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가까이 수험생분들과 함께 검정고시 대비 국어와 사탐 과목 기출문제를 들입다 풀어제낀지라 믹스커피만 봐도 이마누엘 칸트(1724~1804)가 떠오른다.
“네 의지의 격률이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되도록 하라.”
격률(格率)=준칙(準則)=맥심(maxim)… 동서식품이 1980년 발매 당시 Maxim의 철학적 의미를 알고서 브랜드 네이밍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한 작명이다.
보편적 도덕원리를 상실한 채 단지 수단만 추구하는 상아탑… 국민대, 동양대, 부산대, 고려대 교수들은 앞으로 맥심커피 마시지 마라.
2022년 4월 8일 금요일
격률=준칙=맥심
2022년 4월 7일 목요일
외람된 K-신문의 위엄
신문의 날은 1957년에 우리나라 첫 민간신문인 독닙신문 창간(1896년 4월7일) 61주년을 기념하면서 제정되었다. 독닙신문 창간 126주년과 66회 신문의 날을 맞는 자칭 正論紙의 체취는 퀴퀴하기만 하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사회 惡의 견고한 한 축은 朝中東이다. 이들 금언독재는 친일독재, 군부독재, 금권독재와 수시로 결합하며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강화해왔고 이제는 검찰독재를 미화하며 밀착하고 있다. 한겨레, 경향, 서울, JTBC 역시 구린내를 풍기는 건 매한가지다.
“朝中東 등은 원가 800원에 신문을 찍어서 80원에 폐지로 수출하면서, 그 적자분을 정부의 광고비(국민세금)로 충당한다. 이 행태에 동의할 납세자는 없(2021.5.9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어야 했다. 그렇게도 아름다운 利權을 사수해내려는 외람이들의 절박함이 민주주의와 정의로운 사회를 이어가고자 하는 시민들의 간절함을 꺾은 것이 이번 20대 대선의 성적표다. 찍자마자 전 세계로 수출(?)되는 K-뉴스페이퍼의 위엄은 “부끄러운” 한국 언론의 자화상이다.
![]() |
| 우리는 언제든 인터넷몰에서 필요한 만큼 수월하게 헐값으로 새 신문을 구매할 수 있다. |
2022년 4월 5일 화요일
신라 황룡사, 익산 미륵사 복원한다는데…
경주 황룡사는 신라시대의 대표 사찰이다. 24대 진흥왕 14년(553), 월성 동쪽의 늪지를 메우고 새로 왕궁을 짓는 도중 황룡(黃龍)이 나타나 하늘로 올라가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후 궁전 대신 왕즉불(王卽佛) 사상에 따라 용보다 초월적인 존재인 부처님을 모시는 방대한 절로 바꿔 세운 것이 황룡사(皇龍寺)다. 1탑 3금당 가람의 중심인 정면 9칸 측면 4칸의 (중앙)금당은 화가 솔거가 그린 진짜 같은 소나무 벽화에 새들이 날아와 부딪혀 죽었다는 설화가 전해온다. 경내에 역대급 높이(60~80m)를 자랑하는 9층 목탑이 있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27대 선덕여왕이 “여왕이 통치하므로 위엄이 없어서 타국이 침략한다.”라는 자장율사가 전하는 신인의 말에 따라 백제의 장인 아비지(阿非知)를 초빙해 완공한 황룡사 9층 목탑은 황룡사 장륙삼존불상(丈六三尊佛像), 진평왕 천사옥대(天賜玉帶)와 함께 신라의 삼보(三寶)로 꼽힌다. 장대한 목조건축물이었기에 낙뢰와 강풍의 피해가 발생했고 그때마다 중수를 반복했다. 몽골군의 고려 3차 침략(1235~1239) 시기인 23대 고종 25년(1238)에 전소되었다. 절터만 남은 황룡사지는 1963년에 사적 제6호로 지정되었다.
익산 미륵사는 백제 최대 규모의 호국사찰이다. 30대 무왕이 용화산(龍華山) 아래에 거둥했을 때 큰 연못 속에서 미륵삼존불(彌勒三尊佛)이 출현하자 왕비가 이곳에 절을 세우기를 소원하여 못을 메우고 미륵삼회전(會殿), 탑(塔), 낭무(회랑)의 건물을 건립하고 미륵사(彌勒寺)라 이름했다(639). 서(西)탑에서 나온 사리봉영기에 따르면 설화의 왕비는 진평왕의 3녀 선화공주가 아니라 좌평 사택적덕의 딸 사택氏다.
미륵삼상은 석가모니가 열반하고 56억7천만 년 뒤 사바세계에 현신한 미륵불이 용화수(龍華樹) 나무 아래에서 3번 설법하여 미래의 중생을 모두 제도한다는 용화삼회설에 입각한 것이다. 절의 배치는 1탑 1금당의 형태이면서 서-중-동으로 배치하여 ‘3탑 3금당의 3원 병렬식 가람’의 구조다. 조선 중기인 17세기경 승려가 없는 절이 된 후로 서탑(국보 제11호)과 당간지주(보물 제236호) 등 일부의 석물만 절터(사적 제150호)에 남았다. 현존 최고, 최대(14.24m)인 서탑은 1915년 일제가 붕괴를 막는다고 콘크리트를 발랐는데, 2001년부터 시작한 보수공사 끝에 6층 형태(9층 추정)로 2019년 복원되었다.
절은 없고 절터만 남았기에 황룡사址, 미륵사址와 같이 址(터 지)자를 쓴다. 절은 황룡사가 앞서지만, 목탑은 미륵사가 먼저일 가능성이 크다. 최근 찰스인수위가 문화재청의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황룡사와 미륵사의 복원 공약을 검토했다는 소식이다. 60m 이상으로 추정되는 황룡사 목탑, 미륵사 (중앙)목탑은 공히 낙뢰 등에 의한 화재와 강풍, 지진 대비 설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두 사찰 전역에 대한 철저한 고증이 기본이다.
아울러 문화재 복원에 특정인의 이해(利害)를 위한 유사종교 행위나 방법(謗法), 기문둔갑이 개입하는 걸 배척한다. 모두를 위한 대역사(大役事)가 생소 가죽 벗겨내기나 마른 대구포 퍼포먼스의 매크로 버전으로 흑화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미 후보 시절부터 장왕신통(掌王, 손바닥왕)이나 백호신공(白毫, 흰털)을 시전한 바 있기에 하는 말이다. 설마 굥본부장 일가가 1천1백년 전 태봉국의 궁왕(弓王)마냥 스스로를 용족이나 미륵불의 화신으로 여기는 건 아닐 터이다.
2022년 4월 3일 일요일
너븐숭이 옴탕밭의 유예된 죽음
「순이삼촌」은 1949년 1월16일(48년 음력 섣달 열여드레)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너븐숭이 옴탕밭(옴팡팥)에서 남녀노소 600여 명의 주민이 ‘도피자 가족’ 또는 ‘입산자 가족’이라는 죄목으로 군인들에게 학살된 ‘북촌리 사건’을 주요 배경으로 작가의 체험을 섞어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사실주의 기법의 중편 액자소설이다. 1949년 겨울과 30년이 지난 1978년 현재(소설上)를 교차하면서 제주 4·3사건의 참상에 얽힌 민중의 수난사를 조명한다.
작가 현기영(81)은 서슬 퍼런 유신 시절인 1978년, 계간 「창작과비평」 가을호에 군대의 대양민 학살의 현장을 생생하게 묘사하여 그 참혹상을 고발함과 동시에, 이 학살의 와중에 극적으로 생존한 순이 삼촌이 평생을 환청과 신경쇠약에 시달리면서 황폐해지고 결국 자살(향년 56세)로 내몰리게 되는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4·3사건의 여파가 지금도 제주 사람들에게 어떠한 트라우마로 작용하고 있는지를 그리고 있다. 짓밟히면서도 왜 짓밟히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아픔을 작가가 대신 아파하며 울분의 목소리로 항변해 준다.
소설에서 마을 사람들은 밤에는 폭도(공비)들에게 “입산하지 않는 자는 반동”이라며 대창에 찔려 죽고, 낮에는 “약탈당하지 않은 집은 좌익 동조자”라고 취조를 당했다. 이런 좌우 이데올로기의 흑백 논리 속에 마을 소각이라는 참상이 놓여 있다. 「순이삼촌」은 제주 4·3사건의 진실을 폭로한 최초의 기록이라는 의의에도 불구하고 표면적으로는 무고한 양민을 죽음으로 몰고 간 학살의 원인을 섬사람과 뭍사람 간의 감정·지역 대립으로 규명하는 듯한 설정이 한계점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 죽음은 한 달 전의 죽음이 아니라 이미 30년 전의 해묵은 죽음이었다. 당신(순이삼촌)은 그때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다만 30년 전 그 옴팡밭에서 구식 총구에서 나간 총알이 30년의 우여곡절한 유예를 보내고 오늘에야 당신의 가슴 한복판을 꿰뚫었을 뿐이었다.”는 상수(1인칭 관찰자)의 인식은 소설의 비극성을 극대화한다.
한편, 삼촌(三寸) 호칭은 일반적으로 남성을 지칭하기에 순이(順伊)삼촌을 남성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소설의 해당 인물은 여성이다. “고향(제주)에서는 촌수 따지기 어려운 먼 친척 어른을 남녀 구별 없이 흔히 삼촌이라 불러 가까이 지내는 풍습이 있다.”고 작품에서 설명하고 있다.
2022년 4월 2일 토요일
부자의 소망은 더 큰 부자가 되는 것…
故 채현국(1935.3.16~2021.4.2) 양산 효암학원 이사장. 잘 몰랐던 옹인데, 1년이 지난 오늘 보니 참으로 맞는 얘기를 하셨네.
“아비들도 처음부터 썩지는 않았다. 봐주지 마라. 노인들이 저 모양이라는 걸 잘 봐두어라. 너희들이 저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까딱하면 모두 저 꼴 되니 (노인세대를) 봐주면 안 된다.”
“권력하고 돈이란 게 다 마약이라. 지식도 마찬가지고. 지식이 많으면 돈하고 권력을 만들어 내니까… 지식을 가지면 ‘잘못된 옳은 소리’를 하기가 쉽다. 사람들은 ‘잘못 알고 있는 것’만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하는데 ‘확실하게 아는 것’도 고정관념이다. 세상에 ‘정답’이란 건 없다. 한 가지 문제에는 무수한 ‘해답’이 있을 뿐, 평생 그 해답을 찾기도 힘든데, 나만 옳고 나머지는 다 틀린 ‘정답’이라니…. 이건 군사독재가 만든 악습이다. 박정희 이전엔 ‘정답’이란 말을 안 썼다. 모든 ‘옳다’는 소리에는 반드시 잘못이 있다. 햇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듯이, 옳은 소리에는 반드시 오류가 있는 법이다.”
“사업을 해보니까… 돈 버는 게 정말 위험한 일이더라.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돈 쓰는 재미’보다 몇천 배 강한 게 ‘돈 버는 재미’다. 돈 버는 일을 하다 보면 어떻게 하면 돈이 더 벌릴지 자꾸 보인다. 그 매력이 어찌나 강한지, 아무도 거기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어떤 이유로든 사업을 하게 되면 자꾸 끌려드는 거지. 정의고 나발이고, 삶의 목적도 다 부수적이 된다. 중독이라고 하면, 나쁜 거라는 의식이라도 있지. 이건 중독도 아니고 그냥 ‘신앙’이 된다. 돈 버는 게 신앙이 되고 권력이, 명예가 신앙이 된다.”(2014.1.3. 한겨레 이진순의 열림)
“돈이란…다른 존재하고는 좀 달라요. 밥은 한 그릇 먹으면 두 그릇째는 영 맛이 없어요. 잘 못 먹고 깨작깨작해요. 더구나 세 그릇째 되면 더하겠죠. 그런데 돈은 하나 덩어리에서 두 덩어리가 되고 두 덩어리가 세 덩어리 되면 점점 더 재미있어요. 대단한 마약이에요. 권력도 그럴 겁니다. 돈하고 권력이 대단히 닮아 있는데요. 이것들은 암만 많아도 물리지를 않아요. 많을수록 더 매력이 있고 더 마력이 생깁니다. 돈은…필요할 뿐이지 그게 좋은 것일 수는 없어요. 왜? 내가 가지면 남은 못 갖는 성질이라서 남과 함께하지 못해. 내가 가지면 남은 없어. 그런 성질을 어떻게든지 함께 공유로 가야지 이걸 혼자 벌기 시작한 게 자본주의 아닙니까? 그 경쟁에 이기는 거고 그 교육을 하고 있고. 똑똑해져라, 똑똑해져라, 공부 잘해라 하는 부모님의 말씀이 ‘남한테 나 찍어누르고 너 다 가져라’ 소리거든. 권력이나 돈이나 똑같지.”(2019.1.4. CBS 김현정의 뉴스쇼)
2022년 4월 1일 금요일
지금은 곤란하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국가총동원법(國家總動員法, National Mobilization Law)은 1938년 4월1일에 공포하고 5월5일부터 시행한 일본제국의 전시통제법이다. 1937년 7월 중일전쟁을 도발한 일제가 제국을 전시 총동원 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법제적 뒷받침으로 제정한 이 법은 일제의 식민지였던 조선(5월10일), 대만, 만주국에도 적용되었다.
국가총동원법 제1조에서 “국가총동원이란 전시(전시에 준할 경우도 포함)에 국방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국가의 전력을 가장 유효하게 발휘하도록 인적 및 물적 자원을 운용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밝혔듯이 본토와 식민지에서 모든 물자·산업·인원·단체·근로조건·생산·유통구조·출판·문화·교육에 이르기까지 통제·징발·징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제4조에서 “정부는 전시에 국가총동원상 필요할 때는 칙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제국신민을 징용하여 총동원 업무에 종사하게 할 수 있다.”라고 하여 인력수탈과 강제동원의 근거를 마련했다. 1938년 총독부의 종용 하에 동아일보 김성수, 조선일보 방응모, 이화여전의 김활란(아마기 가츠) 등이 1938년 7월7일 결성한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은 1939년 7월에 공포된 국민징용령에 맞춰 조선인 강제징용과 위안부 모집 등에 앞장섰다. 이렇게 식민지 조선은 일제의 병참기지가 되고, 황국신민의 일원으로 강제징용, 징병, 강제연행 위안부 등의 인적 수탈을 당하면서 본격적으로 민족말살과 전시체제의 수렁에 빠져들게 된다.
유사시 일본군을 한반도에 들일 수도 있다(2022.2.25 중앙선관위 주관 2차 대선 후보 TV 토론)는 역사인식에도 투표자 다수가 굥본부장에 표를 줘버렸다.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 우리는 우리의 일을 수행할 테지만 이래저래 앞으로의 5년이 소름 끼친다.
![]() |
| [위]故 김순덕(1921∼2004) 할머니 그림 「끌겨감」. [아래]강제징용(强制徵用)은 강제노역(Forced labour)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