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29일 수요일

자켓 사이즈

다른 품목도 마찬가지지만 수트나 마이, 자켓 역시 제조사 별로 치수가 다르기 때문에 특히 온라인 구매 시에는 더욱 주의해야 한다.


[프라이언(FRION)] 다크브라운 집업 사파리형 자켓

■ 모델명: dark brown zip-up safari jacket(FRP_9FFJK05P7)
■ 색상: 다크브라운, 블랙
■ 사이즈: 95, 100, 105
■ 소재: (겉감)폴리에스터 100%, (안감)폴리에스터 100%, (배색)폴리에스터 98%, 폴리우레탄 2%
■ 세탁법: 드라이크리닝, 손세탁(라벨참조)
■ SIZE SPEC

95
100
105
 총장
71
73
75
 어깨
44
45
46
 가슴둘레
100
105
110



[지브이투(GV2)] 남자 CN자켓

■ 모델명: GV2 THE GREENWICH STYLE JACKET
■ 색상: 네이비, 카키, 핑크
■ 사이즈: 95, 100, 105, 110
■ 소재: 면 44%, 폴리에스터 39%, 나일론 17%
■ 원산지: 베트남
■ 세탁법: 단독 손세탁
■ 제조연월: 2014-02
■ SIZE SPEC

95
100
105
110
 총장
 70
72
74
76
 어깨
44.2
45.5
46.7
48.1
 가슴둘레
102
107
112
117
 허리둘레
92
97
102
107
 밑단
107
112
117
122
 소매기장
62.5
63.5
64.5
65.5
 소매둘레
37.5
39
40.5
42
 소매부리
27
28
28
30



[인디안(INDIAN)] 투포켓 3버튼자켓

■ 모델명: INDIAN MIUFUPM3481_56
■ 색상: 네이비
■ 사이즈: 95, 100, 105
■ 소재: (몸판)폴리에스터 100%, (배색)면 100%
■ 원산지: 중국
■ 세탁법: 드라이크리닝
■ 제조연월: 2013-01
■ SIZE SPEC

95
100
105
110
 총장

69
71

 어깨

45
47

 가슴둘레

51.5
55

 허리둘레

48
51

 밑단

52.5
56.5

 소매기장

61
64


2016년 6월 27일 월요일

반어법 vs 역설법

작가는 자신의 태도를 강조하기 위해 반어, 역설, 풍자와 같은 문학적 표현을 사용하게 마련이다. 반어법은 실제로 품고 있는 뜻과는 반대로 표현하는 것이고, 역설법은 표면적으로 이치에 맞지 않는 듯하지만 깊은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 모순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다. 혼동하는 아이들이 많아 작품으로 정리해 둔다.


반어법 : 표면적 내용과 심층적 내용이 서로 반대로 나타내는 방법

ㆍ<꽃나무는 심어 놓고>, 이태준
⇒ 꽃나무를 심어 놓았고 꽃도 피었는데 정작 그 꽃을 보아 줄 사람들이 없다는 슬픈 현실을 제목으로 설정

ㆍ“니가 상객(上客)으로 뫼셔 왔으니께 니가 멕여 살리거라!” - <기억 속의 들꽃>, 윤흥길

ㆍ수신: 서울특별시 낙원구 행복동 46번지의 1839 김불이 귀하 -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조세희
⇒ 난쟁이 일가의 삶과 대조되는 동네 명칭을 통해 인물들의 빈곤하고 참혹한 생활을 강조

ㆍ아, 엄숙한 세상을 / 서럽게 / 눈물 흘려 -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신동엽
⇒ 현실극복의 의지를 반어적으로 표현

ㆍ상년(上年) 칠월(七月) 사흗날 갈가 벅긴 주추리 삼대 살드리도 날 소겨거다 (작년 7월 3일날 껍질 벗긴 주추리 삼대가 알뜰히도 나를 속였구나) - <님이 오마 하거날~>, 작자 미상
⇒ ‘얄밉게도’라는 속마음을 겉으로는 ‘살드리도(알뜰히도)’로 표현

ㆍ오늘도 그대를 사랑하는 일보다 /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하였습니다. - <또 기다리는 편지>, 정호승
⇒ ‘기다림보다 그대를 사랑하는 일이 나에게는 더 큰 행복입니다’를 반대로 표현

ㆍ논맬 걱정도, 호포 바칠 걱정도, 빚 갚을 걱정, 아내 걱정, 또는 굶을 걱정도. 호동그란히 털고 나서니 팔자 중에는 아주 상팔자다. - <만무방>, 김유정
⇒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응칠의 비참한 상황 강조

ㆍ이것이 응칠이가 팔자를 고치던 첫날이었다. - <만무방>, 김유정
⇒ 빚 때문에 야반도주하여 유랑하기 시작하게 된 응칠의 비참한 생활과 비극적 상황이 더욱 두르러지게 나타남

ㆍ그러나 너무나 어이가 없었음인지 시선을 치켜뜨며 그 자리에 우두망찰 한다. - <만무방>, 김유정
⇒ 자신이 키운 벼을 자신이 훙치는 반어적인 상황을 통해, 독자들에게 놀라움을 주고 동시에 당대 농민들이 처한 눈물겹고 비참한 상황에 씁쓸함을 더해 주고 있음

ㆍ주림만이 무엇보다고 확실한 그의 받을 품삯이다. - <만세전>, 염상섭

ㆍ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 그때는 내 말이 잊었노라 //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 <먼 후일>, 김소월
⇒ 절대 잊지 못하겠다는 의미

ㆍ흥…… 자네 참 호살세 호사야…… 잘 죽었느니, 자네 살았으믄 이만 호살 해보겠나? - <모범 경작생>, 박영준
⇒ 죽어서야 좋은 대접을 받는 사실에 대한 조소를 반어적으로 표현

ㆍ그들은 돌아가는 길에 길서의 논 앞에 서서 ‘모범 경작생’이라고 쓴 말뚝을 부럽게 내려다 보았다. - 중략 - 논에 박은, ‘김길서’라고 쓴 푯말은 간 곳도 없고, ‘모범 경작생’이라고 쓴 말뚝은 쪼개져서 흐트러져 있었다. - <모범 경작생>, 박영준
⇒ ‘모범 경작생’이라는 이름 뒤에 오히려 모범적이지 못한 길서의 모습이 숨어 있음(시대 상황과 연결하여 반어적으로 해석 가능). 모범 경작생으로 뽑힌 길서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부러움이 증오로 변한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모범 경작생’으로 대표되는 일제의 기만적 농촌 정책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분노를 형상화하고 있는 부분임

ㆍ한 줄의 시는 커녕 / 단 한 권의 소설도 읽은 바 없이 / 그는 한 평생을 행복하게 살며 / 많은 돈을 벌었고 높은 자리에 올라 / 이처럼 훌륭한 비석을 남겼다 - <묘비명>, 김광규
⇒ 물질 숭배에 익숙한 삶에 빠져 있는 무리들에 대해 아무런 비판의식도 없이 ‘묘비명’을 새겨 준 ‘유명한 문인’을 반어적 표현을 활용하여 풍자

ㆍ돌아간 이가 늘 속사쓸 입구퍼 했어. 상등 털사쓰를 사다 입히구, 그 위에 진견으로 수의 일습 구색 맞춰 짓게 허구…… - <복덕방>, 이태준
⇒ 안 초시가 생전에 입고 싶어했던 옷을 죽어서야 입게 된 아이러니한 상황을 드러냄

ㆍ“해 뜨는 날은 돈 벌어서 좋고, 비 오는 날은 돈 받아서 좋고, 조오타!” - <비 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 양귀자
⇒ 임씨의 고달픈 처지를 ‘좋다’라고 표현한 반어법

ㆍ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황지우
⇒ 권력에 의해 강요된 국가주의, 교묘한 통치의 수단, 민중들의 우민화를 위한 권력의 이데올로기로 포장된 노래를 들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나타내는 반어적 표현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을 이루며 -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황지우
⇒ 답답하고 암울한 군사독재 하의 억압적인 현실에 대한 반어적 표현

ㆍ팔자가 좋아서 조선에 태어났지, 딴 나라에 났다면 술이나 얻어 먹을 수 있나…… - <술 권하는 사회>, 현진건
⇒ 우회적 반어

ㆍ“아무나 주는 그 잘난 밥을 다 빼드네. 지랄 안 하나, 우리 인식이나 갖다 줄 걸.” - <신문지와 철창>, 현진건
⇒ 손자에게 주고 싶어 관식(콩밥)의 일부를 몰래 감출 수밖에 없는 노인의 절박함과 혈육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는 동시에 ‘하찮은 밥’에 대한 반어적 표현

ㆍ하늘을 손대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 사람들은 아직 순수하다. - <아직도 사람은 순수하다>, 김종해
⇒ 물질만능주의적 태도에 대한 비판

ㆍ말뚝이 : 얘, 그것참!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로구나. - <양주 별산대놀이>
⇒ 양반을 돼지로 묘사하여 조롱하는 쇠뚝이의 말에 말뚝이의 능청스러운 맞장구로, 돼지우리를 고래등 같은 기와집으로 추켜세움

ㆍ“이상한 게 말이야. 넌 항상 맞는 말을 하는 거 같기는 해. 근데 다 듣고 나면 되게 재수 없어. 참 신기한 재주네.” - <완득이>, 김려령
⇒ 윤하에 대한 완득이의 호감을 반어적으로 표현

ㆍ그는 유능한 반장이 틀림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 <우상의 눈물>, 전상국
⇒ ‘합법을 가장한 폭력’으로 또 다른 폭력을 무력화시키는 권력의 치밀함과 간교함에 대한 반어적 표현

ㆍ“이년, 주야장천(晝夜長川) 누워만 있으면 제일이야! 남편이 와도 일어나지를 못해?” - <운수 좋은 날>, 현진건
⇒ 불안감을 떨쳐 내기 윟 고함을 치는 과장된 행동. 아내가 살아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의 반어적 표현

ㆍ“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 <운수 좋은 날>, 현진건
⇒ 아내가 죽는 비참한 일을 당하고 말았다는 김 첨지의 독백을 통해 비극성을 심화. 제목 자체가 운수가 가장 나쁜 날이었음을 반어적으로 표현

ㆍ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 <즐거운 편지>, 황동규
⇒ 소중한 일임을 강조하기 위한 반어적 표현

ㆍ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 <진달래꽃>, 김소월
⇒ 애이불비(哀而不悲) : 슬프기는 하지만 겉으로 슬픔을 나타내지 않음. 반어적 표현을 통해 슬픔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드러냄

ㆍ꽃 피기 전 철 아닌 눈에 / 핫옷 벗고 도로 춥고 싶어라. - <춘설(春雪)>, 정지용
⇒ ‘도로 춥고 싶어라’를 반어적으로 해석하면, 추위를 느끼더라도 겨울옷을 벗어 던지고 봄을 반기고 싶다는 심정을 노래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ㆍ아무튼 그래, 말 대가리 윤용규는 그날부터 칼로 벤 듯 노름방 발을 끊고, 그 돈 이백 냥을 들여 논을 산다, 대푼변 돈놀이를 한다, 곱장리를 놓는다 해 가면서 일조에 착실한 살림꾼이 되었습니다. - <태평천하>, 채만식
⇒ 부동산 투기, 이자 놀이로 돈을 번 것을 반어적으로 표현함

ㆍ제 것 지니고 앉어서 편안허게 살 태평 세상, 이걸 태평천하라구 허는 것이여, 태평천하! - <태평천하>, 채만식
⇒ 일제강점기 상황을 반어적으로 ‘태평천하’라고 표현하여, 식민 치하에서의 바람직한 가치관과 현실 대응 방식이 무엇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음

ㆍ초리가 길게 째져 올라간 봉의 눈, 준수하니 복이 들어 보이는 코, 부리가 추욱 처진 귀와 큼직한 입모, 다아 수부귀다남자(壽富貴多男子)의 상입니다. - <태평천하>, 채만식
⇒ 목숨·부·귀함이 많은 남자. 윤 직원의 외모를 통한 반어적 조롱

ㆍ촌장 : 얘야, 이리 떼는 처음부터 없었다. 없는 걸 좀 두려워한다는 것이 뭐가 그렇게 나쁘다는 거냐? 지금까지 단 한 사람도 이리에게 물리지 않았단다. 마을은 늘 안전했어. 그리고 사람들은 이리 떼에 대항하기 위해서 단결했다. 그들은 질서를 만든 거야. 질서, 그게 뭔지 넌 알기나 하니? 모를 거야, 너는. 그건 마을을 지켜주는 거란다. 물론 저 충직한 파수꾼에겐 미안해. 수천 개의 쓸모없는 덫들을 보살피고 양철 북을 요란하게 두들겼다. 허나 말이다, 그의 일생이 그저 헛된다고만 할 순 없어. 그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고귀하게 희생한 거야. 난 네가 이러한 것들을 이해하여 주기 바란다. 만약 네가 새벽에 보았다는 구름만을 고집한다면, 이런 것들은 모두 허사가 된다. 저 파수꾼은 늙도록 헛북이나 친 것이 되구, 마을의 질서는 무너져 버린다. 얘야, 넌 이렇게 모든 걸 헛되게 하고 싶진 않겠지? - <파수꾼>, 이강백
⇒ 들판 너머에는 흰 구름만 있을 뿐 이리 떼에 대한 공포 속에서 마을의 평화가 유지된다는 상황적 반어

ㆍ이름들도 모두 좋지요. 맏형은 ‘장자(長者)’요, 둘째는 '거부(巨富)’요, 아범이 셋짼데 ‘화수분’이랍니다. - <화수분>, 전영택
⇒ 세 형제의 이름과 그들의 실제 삶이 완전히 상반됨으로 인해 그들의 가난한 삶이 부각되는 반어적 명명법을 사용한 부분

ㆍ잘 가 (가지 마) 행복해 (떠나지 마) 나를 잊어 줘 잊고 살아가 줘 (나를 잊지 마) 나는 (그래 나는) 괜찮아 (아프잖아)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떠나가 (제발 가지 마) - <거짓말>, 박진영
⇒ 속마음을 감춘 채 거짓말을 해야 하는 화자의 슬픔이 잘 전달됨



역설법(모순 형용) : 표면상으로는 모순(앞뒤가 서로 맞지 않음)된 표현이지만, 그 속에 진실을 담고 있는 표현

ㆍ나와 닮은 그는 / 나와 닮지 않았다 - <거울>, 이지영
⇒ 아버지에게 자식으로서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자신을 독립된 존재로 여김

ㆍ작지만 큰 / 또 다른 나, 나의 아버지 - <거울>, 이지영
⇒ 아버지의 모습이 작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아버지는 나를 품어 주고 이끌어 주는 큰 사랑임

ㆍ우리들의 사랑을 위하여서는 / 이별이 이별이 있어야 하네 - <견우의 노래>, 서정주
⇒ 성숙한 사랑을 위해 이별의 고통이 있어야 함

ㆍ우리에게 이 어둠이 얼마나 환희(歡喜)입니까? - <기(旗)>, 고은
⇒ 현실 극복의 의지

ㆍ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 <깃발>, 유치환
⇒ 깃발이 날리는 모습을 모순되게 표현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 <낙화>, 이형기
⇒ ‘결별’은 일반적으로 슬프고 부정적인 상황이기에 ‘축복’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화자에게는 ‘성숙’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 것이므로 ‘축복’이라 표현함

ㆍ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 기다림을 능동적으로 표현하여 만남에 대한 의지를 강조

ㆍ형언하기 어려운 어떤 달콤한 슬픔, 달콤한 피곤기 같은 것이 나를 아늑히 감싸 오고 있었다. - <눈길>, 이청준
⇒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자신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을 깨닫고 연민과 죄책감을 느끼게 됨

ㆍ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 <님의 침묵>, 한용운
⇒ 모순된 표현 이면에 담긴 진실을 더욱 강조하여 나타냄

ㆍ주의해 주세요 구린내가 향기롭다, 날카롭게 찌르는 가시가 너그럽다, 복어의 독이 복어의 사랑이다, 친구의 독한 마음이 아름답다 - <독은 아름답다>, 함민복
⇒ 은행나무 열매를 지켜 내기 위한 냄새이므로 구린내가 향기롭고, 밤송이 안의 밤톨을 보호하므로 가시가 너그럽고, 복어알을 먹지 못하게 보호하므로 복어의 독이 사랑이고, 자식을 위해 술을 끊은 독한 마음이 아름답다고 표현함

ㆍ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 / 위태로움 속에 아름다움이 스며있다는 것이 - <땅끝>, 나희덕
⇒ 절망적 상황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더욱 희망을 갈구하고자 하는 화자의 태도를 드러내며 긍정적 자세를 통한 절망 극복이라는 주제를 강조. 절망의 끝에서 인식 전환을 통해 힘겨운 삶에서 느낀 절망감을 극복하고, 삶의 위태로움 속에서 삶의 진실과 아름다움을 발견하여 희망을 노래하고 있음

ㆍ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 <들길에 서서>, 신석정
⇒ ‘뼈에 저리도록 생활이 슬픈’ 것과 ‘좋다’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역설적 표현을 통해 어려운 상황이지만 꿋꿋이 살아가겠다는 화자의 의지를 강조

ㆍ해는 저물고 날을 다 가고 볕은 서러웁게 차갑다 - <멧새 소리>, 백석
⇒ 따뜻함(볕)과 차가움의 모순 형용

ㆍ모란이 피기까지는 /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랑
⇒ 모란(삶의 보람). 꽃이 필 때의 환희 + 꽃이 질 때의 슬픔

ㆍ모두 똑같이 못나서 실은 아무도 못나지 않았다 - <못난 사과>, 조향미
⇒ 겉보기에는 못나 보이지만 실제로는 성실하고 겸손하여 참된 행복을 누리는 존재들임(못나고 흠집 난 사고, 못난 아낙네, 못난 지게꾼)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 <무소유>, 법정
⇒ 소유의 집착에서 벗어나면 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음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無所有)의 역리(逆理)이니까. - <무소유>, 법정
⇒ 아무것도 갖지 않은 무소유자가 될 때 참된 자유와 평안을 얻을 수 있음

ㆍ불 속에 구워 내도 얼음같이 하얀 살결, / 티 하나 내려와도 그대로 흠이 지다 - <백자부>, 김상옥
⇒ 뜨거움과 차가움의 대조적 이미지로 백자의 순백색을 형상화. 백자의 색이 뜨거운 불 속에 구워 내도 타지 않고 얼음과 같은 하얀 순결성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 길이 있다. - <봄 길>, 정호승
⇒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이 존재함

ㆍ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 <봄 길>, 정호승
⇒ 희망이 없고 고통만 남은 곳에서도 다른 이에게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있음

ㆍ그대 살 속의 / 오래전에 굳은 날개와 / 흐르지 않는 강물과 / 누워 있는 누워 있는 구름, / 결코 잠 깨지 않는 별을 - <사랑법>, 강은교
⇒ 이상·희망·소망·꿈이 사라져버린 무기력함, 이별로 인한 아픔·절망을 상징하는 역설적 표현

ㆍ낮이 밝을수록 침침해 가는 / 넋 속의 저 짧은 - <새>, 김지하
⇒ 밝은 낮임에도 점점 어두워지는 현실

ㆍ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 영영 한참이더군. - <선운사에서>, 최영미
⇒ 역설적 표현을 통해 잊는 것이 힘듦을 강조. 그대를 잊는 것이 더디고, 힘든 일음을 깨달음

ㆍ자리를 옮겨 다니며 보고 / 다시 꽃이파리 하나, 섬세하고도 / 차가운 아름다움에 취한다 - <성에꽃>, 최두석
⇒ 성에꽃에서 서민들의 삶의 아름다움을 느낌

ㆍ이 적은 주머니는 짓기 싫어서 짓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짓고 싶어서 다 짓지 않는 것입니다 - <수(繡)의 비밀>, 한용운
⇒ 옷의 주인이 없는 상태(임의 부재)에서는 주머니에 수를 다 놓아 옷을 완성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음

ㆍ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 <슬픔이 기쁨에게>, 정호승

ㆍ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 <승무>, 조지훈
⇒ ‘고운’ 것은 일반적으로 ‘서러움’의 정서를 일으키지 않음. 시적 화자가 서러움을 느끼는 것은 ‘정작으로 고운’ 젊은 여인의 승무를 보니 그 여인에게서 어떤 사연으로 인한 한(恨)이 느껴지기 때문임

괴로웠던 사나이, /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 <십자가>, 윤동주
⇒ 괴로웠던과 행복한의 의미 상충

ㆍ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 <알 수 없어요>, 한용운
⇒ 끝없는 구도 정신의 표현, 윤회사상을 바탕으로 한 역설적 표현

ㆍ나는 오늘밤 어느 별에서 떠나기 위하여 머물고 있느냐 - <우리가 어느 별에서>, 정호승
⇒ 사랑을 이루기 위한 준비

ㆍ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 <유리창>, 정지용
⇒ 상호 모순되거나 대비되는 감각이나 심리를 결합하는 모순 어법을 사용하여 감정을 객관화시킴으로써 감정을 절제하고 있음

ㆍ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 <절정>, 이육사
⇒ 겨울(슬프면서도 황홀감을 내포한 계절), 강철(현재의 절망적 상황), 무지개(자유와 희망의 미래) → 역설을 통한 초극 의지, 비극적 자기 결단

ㆍ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 <진달래꽃>, 김소월
⇒ 이별의 한(恨)을 희생적 사랑으로 승화

ㆍ무심(無心)한 달빛만 싯고 뷘 배 저어 오노매라 - <추강에 밤이 드니>, 월산대군
⇒ 달빛을 실은 빈 배는 모순된 표현임

ㆍ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 살아오는 삶의 아픔 -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 소망의 간절함, 민주주의를 향한 고통과 희망. 억압적 현실일수록 민주주의의 가치가 더욱 빛남을 표현함

ㆍ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 <파밭 가에서>, 김수영
⇒ 새로운 사랑을 얻는 것은 묵은 사랑을 잃는 것, 잃은 후에는 또 새로운 것을 얻게 되는 자연의 섭리를 뜻함 → 붉은 파가 자신의 몸을 벗겨 버림으로써 새싹이 나오는 것을 비유한 것으로, 하나의 희생을 전제로 새것을 얻는 삶의 진실을 역설적으로 표현

ㆍ높이도 폭도 없이 / 떨어진다 - <폭포>, 김수영
⇒ 폭포의 절대적 자유로움을 드러내기 위한 역설적 표현

ㆍ청춘은 아직 오지 않았다. - <푸를 청! 봄 춘!>, 박민규
⇒ 젊음이 아닌 진정한 청춘을 경험하지 못했음을 의미

절망도 없는 이 절망의 세상 / 슬픔도 없는 이 슬픔의 세상 -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정호승
⇒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 절망을 극복할 수 있고, 슬픔의 세상에서도 그 슬픔을 극복할 수 있음

2016년 5월 21일 토요일

냉전의 호수 위를 걷다

오늘은 15번째 한반도평화올레에 참가하여 하루종일 화천 제3코스를 걸었다. 폐교 10년의 신명분교 자리에 터잡은 공연창작집단 ‘뛰다’에서 도보를 시작했는데… 문화 인프라가 열악한 강원 지역에 이러한 예술 창작공간의 존재는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새말교를 건너 풍산초등학교를 경유해 도착한 곳은 파로호 안보전시관이다. 바깥쪽에는 6·25전쟁을 전후하여 인민군에 의해 희생되거나 행방불명된 지역 반공민간인 3백여명의 영령들을 봉안한 위령탑이 서있다.
원래는 호수의 모양이 전설의 새 대붕을 닮았다 하여 대붕호(大鵬湖)로 불리웠다. 1951년 5월 20일 중공군의 춘계 대공세 때 국군 제6사단과 해병 제1연대가 중공군 제10, 25, 27군을 화천저수지에 수장시키고 2천여 명을 포로로 잡았다는 승전보를 전해들은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전선을 방문하여 장병들을 치하하면서 깨뜨릴 파(破), 오랑캐 로(虜)를 써서 파로호(破虜湖)로 불렀다는 데서 지금의 이름이 유래했다. ‘오랑캐를 격파한 호수’라는 뜻을 유커들이 안다면 글쎄… 관광객 유치에는 그닥 도움이 되지 않을 듯하다. 파로호 전망대에서 바라본 파로호의 시원한 풍광이 후련함을 더해 주었다.
화천댐은 북한강 수계에 건설된 최초의 댐이며, 함께 건설된 화천수력발전소는 우리나라 유일의 댐 수로식 발전소로 일대의 지형을 활용한 것이다. 이 일대 하천은 깊은 골짜기를 따라 굽이쳐 흐르는 감입곡류하천이기 때문에 좁은 입구에 댐을 건설하면 많은 물을 저장할 수 있고, 이 물을 다른 방향의 수로를 통해 낙차를 높이는 방식으로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화천수력발전소는 1940년대부터 전력을 공급한 국가 주요시설이라는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 현재 등록문화재 제109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이리 미륵바위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절터로 추정된다. 화강석으로 제작된 5개의 미륵 중 가장 큰 미륵은 높이 170㎝, 둘레 130㎝로서 이보다 작은 미륵 1기와 보다 작은 미륵 3기가 나란히 북한강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모습이 마치 거인이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거북이가 하늘을 향해서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화천읍 동촌리에 사는 장모라는 선비가 이 바위에 극진한 정성을 올린 후 과거에 급제하여 양구현감에 제수되었다는 전설과, 소금배를 운반하던 선주들이 안전한 귀향과 함께 장사가 잘 되기를 바라며 제를 올렸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김훈 작가가 작명했다는 ‘숲으로 다리’를 건너, 파로호를 감고 도는 4㎞가량의 나무데크로 조성된 산소길을 걸었다.


산소길의 명물인 푼툰다리(수상부교)는 이름 그대로 물 위를 걷는 듯한 이색체험을 안겨 주었다.

2016년 5월 20일 금요일

망원(望遠)

5월 14일(토)… 제15차 역사문화트레킹으로 망원동과 합정동 일대를 걸었다. 명례방협동조합의 2번째 야행(이야기가 있는 도보여행)을 겸한 일정이다. 6호선 망원역 1번 출구에서 출발하여 성산동 성당을 지나고, 홍익여중고를 경유하여 먼저 찾아간 곳은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1990년 11월 16일, 37개 여성단체가 모여 창립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1992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아시아연대회의>를 발족한 이후 민족을 넘어 여성인권의 문제로 깊이와 넓이를 확장해 왔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은 원래 서대문구 독립공원 매점 부지에 건립될 예정이었으나 광복회 등이 ‘순국선열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는 이유로 반대하여 지금의 성산동 자리에 들어서게 됐다. 못난 남자들 때문인데,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환향녀 취급을 하는 소위 독립유공자 단체라는 사람들의 자뻑의식에 어처구니가 없다.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당시 67세, 1997년 별세)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한 것을 기념해 8월 14일을 ‘위안부 기림일’로 정했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집회는 1992년 1월 8일을 시작으로 2015년 10월 14일, 1200차에 이르고 있다.


기획전시관2를 관람하면서 베트남 전쟁에 참전(1964.9~1973.3)한 한국군에 의해 수많은 민간인 학살과 성폭력이 발생하였고, 그에 따른 피해자들은 엄청난 정신적·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새삼 알게 됐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정부의 사죄와 배상이 이루어져야 하듯 한국 역시 베트남에서 자행한 부끄러운 일들에 대해 책임있는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역사의 산증인인 고령의 위안부 할머니들은 이제 42분만이 생존(2016년 5월 기준)해 계신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박유하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따위 책(제국의 위안부)을 썼을까. 이덕일의 책 제목이기도 한 ‘우리 안의 식민사관’은 너무나 견고하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앞길을 거쳐 서교동 최규하가옥으로 향했다. tvN 응팔(응답하라 1988)에 동룡이네 집으로 나오면서 유명해진 곳이다. 드라마에서 동룡이가 이 식탁에 앉아 엄마가 끓여준 쇠고기미역국을 먹으며 눈물 흘리는 장면이 나왔었다.


12대 국무총리와 10대 대통령을 지낸 최규하는 1973년 오일쇼크 때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을 설득하여 원유를 확보하는 외교적 수완을 보여주기도 했다. 1979년 10·26 사태로 박정희가 피살된 이후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나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킨 신군부에 단호히 대처하지 못하고 1980년 8월 16일 사임하고 만다. 문민정부 시절 신군부 일당이 내란죄로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도 끝까지 법정 증언을 거부하고 관련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채 2006년 향년 87세로 세상을 떠났다. 사후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원수 묘역에 안장되었다.
지상 1·2층과 지하층으로 이뤄진 최규하가옥(등록문화재 제413호)에서는 최규하·홍기 부처의 검소함을 느껴볼 수 있다. 서울시 공공예약시스템에서 사전예약을 했기에 보다 상세한 해설(김영숙 전시해설사)을 들을 수 있었다.


태종의 차남이자 세종의 둘째형 효령대군이 서호(西湖)의 경치 좋은 양화도(楊花渡) 북쪽 언덕에 세운 정자가 있었는데, 1425년 세종이 농사 형편을 살피러 왔다가 이 정자에 올랐을 때 때마침 가뭄을 해갈하는 단비가 내려 매우 기뻐하면서 희우정(喜雨亭)이라는 이름을 내렸다고 한다.
세조의 장남인 의경세자(덕종)가 20세에 요절한 관계로 세조 사후, 차남인 예종이 왕위를 이었으나 재위 14개월만에 의문사한다. 예종의 아들 제안대군이 네살배기 어린아이였으므로 세조의 장손이자 의경세자의 장남인 월산군이 즉위해야 했으나, 한명회를 비롯한 훈신들의 선택을 받은 차남 잘산군이 주상이 되니 이가 성종 임금이다. 월산대군은 희우정을 개축해 망원정(望遠亭)이라 이름하고 시문을 읊으면서 현실정치에서 손을 놓았다. 그후 어머니인 덕종비 소혜왕후의 신병을 극진히 간호하다가 35세로 병사했다.
연산군 시절 망원정의 규모가 연회를 즐기기에 협착하다 하여 증축을 명하면서 수려정(秀麗亭)이라 고쳐 부르기도 했으나, 중종반정 이후 다시 아담한 정자로 남게 되었다.


강변도로 쪽의 솟을삼문이 아름다운 망우정…
가을밤에 낚시를 드리웠는데 고기 대신 빈 배에 달빛만 싣고 돌아오는 자연인의 유유자적하는 물심일여(物心一如)의 경지가 선명한 ‘추강에 밤이 드니’란 월산대군의 시조를 읊조려 본다. 멀리 원거리까지 조망할 수 있다는 망원(望遠)의 의미가 새삼 새롭게 다가온다.


당산철교 지척에 20m 높이로 우뚝하니 자리잡은 사적 제399호 잠두봉(蠶頭峰)은 수도 한양의 방어기지였는데… 1866년 병인박해 때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참수당한 후에는 절두산(切頭山)이라 불리게 되었다.
충남 아산 음봉에서 옮겨온 복자바위(福者岩)는 프랑스 신부와 조선인 신도들이 형장으로 끌려갈 때 걸터앉아 성가를 불렀던 바위인데, 1984년 다섯 분 모두 성인품에 오른 후 ‘오성바위’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


두 번에 걸친 양요를 격퇴한 흥선대원군은 1871년(고종 8) 4월, 종로 네거리를 위시한 전국의 교통 요충지 200여 개소에 ‘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으로 유명한 척화비(斥和碑)를 세웠다. 높이 4자 5치, 너비 1자 5치, 두께 8치 5푼의 화강석으로 제작했다는데… 순교성지 내의 척화비는 나중에 세운 가비(假碑)가 아닌가 생각된다.


양화진 장대석을 통해 어영청 관할의 진대(鎭臺)를 설치하여 옛 양화도(楊花渡)를 관리했음을 알 수 있다. 호조에서는 삼남에서 올라온 세곡을 관리하기 위해 점검청을 두었다고 한다.


1904년 3월 4일 런던 데일리 크로니클(Daily Chronicle)지의 특파원으로  러일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입국한 어니스트 베델(Ernest Bethell, 1872~1909)은 4월 14일 (Daily Chronicle) ‘일제의 방화로 불타버린 경운궁의 화재’라는 기사를 썼다는 이유로 해임된 후, 양기탁·박은식·신채호 선생 등과 함께 1904년 7월 18일 민족지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를 창간했다. 고종은 선생에게 ‘배설(裵說)’이라는 한국이름과 함께 여러 가지 편의를 제공하였다.
대한매일신보는 발행인이 영국인인 베델 선생이었기에 통감부의 검열을 피할 수 있었으며 국한문·한글·영문판 등 3종을 합해 발행부수가 1만부에 달하는, 당시 최대의 신문이었다. 1905년 을사늑약의 무효를 주장하는 사설을 실었으며, 일제의 압력을 받은 서울 주재 영국 총영사에 의해 재판에 회부되고, 1909년 5월 1일 고문후유증으로 서거하였다.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 이후 대한매일신보는 총독부 기관지인 경성일보에 인수되어 제호에서 ‘대한’이 빠진 매일신보로 개칭, 1910년 8월 30일자부터 조선총독부 기관지로 전락했다.
베델은 37세로 유명을 달리하기까지 생애의 마지막 5년을 한국에서 보냈고, 유해는 고국 영국이 아닌, 이국땅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 외국인묘지’에 안장되었다(A-2). 선생은 “나는 죽더라도 대한매일신보를 영생케 하여 조선의 백성을 구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1968년 건국훈장 대통령장(2등급)을 추서받았다.


베델 선생 묘소 옆에는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분’으로 불리는 감리교 선교사 호머 헐버트(Homer Hulbert, 1863~1949) 박사의 묘소가 있다. 박사는 육영공원의 영어교사로 근무하면서, 이후 한국의 독립운동을 다방면으로 지원하였다.
고종의 헤이그 특사증은 헐버트, 이회영, 이상설 순으로 전달되었다. 이로 인해 일제에 의해 추방된 지 42년 만인 1949년 7월 29일 대한민국 정부의 초청으로 8·15 광복절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내한한 헐버트 박사는 입국 일주일만인 8월 5일 86세를 일기로 한국 땅에서 서거하였다. 평소 “나는 웨스터민스터 성당보다도 한국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는 소망에 따라 박사의 유해는 양화진 외국인묘지에 안장됐다(B-7). 1950년 3월 1일에 외국인 최초로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제국주의의 압제에 신음하던 낯선 이국의 땅에서 이국인들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다가 이국땅에 묻힌 벽안의 선열 두 분의 영면을 기도한다. 건국절을 주장하는 정치인부터 꺼리낌 없이 “덴노헤이카 반자이”를 표방하는 경제계, 언론계, 문화계, 교육계, 종교계까지… 아직도 친일부역세력이 횡행하는 우리의 현실… 참으로 부끄럽다.

2016년 5월 18일 수요일

합창 vs 제창

임을 위한 행진곡… Dm과 Gm 코드가 어우러진 비장한 어조의 진혼곡. 1982년 5월, 시민사회운동가 백기완의 옥중시 ‘묏비나리’(1980)의 일부를 차용하여 소설가 황석영이 가사를 붙이고, 전남대학생 김종률이 곡을 지었다. 김종률·정권수·박미희 트리오는 ‘영랑과 강진’으로 1979년 제3회 MBC 대학가요제에서 은상을 수상한 바 있다.

님을 위한 행진곡은 1980년 5·18 당시 광주에서 희생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과 노동현장에서 들불야학을 운영하다가 1979년 과로로 숨진 노동운동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내용으로 하는 음악극 ‘넋풀이 굿’(빛의 결혼식)에 포함되어 있다. 온 몸을 바쳐 치열하게 투쟁했지만, 종국엔 비극적 결말로 고인이 된 두 남녀가 앞서 저승으로 가면서 산자들에게 남기는 마지막 노래로 배치되어 있다.

1997년부터 2008년까지 10년 넘게 제창되던 노래인데, 수구(守舊)들은 1991년 북한이 5·18을 소재로 제작한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점 등을 들어 기념곡 제창을 반대해왔다. 하지만 노래가 만들어진 시점은 1980년대이고 북한에서 사용한 시점은 1990년대라는 선후 사실관계도 확인하지 않은 맹목적인 단견·편견에 불과하다. 여기엔 201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도 등재된 5·18 자체를 부정하려는 의식이 깊게 깔려 있다. 피해자와 유족들이 부르겠다는데 가해자측 사람들이 거부하는 형국이다. 이래선 진정한 화해와 용서가 이루어질 수 없다.

뭐~ 덕분에 제창과 합창의 차이를 확실하게 알게 됐다. 요컨대 합창(合唱)은 합창단이 부르는 것이고, 제창(齊唱)은 참석한 모든 사람이 부르는 것이다. 합창단이 노래할 때는 참석자들이 따라 불러도 되고 부르지 않아도 무방하지만, 제창 시에는 모든 사람이 함께 불러야 의미가 더해지기 때문에 두 방식은 유의미한 차이가 나게 된다.
2009년 이명박 때부터 합창으로 변경됐다.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대화가 통하는 어디 제대로 된 진정한 보수 없나?

2016년 5월 17일 화요일

오일륙

오늘은 5·16군사정변이 일어난지 55년이 되는 날이다.
‘국가에 대한 일격’이라는 뜻의 쿠데타(coup d'État)는 무력으로 정권을 빼앗는 것을 말한다. 한국브리태니커(온라인)에 따르면… 혁명이 피지배계급에 의한 반란인 데 비해 쿠데타는 일부 지배권력이 자기의 권력을 더 강화하기 위해, 또는 다른 사람이 장악하고 있는 정권을 탈취하기 위해 수행되며, 권력이동은 지배계급 내부의 수평이동에 불과하다.
쿠데타는 군대, 경찰, 그밖의 무장집단 등에 의해 은밀하게 계획되고 기습적으로 감행되며 정권탈취 후에는 군사력을 배경으로 계엄령 선포, 언론 통제, 반대파 숙청, 의회의 정지, 헌법 개폐(改廢) 등의 조치를 취한다. 일반적으로 쿠데타에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하는 것은 국가적인 규모의 정치적·사회적·경제적 위기, 기성 정치권의 무능, 의회의 정상적인 기능 마비 등이며, 또 이에 대해 국내에 유일한 무력조직으로서의 군대나 경찰 및 이를 지휘하는 야심적인 정치가나 장군 등의 존재이다. 쿠데타의 전형으로는 1799년 11월 9일(공화력 8년 브뤼메르[霧月] 18일) 통령정치를 타도하고 스스로 제1집정이 된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의 쿠데타와 1851년 12월 2일 무력으로 의회를 해산하고 제정(帝政)에의 길을 연 루이 나폴레옹의 쿠데타가 있다.


“임시정부는 민족운동단체이지, 정부가 아니라”는 김용직이 관장으로 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는 5·16군사정변에 대해 사진과 같이 설명해 놓았다.


오정윤 미래학교장이 저술한 「교과서와 함께 읽는 청소년 한국사 2」(도서출판 창해, 2010년, 2만2천원)의 관련 부분을 옮겨 적는다.

1960년 8월 3일에 출범한 민주당정부는 분출하는 사회적 욕구를 맞추지 못해 초기에는 국내질서를 잡지 못하였다. 이 시기에 세계적으로 유로코뮤니즘(유럽사회주의), 제3세계운동, 반전(反戰)과 민족주의 열풍이 국내로 들어와 학생들의 자주의식과 통일운동을 자극하였다.

보수적이고 친일적인 군부세력은 민주당 정부의 정책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군부세력은 한국전쟁(6.25)을 치루면서 반공으로 무장한 강력한 조직체로 성장하였고, 미국의 군사행정을 도입하여 가장 선진적이고 체계적인 엘리트 집단으로 변모하였다. 이들 군부세력은 국내의 혼란과 학생들의 거침없는 통일운동을 빌미로 정치적 야욕을 실현할 명분으로 삼았다. 시민의 피로 이룩한 민주주의는 이제 군부세력의 군사반란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5.16 군사반란, 박정희 군사독재

4.19혁명의 성공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민권의식이 고양되었다. 당시에 혁명으로 부상당한 학생들이 의사당에 진입하여 자유당 정권에 협력하여 반민주 행위를 한 인사들에 대해 처벌할 수 있는 반민주행위자처벌법의 제정을 요구하였다. 이에 따라 국회는 11월 29일에 소급입법의 근거를 마련하는 부칙 개헌을 하여 반민주행위자들의 형사사건을 다루는 특별재판소, 특별검찰부를 두게 되었다. 이를 4차 개정헌법이라고 한다.

장면정부가 경제계획과 민주적 정치운영으로 정국운영을 가닥잡아 가고 있을 때 정치권력에 뜻을 가진 군부세력은 민주열기의 혼란을 민주당의 무능이라 주장하며 1961년 5월 16일에 만주군 출신의 친일군인 박정희를 중심으로 군사반란(쿠데타)을 일으켰다.

박정희 육군소장과 육사 8기생, 청년장교를 포함한 3천 6백명이 주도하여 일으킨 5.16 군사반란은 국민들의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수립된 민주정부를 전복한 반국가 반란사건이었다. 군부세력은 군사혁명위원회를 세우고 6대 혁명공약(반공이념, 친미외교, 부패청산, 경제재건, 반공통일, 민정이양)을 발표하였다. 미국정부와 보수적인 국민들은 사회개혁과 반공을 내세운 군부세력을 지지하였다.

군사혁명위원회는 장면내각을 접수하고 권력기구의 명칭을 국가재건 최고회의로 바꾸었다. 군사정부는 사법, 입법, 행정을 장악하고, 혁명검찰부를 설치하여 사법권을 농단하였으며, 민주인사의 감시, 노동운동과 통일운동의 탄압, 진보적인 언론의 통제를 위해 한국중앙정보부(중정)를 세워 공안정치를 시작하였다. 1961년 7월 3일에는 반공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반공법을 제정하였다.

혁명공약에서 민정이양을 약속한 군부세력은 1962년 11월에 헌법개정안을 마련하여 12월 17일 국민투표에 부쳐서 통과시켰다. 5차 개정헌법의  주요한 내용은 1)대통령 직선제, 2)국민투표를 통한 헌법개정, 3)단원제(지역구, 전국구)를 특징으로 하였다. 군부세력은 민정이양의 시기가 무르익자 비밀리에 수권 정당의 설립을 준비하고 이듬해인 1963년 2월 26일에 드디어 민주공화당을 창당하였다.

개정헌법에 의해 1963년 10월 15일에 국민직선제로 치루어진 5대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 박정희 후보는 46.6%를 얻어 45.1%를 얻은 민정당 윤보선 후보를 15만 6천여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여세를 몰아 11월 26일에는 총정원 175명(지역구 131, 전국구 44)을 소선거구제로 뽑는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통령을 배출한 공화당은 62.8%인 110명(88/22)을 차지하여 다수당이 되었고, 야당은 분열하여 민정당이 41명(27/14), 민주당이 13명(8/5), 국민의 당이 지역구 2명을 당선시켰다. 박정희 대통령은 헌법상의 절차적 합법성을 획득하고 12월 17일에 제3공화국을 출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