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20일 토요일

무서운 무능

메르스가 발병한 지 오늘로 한 달이다. 메르스 포비아(MERS Phobia)로 한류가 꺼지고, 경제가 파탄나고, 안타까운 감염사가 속출하고, 일상이 불안한 나날이다. 그간 삼성병원발 메르스 사태가 확산일로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도 문형표나 양병국, 송재훈, 김우주 등은 이렇다 할 해결책을 제시하기는커녕 오판과 아집과 불통과 은폐로 사람들의 불신과 불안감만 키워 놓았다. 이들이야말로 법무부가 엄포 놓은 유언비어의 유포자들이다. 그리고 그 쌍봉엔 아몰랑 박그네와 거대 공룡기업 삼성가가 자리하고 있다.


“이번주가 고비”라는 거짓 멘트를 반복하면서 명색이 정부라는 곳이 내세운 예측은 번번히 빗나갔고, 그나마 치는 뒷북도 제대로 두드리지 못하고 있다. 오죽하면 미국언론인 뉴욕타임즈(NYT)가 “(메르스가 무서워진) 일부 Defector(탈주자·망명자)들이 (한국에서) 도망쳐 (북한으로 되)돌아가고 있다”며 디스했을까. 참여정부 때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수구꼴통들… 가스통 들고 탄핵 운운하며 난리도 아니었을 터. 그나마 박원순이 야밤에 급행으로 까지 않았다면 끝까지 아몰랑이었겠지. 뒷수습에 하도 바빠 라면 먹어가며 만든다는 대책이 지금 수준이라면 정말이지 절망할 수밖에 없다. 덕분에 이완구와 홍준표는 세간의 이목에서 벗어났고, 황교안은 총리자리에 안착했으며, 조현아는 복귀시점을 눈치보고 있는 요상한 형국이 만들어졌다. 대다수 의료진의 분투에는 경의를 표하지만, 안일에 빠진 전문가집단의 교만은 반드시 되짚어봐야 한다. 에고고~~ 대통령 하나 잘못 뽑아놓으니 나라가 완전 견판이네~~

2015년 6월 17일 수요일

동작동 국립묘지 충효길 답사

6월 13일 토요일 오전 10시… 서울시민연대 멤버들과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노량진 사육신묘까지 동작충효길 1~2코스를 걸었다. 9호선 동작역 8번출구로 나오면 바로 현충원 정문이지만, 4호선 동작역 4번출구로 나오면 동선상 육교를 건너 동문을 지나쳐야 하므로 조금 더 걸어야 한다. 충성분수대 안쪽으로 파란 지붕의 현충문이 보인다.


주월사령관을 지낸 채명신(蔡命新, 1926.11.27 ~ 2013.11.25) 중장은 8평 규모인 별들의 무덤 대신 생사고락을 함깨 했던 전우들 곁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에 따라 1평짜리 사병묘역에 안장됐다. 유신개헌에 반해하여 대장 진급에서 탈락하기도 했으며, 정치군인들이 넘쳐나고 군기해이에 동료여군 성폭력이나 일삼는 요즘 떨거지 군바리들이 귀감으로 삼아야 할 참군인의 모습을 보여준 분이다.




위패봉안관에는 6·25전쟁 전사자들의 위패와 유해가 봉안돼 있다. 현충문은 조선초기 건축양식을 본떠 건립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궁궐에서나 볼 수 있는 잡상이 7개나 올려져 있다. 현충탑에서 현충문을 내려다보는 구도는 많이 익숙한 편이다. 당정청, 여야를 가리지 않고 대통령부터 한다하는 계파 보스들까지 검정색 정장에 똘마니들을 대동하고 비장한 표정으로 입장하는 장면이 매체에 심심찮게 노출되기 때문이다.



애국지사묘역 상단(149)에 안치된 만주의 유일당인 조선혁명군 총사령관으로 영릉가 전투와 흥경성 전투를 이끌었던 양세봉(梁世奉, 1896.6.5 ~ 1934.8.12)과 임정요인묘역(7)의 대한매일신보와 신민회로 유명한 양기탁(梁起鐸, 1871.4.2 ~ 1938.4.20)… 양씨 가문 두 분의 무덤을 촬영해 봤다.


현충원 경내에서 정수묘역과 장군 제1묘역의 위치가 가장 좋아 보였다. 멀리 동작대교까지 내려다 보인다. 김대중 대통령의 묘역은 박정희-육영수, 이승만-프란체스카 내외의 묘소에 비해 상대적으로 협소했다.









2015년 6월 9일 화요일

4.19 민주묘지 씨순길

현충일 아침… 4호선 길음역 3번 출구로 나와 08-124 정류장에서 대진여객 110B번 버스를 타고 정릉북한산국립공원입구(08-347)에서 하차하여 유월의 씨순길을 시작했다. 북한산둘레길 4구간 솔샘길, 3구간 흰구름길, 2구간 순례길… 이렇게 3개 코스에 걸쳐 약 8㎞를 걸었는데, 북한산둘레길 코스 중 가장 난도가 낮은 구간인 듯하다.


성북생태체험관과 빨래골을 경유하여 12m에 달하는 4층짜리 구름전망대에 올라갔는데… 북한산, 도봉산, 불암산, 수락산, 용마산에 서울 동북권 도심의 모습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삼각산(三角山) 동남쪽 칼바위능선 끝자락에 화계사(華溪寺)가 터잡고 있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범종각(梵鐘閣)이 보이고 왼편으로 거대한 대적광전(大寂光殿)이 들어서 있다.


범종각 천장에는 의식에 쓰이는 범종, 법고, 운판, 목어의 불구사물이 걸려있다. 범종(梵鐘)은 땅 속(지옥)에 있는 중생들을 위하여, 쇠가죽으로 만든 법고(法鼓)는 길짐승들을 위하여, 나무를 깎아 속을 비운 목어(木魚)는 수중생물을 위하여, 구름 모양의 청동 운판(雲板)은 날짐승들을 위하여 치는데… 이는 세상 모든 중생들에게 부처의 범음을 들려주어 생사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세계로 인도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새벽과 저녁에 각기 33번과 28번을 친다는 범종(보물 제11-5호), 수소가죽과 암소가죽으로 음양이 조화된 소리를 내기 위한 법고, 잠을 잘 때에도 눈을 감지 않는 물고기처럼 쉼없이 정진하라는 목어의 조성원리가 오묘하다. 숙종 9년(1683)에 사인비구(思印比邱)가 제작한 화계사 동종은 보물 제11-5호로 지정돼 있다.


범종각 뒤편으로 정면3칸, 측면2칸 맞배지붕 형태의 명부전(冥府殿)이 있다. 저승의 심판관인 시왕을 모셨다 하여 시왕전(十王殿), 지장보살이 주불이기에 지장전(地藏殿)이라 부르기도 하는 곳이다. 현판과 주련은 흥선대원군의 친필이라 하는데, 특히 궁궐에서 보아온 드므가 놓여 있어 시선을 끈다.


정면3칸, 측면3칸의 다포식 팔작지붕 형태의 대웅전은 화계사의 중심 법당으로 1870년에 흥선대원군의 시주를 받아 지어졌다. 특이하게도 아미타불이 주불이다.


본래는 산신각에 산신(山神), 칠성각에 칠성(七星), 독성각에 독성(獨聖·나반존자)을 따로 모시는데, 이들을 한꺼번에 모시면서 이름도 삼성각(三聖閣)이라 합쳐 부르는 경우가 있다. 화계사 삼성각은 정면3칸 측면2칸의 팔작지붕으로 동기와를 얹었다.


화계사에는 수령 449년 된 느티나무가 2그루 있는데, 사진은 수고 20.5m, 둘레 3.36m 짜리로 냇가에 서있는 보호수이다.



이날 따라 시간이 되지 않아 유영봉안소와 4·19혁명기념관에는 들르지 못하고, 기념탑 앞에서 묵념하는 것으로 씨순길 일정을 마쳤다.

2015년 6월 8일 월요일

버스정류장 앞 불법주차 난장

4호선 당고개역 인근 상계동 덕릉로에는 흥안운수종점(11-225) 정류장이 있다. 1138번, 1139번, 1124번 이렇게 3개 노선이 운용되고 있는데, 일주일에 두세차례 퇴근 시 이용한다.
헌데 오늘처럼 버스정류장 앞에 불법주차된 차량 때문에 안전한 승차에 방해를 받으면 분노 게이지가 급상승하며 육두문자가 절로 튀어나오게 된다.


‘버스여객자동차의 정류지임을 표시하는 기둥이나 표지판 또는 선이 설치된 곳으로부터 10m 이내인 곳’에서의 정차 및 주차를 금지하고 있는 도로교통법 제3장 제32조는 무용지물이다. 위반 시 부과된다는 범칙금 4만원 역시 너무나 경미한다. 불법주차한 넘들 때문에 인도에서 한 차선 걸어나가 승차하게 되니 사고 위험과 불편을 초래하게 된다. 한두 넘도 아니고 처음 당하는 일도 아니다. 이런 자들이 투표장에 나가 꼭 지들 같은 작금의 무능하고 부도덕한 정권을 탄생시켰으리라. 그래놓고 일요일만 되면 우르르 교회로 몰려 나가 “오 주여!”를 복창하겠지. ㄱㅐㅆㅡㄹㅔㄱㅣㄷㅡㄹ… ㅌㅜㅔㅌㅜㅔ… 주정차 단속은 구청 소관일 터인데 도대체 김성환 구청장은 뭐하는 인간인가…

2015년 6월 7일 일요일

밭뙈기가 어때서

번개 카톡으로 남양주시 조안면 시우리에 위치한 한선생님네 밭으로 마실을 다녀왔다. 밤고구마·호박고구마·서리태 모종을 심고, 정신없이 오디(桑實)와 앵두(櫻桃)를 따먹으며 손을 까맣게 물들였다.



작은 오가피(五加皮) 나무에 말벌이 집을 짓기 시작했나 보다. 밭의 앞길은 다산길 5코스로 운길산역에서 피아노폭포로 이어지는 문안산길(17㎞)이 지나는 곳이다. 근처에는 여말선초의 문신인 충경공(忠景公) 류량(柳亮: 1355~1416)의 신도비(경기도 기념물 제78호)와 사당이 있다. 인근 땅은 대부분 문화류씨(文化柳氏) 종산(宗山)이라고 한다.


귀로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와부읍 묘적사(妙寂寺)에 들렀는데, 조계종 봉선사의 말사라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국왕 직속의 비밀기구가 있던 곳으로, 이곳에 일종의 왕실 산하 비밀요원을 훈련시키기 위한 사찰을 짓고 선발된 인원을 승려로 출가시켜 승려교육과 아울러 고도의 군사훈련을 받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임진왜란 때에는 일본군의 집중공격을 받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2차례는 잘 막아냈으나 3번째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여 결국 사찰이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정면5칸, 측면2칸, 다포식 팔작지붕 형태의 대웅전과 앞쪽의 8각7층석탑(남양주시 향토유적 제1호)이 시선을 끌었다.


이어서 사찰 쪽문을 지나 크게 한바퀴 둘러본 월문리 묘적산(妙寂山)은 재선충병(材線蟲病)이 돌아 방재사업 후 생태조림을 하는 중이어서 묘적(묘한 적막)의 경지에 이를 수가 없다. 그래도 산길의 솔향이 청량했으나 날이 가물어 계곡물의 수량은 적어 보였다.


고구마, 상추, 들깨, 고추, 옥수수, 두릅, 오가피, 호박 등이 골고루 정성껏 가꾸어져 있다. 오디나무 아래서 삼겹살을 굽고 소주 한잔 기울이는 초하의 시간이 각별하다. 크게 넓지는 않지만 안빈(安貧)과 낙도(樂道)를 맛보기에 충분한 공간이다.

2015년 6월 5일 금요일

김성일식 해법과 메르스(MERS) 대처법

선조 24년(1591)… 통신사로 일본에 갔던 정사 황윤길과 부사 김성일이 귀국한 후 서로 다른 보고로 조정은 혼란에 휩싸이고, 황윤길의 전언으로 인하여 하삼도의 백성들은 북쪽으로 피난을 떠나는 어수선한 상황이 지속된다. 요사이 즐겨보고 있는 KBS 사극 「징비록」 7회에서 통신부사 김성일은 일본이 조선에 아무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주상께 고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변한다.

“왜변이 난다는 소문 때문에 벌써 수많은 하삼도의 백성들이 피란가는 걸 보았습니다. 사람 셋만 모여도 없는 호랑이를 만든다고 이리 소문으로 일어나지도 않은 왜변을 만든다면 이 나라의 곡창지대인 하삼도는 텅텅 비게 될 것이고, 또 장차 이 나라는 어찌 되겠느냐 그말입니다. 왜변에 대한 대비도 민심을 안정시킨 연후에 할 수 있는 게지 민심이 이리 술렁인다면 어찌 대비가 되겠습니까?”

조선조정은 분분한 논쟁 끝에 결국 김성일의 보고를 채택하고 이후에는 그나마 진행되던 성의 수축과 군수 비축을 중단하고 만다. 대비없이 왜변이 일어날 때 민심은 더 큰 혼란에 빠진다는 걸 간과한 오판이었다.

중동호흡기증후군(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이라 불리는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MERS-CoV)에 대처하는 보건당국의 안일한 행태에서 ‘먼저 민심을 안정시키고 왜변에 대한 대비를 하자’는 김성일식 해법이 재현되는 것을 본다. 그래도 학봉 김성일은 임란 발발 후 초유사(招諭使)로서 충분히 존경받을 만한 행동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박그네 정권 하 문형표의 보건부나 질병관리본부에는 바이 기대할 바가 없어 보인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관련 괴담이나 엄단하겠다는 황교안 법무부의 엄포나 진실공방으로 몰아가는 정부여당의 수구적 행태 또한 익숙한 풍경이다.
은폐와 무능과 회피와 불통과 부도덕… 그에 따른 불신과 혼란과 저항과 자구책… 2014년 4월의 세월호 참사는 모든 부문에서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