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27일 일요일

우리가 몰랐던 14가지 북극곰 이야기

2월27일은 국제 북극곰의 날(International Polar Bear Day)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부를 둔 국제 북극곰 보호단체인 PBI(Polar Bear International)가 지구온난화로 멸종위기에 처한 북극곰을 보존하고자 2006년 지정했다.
세계자연기금(WWF)과 그린피스(GreenPeace)가 전해주는 우리가 몰랐던 북극곰 이야기 14가지를 정리해 보았다.

① 북극곰도 돌고래, 범고래와 같은 해양포유류이다.
바다에서 먹이를 구하고 삶의 대부분을 북극바다의 얼음에서 보내는 북극곰. 동물학자들은 북극곰을 바다소, 바다코끼리, 바다표범, 바다사자, 물개, 해달과 같이 해양포유류로 분류하고 있다. 곰 개체 중에는 유일하다.

② 북극곰은 사실 새하얗지 않다.
북극곰의 피부는 검은색이다. 검은 피부 위를 반투명하고 색소가 없는 털이 덮고 있다. 각각의 털이 빛을 흩어지게 하고 반사시켜서 하얗게 보이게 만든다. 참고로 북극곰의 혀 색깔은 파란빛이 돈다.

③ 밤이 되면 북극곰은 야시경으로도 잘 보이지 않는다.
무겁고 두툼한 북극곰의 털은 차가운 북극에서 따뜻하고 포근하게 지켜줄 뿐만 아니라 야시경으로부터도 안전하게 보호해준다. 북극곰의 털은 열을 잘 차단하기 때문에 적외선을 감지하는 야시경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④ 북극곰은 눈꺼풀이 3개다.
눈꺼풀이 2개도 아니고 3개다. 3번째 눈꺼풀은 눈에 들어오는 자외선의 양을 줄여서 설맹증(새하얀 눈 때문에 과도한 자외선이 반사되어 눈이 부시고 시력이 저하되는 증세)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북극의 환경과 아주 딱 맞는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⑤ 북극곰 수컷은 성인 남성 10명 이상의 몸무게를 자랑한다.
북극곰 수컷의 키는 최대 3m, 몸무게는 최대 800㎏에 달하는 거구다. 수컷은 보통 암컷의 2배에 달하는데, 이렇게 커다란 몸집 덕분에 북극곰은 지구상에서 가장 큰 육식동물로 알려져 있다.

⑥ 북극곰은 백상아리보다 무는 힘이 강하다.
압력의 단위 psi(pounds per square inch, lbf/in²)는 평방인치당 파운드힘이다.
북극곰은 1평방인치(가로 세로 2.54㎝)당 1,235파운드(약 560㎏)의 힘으로 물 수 있다. 이는 백상아리(669 psi)나 아프리카 사자(691 psi), 벵갈 호랑이(1,050 psi), 하이에나(1,100 psi)보다 강한 힘이다. 참고로 사람이 깨물 때 평균 강도는 1평방인치당 150파운드이다. 북극곰의 치악력이 얼마나 강한지 짐작할 수 있다.

⑦ 북극곰은 수 킬로미터 근방 내 먹이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북극곰은 얼음 속 구멍에서 숨 쉬고 있는 물범을 찾아낼 수 있을 만큼 강한 후각을 가지고 있다. 일단 구멍을 찾아내면 북극곰은 물범이 숨을 쉬러 나올 때까지 기다리다 사냥을 한다. 게다가 북극곰은 두터운 눈 속 1m 아래 있는 물범을 감지할 수 있다.

⑧ 북극곰의 사냥 성공률은 2% 이하로 낮다.
북극곰은 삶의 절반 정도를 먹이사냥을 하면서 보내는데, 사냥 성공률이 매우 낮은 편이다. 북극곰은 주로 고리무늬물범과 바다표범을 사냥하지만, 작은 포유류와 조류, 새알, 사체, 야채도 섭취한다. 최근에는 서식지가 파괴되면서 쓰레기를 뒤지는 북극곰도 심심찮게 발견되고 있다.


⑨ 북극곰은 발자국을 통해 소통할 수 있다.
북극곰이 걸을 때마다 그 커다란 발톱은 독특한 냄새를 가진 화학적인 발자국을 남긴다. 이를 통해 드넓은 지역에서도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것이다.
WWF(세계자연기금)와 DNA 전문연구소 SPYGEN의 공동 기술로 과학자들은 북극곰이 눈 위에 남긴 발자국에서 DNA를 채취할 수 있다. 두 스푼 정도의 눈만 확보되면 과학자들은 북극곰의 DNA는 물론이고 북극곰이 최근 섭취한 물범의 DNA도 채취할 수 있다고 한다.

⑩ 북극곰은 며칠씩 쉬지 않고 수영할 수 있다.
북극곰은 생각보다 상당히 빨리 달린다. 덩치가 큰 북극곰은 시속 40㎞의 속도로 달릴 수 있다.
북극곰은 물 속에서 최대 시속 9.6㎞의 속도로 이동한다. 북극곰은 얼음을 옮겨 다니며 몇 시간 동안의 장거리 유영도 가능하다. 북극곰의 커다란 앞발은 수영에 적합한 형태로 진화했다. 유영 중에 중심을 잡아주는 뒷발은 방향을 잡아주는 배의 키와 같은 역할을 한다.
북극곰의 최장 수영 기록은 9일이다. 무려 9일 동안 멈추지 않고 계속 헤엄을 친 것인데, 687㎞나 이동했다고 한다. 시간으로 환산하면 232시간에 달한다.

⑪ 북극곰은 젖지 않는다.
북극곰의 털은 두 겹으로 되어 있다. 바깥쪽 털은 북극곰이 바다에 들어갔을 때 안쪽 털이 젖지 않도록 막아준다. 덕분에 북극곰은 물속에서 나와 한번 빠르게 몸을 털어주는 것만으로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북극의 담수는 대부분 얼어붙어 있다. 마실 물이 없어도 북극곰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물을 마실 필요가 없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북극곰은 지방을 분해할 때 일어나는 화학반응에서 필요한 물을 얻을 수 있다.

⑫ 그롤라 베어(Grolar Bear)는 회색곰 그리즐리 베어(Grizzly Bear)와 북극곰 폴라베어(Polar Bear)가 만나 태어난 자연 교배종이다.
북미와 러시아에 서식하는 회색곰과 북극곰의 혼종은 2006년 유전자 검사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이 둘이 교배하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환경파괴 때문이다.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녹고 북극곰이 서식지를 옮기면서 지난 500만 년간 거의 교류가 없던 두 곰이 같은 지역에 살게 됐다. 이렇게 서식지가 겹치며 새로운 이종교배종이 생겨나게 됐다.
회색북극곰 그롤라 베어(grizzly bear + polar bear = grolar bears 혹은 pizzly bears)는 회색곰과 북극곰의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다만 혼종이 일어나는 경우 북극곰이 새끼를 낳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회색북극곰은 일반적으로 북극곰과 같은 방식으로 행동한다고 한다.

⑬ 19개의 생태군, 북극곰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다.
약 2만6천 마리의 개체수를 가진 북극곰은 최대 19개의 개체군으로 나누어진다. 이 중 단 1개의 개체군만이 개체수를 늘리고 있다. 5개의 개체군은 개체수를 유지하고 있으며, 4개의 개체군은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다. 나머지 9개의 개체군은 데이터 부족으로 개체수 판단이 어려운 실정이다.

⑭ 북극곰에게 기후변화보다 무서운 것은 인간의 위협이다.
북극곰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은 기후변화만이 아니다. 최근 석유회사들은 새로운 시추지역을 찾아 북극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데, 이와 같은 개발은 북극곰의 서식지 파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유출된 석유는 북극곰 신체기능에 장애를 초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석유의 영향으로 털의 보온기능이 상당 부분 감소될 수 있다. 먹이를 통해 축적된 농약과 화학적 물질 역시 생물학적 기능과 번식능력에 치명적일 수 있다.

세계자연기금(WWF)의 북극곰 캠페인

이 놀라운 동물은 슬프게도 현재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지구온난화로 북극곰들이 사냥도 하고, 쉬기도 하고, 새끼를 키우는 바다 얼음이 무섭도록 빠르게 녹고 있기 때문이다. 줄어든 빙하 때문에 여름철 배가 고픈 북극곰이 음식을 찾아 나오면서 인간과의 접촉 역시 잦아지고 있다. 대다수의 과학자들은 지금과 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2030년까지 북극의 여름에는 얼음이 사라지고, 2050년이 되면 북극곰의 3분의 1이, 100년 후에는 지구상의 북극곰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며 경고하고 있다. 북극곰의 생존을 위해선 서식지 보호가 반드시 필요하다.

출처1 : 그린피스, 북극 캠페이너 이안(2018년 2월26일)  https://www.greenpeace.org/korea/update/6011/blog-arctic-facts-about-polar-bear/

출처2 : 세계자연기금, 북극곰에 대한 10가지 진실(2020년 2월27일)  https://www.wwfkorea.or.kr/?236590/10factsaboutpolarbears


그린피스(GreenPeace)의 북극곰 캠페인


2022년 2월 25일 금요일

파란 하늘 노란 밀밭…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1970년 개봉한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해바라기(I Girasoli)」는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나폴리 출신 이발사의 딸 지오반나(소피아 로렌 扮)와 밀라노 출신의 전기기사 안토니오(마르첼로 마스트로야니 扮)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에서는 러시아 전선으로 간 남편을 찾아 기차를 탄 여인 지오반나 앞으로 해바라기가 만발한 광활한 우크라이나 평원이 끝없이 펼쳐진다.

세계 여러 나라는 △가로2색기 △가로3색기 △세로2색기 △세로3색기 △좌측 상단에 공간을 만들어 문양을 넣은 캔턴기(canton flag) △크리스트교의 십자가를 기본으로 하는 십자기(十字旗) △가운데에 특정 문양이나 기장을 담은 문장기 △하나의 범주로 묶기 어려운 이체기 중 한 형태의 국기를 사용한다.

유럽에 위치한 국가들의 국기는 별다른 도안 없이 단순하게 가로 혹은 세로 방향에 두세 가지 색깔로 이등분 또는 삼등분된 형태가 많다.
우크라이나 역시 가로 세로 3:2 비율의 직사각형을 위아래로 나눠 배색했다. 위쪽 파란색은 푸른 하늘을, 아래쪽 노란색은 노란 밀밭(해바라기밭)을 상징한다고 한다.

하늘빛(청)과 땅빛(황)이 조화로운 우크라이나가 군사대국 푸틴 러시아의 침공을 받고 있다.
오래전 불렀던 젠성가 「천진한 어린이의 눈」의 가삿말이 떠오른다. “전쟁의 공포 사라지고 희망의 가슴 펼치려면, 땅위에 평화 내리려면 우리 배워야 하네. 어린이에게서, 놀이하는 법을”

고통받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전쟁이 아닌 대화와 신뢰를 통해 평화가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PeaceToUkraine

밀밭=bne intellinews, 해바라기=Valentina Marcu


2022년 2월 24일 목요일

국보법 다큐 「실행자들」

어제 저녁 7시, 충무로 대한극장(1층 2관)에서 우리 사회를 억누른 그들의 이야기 「국가보안법의 실행자들」을 관람했다.
다큐는 “국가정책을 은밀히 조종하는 선출되지 않은 관료집단이 존재할까?”라는 2018년 3월 미국 몬머스대학 여론조사 질문을 시작으로 ▲정치개입 ▲DNA ▲악용은 필연이다 등 3개 파트로 풀어나간다. 다큐 내용을 요약하자면…

국정원, 경찰, 기무사(군사안보지원사령부)의 사찰 목적은 공히 ‘정치보고서의 작성’이다. 우리는 흔히 정보기관이 정권에 충성한다고 착각한다. 그런데 그들은 보수세력이 집권하면 충성을 다했지만 민주세력이 집권했을 때는 태도를 바꿨다.
군인권센터에 제보된 기무사 요원의 증언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을 당시 속보를 본 기무사 요원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노무현은 기무사의 독대보고를 받지 않은 최초의 대통령이었기에 정치개입이 일상이었던 군정보기관 입장에서는 정권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대통령에 대한 감정이 좋았을 리 없다. 기무사에서 방출된 사람들이 민간인 경력직 군무원을 뽑는 자리에 지원해서 다시 그 자리에 들어가는 회전문이 기무사 인적개편의 결과였다. 대공분실은 가장 많을 때가 전국적으로 44개가 운영됐는데, 정보경찰 역시 폐지되지 못했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국정원 등을 활용하지 않겠다는 노무현의 선의는 결과적으로 반발을 불러왔다. 국정원은 스파이앱을 설치, 스마트폰을 ‘점거’해 국정원 서버로 전송되는 패킷을 역조립하는 감청방식을 사용하기도 했다. 국정원의 업무는 북한업무가 아니라 좌파(진보·야당·호남)척결로 극우보수세력의 권력을 유지시켜 주는 파수꾼 역할이다.

친일파를 기반으로 삼아 집권한 이승만은 반대세력을 짓누르기 위해 ▲1948년 12월1일 법률 10호로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고 ▲1950년 10월 육군본부 직할의 특무대를 창설했다. 일제가 잉태하고 이승만이 키웠으며 박정희가 완성한 극우공안체제는 친일과 반공이 결합한 극우적 성향을 야기했다. 극우성은 반드시 폭력성을 동반한다. 정보기관에 내재된 극우성과 폭력성은 무고한 사람을 간첩으로 조작하여 승진을 하고 포상금을 받아 가는 극단적 집단이기주의를 초래했다. 국가보안법 사건을 이용한 정보기관의 포상금 잔치는 계속되고 있다. 유우성 사건으로 국정원 직원들에 지급된 포상금은 환수되지 않았다.

형법은 실제 발생한 범죄행위가 기준이다. 반면, 국가보안법은 어떤 생각을 하는가를 판단하고 처벌할 수 있다. 국가보안법 자체가 가지고 있는 모순으로 인해 정보기관이 자행하는 불법행위는 필연이 된다. 국제기구도 이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지적해왔다. 국가보안법은 “모호한 용어로 정의되어 있고, 행위의 범위가 불합리하게 광범위하다.”(자유권규약위원회) “그 모호성으로 인해 독단적으로 적용될 심각한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고문방지위원회) “정치적 다원성과 평화적 반대를 억압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유엔특별보고관) “국가보안법의 존재와 그것이 적용되는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유엔인권이사회)

국가보안법의 악용을 피하기 어려운 또 다른 근본문제는 ‘반국가단체’ 규정의 모순에 있다. 여기서 반국가단체는 북한을 지칭하는데, 북한주민은 이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구성원으로서 국가보안법 처벌대상이 된다. 그런데 남북이 분단된 상황에서 북한주민을 처벌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기에 북한을 연구하거나 말하는 것, 북한사람과 만나거나 통신하는 것, 북한과 유사한 주장을 하는 것 등 북한과 관련된 모든 행위(동조, 찬양고무)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북교류협력법에 의해 보호를 받을 수도 있으나, 언제 어떤 법이 적용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실제적으로는 통일을 지향하는 대한민국 정치세력과 국민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작동한다. 어떤 행위는 보호받고 어떤 행위는 처벌받는지, 누가 하면 보호받고 누가 하면 처벌받는지, 처음엔 합법이었는데 언제 어떻게 뒤바뀌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남북 간 교류협력이 활성화될수록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자도 늘어나는 모순. 국가보안법이 존치한 상태로 통일을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2021년 5월19일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는 국회 국민동의에 10만 청원이 성사되었다. 청원을 시작(5.10)한 지 단 9일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폐지를 반대하는 국회청원도 시작되었다. 국정원의 입장은 “간첩을 잡는 것이 국정원의 일이며, 국가보안법은 폐지가 아닌 존치·개정해야”(2021.6) 한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레드콤플렉스는 빨갱이공포증, 간첩공포증이 아니라 색깔공격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증이다(김태형). 국가보안법이 존치하는 한 정보기관은 민주세력을 탄압하고 통일을 가로막는 실행자 역할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정보기관 존재의 근거이자 비전이며(조지훈), 조직을 받쳐주는 빽이자 명분이면서(최승제), 불법행위를 저질러도 괜찮다고 하는 생각의 기반이다(오민애). 국가보안법을 자양분으로 공작을 펼치고(장경욱), 결국은 혐의자의 과거 이력·행적을 통해서 주관적인 추정으로 갈 수밖에 없다(이주희). 남북관계는 국정원이 통제하는 수준에서의 교류협력만이 가능하다(오창익). 공안기관이 존립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분단상황에서 나온다. 개혁은 미친 척하고 하는 것이다(한홍구). 모든 사람의 찬성을 받기는 어렵고,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는 집단들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는 사실 결단밖에 없다(우희종).

북한 기술자들과 인공지능 사업을 진행하던 김호氏의 갑작스런 구속은 국정원이 김호氏의 사업을 오랫동안 관리하고 협조했다는 사실에 비추어봤을 때 더욱더 충격적이다. 국가보안법 사건이 터지면 ▲북한에 대한 적대의식과 남북 교류협력에 대한 불신이 확산하고 ▲종북으로 몰리지 않기 위한 자기검열, 상호검열이 횡행하며 ▲민주진보세력의 위축과 분열, 수구세력의 결집을 유발하는 효과가 나타난다. 정보기관의 고문과 구타는 몇몇 수사관들의 일탈이 아니라, 조직적이고 제도적인 국가폭력이다. “(위기를 감지한) 공안조직의 절박함을 지금 우리가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에 철폐를 못하고 있다”는 김호氏의 외침이 처절하다.

59분의 런닝타임 후 노래패 ‘우리나라’의 「통일이 안보다」를 배경음악으로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데 제작위원, 후원자 명단에 아는 분 이름도 보이고 페친도 보인다.

관객과의 대화 시간. 무대 왼쪽부터 류성(각본), 서지연(총연출), 장경욱(변호사) 순. 내 자리(D열5번)에서 대각선 바로 앞(C열6번) 뒷모습이 대북사업가 김호氏의 부친 김권웅 님이다.

불법사찰과 인권침해, 고문과 조작, 반대세력에 대한 탄압과 정치개입은 국가보안법의 자체 모순에서 비롯되는 필연적 결과이다.

친일과 반공주의, 극단적인 폭력성, 조직 이기주의는 대한민국 정보기관의 뿌리 깊은 유전자이다. 그동안 정보기관의 개혁이 번번이 좌초된 것은 그들의 유전자를 바꾸지 못한 채 명칭 변경, 기관장 교체, 제도 조정 등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2022년 2월 21일 월요일

그의 언행 일체를 일절 신뢰하지 않습니다

1980년대 겨울, 도시 변두리 작은 동네(원미동 23통 5반)에 막 이사온 한 사내가 청과물 가게를 낸다. 대번에 위기를 감지한 형제슈퍼 김 반장은 경쟁관계인 경호네 김포슈퍼와 담합하여 결국 싱싱청과물을 폐업으로 내몬다. 문을 열었던 한 달 동안 치밀하지 못한 싱싱청과물 주인은 ‘부식 일절 가게 안에 있음’이란 종이쪽지를 붙여 놓고 파, 콩나물, 두부, 상추, 양파 따위 부식 ‘일절’이 아닌 ‘일체’를 팔았다. -양귀자 연작소설 「원미동 사람들」

七(일곱 칠)과 刀(칼 도)가 합쳐진 형성자 切은(는) 쓰임에 따라 ‘끊을 절’ 또는 ‘모두 체’로 읽는다. 일절(一切)은 (부정의 뜻으로) 아주, 도무지, 전혀, 절대로, never의 뜻으로 쓴다. ‘사생활에 일절 간섭하지 않아야 한다’ ‘부당한 청탁은 일절 통하지 않는다’와 같이 사용한다. 반면, 일체(一切)는 모든 것, 전부, all의 의미로 쓴다. ‘재산 일체를 사회에 환원했다’ ‘필요한 스펙은 일체 갖추었다’와 같이 사용한다.

지난 주말 영월 북면에 갔더니 석탄산업합리화정책이 있기 전 번성하던 시절의 마차리(磨磋里) 일대 탄광촌 모습을 「탄광촌생활관」으로 복원해 놓았더라. 생활관 아래에 재현한 「마차집 식당」 간판에 쓰인 “주류일체 안주일절” 표기가 정겹게 느껴졌다.

5시 44분 영월발 청량리행 무궁화호 안에서 인터넷을 달군 윤본부장의 객석 위 구둣발 사진을 보았다. 오늘 후보 4인의 경제 분야 TV토론을 관전한 바 일절(一切)과 일체(一切)의 확실한 용례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윤본부장의 언행 일체를 일절 신뢰하지 않는다”

강원도 영월군 북면 밤재로 351 「강원도탄광문화촌」 마차집, 마차상회


2022년 2월 15일 화요일

인재를 버린다?

문해반에서 「홍길동전」을, 검정반에서 「유재론」을 공부했다. 둘 다 교산(蛟山) 허균(許筠, 1569~1618)의 문장이다. 허균은 누나인 난설헌(蘭雪軒) 허초희(許楚姬, 1563~1589)와 함께 손곡(蓀谷) 이달(李達, 1539~1612) 문하에서 수학했다.

최경창, 백광훈과 함께 삼당시인(三唐詩人)으로 불렸던 이달은 충남 당진이 관향인 신평(新平) 이씨 양반과 관기 사이에서 출생한 얼자(孼子)였다. 「홍길동전」 발단부에 “둘째 아들의 이름은 길동이니 시비 춘섬의 소생이다”라는 표현으로 보아 홍길동 역시 얼자 신분이다. 흔히 서얼(庶孼)이라고 묶어 부르지만 서자는 양민 첩의 자식이고, 얼자는 천민 첩의 자식이다. 응당 서자보다 얼자의 수가 많다.

태종 때 만들어진 서얼금고법(庶孼禁錮法)은 첩의 자식 및 그 자손을 차별한 규정이다. 서얼에게는 관직 진출에 제한을 두고, 특히 재가한 여성의 자식은 사적(仕籍, 벼슬장부)에도 오르지 못하게 하는 등 신분·출세·재산 상속 등에 심한 제약을 가하였다.

허균은 스승인 이달을 통해 시속에 얽매이지 않는 예법과 적서차별 같은 사회적 모순을 접하고 호부호형(呼父呼兄)하지 못하는 기재의 울분을 洪吉同이란 가상의 인물로 표출해 냈다. 그리고 불우한 형편 속에서도 경지에 오른 스승의 시를 엮어 「손곡집」을 간행(1618)하고, 소설 「손곡산인전」에 전기를 담았다.

「유재론(遺才論)」은 조선의 인재 등용 현실을 중국과 비교하여 비판한 한문 중수필, 論이다. 遺才(버릴 유, 재능 재)는 ‘인재를 버린다’는 뜻으로 능력에 따라 인재를 등용하자는 주장의 반어적 제목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하늘이 준 직분을 행하는 것이니 재능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유재론의 첫 문장을 읽는다. 그리고 “하늘이 (인재를) 냈는데도 사람이 버리는 것은 하늘을 거스리는 것이다.…나라를 다스리는 자가 하늘의 순리를 받들어 행하면 나라의 명맥을 훌륭히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마지막 문장도 새긴다.

홍길동전과 유재론에서 보듯이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고 이끄는 공정한 위정자, 폭넓게 인재를 기용하여 적재적소에 임무를 부여하는 재능 있는 위정자가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고 단체장이 돼야 한다. 나는 이번 20대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현실적으로 가까운 적임자라고 생각한다. 그에게 표를 줄 것이다.

#나를위해

2022년 2월 14일 월요일

한글은 세계기록유산이다?

현재 한글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그럴까? ― 아니다. 1997년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문화재는 국보 제70호인 「훈민정음 해례본」으로 간송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요컨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는 訓民正音이라는 문자체계가 아니라, 한문으로 된 훈민정음 해설서인 「訓民正音 解例本」이라는 책(기록물)이 등재된 것이다.

사진은 고졸 검정고시 대비 비문학 분석을 위해 학습한 교육부 검정(2013.8.30.) 국어Ⅱ 교과서(천재교육, 김종철 외)에 실린 「국어의 위상과 미래」의 일부 내용이다. 이 지문에는 버젓이 ‘한글이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기록유산’으로 기술돼 있다.


2022년 2월 4일 금요일

「지우학」… 성장통과 사회비판

인터넷에서 지우학 지우학 하기에 공자님의 나이관 중 하나인 志于學(志學·15세)으로 여겼더니만, 지우학은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이라는 K-좀비물을 줄여 부르는 이름이었다. 아무튼 메가 히트작 「오징어 게임」의 초반 기세를 넘어선다는 바이럴에 요약본으로 몰아봤는데… 1화 도입 부분이 의미심장했다.

빨간 테두리의 LED십자가가 클로즈업되고, 이어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공중 카메라 앵글이 대성헬스·목욕탕 건물 옥상에서 벌어지는 雨中 집단 괴롭힘(학교폭력) 장면을 비춘다. 그런데 이 몹쓸 학폭 상황 위에는 십자가(교회)가 곧추서있고, 옆에는 卍(사찰)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희망과 구원이 돼야 할 종교가 부조리를 외면하고 있다. 옥상 아래 김밥천국(↔불신지옥), 사회적 출세를 의미하는 大成까지 시작부터 강한 메시지를 주는 아이러니 미장센이다.

빌런 이병찬은 효산시 효산고등학교의 실력 있는 유학파 생명과학교사다. 아들 이진수가 당한 끔찍한 학폭 경위를 학폭위에 고발하지만, 은폐하기에 급급한 교장에 막혀 사건은 가해학생의 반성문 몇 장으로 종결된다.

학폭으로 몸과 마음이 망가진 아들을 보다 못한 이병찬은 자신의 과학지식을 이용해 ‘너무 두려운 나머지 이성을 잃고 고양이에게 달려든 쥐’의 호르몬을 추출하고 정제해 좀비 바이러스를 제조한 후 이를 아들 이진수에게 주입해 좀비로 만든다. 이병찬의 섬뜩한 대사 “인간으로 죽느니 괴물이 돼서라도 살아남으라고.”에서 国民の力 김재원이 내뱉은 말이 떠올랐다. “(대선에서 이길 수만 있다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괴물이면 어떻고 악마면 어떻냐.” - https://segye.com/view/20210311514700

이병찬은 자신이 창조한 좀비 바이러스를 ‘요나스 바이러스’라 명명한다. 이는 「책임의 원칙」으로 유명한 생태주의 철학자이자 책임윤리의 창시자인 한스 요나스(Hans Jonas)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요나스는 이른바 공포의 발견술(Heuristik der Furcht)을 통해 과학기술이 초래할 수 있는 디스토피아적 미래 상황을 두려워하면서, 현재세대가 윤리적 공백을 채우고 미래세대 및 인간 외의 생명체와 자연까지도 생각하는 책임감(일방적·비호혜적·사전예방적·예견적·총체적·연속적·영속적) 있는 대안을 고려하자고 설파했다.

극 중 이병찬은 요나스의 주장을 오해석하여 자신과 아들·아내에게 불행을 야기한 폭력적인 사회 시스템을 뜯어고치기 위해 요나스의 이름과 주장을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면 惡의 인식이 善의 인식보다 무한하게 쉽기 때문에, 무엇을 보호하고 책임져야 하는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윤리학이 희망보다 공포를 논의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요나스의 통찰은 타당한 것이 되겠다.

사회 전반의 구조적 모순에 개인의 뒤틀린 일탈과 폭주가 불을 붙여 터져버린 극 중 효산고의 비극은 2014년 현실세계 단원고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 기성세대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재난으로 피해(살육-침몰)는 커져만 가는데, 수뇌부(교장-선장)는 은폐엄폐에 제 살길만 찾고 구조대(계엄군-해경)는 더디거나 심지어 눈앞의 아이들을 구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얘들아, 어떤 상황이 와도 절대 죽지 마. 그리고 그 누구도 죽게 만들지 마…누군가를 죽음으로 내몰면, 사는 게 아무것도 아니게 돼.”라는 2학년 5반 담임 박선화의 당부는 “걱정하지 마. 너희들부터 나가고 선생님은 나중에 나갈게.”라며 희생한 단원고 선생님들의 殺身成仁을 떠오르게 만든다.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하늘나라 여행 중인 선생님들의 명복을 빕니다.)

재난에 맞선 미성년 아이들의 성장기가 애처롭고 대견한 사회비판 드라마다.

「지우학」의 세계관에서는 교회(╋)도 절(卍)도 김밥天國(θ)도 大成(사회적 성공)도 구원이 되지 못한다.

2022년 2월 2일 수요일

멸종위기 Ⅰ급 호랑이를 지켜주세요

임인년 호랑이의 해를 맞아 늠름한 호랑이의 기상으로 힘차게 도약하자는 말들이 넘쳐난다. 생태계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군림하며 용맹과 기개를 상징하는 호랑이지만 현실 속 상황은 녹록지 않다.

최근 100년 동안 전세계 호랑이 가운데 97%가 사라졌다. 뼈와 가죽을 얻기 위한 무분별한 밀렵, 산업화와 도로건설을 위한 서식지 파괴 탓에 현재 야생에는 3,000여 마리의 호랑이만 생존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아직도 매주 2마리의 호랑이가 밀거래 현장에서 발견된다.

학자들은 약 7만년 전 질병과 극심한 가뭄으로 인류가 2,000명 내외까지 감소하여 멸종될 뻔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가뭄이 끝나면서 인류는 극적으로 위기를 벗어났지만, 호랑이 등 멸종위기 동식물은 탐욕을 억제하고 기후위기 상황을 해소하고자 하는 인류의 굳건한 의지와 지속적 노력 없이는 사지를 벗어날 수 없다.

WWF의 “기후위기를 막아주세요” 캠페인

기후위기비상행동이 8명의 대선 후보에게 정책질의를 발송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후보들의 기후정책을 평가한 바에 따르면… 윤석열과 안철수는 탈핵정책 철회를 강조하고 있다. - https://www.peoplepower21.org/Solidarity/1859259

윤본부장에 국정을 위임할 수 없는 이유가 하나 늘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녕과 창조질서 보존을 팽개칠 수 없다. 아담 맥케이의 영화 「Don't Look Up」의 상황으로 가서는 안 된다. 나는 ‘올려다 볼’ 것이다.

♬그 언젠가 아이들이 자라서 밤하늘을 바라볼 때에 하늘 가득 반짝이는 별들을 두 눈 속에 담게 해주오♪

“기후악당 대선후보를 찾아라” ― 기후위기비상행동의 20대 대선후보 기후정책 평가 (기자회견 202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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