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
발언될 수 있는 것은 분명하게 발언되어야 하고, 할 말이 아무것도 없는 사항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켜야 한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기”
2025년 1월 21일 화요일
스트롱맨의 귀환
2025년 1월 12일 일요일
저팔계 저오능 저강렵
나는 나는 저팔계 왜 나를 싫어하나
나는 나는 저팔계 도대체 모르겠네
나의 심술 때문에 나를 그렇게 싫어하나
나도 알고 보면은 너무나 착한 사람(?)이야
나는 나는 저팔계 왜 나를 싫어하나
나는 나는 저팔계 도대체 모르겠네
당나라 삼장법사인 현장의 세 제자 손행자, 저팔계, 사화상의 법명은 각각 손오공(孫悟空), 저오능(猪悟能), 사오정(沙悟淨)이다. 둘째 제자 저팔계는 본명이 저강렵(豬剛鬣)으로 9발 쇠스랑인 3,000㎏짜리 상보심금파(上寶沁金耙)를 병기로 사용하며, 36가지 둔갑술을 시전한다.
본래 천계의 은하수를 다스리던 천봉원수였는데, 월궁 항아를 희롱했다가 인간계로 추방당하여 암퇘지의 뱃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출생 후 어미와 형제를 물어 죽이고, 복릉산 운잔동에 기거하며 오가는 사람들을 잡아먹는다. 그러다가 관세음보살과 혜안행자를 만나 저오능(돼지 저, 깨달을 오, 능할 능) 법명을 받고, 천축국 뇌음사의 불경을 구하러 가는 일행에 합류한다. 본명처럼 알려진 저팔계(猪八戒)란 별명은 불자에게 금지된 5가지 음식과 도가에서 금하는 3가지 음식에서 유래했다.
먹을 것을 밝히는 식탐을 끝까지 버리지 못해서인지 마침내 여정을 끝내고 서천에 도착한 이후 손오공은 투전승‘불(佛)’, 사오정은 금신‘나한(羅漢)’으로 봉해지는 반면 저오능은 부처가 되지 못하고 정단‘사자(使者)’에 그치게 된다.
기질은 미련하고 게으르고 겁이 많다. 상황파악에 어둡고 눈치없이 말을 함부로 내뱉거나 무례한 행동으로 시끄러운 민폐 캐릭터가 허영만 원작의 애니메이션 「날아라 슈퍼보드」(1990)에서 그대로 재현됐다.
만화에서도 식욕, 색욕, 물욕을 보인다. 무기는 바주카포로 강화됐다. “안녕하셔, 나는 저팔계셔, 한잔하셔.”와 같은 특유의 ‘하셔체’로 인기를 끌었다. 주인공인 Mr. SON조차도 갖지 못한 테마송(저팔계송)을 보유하고 있다.
치키치키 차카차카 초코초코초/ 나쁜짓을 하면은
치키치키 차카차카 초코초코초/ 우리에게 들키지
2024년 12월 31일 화요일
독립기념관에서 아우내 거쳐 청남대로
지난 11월에 연구원 12월 소풍지로 청남대를 선정했었다. 그런데 12월 3일(火) 밤, 야저가 돌연 GR발광을 시전했다. 다행+자랑스러운 시민들의 도움을 받은 국회가 무도한 계엄을 해제시키고 탄핵소추를 가결한 후여서 20일(金)에 예정대로 나들이를 다녀올 수 있었다.
독립기념관 ‘겨레의 시련관’에서 독립만세를 외치고, 아우내(병천)장터에서 순대국으로 점심을 나누었다. 청남대 산책길에서는 사무라이 조직에서 건너온 ‘大統領’ 직함과, 폐하-전하-저하-합하 아래의 ‘가카閣下’ 용어에 대해 얘기하며 민주제의 3권분립을 되새겼다.
送(보낼 송) 故(옛 고) 迎(맞이할 영) 新(새 신)…
송구영신은 송고영신에서 유래했다. 이전의 관리(舊官·전임자)를 보내고 새로 부임하는 관리(新官·후임자)를 맞이한다는 뜻이니 오늘같이 해넘이 수세(守歲)하는 밤에 딱 어울리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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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생활연구원, 독립기념관·청남대 나들이
참가자 “독립의 의미, 삼권분립의 가치 되새겨 뜻깊다”
http://www.kw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461
한국여성생활연구원(교장 정찬남)이 현장에서 우리나라 현대사를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한국여성생활연구원 문해 학습자와 교·강사는 지난 12월 20일(금) 천안 독립기념관과 청주 청남대 나들이를 다녀왔다.
오전 10시경, 천안시 목천읍 독립기념관에 입장한 학습자들은 해설사의 전시 설명을 들으며 교과서에서 배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되새겼다.
이어서 유관순 열사가 활동했던 아우내장터 인근의 순대국 전문점에서 점심을 나눴다. 아우내는 “2개의 내가 아울러 합쳐지는 곳”이란 우리말이다. 현재는 아우를 병(竝)에 내 천(川)자를 쓴 병천(竝川)이란 지명으로 더 알려져 있다.
<>20일 현장 체험학습에 나선 한국여성생활연구원 학습자들이 천안 독립기념관 들머리에서 기념 촬영하고 있다.
오후에는 청주시 상당구의 청남대로 이동하여 본관동을 견학하고 대청호변을 산책했다. 청남대는 1983년 ‘봄을 맞이한다’는 의미의 영춘재(迎春齋)로 준공됐다가 1986년에 현재의 청남대(靑南臺·남쪽 청와대)로 개칭되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일반에 개방한 것을 기준으로 권력의 공간으로 20년(1983~2003)을 보내다가 시민의 공간으로 21년(2003~2024)을 지내왔다.
나들이에 함께한 한 학습자는 “대통령이란 말이 일본 사무라이 용어에서 온 말이라는 걸 처음 알게 됐다”면서 “포근한 날씨에 알찬 공부가 된 보람찬 나들이였다”고 소감을 전했다.
2024년 12월 29일 일요일
이태석 신부의 묵상
십자가 앞에 꿇어 주께 물었네 오-오-오-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이들
총부리 앞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이들을
왜 당신은 보고만 있냐고
눈물을 흘리면서 주께 물었네
세상엔 죄인들과 닫힌 감옥이 있어야 하고
인간은 고통 속에서 번민해야 하느냐고…
―수단의 오지 마을 톤즈에서 헌신하다 숨진 故 이태석(세례자 요한) 신부가 1980년 고3 시절 대입학력고사를 본 뒤 작사 작곡한 성가 ‘묵상’ 중 일부
2024년 12월 22일 일요일
기나긴 밤이었거든
남도에서 Tractor 몰고 상경한 농민과 이에 합세한 응원봉 시민이 혹한의 겨울밤을 새워 차벽을 물러서게 하고, 남태령을 넘어 한남동 레지던스로 향하고 있다.
오랜만에 기타를 꺼내 민중가요를 읊조리며 현장에 함께하지 못하는 미안함을 치른다. 노래는 사회적 관계의 산물이다. “다시 만날 세계”가 멀지 않았다.
악보는 노찾사 노래모음집(1989·도서출판 새길)에 수록된 「이 산하에」(문승현 사·곡)다.
1.기나긴 밤이었거든 압제의 밤이었거든
우금치 마루에 흐르던 소리 없는 통곡이어든
불타는 녹두 벌판에 새벽빛이 흔들린다 해도
굽이치는 저 강물 위에 아침햇살 춤춘다 해도
나는 눈부시지 않아라.
2.기나긴 밤이었거든 죽음의 밤이었거든
저 삼월 하늘에 출렁이던 피에 물든 깃발이어든
목메인 그 함성소리 고요히 어둠 깊이 잠들고
바람부는 묘지 위에 취한 깃발만 나부껴
나는 노여워 우노라.
3.기나긴 밤이었거든 투쟁의 밤이었거든
북만주 벌판에 울리던 거역의 밤이었거든
아아 모진 세월 모진 눈보라가 몰아친다 해도
붉은 이 산하에 이 한목숨 묻힌다 해도
나는 쓰러지지 않아라.
폭정에 폭정에 세월 참혹한 세월에
살아 이한몸 썩어져 이 붉은 산하에
살아 해방에 횃불아래 벌거숭이 산하에
2024년 11월 30일 토요일
김용월드 세계관 창시한 신필
무협 거장 「김용의 삶과 문학이야기」 학술행사 열려
탄생 100주년, 김용 문학의 평가와 한·중 교류방안 모색
http://www.kw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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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영웅문」 시리즈로 유명한 김용(金庸·진융·Jin Yong)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문학세계를 조명하는 기념행사가 열렸다.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중국 저장(浙江)대학교 문학원,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이 공동 주최하는 ‘김용, 그의 삶과 문학 이야기’ 행사가 30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고려대 문과대학(서관) 132호에서 계속됐다.
고려대 이상우 문과대학장의 개회사와 저장대학교 펑궈둥(馮國棟) 문학원장의 축사로 시작한 학술행사는 ‘나와 김용’, ‘김용의 문학세계’라는 2개의 꼭지를 가지고 1부와 2부로 나눠 좌담회 방식으로 진행됐다.
노현구 저장대학교 교우회장이 사회를 맡은 1부는 학계와 재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저장대학교 출신들이 나와 김용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자리에는 김용의 유일한 박사생 제자인 루 둔지(卢敦基, Lu Dunji) 중국 저장성 사회과학원 연구원이 학자로서의 김용 선생을 소개했다. 이어서 첸보(陈博·Chen Bo) 네오리진(NEORIGIN) 대표이사가 김용의 문학이 온라인 게임사업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했다.
<>30일 열린 ‘김용 탄생 100주년 학술행사’에서 저장대학교 관계자들이 김용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고점복 고려대 중어중문학과 교수가 진행한 2부에는 같은 과 조동매 교수와 유경철 고려대 글로벌비즈니스대학 중국학전공 교수가 나왔다. 이들은 △김용 무협소설의 특징과 연구현황 △한국내 인기 원인을 조명하고 △작품에 내재된 장자적 사유 △다양한 장르로의 확산 △한·중간 민간교류에서 차지하는 역할 등을 분석하며 청중의 호기심을 끌어냈다.
학술행사는 청중과의 질의응답 시간도 가졌다. 김용 무협 커뮤니티 회원은 간본에 따라 상이한 전개에 대한 호불호를, 고려대 중문학과 학생은 국내 인기 웹소설·웹툰의 기저를 장악하는 김용 소설의 경전으로써의 지위에 관해 문의했다.
이진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장은 폐회사를 통해 “대학 시절에 무엇보다 재미가 있어서 읽었고, 소설의 내용과 무공을 가지고 격하게 논박하기도 했다”면서 “백면서생이 비급을 얻어 혼탁한 강호를 평정하는 권선징악형 보편성이 떠올라 즐거웠다”고 소감을 전했다.
김용 작가는 1955년 「서검은구록」을 시작으로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 「천룡팔부」 「소오강호」 「녹정기」를 거쳐 1969년 「월녀검」까지 총 15편의 소설을 연재하며 신필(神筆)로 불렸다. 그는 1959년에 홍콩에서 일간지 명보(明報)를 창간한 언론인이기도 하다.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저장대학교 인문학원장을 역임한 후, 2018년 10월 30일 향년 94세로 생을 마감했다.
고려대 측은 김준엽 고려대 前 총장이 저장대(당시 항저우대) 한국연구소 설립에 기여한 것을 계기로 저장대와 교류하고 있는데, 이번 행사를 통해 고려대 문과대와 저장대 문학원은 지속적인 학술교류를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준엽 총장과 김용 작가는 각각 1923년(~2011)과 1924년(~2018)생으로 한 살 차이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