는 김기림의 탁설을 듣는다.
우리는 지하도를 이용하여 건너편 환구단 터에 올랐다. 일제가 일한병합 후 환구단을 허물고 철도국 직영의 경성철도호텔(1914)을 짓는 바람에 지금은 환구단 정문과 3개의 석고, 황궁우와 황궁우 정문·협문만 남아 있다. 호텔은 이승만 때 조선호텔로 이름이 바뀌고, 2021년에는 영문 철자도 CHOSUN에서 JOSUN으로 변경되었다.
환구단 터를 내려와 89년 전 구보가 그랬던 것처럼 경성부청(서울도서관) 앞에 서서 태평통 건너 대한문을 바라보았다. 역시나 500년 왕조의 찬란한 위엄은 쉽사리 찾아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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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 2차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참가자들이 환구단 황궁우 앞에서 고현촬영을 하고 있다. |
경성토박이 유학파 엘리트 구보는 1934년 8월1일 낮 12시부터 8월2일 새벽 2시까지 14시간 동안 도보 9.6㎞, 전차 5.7㎞를 이동하며 행복과 기쁨을 찾아 경성의 이곳저곳을 배회했다. 소설 말미에서 구보는 생활을 가지고 소설을 쓰고 결혼도 할 것을 다짐한다. 실제로 박태원은 연재를 마친 직후 보통학교 훈도 김정애와 다옥정 7번지 본가에서 혼례(1934.10.27)를 치르고, 이후 수준급 모더니즘 작품도 창작했다. 우리는 따라가는 이의 시선으로 동선을 변형하여 2시간여 동안 3㎞를 거닐며 우중 모데르놀로지2)를 수행했다.
1930년대 경성을 이해하기 위해 1936년작 「천변풍경」(박태원), 「날개」(이상)를 읽어보고 그 소설 속 배경을 따라 걸어도 좋을 것이다. 2023년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 3차시는 9월10일, 창신동에서 박수근과 백남준을 고현(考現)한다.
1)룸펜(Lumpen) : 우리나라에서는 일제강점기 때 많이 배웠음에도 그 지식을 쓸 데가 없는 슬픈 지식인들이 스스로를 비하하는 의미로 쓰던 말이다.
2)모데르놀로지(modernology, 고현학·考現學) : 현대의 풍속과 세태를 조사·기록하는 학문을 가리킨다. 이 방법론을 문학 쪽에 적용한 것이 세태소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