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10일 화요일

두물머리 몽양기념관 씨순길

6월 7일 오전 10시 10분, 중앙선 운길산역 2번 출구 집결… 초하(初夏)의 강바람을 타고 남북 한강이 만나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하는 7㎞의 강변길을 걸었다.
북한강은 강원도(북한) 금강군에 있는 옥밭봉(1,241m)에서 발원하여 춘천을 지나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에서 남한강과 만나는 길이 371㎞의 강이고… 남한강은 강원도 태백시 금대봉의 검룡소(儉龍沼)에서 발원해 정선에서 오대천을 만나 남쪽으로 흐르다 영월군에서 평창강, 충주에서 달천, 여주에서 섬강 등과 합류하는 514.4㎞의 큰 강이다.
이 두 강이 두물머리 즉 양수에서 만난다. 운길산역에서 옛 철길(지금 자전거길) 건너 섬이 곧 두물머리이며 이 섬 남단에 서면 지척에 다산유적지가 있다. 6월 씨순길의 끝점은 몽양 여운형의 생가이다.

10:20 운길산역 - (2㎞) - 11:00 양수역 - (4㎞) - 12:30 신원역 - (0.5㎞) - 12:40 몽양기념관 - (0.5㎞) - 13:30 신원역(약 7㎞) - 점심: 신원역 앞 황금어장(☎ 031-772-6859)

중앙선 신원역에서 기념관으로 올라가는 길 오른편에 몽양 유객문(夢陽 留客文)을 시작으로 여운형 선생이 남긴 뜻 깊은 말씀을 새긴 16기의 어록비가 배치되어 있다. 몽양어록길의 어록 몇가지를 소개한다.

“여러분은 담배를 피우며 노예로 살겠습니까! 아니면 담배를 끊고 자유롭게 살겠습니까! 담배는 나라를 되찾은 뒤 다시 피울 수 있으나 빼앗긴 나라를 찾을 기회는 쉽게 오지 않습니다.” - 1908년 양평 장터에서 <국재보상운동> 연설 중

“나는, 청년은 누구를 가리지 않고 좋아합니다. 무릇 청년은 진리와 정의를 위해서 목숨을 아끼지 않는 불가슴을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 1933년 조선중앙일보 사장 시절 권투경기 개회사 중

“제군들은 비록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가지만, 등에는 한반도를 짊어지고 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 1936년 손기정 등 베를린 올림픽 출전선수 환송회

“나는 연합군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처음부터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즉 만났으니 “How do you do?”라고 인사할 것이고, 둘째는 “Thank You!”라고 감사의 뜻을 표해야 할 것이고, 셋째로는 “Goodbye”가 있을 뿐이다.” - 1945년 ‘신조선 건설의 대도’ 중

“전쟁 후 군수공업을 통하여 폭리를 취한 독점자본은 전쟁을 원한다. 이는 악한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것이다. 평화가 수립되어 세계경제가 안정이 되면 후진국의 농공업이 발달됨에 따라 얻어지는 이익이 더욱 크기 때문이다.” - 1947년 7월 서거 당시 지녔던 수첩 메모 중에서


몽양 여운형 선생은 1886년 양평군 신원리 묘골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치마 폭으로 태양을 안는 태몽을 꾸었다하여 몽양(夢陽)이라는 호를 지었다고 한다. 숙종조에 함양 여씨가 양평에 입향하면서 영회암(永懷菴)이라는 택호가 붙었는데, 2011년에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되었다.


1945년 8월 15일 몽양 선생은 총독부로부터 치안권을 이양받고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발족하여 위원장을 맡았는데 보름이 채 못되어 전국에 145개의 지방위원회들을 조직할 정도로 전국의 치안과 행정을 장악함으로써 과도기의 혼란을 방지했다. 이는 일제 말의 사전 준비 작업이 있었기 때문이며 동시에 여운형에 대한 민중의 신뢰와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몽양 선생은 해방공간에서 좌우합작, 독립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헌신하다가 12차례의 테러를 당한 끝에 한지근이 쏜 총탄에 순국하게 된다(향년 62세). 서거 당시 입고 계시던 혈의가 애처롭다. 현재 선생은 강북구 수유동 순국선열 애국지사묘역에 모셔져 있다.


2004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재평가’를 시사한 이후에도 몽양 선생에 대한 서훈은 국가보훈처의 심사에서 탈락된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로 2005년 광복 60주년을 기념하며 삼일절, 광복절, 순국선열의 날 등 3번에 걸쳐 130명의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을 포함, 500여 명의 국가유공자와 독립운동가에게 서훈이 추서되는데… 몽양 여운형 선생에게는 국가보훈처 서훈심사위원회에서 극우세력의 반발 등으로 서훈 2급인 대통령장이 추서된다. 그리고 2008년 참여정부의 마지막 날… 노무현 대통령은 몽양 선생에 대한 훈장의 격을 최고 등급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급)으로 높여 다시 추서하는 이례적인 조치를 취한다. 위 사진의 대한민국장은 노 대통령이 몽양 여운형 선생의 명예회복과 예우를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 온 결과인 것이다.


전시실 중앙에 동으로 제작된 몽양 선생의 좌상이 설치되어 있어 방문객들이 선생님 옆에 앉아서 함께 책을 읽는 모습으로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몽양 여운형 선생님, 도산 안창호 선생님과 한 컷… 몽양은 도산의 시국강연에 감화되어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고 한다.
전시실 내 크로마키 시스템을 이용한 포토존에서 스크린에 비치는 18매의 사진 중 원하는 사진을 골라 몽양 선생과 기념사진을 찍고 안내 데스크에서 입장티켓을 제시하여 출력받을 수 있다. 내가 고른 사진은 1936년과 1944년의 사진인데… 몽양 선생님, 도산 선생님과 함께 촬영할 수 있는 정말 영광스런 시간여행이었다.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묘골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몽양생가(夢陽生家)는 함양 여씨가 양평에 입향한 1715년(숙종 41년)에 처음 지어졌다. 1886년 출생해서 1908년 부친 탈상을 끝내고 서울로 이사갈 때까지 이 집에서 살았으며, 해방 전후인 1940년대 초중반에도 종종 내려와서 지냈다. 선생이 떠난 후 점차 퇴락하여 바깥채 지붕이 초가로 변경되었다가 6·25 전쟁 와중에 소실되었는데. 2001년 양평군민들의 노력으로 생가터가 정비되었고, 2008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된 것을 계기로 서거 64주년인 2011년 복원되었다.
집은 기역자의 기와집 안채와 역시 기역자의 기와집 바깥채로 되어 있고, 안채는 돌층계 위에 자리 잡았으며 뒷마당에는 디딜방아가 있다. 안채 방안에는 몽양 선생이 하얀 내의 차림으로 앉아서 면도하는 모습의 모형이 설치되어 있어 친근감을 느낄 수 있다. 집안에 전시된 가구들은 1930년대 이후 선생이 살았던 서울 계동 집에 있던 것들로 후손들이 기증한 것들이다.


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夢陽呂運亨生家·紀念館)은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과 평화통일을 위해 일생을 바친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 몽양 여운형 선생(1886~1947)의 삶과 정신을 널리 알리고자 2011년 11월 27일 개관했다(경기 양평군 양서면 몽양길 66). 입장료는 성인이 1천원이고(단체 8백원), 65세 이상 노인이나 국가유공자 등은 무료입장할 수 있다.


신원역 맞은편 황금어장에서 초계국수에 막걸리 한잔.
이번 씨순길은 내가 추천드린 코스인데… 언제나처럼 현장답사와 모든 준비를 위해 아낌없이 헌신해주신 얼줄 김승주 선생님께 무한 감사드린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했다. 해방공간에서의 여운형 노선은 반드시 재조명되어야 한다. 3·1운동의 불씨를 제공한 장본인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사자후의 웅변가로만 기억해서는 온전히 몽양을 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2014년 6월 8일 일요일

잊지 않을게

6승 1패… 나의 6·4지방선거 전적이다.
시장, 구청장, 시의원, 구의원, 기초비례, 교육감은 당선시켰지만… 광역비례는 실패했다.
불행하고 무섭다. 일단 부정선거 논란은 차치하고, 전통적 지지기반인 영남뿐 아니라 경기도와 인천을 가져가고, 기초단체장과 지방의회까지 장악했다. 이 권력은 국민의 슬픔과 분노를 기레기와 犬찰을 통해 어떻게 조질지 축척된 경험과 동물적인 본능으로 터득하고 있다. 이 권력의 위기관리 시스템은 역설적이게도 세계 톱 수준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단테 신곡(神曲) divina commedia
김희보 편역, 종로서적출판주식회사, 8천원, 1990년 7월 10일 초판 15~16 페이지의 내용…

“부끄러움도 명예도 없이 되는 대로 세상을 살아온 사람들의 가엾은 영혼의 비참한 모습이니라. 신에게 거역하지는 않았으나 충성되지도 않았던 그저 방관하기만 하던 천사들의 비열한 패거리도 저 속에 끼어 있느니라.”

단테는 지옥편을 통해 제노비스 신드롬, 선량한 방관자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일상에서 수시로 얼굴을 마주 대하는 이들의 맨얼굴을 여실히 보여준다.


말할 권리, 행동할 권리, 집회의 권리를 집행한 시간.
함께 산다는 것, 함께 걷는다는 건 참 중요하다. 서두르지 않을 것이며, 내 안의 폭력성도 돌아볼 것이다.
무참히 꺽여진 사월을 이겨내는 희망의 유월 첫 토요일 오후… 정직한 분노에 몸을 맞긴채 가만히 있지 못한 나는 육지경찰이 둘러싼 청계광장에서 촛불을 밝히고 있었다.

2014년 6월 6일 금요일

평생교육사 현장실습생 모집

 평생교육사 실습기관 실습생 모집 공고  

한국여성생활연구원에서는 예비 평생교육사들이
현장에서 실무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할 수 있도록
아래와 같이 평생교육사 실습생을 모집합니다.


① 모집대상 : 평생교육사 자격 취득 예정자로 필수과목을 이수한 학생

② 모집기간 : 연중

③ 모집인원 : ○명

④ 실습목적 : 평생교육사 취득 전 예비평생교육사가
                    평생교육사의 역할에 대한 이해를 제고하고,
                    평생교육 전문 인력으로서 갖추어야 할 역량 및
                    현장 실무경험의 기회를 실질적으로 제공하고자 함

⑤ 실습기간 : 연중 4주간, 160시간(주중반 / 주말반)

⑥ 실습장소 : 1) 한국여성생활연구원
                       서울시 중구 명동 2가 1번지 가톨릭회관 522호
                       (4호선 명동역 10번출구 / 2호선 을지로3가역 12번출구)

                    2) DEDICO 교육·복지 평생교육원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동백3로 11번길8 동백브이타운 401호
                       (에버라인 동백역 2번출구)

⑦ 실습내용 : 프로그램 운영 및 다양한 평생학습사업 관련 업무, 모니터링 등

⑧ 실습비용 : ○○만원

⑨ 문의 : Tel. 02) 727-2471  031) 287-7601
              E-mail. cncmon@hanmail.net

2014년 5월 23일 금요일

55차 목요회 발마사지 강의

2014년 5월 22일 제55차 평생교육사 목요회의 주제는 발맛사지(Foot Massage).
알다시피 발바닥은 신체 오장육부의 축소판이다. 인체의 가장 낮은 곳에 있기에 쉬 더러워지고 피로가 몰리게 된다. 때문에 지압점을 주무르고 마사지를 하면 혈이 잘 통하게 되어 건강에 도움을 준다.


PT 중간에 나온 사진 한장… 숫사자에게 발마사지를 해주는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인근의 동물원 사육사 알렉스 로렌티씨 사진을 보면서 처음엔 설정을 의심했다. 사람의 발마사지 서비스를 받으면서 혀를 쭉 내밀고 행복해하는 사자의 모습이 재미있다.


10년 전부터 독거노인 등 이웃 어르신들께 발마사지와 이혈(귀에 놓는 침) 자원봉사를 기쁜 마음으로 해오고 계시다는 김의순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2014년 5월 12일 월요일

전민동 30주년 기념 치유극… 상처꽃

5월 10일 토요일 오후 3시, 전북민주동우회(全北民主同友會) 박성극 회장님의 초대로…
명륜1가 눈빛극장에서 치유극 ‘상처꽃’을 관람하고, 이어서 전민동 창립 30주년 행사에도 참석했다. 아직 중간고사 시즌 중이라 빠듯한 일정이지만 고맙게 아껴주시고 초대해 주셨기에 참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사치유연극 ‘상처꽃 - 울릉도 1974’는 박정희 독재정권이 유신체제에 맞서는 국민의 저항을 잠재우기 위해 조작한 ‘울릉도 사건’과 그 피해자들의 고통과 복권, 치유에 대한 얘기를 다뤘다.


신다희 회원님의 세월호 참사 추모시 낭송으로 참석자 모두가 엄숙한 분위기에 젖어 들었다.
박성극 선생님은 작은 키며, 얼굴 인상, 언어습관이 외할아버지를 연상케 한다.


전민동은 암울했던 80년대 초반에 지역을 기반으로 탄생하여 오늘까지 꿋꿋하게 민주화운동을 이어오고 있다는 사실도 새로이 알게 됐다. 이분들이 충분한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듯하다.
정동익 선생님, 이은영 선생님, 임진택 감독, 정세균 의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예비후보 등 다양한 분야의 많은 분들을 만나뵐 수 있었다.
돌아가신 어머님이 익산 함라에서 나고 자라셨으니 내 몸의 반쪽은 전북인 셈이다.


2014년 5월 3일 토요일

5월의 도산공원 씨순길

2014년 5월 3일 노란리본을 달고 걸은 씨순길…
실력양성운동, 신민회, 대성학교, 흥사단, 임정 내무총장, 민족개조론, 무실역행으로 유명한 도산 안창호 선생이 영면하고 있는 도산공원을 찾았다.


9시50분: 3호선 옥수역 ②번출구 집결 → 서울숲공원 ⑫번 출입구 → 보행가교 → 사슴우리 → 곤충식물원 → 군마상 → 사색의 길 → 수변쉼터 → 조각공원 → 군마상 → 서울숲공원 ②번 출입구 → 분당선 서울숲역 ③번출구 → (전철 이용) → 압구정로데오역 ⑤번출구 → 도산공원 (약 7㎞) → 마무리: 도산공원 옆 ‘서울家’


길가에 노란리본 민들레꽃… 노란색이 이리도 간절하고 아픈 색이었던가…


민족문제연구소는… 이승만을 찬양하려는 교학사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저자들이 이승만과 대립한 안창호의 업적을 깍아내리려 도산에 대한 서술을 축소·왜곡했다는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더구나 1940년대 독립운동을 다룬 ‘건국준비활동’ 꼭지에서는 이승만이 17번 언급되는 반면에 김구의 이름은 한번도 나오지 않으며, 안창호는 아예 일제하 단원 전체에서 한번도 거명되지 않는다고 민문연은 밝혔다(2013. 9). 사실이 그렇다면 대단한 편향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도산은 조선이 망한 것은 “거짓말하는 지도자들과 거짓을 가까이 하는 백성들 탓”이라 하면서 ‘정직’을 강조하였다.


도산선생은 1937년 동우회사건으로 일제에 피체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병을 얻어 동년 12월 보석으로 출옥하였으나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1938년 3월 10일 60세를 일기로 순국하셨다.
순국 후 망우리에 안장되었다가 1973년 현 도산공원으로 이장되셨으며, 1962년에 건국훈장 중 최고 등급인 ‘대한민국장’에 추서되셨다.


암흑의 시대… 낙망하는 이들에게 도산선생은 말씀하신다. “아무런 곤란이 있더라도 인내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