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2일 목요일

[사람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여성은 이성적으로 미개한 상태에 머물러 있으므로 좀 더 우월한 이성을 가진 남성, 특히 아버지와 남편에 의해 교화되어야 하는 존재다.”

여자로 살기 - 역사 속의 그 여자 -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여성은 이성적으로 미개한 상태에 머물러 있으므로 좀 더 우월한 이성을 가진 남성, 특히 아버지와 남편에 의해 교화되어야 하는 존재다.”
유교의 삼종지도냐고? 아니다. 서양의 대표적 계몽사상가 장 자크 루소의 말이다. 계몽사상가들의 열린 생각, 트인 눈을 남몰래 흠모해 오던 독자라면 깜짝 놀랄지 모르겠다. 루소를 비롯한 계몽사상가들은 인간의 이성을 강조하면서 인간은 누구든 공평한 기회를 누려야 한다고 역설하지 않았나. 유감스럽게도 계몽사상가들이 말한 ‘인간’은 남성이지 여성은 아니었다. 지금 서유럽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상당히 높아졌지만, 300년 전만 해도 여성을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러한 루소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이성을 갖고 있으며 여성이 복종할 대상은 이성이지 아버지나 남편이 아니라고 주장한 이가 바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다.

여성은 이성적 존재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한때 스스로 ‘루소와 사랑에 빠졌다’고 할 만큼 루소의 사상에 심취했다. 루소가 말한 ‘천부인권’이라든가 ‘자연법’ 사상에 깊이 공감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곧 루소로부터 벗어나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게 된다. 그 결실이 《여권옹호론》이다.
《여권옹호론》은 오늘날 페미니스트들의 성서 또는 페미니스트 선언문이라 불린다.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성 문제와 그 해결 방법을 제시한 최초의 체계적 저술이다.
하지만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제대로 인정받기까지는 무려 한 세기 반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이의 사상에 대한 재평가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건 1970년대 들어 유럽에 여성운동이 새 바람을 일으키면서부터다. 이유는, 메리의 삶이 유독 짧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순탄치 못한 결혼 생활로 그이가 남긴 업적의 가치가 왜곡된 탓이기도 하다.
메리는 서른세 살 때 《여권옹호론》을 썼다. 《여권옹호론》을 쓰기까지 메리의 삶을 더듬어 보자.
메리는 1759년 영국 런던에서 몰락한 상인의 맏딸로 태어났다. 가난 때문에 그이는 정식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가난보다 더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부모의 끊임없는 불화였다. 어머니의 삶을 지켜보며 메리는 ‘결혼이란 여성에겐 견딜 수 없는 짐이요, 여성을 노예보다 더 비참하게 만드는 굴레’라고 생각하게 했다. 메리에게 결혼은 ‘법으로 보장된 매춘’일 뿐이었다.
메리는 학교에 다니지 못했지만 열여섯 살 때 아는 목사에게 교육을 받았다. 영리하고 배움에 열성적이었던 메리는 실력을 인정받아 귀족 집안 아이들의 놀이 상대, 가정교사, 부유한 가정의 말 상대 노릇을 하며 가족을 부양했다.
부유한 상류 집안을 드나들며 메리는 호화로운 저택 서재에 장식품처럼 꽂혀 있는 책들을 읽어 치웠다. 그이가 본 상류사회 여성들은 오로지 ‘즐기는 일’에만 열중하는 사람들이었다. 연극, 무도회, 트럼프, 무도회……. 너무 어리석은 삶이라고 그이는 생각했다.
상류든 하류든 여성이 무기력한 존재이긴 마찬가지라고 깨달은 메리는 그 근원을 찾기 시작했다. 그이는 여성이 이성적으로 미개하고 지적으로 열등하다고 여겨지게 된 근본 이유가 사회제도의 모순, 특히 불평등한 교육제도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다. 잘못된 교육 때문에 여성은 스스로가 이성을 지닌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며, 설령 깨닫는다 해도 이성을 어떻게 가꾸고 드러내야 할지 전혀 모르고 있단다.
메리는 자신의 생각을 펼칠 수 있는 조그만 학교를 운영할 꿈을 키웠다. 1784년 마침내 부유한 친구의 도움을 받아 뉴잉턴 그린에 학교를 열었다. 그이 나이 스물일곱 살 때 일이다.
그러나 학교는 1년이 채 못 가 문을 닫고 만다. 여동생 엘리자의 남편이 방해한 탓이다. 엘리자는 남편의 구타에 시달리며 불행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메리는 엘리자를 도망치게 하여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남편의 횡포가 아무리 심해도 법률상 남편의 ‘소유물’인 아내가 집을 나온다는 건 그때로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엘리자의 남편은 메리를 비방하며 메리가 운영하는 학교의 평판을 떨어뜨려 결국 문닫게 하고 말았다.

혁명 한복판에서 태어난 《여권옹호론》
메리는 학교를 운영하면서 진보적 지식인들과 사귀었고 이들의 도움으로 책을 써 나가기 시작했다. 그때 바다 건너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났다. 메리는 열광했다. 여성의 지위가 변화되려면 교육제도가 바뀌어야 하고, 교육제도가 바뀌려면 사회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 때문이다.
메리는 혁명의 열풍이 몰아치는 프랑스로 건너가 토머스 페인, 콩도르세, 탈레랑 같은 내로라하는 혁명가들과 만나며 생각을 가다듬었다. 여기서 《여권옹호론》이 탄생한다.
《여권옹호론》은 탈레랑의 <공공교육에 대한 보고서>의 답신 형식을 띠고 있다. 탈레랑은 혁명 후 프랑스가 어떤 교육을 해야 할 것인가 계획하면서 <공공교육에 대한 보고서>를 썼는데, 메리가 이에 대해 《여권옹호론》을 내놓은 것. 《여권옹호론》을 읽은 탈레랑은 프랑스 교육위원회가 교육안을 만들 때 메리를 참여시키도록 주선했다.
메리는 《여권옹호론》에서 여자 어린이의 교육을 특히 강조했다. 유아기야말로 인격 형성에 가장 중요한 시기니만큼, 여성이 민주적 권리를 행사하려면 유아기 때부터 평등한 여성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이는 주장했다. ‘다섯 살부터 여덟 살까지 남녀 구별 없이 똑같이 옷을 입히고 자유롭게 배우고 동등한 교육 과정을 이수하도록 남녀공학을 실시해야 한다’ ‘종교, 윤리 같은 과목뿐 아니라 신체 단련을 위한 체육을 중심으로 교과 과정을 짜야 한다’ ‘여성이 신체적 열등함을 극복하려면 어려서부터 남성과 같은 신체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요즘은 초등학교부터 남자와 여자가 같은 교실에서 같은 내용을 공부하는 게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지만, 그 무렵 남자와 여자가 한 자리에서 더구나 같은 내용을 배워야 한다는 주장은 충격일 만큼 과감한 것이었다.
프랑스혁명은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 시대를 맞았다. 메리는 혁명에 실망을 느꼈다. 그러던 1793년 2월, 영국이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했다. 자기 나라로 혁명의 불똥이 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은 영국, 오스트리아, 독일이 동맹을 맺고 프랑스를 공격한 것이다.
프랑스에 살고 있던 영국인들은 스파이로 몰릴 위험에 빠졌다. 메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신변의 위험을 느낀 메리는 전부터 알고 지내던 미국인 사업가 길버트 임레이와 동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자 임레이는 등을 돌렸다. 메리는 템즈강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려 했다. 두 번에 걸친 메리의 자살 미수는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이윽고 메리는 영국으로 돌아와 옛 동료 고드윈과 결혼했다. 둘 다 기존 결혼 제도에 비판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으므로 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동거하다가 메리가 임신을 하자 합법적인 절차를 밟았다.
그러나 메리는 딸을 낳은 지 열흘 만에 출산후유증으로 세상을 떴다. 그때 나이 서른여덟. 《여권옹호론》을 발표한 지 5년 만의 일이다.
이듬해 고드윈은 메리의 어린 시절 급진 서클 활동, 연애와 자살 미수, 자신과의 결혼 생활을 솔직하게 쓴 회고록을 출판했다. 그이의 회고록은 사람들로 하여금 메리를 사생활 복잡한 자유분방한 여성으로 여기게 했다.
그때 신문은 메리를 가리켜 ‘철학적 바람둥이’라 했고, 여성으로서 훌륭한 행동은 하지 않고 그럴 듯한 주장만 앞세운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메리의 사상이 지닌 가치를 이해해 보려는 노력은 숨을 죽였다. 메리는 페미니즘과 도덕적 방종의 상관관계를 입증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지목되었다. 메리가 선구자 같은 업적을 남겼는데도 뒤늦게야 인정받게 된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한 세기 반이 지나서 메리의 사상은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지금 우리가 메리를 잘 알지 못하는 건, 우리 사회에서 여성문제에 대한 인식이 어디까지 와 있는가를 알게 해 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여성 최고의 행복은?
여성에게 인생 최고의 행복은 뭘까? 메리는 대답한다. 남성에게 경제적 정서적으로 의존하는 상태에서 벗어나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고 사회에 ‘쓸모 있는 시민’이 되어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사는 것이라고.
쓸모 있는 시민이란 사회에서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분야에서 일하는 것을 말한다. 새로운 사회의 여성은 사회적으로 쓸모 있는 존재여야 한다는 것이 그이의 믿음이었다.
그이는 사회 참여의 한 방법으로 훌륭한 어머니가 되는 길을 제시했다. 자녀를 바르게 교육시키는 일은 하나의 당당한 ‘직업’이라고. 이 주장은 당시 영국 여성들에게 아주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특히 중산층 여성들에게.
메리의 생각은 사회적 지위 향상과 정치 참여를 갈망하던 당시 영국 중산층, 부르주아 여성들을 대변하고 있다. 그이는 18세기 영국 중산층 여성들을 사회의 중요하고도 쓸모 있는 구성원으로 당당히 복권시켜 놓았다. 혁명이 끝나고 유럽 사회를 이끈 새 세력이 부르주아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메리가 부르주아 여성들이야말로 새로운 사회의 주역이 될 거라고 생각한 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오늘날 메리는 온건한 중산층 여성운동가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러나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지닌 자연인임을 아무도 자신 있게 말하거나 체계 갖추어 설명해내지 못하던 그때, 여성에 대한 억압과 불평등의 원인을 분석하여 해결책을 제시하고 여성문제를 사회 개혁과 연결시켜 파악한 그이의 업적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메리의 딸들은 어찌 되었을까? 고드윈과의 사이에서 태어나 어머니의 이름을 물려받은 딸 메리는 시인 셸리와 결혼했으며 소설가가 되었다. 《프랑켄슈타인》의 저자가 바로 딸 메리다.

2009년 7월 1일 수요일

[사람들] 캐롤 길리건



캐롤 길리건 Gilligan, Carol (1936 ~ )
미국 페미니스트, 발달 심리학자, 윤리학, 하버드 대학에서 사회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30년 이상 교수로 일했다. 1982년에 나온 그녀의 대표작 <<다른 목소리로>>는 하버드 대학신문에서 ‘혁명을 출발시킨 작은 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984년에는 페미니즘 잡지 <미즈>가 뽑은 ‘올해의 여성’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1996년 <타임>지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5명을 선정해 커버스토리로 다뤘는데 길리건은 앨 고어, 캘빈 클라인, 로버트 레드포드 등과 함께 뽑혔다. ‘단 한권의 책이 심리학의 법칙과 통설을 바꾸고 의학연구의 가설들을 수정하게 함은 물론 남성과 여성, 남아와 여아의 차이점에 대한 부모와 교사, 그리고 발달 관련 전문가들의 대화를 송두리째 바꿔버린 것’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었다. 간단히 말해 길리건은 심리학 내부에 여성의 목소리를 가져옴으로써 심리학의 목소리를 바꾼 것이다.

<<다른 목소리로>>에서 길리간은 당시 발달심리학의 정설로 여겨지고 있던 콜버그의 이론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콜버그는 경험적인 관찰을 통해, 모든 사람들의 권리에 대한 평등과 상호성을 보장하는 정의의 원리를 자신의 도덕원리로 채택하는 사람이 도덕적으로 성숙한 행위자라는 ‘정의의 입장 justice perspective’을 취했다. 도덕적 성숙에 이르는 데는 6개의 발달단계가 있는데 마지막 6단계에서 도덕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정의의 원리를 자신의 최고 행위원리로 채택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콜버그의 모델에 따라 연구결과를 살폈을 때 5단계나 6단계에 이른 경우는 대부분 남성들이었고 많은 여성들은 3단계(행위의 옳고 그름이 주위사람들의 평가에 달려있는 단계,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거나 그들을 만족시키는 행위가 옳은 행위다)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이런 결과는 여성의 도덕적 판단능력이 남성에 비해 열등하다는 통념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길리건이 착목한 것은 바로 그 지점이었다. 도덕적 성숙의 기준이 과연 정의의 원리 뿐인가. 지금까지 남성들은 권리의 개념을 강조해왔고 여성들은 보살핌의 행위를 중시해온 현실을 고려할 때 남성의 입장에서 여성을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길리건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여러 연구들을 수행해 남성과는 다른 여성의 도덕적 성숙과정을 추론해냈다. 이 새로운 모델에서 발달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5단계로 구성되는데 마지막 5단계에서 행위자인 여성은 다른 사람 뿐 아니라 자신에 대해서도 부당한 착취와 가해를 막아야 하고 자신도 보살핌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보살핌의 원리를 ‘도덕적 판단의 보편적인 자기 선택적 원리’로 채택하게 된다. 정의의 입장과는 다른 ‘보살핌의 입장care perspective’을 제시한 것이다.

길리건은 자율성과 독립성이 사랑과 보살핌에 바탕한 상호의존성이나 친밀성보다 더 바람직하고 우위에 있다는 콜버그의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와 함께 추상적인 정의의 원칙보다 구체적인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중시하며, 정의의 개념조차 타인에 대한 배려에 종속시키면서 타협을 선호하는 여성들의 태도를 옹호했다. 남성의 입장에서는 도덕적으로 열등한 행위가 여성의 입장에서는 도덕적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정의의 원리는 개인들이 갖고 있는 권리를 강조하면서 결국 서로 간에 벽을 쌓도록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문제도 거꾸로 제기될 수 있었다.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정의의 입장을 상대화시킨 것이다. 이와 함께 분리의 개념에 익숙한 채 사람들 간의 경계선을 만들고 유지하느라 바쁜(남성) 사회에서 인간관계, 사람들 간의 연결에 항상 유의하고 있는 여성의 존재가 가치있게 부각되기도 했다.

그러나 길리건이 새롭게 제시한 보살핌의 입장, 보살핌의 윤리는 왜 여성들이 그런 특성을 보이게 됐는지, 가부장제의 산물이 아닌지에 대한 고찰이 없으며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그대로 인정함으로써 여성의 종속을 유지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성차별적 본질주의란 비판을 받기도 했다. 바로 그 때문에 사회의 갈채를 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길리건이 전통적으로 무시돼 온 여성들의 도덕적 관점을 드러내고, 그것이 결코 열등하지 않으며 오히려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페미니즘 뿐 아니라 학문과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친 점만은 부인할 수 없다. <<도덕 영역의 지도그리기>>, <<연결하기>>, <<목소리와 침묵 사이에서>> 등의 책을 냈고 1992년에 출간한 <<교차로에서 만나기>>는 그해 뉴욕타임즈의 주목할 만한 책에 선정됐다. 의학박사인 제임스 길리건과 결혼해 아들 셋을 두었다.

- 출처: 김신명숙. 2007. <<김신명숙의 선택>>. 이프. pp. 335-7.

2009년 6월 24일 수요일

[책] 미래에서 온 편지


현경의 『미래에서 온 편지』는 조카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에세이로, 이 땅의 젊은 여성들을 위한 ‘여신의 십계명’입니다.
진보신학의 명문인 뉴욕 유니언 신학대학의 첫 아시아 여성 종신교수이자 세계적인 신학자이며 여성·환경·평화운동가.
그런 그가 1999년 히말라야에서 새 삶을 만납니다.
살림이스트로서의 여성성을 되찾는 것.
그것은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성인데요.
9.11테러를 가부장적 종교 근본주의와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충돌로 전제한 그녀는 여성성만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하죠.
저자의 편지는 숱한 고통과 배반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삶을 사랑한 우리 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우리 세대의 ‘진실의 결정체’ 입니다.
10개의 챕터에는 ‘여성으로 사는 것’에 대한 차분한 성찰과 치유의 힘을 가진 여성성에 대한 믿음이 담겨 있는데요.
다른 종교까지도 포용하고, 제3세계 아시아 여성의 눈으로 신학을 재해석해 ‘마녀’로도 비난받았지만, 누구보다 당당한 한 여성 신학자.
그런 그녀가 쓴 『미래에서 온 편지』는 이 땅의 수많은 조카딸들을 따뜻하고 씩씩한 본래의 여성성으로 이끄는 친절한 안내자입니다.

지구 살림 민병대
여성 전사들에게 보내는 여신의 십계명

1. 여신은 자신을 믿고 사랑한다.
2. 여신은 가장 가슴 뛰게 하는 일을 한다.
3. 여신은 기, 끼, 깡이 넘친다.
4. 여신은 한과 살을 푼다.
5. 여신은 금기를 깬다.
6. 여신은 신나게 논다.
7. 여신은 제멋대로 산다.
8. 여신은 과감하게 살려내고 정의롭게 살림한다.
9. 여신은 기도하고 명상한다.
10. 여신은 지구, 그리고 우주와 연애한다.

2009년 6월 23일 화요일

살림이스트


- 에코페미니즘이란 생태학 혹은 인간과 자연의 합치를 근본이념으로 추구하는 생태주의의 개념과 페미니즘의 합성어로서, 1980년 초에 여성운동과 함께 환경운동을 접목한 프랑스와즈 드본느(Francoise d'Eaubonne)가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성학자 현경이 『미래에서 온 편지』를 통해 구체적으로 에코페니즘의 실천가로서 ‘살림이스트’ 선언을 한 적이 있다.
- ‘살림이스트’ 한국의 에코페미니스트 혹은 한국 에코페미니스트의 비전에 참여하고 싶어하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의미한다.
- 살림이스트는 모든 것(특히 죽어가는 지구)을 살아나게 한다.
- 살림은 한국 여성이 매일 하는 가정 일을 일컫는다. 예를 들면 나무하기, 물 긷기, 음식하기, 빨래하기, 베 짜기, 아이 키우기, 병간호, 노인 돌보기, 꽃나무 가꾸기, 우물 지키기, 소 닭 개 키우기, 그리고 집의 영(靈)들을 돌보기 등이 살림이다.
- 살림은 또한 망가지는 것(냄비, 신발, 그리고 가슴 등)을 고치는 일을 일컫는다. 한국 사람들이 “저 여자 살림꾼이네”하고 말하면 그것은 그 여성이 모든 것을 살아나게 하는 기술, 예술 전문성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처럼 에코페미니즘은 모든 종류의 대결구도를 극복하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추구하는 데 관심을 가진다. 이러한 대안적인 움직임은 페미니즘 제 3의 물결이라고 할 수 있다.

2009년 6월 22일 월요일

[책] 비치: 음탕한 계집


Bitch: In Praise of Difficult Women

제목부터가 도발적인 이 책은 98년, 출간과 동시에 첨예하게 엇갈린 반응으로 화제를 모았는데요.
가장 명확한 관점의 출발이자 이 책의 핵심코드를 관통하는 단어 ‘비치’
저자인 엘리자베스 워첼은, 단지 성적 매력이 넘치거나 자아가 강하거나 다루기 힘들다는 이유로 ‘비치’로 격하된 수많은 여성들을 변론합니다.
13세 때 당한 강간의 강박관념으로 방탕한 생활을 하다 유부남이던 애인의 아내를 살해한 16세 소녀 에이미.
에이미는 지금도 1급 살인죄로 복역중이지만 그녀를 성적으로 이용했던 남성들은 경험담을 언론에 팔아 엄청난 이익을 챙겼습니다.
이른바 '헤픈 여자'의 종말은 언제나 비참하고, 상대 남성들은 언제나 당당한 현실.
이 불공정한 법칙에서 저자는, 성녀를 요구하는 문화와 요부에 열광하는 사회의 이중성을 통렬하게 질타하며, 여성들을 향해 ‘당당히 비치가 되라’고 주문하죠.
한편, 자살한 헤밍웨이의 손녀, 힐러리 클린턴, OJ 심슨에게 살해당한 그의 아내 등 ‘요부’로 지목됐던 이들을 둘러싼 풍문과 진실, 비밀과 거짓말의 담론이 각 장마다 흥미롭게 전개되는데요.
페미니즘이란 주제의 무거움이 별반 느껴지지 않는 건 그 때문입니다.
물론 수많은 미국 내의 사건과 낯선 인명과 지명에 주춤하게 되고, 적지 않은 독자들이 워첼의 속사포 같은 독설에 당혹해 하지만, 이 책은 차세대 페미니스트의 대표주자이자 칼럼니스트인 저자의 위트와 열정이 살아있는 페미니즘의 한 시선으로 읽히고 있습니다.

2009년 6월 21일 일요일

[영화] 파이널 환타지



2065년, 과학혁명을 통해 엄청난 발전을 이룩한 지구는 보이지 않는 에일리언들의 공격으로 엄청난 혼란을 맞게 된다.
그들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로부터 에너지를 빼앗고, 과학시설을 파괴해 간다.
이러한 외계의 습격을 피해 방벽도시를 만든 인류는 힘겨운 생존을 하고 있다.
에얼리언의 공격으로부터 지구들 구하려는 인간들의 노력은 이어지고, 호전적인 하인 장군은 외계인들뿐 아니라 지구마저도 멸망시킬 수 있는 제우스포를 사용하려 한다.
한편, 여성 과학자 아키는 스승의 도움으로 지구 생명체들의 영혼이 지구를 구하는 길임을 발견하고 영혼 채집에 나서는데...
아키는 인간을 공격한 것이 괴물이 아닌 생명들의 영혼이며, 그들의 공격은 인류를 향한 일종의 경고임을 알게 된다.
결국 그녀는 지구의 영혼 ‘가이아’라는 것을 밝혀내고 하인장군에 맞서 모험을 감행한다.
가이아는 대지의 여신이자 생명의 모태로서, 궁극적인 여성성이다.
‘전멸 위기인 인류가 생명의 모태를 찾아 부활을 꿈꾸다.’
이브의 말대로, 폭력과 전쟁으로 얼룩진 남성중심의 모더니즘을 해결하기 위해 이제는 어떤 시각이 필요할지를 보여주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