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7일 월요일

장미꽃 없는 장미동

 2019년 가을, “장미꽃 없는 장미동”이란 타이틀로 군산 원도심 답사를 진행했었다. 지난 토요일에 가보니 그사이 장미동(藏米洞)에 장미꽃(薔薇花)을 심어놨더라.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짜놓은 대로 ①뜬다리 부두 ②조선은행 군산지점 ③군산근대역사박물관 ④조선식량영단 군산출장소 ⑤군산세관 본관·창고를 둘러보았다. 빠듯한 일정상 장미동의 △舊18은행 군산지점 △舊미즈상사는 둘러보지 못해 아쉽다. 조선은행의 함석지붕은 녹이 슬었는데, 나카무라 요시헤이가 호명되고 이런저런 건축적 기법과 복원의 과정이 소개되었다. 5년 전과 비교했을 때 가장 큰 변화를 보인 것은 조선식량영단 군산출장소 건물이었다. 외벽의 색채부터 하늘색에서 노란 계통으로 바뀌어 있었다.


건축을 주제로 한 답사여서 째보선창이나 짬뽕, 화교, 적산 이야기는 물을 수 없었다. 채만식의 장편 「탁류(濁流)」의 배경이 군산 원도심이다. 90여 년 전 소설 속 정초봉과 고태수가 걸었을 해망로는 차들이 제법 통행한다. 원도심에선 아직도 멍멍이 4종을 캐릭터로 밀고 있는 모습이다. ‘쌀(수탈)’이나 ‘월명(月明)’ 등을 내세운 군산만의 독특한 지역브랜드를 보고 싶다. 일제의 (쌀)수탈의 현장과 우리의 전통문화를 삭제하고 일본제국의 왜색문화를 이식하려 한 흔적을 겉핥기라도 들여다보려면 적어도 1박2일은 돌아봐야 한다.


<>군산 나포면 서포리 ‘옹고집쌈밥’에서 점심을 먹었다. 폐교된 서포초등학교를 개조한 식당이다. 교사 앞에 옥색 동상이 있는데, 하단에 “반공소년 이승복”이라 음각돼 있다.


<>구 조선식량영단 군산출장소


<>‘인문학창고 정담’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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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내셔널트러스트… 군산 원도심 현장답사

‘헤리티지 오픈하우스’로 건축 시간여행

http://www.kw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424


한국내셔널트러스트(이사장 조명래)는 10월5일(토), 과거와 현재를 잇는 건축 복원 기술 현장답사 ‘헤리티지 오픈 하우스(Heritage Open house)’ 군산편을 진행했다.

이날 답사는 송석기 교수(군산대 건축공학부)와 이창배 소장(제이엠 건축사사무소)이 맡아 안내했다. 군산 원도심의 몇몇 답사지를 좇아본다.


① 군산 내항 뜬다리 부두(부잔교)

‘뜬다리 부두’라는 별명을 가진 부잔교는 물에 뜰 수 있는 부체를 길게 연결하여 배가 정박할 수 있도록 만든 구조물이다. 간조와 만조의 수위 변화와 무관하게 대형 선박을 접안시키기 위해 조성하였다. 군산항의 제3차(1926~1932)와 제4차(1936~1938) 축항공사를 통해 6개의 부잔교가 설치되었는데, 현재는 3개만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해마다 쌀수확량의 절반가량이 일본으로 반출되었다. 그중 25%인 220만석 정도가 군상항을 통해 나갔다고 한다.

부잔교는 영화 「타짜」(2006)에서 고니(조승우 扮)가 아귀(김윤석 扮)와 한판을 벌이기 위해 건넜던 다리로 등장한다.


②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일제강점기에 식민지 경제수탈을 지휘했던 조선은행의 군산지점이 있던 곳이다. 1909년 대한제국의 국책은행인 舊 한국은행이 병합 이후 조선은행으로 개칭되어 조선총독부의 직속 금융기관 역할을 담당했다.

나카무라 요시헤이(中村與資平)가 설계하여 1922년 준공한 건물은 외벽에 붉은 벽돌과 대리석을 사용하였다. 정면에 돌출 현관을 중심으로 평아치를 5개 세우고, 양쪽에 각각 1개씩 반원형 아치를 두었으며, 외벽 중간 보머리를 상징하는 화강석을 끼워 장식하였다.

광복 후에는 한일은행 군산지점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한때는 민간으로 넘겨져 나이트클럽 등으로 변용되어 내부 구조가 많이 바뀌고 화재를 겪기도 했다. 2008년 보수·복원 과정을 거쳐 현재 군산 근대건축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채만식의 장편 「탁류(濁流)」(1937~38)에서 정초봉의 남편 고태수가 근무했던 ××은행이 이곳 조선은행 군산지점이다.


③ 군산근대역사박물관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은 과거 무역항으로 해상 물류·유통의 중심지였던 옛 군산의 모습을 보여주고, 근대문화 자원을 전시하는 곳이다. 박물관 건물은 1920년대 근대도시 이미지를 형상화해 설계한 것으로, 2010년 공공디자인 부문 우수디자인상을 수상했다. 로비에 들어서면 왼편으로 1912년 어청도에 축조된 하얀색 등대 모형을 볼 수 있다. 1층은 해양물류역사관, 2층은 옥구농민항일항쟁 기념전시실, 3층은 근대생활관으로 관람객을 맞는다.


④ 구 조선식량영단 군산출장소

중일전쟁 이후 일제가 종합적인 식량관리통제 시스템으로 설립한 조선식량영단의 군산출장소 건물이다. L자형의 철근 콘크리트 건물은 초기 양식주의에서 모더니즘 경향을 일부 보여주는 과도기적 특징을 나타낸다. 미곡수탈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건물로 역사적 가치가 있다.

영화 「화려한 외출」(2007)에서 강민우(김상경 扮), 박신애(이요원 扮), 강진우(이준기 扮)가 함께 영화를 보던 문화극장으로 등장했다.


<>5일 낮, 2024년 ‘헤리티지 오픈하우스’ 군산편 참가자들이 ‘舊 조선식량영단 군산출장소’ 건물을 돌아보고 있다.(사진=김금호)


⑤ 구 군산세관 본관, 창고

수출입 세관업무를 보도록 설치한 군산세관의 청사 건물로 순종 때인 1908년에 완성되었다. 설계자는 독일인 건축가로 알려졌는데, 물고기 비늘모양의 슬레이트 지붕 위에 3개의 첨탑이 솟아 있다. 현재 호남관세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창고 건물은 2018년 ‘인문학창고 정담’ 카페로 재탄생하였다.


<>10월5일, 2024년 ‘헤리티지 오픈하우스’ 군산편 참가자들이 ‘인문학창고 정담’에서 질의응답 시간을 갖고 있다.(사진=김금호)


이날 답사 참가자들은 카페 정담에서 차와 커피를 나누며 △우리 곁에서 생생한 역사를 간직한 문화유산은 과거로부터 수리와 복원을 거친 시대적 산물이며 △복원이란 단순히 과거의 건축물을 재현하는 작업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문화적, 역사적 가치를 되살리는 과정이 돼야 함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건축답사 프로그램을 마무리했다.


2024년 ‘헤리티지 오픈하우스’ 프로그램은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이 주최하고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위탁주관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2024년 10월 4일 금요일

프란치스코(아씨시)와 토마스 아퀴나스

작가 G.K. 체스터튼(Chesterton)은 전기에서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St. Francis of Assisi, 1182~1274)와 성 토마스 아퀴나스(Saint Thomas Aquinas, 1225~1274)를 이렇게 비교하고 있다.

성 프란치스코는 여위고, 날씬하며, 실같이 가냘프고 활의 줄같이 진동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일평생은 돌진과 질주의 연속이었다. 거지를 뒤쫓아가고, 벌거벗고, 수풀 속으로 뛰어들고, 낯선 배에 올라타는가 하면, 회교군주의 천막 속에 덤벼들었고, 불 속에 투신할 것을 자청하기도 했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줄기만 앙상한 나무에 매달려 바람 앞에서 끝없이 춤추는 가을잎 같았다. 그러나 사실은 바로 그 자신이 바람이었다.

반면에 성 토마스는 비대하고 육중한 황소같은 사람이었다. 비만하고 동작이 느리고 과묵했다. 지극히 온화하고 관대하였으나, 별로 사교적은 아니었다. 때때로 경험하지만 깊이 숨겨온 황홀상태나 무아지경은 그만두고라도, 그는 뭔지 모호해 보이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갑자기 그가 나타났을 때는 성직자들까지도 그를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성 토마스는 그가 늘 다니던 학교의 학자들까지도 저능아라고 생각할 정도로 우둔했다. 참으로 그는 자기의 꿈을 적극적이고 활발한 사람들에게 침해당하기보다는 오히려 자기가 저능아로 알려지기를 원하는 학생같았다.

성 프란치스코의 패러독스가 시에 대해서는 흥미를 가지면서도 서적에 대해서는 불신했던 것이라면, 성 토마스가 책을 사랑하고 책으로 살았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그는 「캔터베리 이야기」 속에 있는 성직자 혹은 학자들과 똑같은 생활을 했으며, 이 세상의 어떤한 재물보다도 아리스토텔레스의 1백권의 책과 그 철학을 소유하기를 원했다. 신에게 무엇에 대해 가장 많이 감사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한 마디로 “내가 지금까지 독서한 모든 페이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사람들이 아리스토텔레스를 오해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절대적인 것과 우연적인 것에 대한 모든 세세한 구분과 연역(演繹)을 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 폴 데이비스 저, 류시화 역, 「현대물리학이 발견한 창조주」, 정신세계사,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