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15일 수요일

의리사탕

발렌타인데이(Saint Valentine’s Day)는 나름대로 역사와 유래가 있다. 3세기 후반 로마의 클로디우스(Clodius) 황제가 징집을 위해 젊은이들의 결혼을 금지했을 때, 인테람나의 주교였던 발렌티노(Valentine)가 몰래 찾아오는 선남선녀들의 혼인성사를 집전해 주었다. 진노한 황제는 발렌티노를 잡아들였고, 그의 인품에 감명 받아 개종을 시켜 살려주려고 하였으나 발렌티노는 가톨릭을 포기하지 않고 결국 돌팔매를 당하고 순교하였다는 전승이 있다. 초콜릿을 주고받는 관습은 19세기 영국에서 시작되었고, 1936년에 일본 고베의 모로조프 제과에서 연인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로 광고하였으며, 1960년 모리나가 제과가 마케팅으로 성공하였다.
반면 발렌타인데이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한 일본 전국사탕과자공업협동조합(全國飴菓子工業協同組合)이 매상을 올리고 재고를 처분하기 위한 상업적 목적으로 1980년에 시작한 기념일이 화이트데이(white day)이다.


어제는 이른바 의리사탕 성격으로 아이들에게 롤리팝아이스 캔디 4종을 나눠주었다. 롯데제과에서 생산한 죠스바, 스크류바, 수박바, 더블비얀코 아이스크림을 축소한 사이즈에 동일한 맛이 나는 사탕을 얻고 좋아하는 녀석들을 보니 더불어 흐뭇해진다. 의리 초콜릿이니 뭐니 하는 스트레스도 다 날아간다. 이미 행복산업에 익숙해진지 오래이다.

2017년 3월 12일 일요일

압구정동, 청담동 역사문화트레킹

치맥과 함께 불같은 탄금을 보내고 난 어제 아침, 속은 쓰렸지만 가벼운 발걸음으로 압구정역으로 향했다. 명례방협동조합의 일곱 번째 야행을 겸하였기에 참가 인원이 열네 명으로 늘었다. 혜금 조합원님이 정성껏 부쳐온 김치전과 따뜻한 커피로 속을 달래면서 스물여섯 번째 역사문화트레킹을 시작했다. 멕시코의 한 시민단체가 만든 부패 투어(Corruptour)를 벤치마킹하여 최순실 관련 부패 명소를 돌아보기 위함이니 뷔페 투어(Buffet tour)가 아니다.
압구정역 1번출구를 뒤로 돌아 압구정로29길로 들어서면 왼편에 하얀색 교회건물이 보인다. 한때 최순실이 출석했던 것으로 보도된 예장 압구정교회는 여타의 강남 대형 교회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로 보인다. 1970년 창립되어 이듬해 합동에서 고신총회로 소속이 바뀌었다고 한다. 예배에 참석하면서 최순실은 정재계의 주요 인사들과 안면을 트려는 시도를 했을지도 모른다. 최순실의 기도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관련기사1 : http://www.sedaily.com/NewsView/1L3VMM7682
관련기사2 :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06916

발레리 줄레조는 <아파트 공화국>에서 주로 노동자를 위한 국민주택으로 건축된 서구의 아파트와 달리 한국의 아파트는 독재정권과 재벌 간 정경유착의 압축적 표상이라고 썼다. 우리나라 아파트의 효시는 1961년 마포구 도화동에 건설된 마포아파트라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한강 조망권이 좋은 영등포와 강남 일대에 성냥갑 형태의 아파트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특히 강남 한강변의 아파트는 전통적인 풍수와는 반대로 배수임산(背水臨山)의 지형에 건축되었다. 옛 한양이 청계천을 축으로 북촌과 남촌으로 나뉜 것처럼, 강남지역도 테헤란로를 기준으로 테북과 테남으로 구분된다. 압구정동은 테북의 대표 동네이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그 처가 식구들이 압구정 현대아파트에 몰려살고 있다는 것은 여러 차례 보도된 내용인데, 압구정교회 건너편에 자리한 6차 80동 가운데층 60평대의 시세는 34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국회청문회나 특검조사에서 우병우는 최순실을 모른다고 일관했고, 현재까지는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 없다.
관련기사3 : http://superich.heraldcorp.com/superich/view.php?ud=20161110000003&sec=01-74-02&jeh=0&pos=
관련기사4 : http://www.focus.kr/view.php?key=2016111000175508056

71동 앞 SC제일은행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20동과 201동 사이의 논현로190길에 위치한 여성전용 사우나 앞까지 가봤다. 최순실은 소설이라며 부인하고 있지만 이른바 팔선녀로 불리는 유력 여성인사들과의 사교모임을 막후에서 주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팔선녀의 면면이 궁금하다. 아마도 최순실이 양소유 역할이었나 보다.
관련기사5 : 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0/27/2016102790187.html
관련기사6 : http://www.kgdm.co.kr/news/articleView.html?idxno=456237


압구정 현대아파트 1단지 11동 뒷편에는 수양대군의 장자방 압구 한명회(1415~1487)가 건립한 압구정(狎鷗亭)이 있었다고 한다. 절경으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파주 임진강에는 반구정(伴鷗亭)이 있다. 세종 대의 명재상 방촌 황희(1363~1452)가 영의정을 사임하고 87세에 내려가 죽을 때까지 3년간 갈매기를 벗삼아 노년을 보낸 곳이다. 똑같은 갈매기(鷗)인데 황희는 짝(伴)을 삼아 반겼고, 한명회는 길들여(狎) 가깝게 지냈다는 차이점이 있다. 옥수역은 강북, 압구정역은 동호대교 건너편 남쪽 강남이다. 참고로 7호선에는 서거정(1420~1488)과 관련된 사가정(四佳亭)역이 있다.

논현로190길을 따라 51동 앞에서 우측으로 돌면 압구정로 33길이다. 압구정초등학교를 지나고 압구정파출소 앞에서 좌회전하여 압구정고등학교, 압구정중학교까지 걸은 후 대각선 방향으로 이동했다. 성수대교남단교차로에서 횡단보도 2개를 건너는 지점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정유라는 이화여대 1학년이던 2015년 평창 땅을 담보로 KEB하나은행(당시 외환은행) 압구정중앙지점에서 외국거주자 신분으로 보증신용장을 발급받아 KEB하나은행 독일법인에서 38만5000유로(약 4억8000만원)를 0.8%의 저금리로 대출받았다. 하나은행이 대출규정을 위반하는 엉터리 심사로 정유라의 돈 세탁을 도왔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당시 독일법인장이었던 이상화는 글로벌영업2본부장으로 승진했고, 이후 유재경을 미얀마 대사로 최순실에게 추천했다. 넘사벽인 대출문턱으로 애가 타는 서민들만 곤욕이다.
관련기사7 : http://biz.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1701031603001&code=920100
관련기사8 : http://www.sisapress.com/journal/articleb/159945

하나은행과 우리은행 사이의 언주로174길은 이른바 최순실 나와바리라고 할 수 있다. 언론에서 정윤회와 십상시의 회합 장소로 지목됐던 중식당이 JS가든 압구정점이다.
관련기사9 :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4&no=1502699

1985년 신사동의 한 건물을 임차해 종합학원을 운영하다가 32살이던 1988년경 학원 앞 부지 107평(353㎡)을 취득하여 초이유치원을 열었다는 게 최순실의 주장이다. ‘최’를 해자하면 ‘초이’가 된다. 몬테소리 교육으로 유명했다던 유치원 건물은 현재 동부저축은행 압구정지점이다. 2008년 초 동부 측에 85억원에 판 것으로 보도되었다.
관련기사10 : http://news.joins.com/article/21128511
관련기사11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1039050&code=61121111&cp=du


최순실은 1988년에 신사동 토지를 매입한 후 2003년에 미승빌딩을 신축했다. 지하 2층, 지상 7층의 미승빌딩은 6~7층이 복층형 펜트하우스로 되어있고, 월 임대수익 7200만원이라고 한다. 시세는 200억원을 훨씬 상회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2016년 4월 250억원에 급매로 내놨지만, 팔리지 않아 현재는 220억 정도로 내린 상황이라고 한다.
관련기사12 :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7010718335021875
관련기사13 :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6/12/25/20161225001562.html?OutUrl=daum


스타벅스를 끼고 왼편으로 돌아나가면 압구정로이다. 신사동의 KB국민은행 압구정동지점 건물에는 최순실의 단골 마사지센터로 알려진 숍이 있다. 최순실의 소개로 K스포츠재단의 2대 이사장을 지낸 정동춘 씨가 운영하던 CRC운동기능회복센터가 그곳이다. 정동춘은 국회청문회에서 자기는 마사지사 출신이 아니라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고 반탄집회에 나와서도 억울함을 드러낸 바 있다. K스포츠재단은 대기업들로부터 수백억 원을 출연받고 신청 하루 만에 초고속으로 허가증을 발급받는 괴력을 보여주었다.
관련기사14 : http://www.seoultopnews.kr/?r=home&m=news&mod=view&uid=7095
관련기사15 :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7020713140808974

압구정로를 건너 압구정로데오역 2번출구와 갤러리아백화점 이스트점을 지나 왼편 압구정로61길을 걸어 올라가면 청담고등학교이다. 페이스북에 “돈도 실력이야, 돈 없는 네 부모를 탓해”라고 써서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의 공분을 야기한 네가지 정유라. 2014년 당시 3학년 소정출석일수 129일 중 단 17일만 출석한 정유라에게 온갖 특혜를 주어 졸업시킨 청담고와 일부 교직원들에 대한 서울교육청의 징계는 '경고' 처분에 그치는 솜방망이 수준으로 비난받고 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그래도 가장 엄밀하고 공정하게 검토된 소득결정요인은 교육이었다. 교육은 노동시장, 결혼시장, 신용시장 등에서 개인의 이익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방패이다. 1990년에 개교한 청담고등학교의 교훈은 아이러니하게도 이상(理想)과 창조(創造)이다. 21세기의 주역이 될 인재육성이 교육목표란다. 사교육을 무슨 ‘악의 축’으로 규정하면서 지들은 썩을대로 썩어빠진 이 나라 공교육의 민낯을 여지없이 보여준 교육농단의 현장에 어이가 없음이다.
관련기사16 : http://www.kukinews.com/news/article.html?no=437762
관련기사17 :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70120000080


청담고에서 내려와 압구정로를 건너서 SK갤러리아주유소 옆의 THE TRINITY PLACE와 GIVENCHY 사이의 압구정로60길로 들어서면 토니앤가이 청담본점이다. 박ㄹ혜의 올림머리를 전담했다는 정송주 원장의 고급미용실이다. 정 원장은 세월호 참사 당일에도 올림머리를 손질한 것으로 전해진 바 있다. ‘박근혜 올림머리 체험기’라는 기사를 보면 90분의 시간이 소요된다. 3월 10일 탄핵선고 당시 이정미 헌법재판관의 핑크 헤어롤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관련기사18 :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424235
관련기사19 : http://hooc.heraldcorp.com/view.php?ud=20161209000758


2016년 10월 24일 JTBC의 최순실 국정개입 보도가 스모킹 건(Smoking gun)이 되어 일파만파 번져나가 개헌꼼수가 소멸되고 거대한 촛불로 타오르게 되면서 결국 탄핵으로 귀결났다. 더블루K 사무실에는 첫번째 태블릿PC가 발견된 책상이 아직 놓여 있었다. 고영태는 최순실이 더블루K 사무실에 있다가 청와대에 들어가야 한다고 한 적이 있는데, 낙원상가 앞에 이영선 행정관이 대기하고 있다가 최순실을 데리고 들어갔다고 증언한 바 있다. K스포츠재단과 연계된 더블루K는 최순실이 한국과 독일에 세운 회사로, K스포츠재단 자금을 독일로 빼돌리기 위해 만들어진 페이퍼컴퍼니라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아시안게임 펜싱 금메달리스트인 고영태가 이사를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기사20 :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6120821355563453&outlink=1


부원빌딩에서 도산대로를 건너서 박ㄹ혜를 위해 최순실이 대리처방을 받았던 병원으로 알려진 차움의원으로 향했다. 한때 김기춘도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본인은 줄기세포 치료를 받은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차병원 제대혈은행은 불법으로 제대혈을 공급한 것이 확인되기도 했다.
관련기사21 : http://www.etnews.com/20161227000401
관련기사22 : http://moneys.mt.co.kr/news/mwView.php?no=2016112012588036557&outlink=1
관련기사23 :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7&no=79734

차움의원 건물의 주상복합오피스텔 '피엔폴루스' 1001호는 최순실이 독일로 가기 전까지 거주하던 최고급 레지던스이다. 라틴어로 '천국'을 뜻하며 호당 매매가가 20억~30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장시호가 특검에 제출한 2번째 태블릿PC 때문에 결국 이재용이 구속되기에 이른다.
관련기사24 :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70307000047
관련기사25 :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70117003007&wlog_tag3=daum#csidx7d2bae709ab35d6bab12544b57dcac9


약 2시간에 걸쳐 최순실이 다녔던 교회와 사우나하던 쑥탕과 거래하던 은행과 운영하던 유치원과 기거했던 빌딩집과 오피스텔, 우병우의 아파트, 정윤회가 밥먹던 음식점, 정유라가 다니던 학교, 올림머리 미용실, 태블릿PC가 발견됐던 사무실 등 최순실과 관련된 국정농단의 현장을 답사하며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제시한 악의 일상성과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을 성찰해 보았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탄핵선고가 있던 3월 10일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순국 79주기이기도 했다. 중국에까지 소문났던 압구정의 풍광과 맑은 물이 깊었던 청담동 땅을 온통 헤집어놓은 최순실을 아는 것은 곧 박ㄹ혜를 사정하기 위한 도구가 된다. ‘지인’ 최순실과 한몸으로 대통령 박ㄹ혜가 헌법을 위반했다는 것이 헌재의 파면사유이기 때문이다.
관련기사26 : http://www.hankookilbo.com/v/681bdf95ccce469b9462cfbb24615a03
관련기사27 :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JI31&newsid=01400566615862992&DCD=A403&OutLnkChk=Y
관련기사28 : http://www.viewsnnews.com/article?q=142694
관련기사29 :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3/10/0200000000AKR20170310071100004.HTML?input=1179m

2017년 3월 4일 토요일

국사당, 선바위 역사문화트레킹

서대문독립공원에서 스물 다섯 번째 트레킹을 출발했다. 중종 31년(1536)에 명 사신을 맞기 위해서 모화관 남쪽에 영조문(迎詔門)을 세웠는데, 영조(迎詔)가 한군데 치우친 듯하다고 하여 3년 뒤에 영은문(迎恩門)으로 고쳤다고 한다. 영은문은 1895년 2월에 김홍집 내각에 의해 사대주의의 상징물이라 하여 현재의 장주형 초석만 남기고 철거되었는데, 그 자리에 건립된 것이 독립문이다. 독립문의 편액이 친일 매국노의 상징인 이완용의 글씨라는 것은 다소 뜻밖일 수 있는데, 새로운 수구파의 주장이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이었음을 복기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모화루는 태종 7년(1407)에 명나라 사신을 위한 영빈관으로 건립되어 세종 11년(1429)에 모화관(慕華館)으로 확장·개축되었다. 원래는 현 위치에서 동남쪽으로 약 350m 떨어진 영천동에 있었다고 한다. 모화관을 대신하여 건립됐다는 독립관의 원기둥에는 흰색 페이트칠 대신에 흰색 천이 거의 절반 높이까지 둘러져 있다.


시텐노가즈마(四天王數馬)가 설계한 붉은색 파놉티콘은 경성감옥(1908.10.21)으로 개소한 이래 서대문감옥(1912.9.3), 서대문형무소(1923.5.5)로 개칭되었다. 1936년 전국의 형무소는 17개소(소년형무소 3개 포함)이며 형무지소는 11개소에 달했다. 광복 후에는 서울형무소(1945.11.21), 서울교도소(1961.12.23), 서울구치소(1967.7.7), 서대문형무소역사관(1998.11.5)으로 변모하였다. 현재 사적 제324호(1988)로 지정되어 있다.


이강년, 허위, 이인영, 이은찬 등의 의병장과 이재명, 강우규, 채경옥, 송학선 의사 등이 이곳에 수감 후 순국하셨다. 독재정권 시절에는 진보당 사건(1958), 민족일보 사건(1961), 동백림 사건(1967), 인혁당재건위 사건(1975) 등의 피의자를 수감하여 사형시킨 반민주의 상징적인 곳이다.


12옥사 외벽에 내걸린 대형 태극기는 언제나 뭉클하다. 저급한 박사모야, 사이비 한기총아, 태극기란 이런 것이다. 태극기는 이렇게 사용하는 것이다.~!


이성계가 경복궁을 수호하는 호국도량으로 창건한 인왕사(仁旺寺)는 특이하게도 조계종 인왕사가 아니라 ‘인왕종 인왕사’로 되어 있다.


남산 팔각정 자리에 있었던 국사당은 1925년 일제가 남산 기슭에 조선신궁을 지으면서 지금의 인왕산 기슭 선바위 아래로 이전되었다. 명칭도 남산(목멱산) 시절에는 제사 사(祀) 자를 써서 國祀堂이었는데, 인왕산으로 오면서 스승 사(師) 자로 바뀌어 國師堂으로 되었다고 한다. 인왕산국사당과 국사당 안의 무신도는 각각 중요민속문화재 제28호와 제17호로 지정되어 있다.


마치 스님이 장삼을 입고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선(禪) 자를 쓴다는 7m 높이의 선바위는 그 기이한 생김과 특유의 기운으로 무속신앙의 대상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도성을 축조할 당시 무학대사의 인왕주산론을 누르고 정도전의 북악주산론이 채택되면서 선바위는 한양도성 안쪽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되었다. 4호선 남태령 선바위역 인근에도 선바위가 있다.



높지 않은 산이라 해도 깔딱고개는 있기 마련… 오른편에 치마바위를 둘러두고 멀리 보현봉을 바라보면서 인왕산 정상에 도착… 애개, 338m 올라오면서 헥헥거리는 꼬락서니란… 좀 쉬엄쉬엄 달려야 할 때인데, 이눔의 사회가 자꾸만 술을 권한다.


2017년 3월 1일 수요일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액션

오늘 스물 네 번째 역사문화트레킹은 제98주년 삼일절을 맞아 주한일본대사관 앞 평화로 평화의 소녀상이 있는 곳에서 정대협이 주관하는 제1272차 정기 수요시위에 동참하는 것으로 출발했다. 비가 온다는 예보에도 많은 시민들이 함께 하여 일본의 진정한 사죄와 진상규명 없는 위안부 합의는 무효임을 천명했다.
12시경 평화나비 학생들의 ‘바위처럼’ 노래와 율동으로 집회가 시작되었다. 앞자리에 착석하신 네 분 할머님들 중 김복동·이용수 할머님이 고령임에도 단상에 오르셔서 일본의 사죄와 법적 배상을 요구하고 야비한 박ㄹ혜 정권의 부당함을 소리 높여 지적해 주셔서 모두의 박수와 지지를 받았다. 평화나비 학생들의 ‘윤병세 해임장’ 액션에도 기꺼운 마음으로 서명했다.



일본대사관 쪽은 중학동이고 소녀상은 도로(평화로) 건너편의 수송동에 있다. 연합뉴스빌딩 뒷길로 해서 수송공원으로 향했다. 소규모 공원이지만 조국의 독립과 근대 교육에 대한 많은 유적이 있는 곳이다. 숙명학교 옛터, 중동학교 옛터, 경희대학교의 전신인 신흥대학 터 표지석을 찾아볼 수 있었다. 베델의 ‘대한매일신보 창간 사옥 터’ 표지석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독립선언서 2만 1천 매를 인쇄하고, 조선독립신문 제1호를 찍어낸 보성사 터와 보성사 사장 옥파 이종일 선생의 동상도 돌아봤다. 담장에 둘러싸인 목은선생영당(牧隱先生影幀)은 아쉽게도 출입이 제한되어 안쪽 모습을 가늠할 수 없었다. 이색(1328~1396)의 영당은 부여, 서천, 연천, 예산, 전주 등 전국적으로 꽤 많은 편이다.
율곡로4길을 건너 조계사와 우정총국을 둘러보고 우정국로를 횡단하여 이런저런 눈요기를 하며 인사동 쌈지길을 걸었다.


4시에는 다시 소녀상 쪽으로 이동하여 천주교 전국행동이 주관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미사>에 참례했다.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와 빈민사목위원회 신부님들이 집전하는 우중 미사에는 많은 교우들이 함께 하여 ‘재의 수요일’을 묵상하면서 이마에 재를 받고 정의로운 세상을 향한 동행의 의지를 다짐하였다. 신비하게도 올해 사순시기는 재의 수요일이자 삼일절인 오늘을 시작으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4월 16일에 예수부활대축일을 맞이하는 나눔과 희망의 시기가 될 듯하다.
윤병세 왜교부(倭交部)의 정의롭지 못한 12·28 합의와 소녀상 철거 움직임 망동을 성토하며, 강은희 여가부(餘暇部)의 위안부 기록물에 대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지원 중단을 강력히 규탄한다. 식민지 조선의 어린 소녀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아시아·태평양 곳곳에 끌려갔고, 버려졌으며, 그 일부가 우여곡절 끝에 생환한 지 어언 73년이 지났다. 그리고 이제 이러한 아픔을 기억하고 살아계신 할머님은 단 39분 뿐이다.

2017년 2월 28일 화요일

봉제협동조합 솔샘일터 방문

삼양동(三陽洞)은 삼각산의 남쪽 양지라는 뜻일 터. 도로명주소가 사용되면서 ‘솔샘로’로 변경되었는데, 소나무가 무성한 삼각산의 물 맑은 샘이라는 ‘솔샘’의 이름이 예쁘다. 성북생태체험관 인근에 솔샘 발원지가 있다고 한다.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의 5개 선교본당 중 가장 오래된 곳이 삼양동 선교본당이다.
4호선 미아사거리역 5번출구나 2번출구로 나와 중앙차로정류장(09012)에서 삼양동사거리입구 방향의 1165 지선버스를 타고 SK아파트입구 정류소(09222)에서 하차하면 된다. 솔샘문화정보도서관으로 향하는 경사로를 따라 걷다보면 오른편에 비슷비슷한 계단골목이 많은데, 잘못 진입했다가는 복잡한 이면도로에서 헤메기 십상이다. 강북소방서 맞은편 몽달하우스와 북한산슈퍼 사이의 가파른 계단길로 올라가야 한번에 솔샘공동체 삼양동선교본당에 닿을 수 있다. 오는 7월 우이신설 경전철이 개통되면 조금 더 접근성이 좋아질 것이다.


봉제협동조합인 솔샘일터의 제23차 정기총회 감사미사는 일반 가정집 2층에 자리잡은 삼양동선교본당의 아늑한 방에서 이강서·나승구 신부님이 집전해 주셨다. 번듯한 성전도 사제관도 없기에 초대교회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 정신에 잘 부합하는 느낌이다.
솔샘일터는 1991년 9월 강북구 미아1동에 솔샘공동체가 자리잡고, 93년 10월에 이기우 신부님을 비롯 여성 3인의 출자로 조합이 구성된 후 94년 4월에 명례방협동조합의 지원을 받아 사제복·수녀복·전례복과 수의 등을 만드는 전문 생산협동조합으로 성장해 왔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종의 방한 때에는 장백의(長白衣)를 만들어 봉헌하기도 했다.
최근엔 어려운 경제상황의 여파로 영업 부문에서의 한계도 드러난 만큼 보다 실질적인 솔루션도 요구된다. 또한 명례방협동조합에서도 생산공동체와의 연대 방안을 좀 더 모색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는데, 제반상황이 그리 녹록치 않다.

2017년 2월 26일 일요일

선정릉, 봉은사 역사문화트레킹

선릉과 정릉을 둘러보기 위해서는 2호선 선릉역 10번출구로 나가는 것이 빠르지만 오늘은 먼저 1번출구를 택했다. 특검이 입주해 있는 대치빌딩으로 나가기 위해서다. 지난 12월 21일 수사를 개시한 이후 박사모·일베·어버이연합·엄마부대·자총·친박 국개의원 등의 온갖 방해와 모략과 포악질에도 흔들리고 않고 쉼없이 달려오면서 문형표·김기춘·조윤선·최경희·이재용 등을 기소하였다. 다만 피의자 박ㄹ혜 대면조사와 청와대 압색이 무산되고, 우병우 구속이 불발된 것이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다. 부역자 황교안이 특검연장을 해줄리 만무하니 지금까지 보여준 정의감과 수사력은 이제 종료되겠지만, 헌정 사상 최고의 특별검사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선정릉(宣靖陵)은 빌딩숲에 둘러싸여 있으니 말그대로 자연과 인공의 조화라고 해야 할까. 도심 속 녹지가 쾌적해 보였다.
제9대 성종(이혈)은 잘산군(乽山君) 시절 할머니 정희왕후 윤씨(세조비)와 권신 한명회의 정치적 결합으로 13세에 등극하여 38세로 승하하기까지 26년간 재위하였다. 초반 7년 간은 할머니의 섭정을 받았다. 3명의 왕비(공혜왕후·제헌왕후·정현왕후)와 다수의 후궁 사이에 20여 명의 자녀를 두어 카사노바라는 부정적 비판도 있는데, 유교적이지 못한 면은 분명히 있어 보인다. 성종이 추진했던 독서당(讀書堂) 제도에 관심이 간다.


제헌왕후 윤씨(폐비)에 이어 성종의 3번째 왕후가 된 정현왕후 윤씨(자순대비)는 중종의 생모이다. 2계비임에도 불구하고 남편 옆에 묻혀 있다. 동원이강(同原異岡)의 형식으로 조성된 성종과 정현왕후의 능은 가까이까지 접근하여 살펴볼 수 있는데, 정현왕후 릉에 없는 병풍석이 성종의 릉에는 둘러져 있다.


제11대 중종(이역) 역시 3명의 왕비(단경왕후·장경왕후·문정왕후)를 두었으나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려 이곳에 홀로 누워 있다. 인왕산 치마바위 전설이라든가 조광조와의 관계는 널리 알려진 것들이다.
정자각(운상각) 동쪽에는 올라가는 계단이 2개인데, 서쪽에는 1개 뿐인 이유가 궁금하다. 정자각 뒤의 열려진 문을 통해 건너다 봐도 능묘 언저리만 얼핏 보일 뿐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는 구조이다.


폐출된 정비 단경왕후(온릉)는 차치하고, 애초엔 1계비였던 장경왕후의 희릉(서삼릉 소재)에 중종의 릉이 조성되었으나, 풍수지리를 이유로 1562년(명종 17)에 2계비인 문정왕후에 의해서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그러나 저지대로 인한 침수피해 탓에 정작 문정왕후는 남편 곁에 묻히지 못하고 멀리 떨어진 태릉에서 잠들게 되었다.
조선왕릉은 도굴을 봉쇄하기 위해 화강암을 짜맞춰 견고한 석실(石室)로 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임진왜란 당시 왜군은 선릉과 정릉의 세 능을 파헤쳐 재궁을 불태우고 시신을 훼손하였다고 한다. 숭악한 놈들~
선정릉(사적 제199호)은 3개의 능이 있다고 해서 삼릉공원이라고도 불리고, 그 남쪽길은 1972년 삼릉로(三陵路)로 개통되었다가 1977년 테헤란 시장이 방한하면서 테헤란로로 개칭되었다.
조선말까지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저자도리·무동도리·부리도리였던 세 마을이 1914년 3월 1일 경기도 구역 획정 때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삼성리로 합쳐졌다가 1963년 1월 1일 서울특별시에 편입될 때 성동구 소속의 삼성동으로 명명된 후 1975년 10월 1일에 강남구로 이속되었다.


강남 최대사찰 봉은사는 794년(원성왕 10)에 연회국사에 의해 견성사(見性寺)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 1498년(연산군 4)에 선릉의 능침사찰이 되면서 많은 땅을 하사받고 사찰 이름도 ‘은혜를 받든다’는 의미의 봉은(奉恩)으로 개명되었다. 명종의 모친 문정왕후가 보우대사를 신임하고 불교를 장려하면서 봉은사는 선종 수사찰이 되어 승과의 과거시험장으로 사용되어 유생들의 견제를 받았다. 서산대사와 사명대사 같은 고승이 장원급제 출신이다. 현판에는 수도산(修道山) 수선종(首禪宗) 봉은사(奉恩寺)라는 글씨가 써있다. 참고로 교종의 수사찰은 남양주 봉선사(奉先寺)이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대부분의 전각이 파괴되어 재건축했기 때문에 역사적인 건축물은 미미하다. 2015년에 9호선 지하철 봉은사역이 개통되어 접근성이 더욱 좋아졌다. 2010년에 자승 총무원장이 직영사찰로 만들어 당시 이명박 정권에 대립각을 세웠던 이른바 강남좌파 명진스님을 축출한 바 있다.


사찰삼문 중 첫 번째인 일주문의 역할은 2마리의 코끼리 석상이 대신하는 것처럼 보인다. 천왕문도 따로 진여문(眞如門)으로 부르는 것 같다. 진여문을 지나 오른편에 크고작은 부도와 탑비, 공덕비 등이 늘어서 있다.
대웅전의 현판 글씨는 추사가 쓴 진관사(津寬寺) 대웅전의 것을 모각한 것이라고 한다. 판전의 현판은 말년의 추사가 죽기 사흘전 과천에서 썼다고 해서 마지막 글씨로 이름난 것인데, 왼편에 71과병중작(七十一果病中作)이라는 낙관이 보인다.


판전(板殿) 옆 작은 비각 안에 예서체의 흥선대원위영세불망비(興宣大院位永世不忘碑)가 있다. 대원군이 땅문제로 송사에 휘말린 봉은사 측의 손을 들어준 것에 대한 감사의 내용이라고 한다. 미륵전 뒤편의 미륵대불은 23m 높이로 국내 최대의 석불이다. 영암스님이 발원하여 익산에서 가져온 돌로 10년 간의 불사 끝에 1996년에 완공을 보았다고 한다. 종루의 범종에는 비천상 무늬가 있고 상단부에 음통이 달린 양식으로 조성되었다.


봉은사에서 나와 봉은사역 2번출구를 돌아 올라가는 영동대로 언덕마루에 삼성리토성 표석이 있다. 고개를 넘어 내려가면 청담역 2번출구인데 우편은 아이파크, 왼편은 경기고등학교이다. 삼성동토성은 수도산(修道山) 능선을 둘러싼 백제의 테뫼식 토성으로 추정되는 바, 한성백제의 왕성을 방어하고 해운의 중심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보다 세밀한 발굴조사가 필요하다.


이렇게 오늘의 제23차 역사문화트레킹을 마쳤다. 인근의 논현동 K스포츠재단이나 미르재단과 연계하여 이른바 ‘부패투어’로 기획해 보아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