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서울사업단(에이럭스 컨소시엄) 온라인 종무식을 끝으로 전국민 디지털역량교육 2021년 활동이 종료됐다.
스마트폰 교육은 폰마다 기종과 버전이 제각각이고 그에 따라 버튼 위치, 켜고 끄는 방법, 로그인 방법, 자판 등 가장 기초적인 것들이 달라서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보조강사와 함께 인내심을 갖고 장시간 꾸준히 반복적으로 교육했다. 그리고 반드시 학습자들이 구글 아이디와 패스워드, 아이튠즈 아이디를 확보하고, 기초적인 기호를 익히도록 이끌어야 했다. 이런 것들은 앱 설치나 스마트폰을 이용한 본인 인증(문자 or Pass 인증)에 필수 점검 사항이기 때문이다.
올해 내가 담당한 학습자들은 주로 60대 이상의 비문해 여성 노년층이었다. 노년엔 아무래도 기억력이 떨어지고 건강문제가 발생한다. 경쟁하는 것을 꺼려하고 (다른 하는 일이 많아 우선순위에서 밀려) 쉽게 포기하며, (학습경험이 없거나 부족하여서) 뭔가 새로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특히 비문해자일 경우엔 그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싫어한다.
지난 7월,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의 제3차 성인문해능력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18세 이상 성인의 약 4.5%인 200만명이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읽기, 쓰기, 셈하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문해능력 ‘수준1’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기본적인 읽기와 쓰기, 셈하기는 가능하지만 일상생활에 활용하기엔 미흡한 ‘수준2’는 185만여명으로 조사됐으며, 단순 일상생활에서는 불편함이 없지만 공공, 경제생활에서는 어려움이 있는 ‘수준3’은 약 503만명으로 파악됐다. 중학 학력 이상의 충분한 문해력을 갖춘 ‘수준4’ 인구는 3,518만명으로 2017년 조사 때보다 2.2%P 상승했다. 성인 문해력은 연령이 높을수록 소득이나 학력이 낮을수록 농산어촌에 거주할수록 낮게 나타나는 것으로 확인됐다. 요컨대 학력과 소득에 따라 문해력 격차가 큰 것이다.
문자를 깨치는 것은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생존과 인간다운 삶을 위해 꼭 필요하다. 디지털 분야 역시 같은 맥락이다. 디지털교육은 문해교육의 연장이다. 한글을 배운 다음 디지털이 아니라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디지털 소외계층은 대부분 자동화기기 사용 경험이 없는데 이는 생존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삼성전자 측에 요청한다. 장애인이 수월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갤럭시폰을 애플 아이폰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장애인 접근성을 강화해주길 바란다. 장애인에 대한 세심한 배려는 당신들이 내세우는 ‘사회공헌’에 가장 부합하는 부분이 될 수 있다. 공공시설에 설치된 자동화기기는 장애인 등 디지털 소외계층의 이용 편의를 위해 화면이나 버튼 위치 등 형태와 기능을 통일해 주면 좋겠다.
C19 상황에서도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집합교육을 이어왔다. 개인 사정으로 전일제나 반일제가 아닌 시간제 강사로 활동했는데 사업단에서 요구하는 물리적인 실적을 달성하는 것이 꽤 버거웠다.
강사의 부족한 부분을 섬세히 채워준 서포터즈 오유선 선생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미안해하며 열심히 따라와 주신 모든 학습자 어르신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어르신들, 우리 생활의 ‘결’ 자체가 달라졌어요. 이전에는 몰라도 괜찮았지만 알면 좋았던 것들이 모르면 안 되는 것으로 바뀌었어요. 이전에는 안 해도 괜찮았지만 하면 좋았던 것들이 안 하면 안 되는 것들이 되었어요. 갑갑할 때 요청하시면 도와드릴게요. 무엇보다 건강 유의하시고 겁내지 않기로 한 약속들 꼭 지켜나가셔요. 소생에게도 교학상장의 시간이었음을 수줍게 고백합니다. 고맙습니다.
2021년 12월 29일 수요일
2021 전국민 디지털역량강화 서울사업단 종무
2021년 12월 24일 금요일
“나는 조선사람입니다” OST 「춤추는 나무」
12월9일(목) 개봉한 영화 “나는 조선사람입니다” OST 「춤추는 나무」… 백자 가수가 글을 쓰고 곡을 짓고 노래했다. 영화를 본 이후 노랫말은 물론이고 멜로디가 좋아 흥얼거리게 된다. 노래를 짓는 솜씨가 좋다. 좋은 노래가 그늘진 땅에 햇볕한줌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만든다.
유튜브 「춤추는 나무」 ― https://youtu.be/yFCPj8maDbo
♬비바람이 불어 내 몸을 흔들어 견딜 수가 없어.
이파리가 떨려 가지가 찢겨 피눈물이 흘러도
곁에 있는 나무와 어깨동무를 하고 든든한 뿌리를 믿고 우린 함께 버티어 왔네.
바람 거세질수록 더욱더 펄럭이리라. 푸르른 나무가 되어 희망의 춤을 추리라♪
외국인을 배척하고 비난하는 정도가 강한 나라가 있다. 특히 갈라파고스로 악명 높은 일본 같은 국가는 외국인 차별 풍조가 뿌리 깊게 남아 있다. 일본에서 중국에서 중남미·북미에서 중앙아시아에서 아프리카에서 오세아니아에서 유럽 이국땅에서 마음 한편의 불안감과 불편함을 안은 채 차별과 편견에 맞서면서 땀과 정성으로 열심히 살아가시는 재외동포 여러분께 안부를 여쭌다.
#나는조선사람입니다 #私はチョソンサラムです #조선사람 #재일조선인 #재일동포 #재외한인 #재외동포 #김철민감독 #어깨동무 #가수백자
2021년 12월 22일 수요일
이재명 의사의 그날
1909년 12월22일 오늘은 이재명 의사가 명동성당 앞에서 역적 3관왕 이완용을 처단하기 위해 의거한 날이다.
평안북도 선천 출신의 이재명(李在明, 1887~1910)은 평양 일신학교를 마친 뒤 1904년 미국 노동이민 모집에 응모해 하와이에서 농장 노동자로 일하다가, 1906년 3월에 공부를 더 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갔다. 안창호가 설립한 공립협회에 가입해 활동하던 그는 1907년 7월24일 한일신협약(제3차 한일협약, 정미 7조약)의 강제 체결소식을 접하고, 매국노를 처단한다는 공립협회의 결의에 따라 같은 해 10월 도쿄와 나가사키를 거쳐 귀국했다.
1909년 1월, 순종 황제의 서도(西道, 평안도) 순시에 동행하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초대 한국통감을 암살할 계획을 세우고 동지들과 함께 평양역 부근에서 대기했으나, 황제의 안전을 우려한 안창호의 만류로 실행하지 못했다. 이후 원산을 거쳐 블라디보스토크로 넘어갔다가 같은 해 10월26일(화)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 척살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고 고무되어 귀국했다.
1909년 12월22일(수), 종현천주교회당(명동성당)에서 콩고 대학살로 악명 높은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12월17일 사망)의 추도미사에 이완용(李完用)이 참석한다는 신문기사를 본 이재명은 군밤장수로 변장하고 문밖에서 대기하다가, 오전 11시30분경 식장에서 나와 인력거에 오른 이완용에게 달려들었다. 인력거꾼 박원문의 제지를 칼로 제압한 뒤, 이완용의 복부를 찔렀다. 이완용이 인력거 아래로 고꾸라지자 어깨 등을 힘주어 찔렀는데, 이에 이완용이 죽었다고 판단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의거 직후, 일본 순사의 군도에 왼쪽 넓적다리를 찔리는 중상을 입고 체포되었다.
이완용은 이재명의 칼에 왼쪽 폐가 관통되어 치명상을 입은 듯했으나, 대한의원(서울대학교병원)으로 후송돼 일본인 외과의사들이 집도한 수술(국내 흉부외과 수술 제1호)과 당시의 최신의료기술이 총동원된 2개월간의 입원 치료 끝에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이완용은 이때 얻은 상처가 천식과 폐렴으로 발전하여 동절기마다 크게 고생했고 훗날 사망(1926) 원인이 된다.
이재명 의사는 이완용 살인미수와 박원문 살해 혐의로 곧 재판정에 섰는데, 공판에서 태연한 안색과 호걸다운 어조로 이완용의 8대 죄악을 들어 통렬히 꾸짖고 나라를 위하여 처단함이 당연함을 재삼 강조하였다. 안병찬(安秉瓚) 변호사는 장인환(張仁煥) 의사가 미국인 스티븐스(Durham W. Stevens)를 저격한 사건을 미국 법정에서 가볍게 언도한 사실 등을 들어 경한 형을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사형을 선고했다.
이재명 의사는 “왜법(倭法)이 불공평하여 나의 생명을 빼앗기는 하나 나의 충혼(忠魂)을 빼앗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죽어 수십만 명의 이재명으로 환생(幻生)하여 기어이 너희 일본을 망하게 하고 말겠다”고 웅변하였다.
1910년 9월13일(화) 이재명 의사는 경성감옥(서대문형무소) 형장에서 조용히 찬송가를 부르고 24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참으로 의기로운 대한사람의 일생이 아닐 수 없다.
명동성당 입구 보도에 이재명 의사의 의거를 기념하는 표지석이 있다. 1909년 12월22일(수) 의거 당일, 눈이 왔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표석문구] 이재명(1890~1910)은 친일 매국노인 이완용을 척살하려 한 독립운동가이다. 평북 선천 출생으로, 1909년 명동성당에서 벨기에 황제의 추도식을 마치고 나오는 이완용을 칼로 찔렀으나, 복부와 어깨에 중상만 입히고 현장에서 체포되어 이듬해 순국하였다. |
2021년 12월 17일 금요일
「나는 조선사람입니다」 KDN 응원상영회 관람
사당동 이수역 7번출구, 골든시네마타워 12층 아트나인 0관.
어제저녁엔 한국다큐멘터리네트워크(KDN)가 준비한 「나는 조선사람입니다」를 관람했다. 1인칭 관찰자인 ‘나’는 2002년 금강산 관광길에서 처음 재일조선인을 만나면서 호감이 발동하여 그로부터 18년 동안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60만 在日朝鮮人 76년의 역사를 충실하게 그려낸다.
2차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은 자국에 남은 한국인들의 일본국적을 박탈하고, 강점 이전의 국호를 따와 ‘조선적’을 부여했다. 재일동포의 국적은 1990년대 이후 일본적>한국적>조선적 순으로 고정됐다. ‘북한적’이라는 행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적은 일본 귀화인을 말하고, 한국적은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는 뜻이다. 朝鮮籍은 국적이라기보다는 민족적 귀속을 나타내는 기호다. 제국주의 일본에 병탄당한 옛 조선의 후손임을 자처하는 이유는 조국의 분단을 인정하지 않고 그렇다고 조국을 침략한 일본 국민이 되는 것도 거부하겠다는 의지의 산물이다. 항일운동 전력이 있는 지도자가 통치하는 북녘과 관동군 장교 출신이 군림하는 남녘의 상황도 조선적 유지에 한몫 했다. 조선적 동포들은 총련(재일조선인총연합회) 소속이 많다. 이들은 특별영주권을 부여받아 일본땅에 거주하지만 일종의 ‘난민’ 취급을 당하면서 참정권, 교육권 등 여러 면에서 사회적 제약이 심하다.
영화는 “1945년 광복 이후 76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재일조선인 그들이 받는 차별의 고통은 과연 끝났는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일본 유학생을 엮은 간첩조작사건과 그 피해자들의 사례를 담아 극단적인 남북대립의 상황에서 이용당해 온 재일조선인의 기구한 사연을 드러내고자 기획한 「간첩의 탄생」 프로젝트가 재일조선인에 대한 일본사회의 뿌리 깊은 불신과 차별 문제로 확대되어 인간 존엄에 대한 울림으로 재탄생했다.
엔딩 크레딧까지 약 100분 소요. 상영 후에는 김철민 감독(게스트), 나바루 감독(모더레이터)이 대담하는 GV시간이 이어졌다. 10시까지 약 50분 동안 12월16일자 KDN응원시사회 오픈채팅방을 통해 10여 개의 질문이 쏟아져 관객들의 높은 관심과 열기가 표출됐다.
1990년대 보통의 국가(普通の国)를 지향하며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떳떳하게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개헌이 필요하다”는 개헌론이 다시 등판하고, 넷우익의 번식과 재특회(재일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모임)의 결성 등 가해자들의 뒤틀린 죄책감과 열등감이 폭주하면서 우파로 급격히 회귀하는 일본 내 정치경제적 변동과 ‘혐한’의 총체적 백래시의 혐오타깃은 재일조선인과 위안부 피해자, 일본인 납치문제, 역사교과서, 독도 문제, 반일 시위 등으로 모아졌다. 재일조선인 6세까지 나오는 시대이건만 차별과 불관용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한편, 지난 10년 새 조선학교(유치부·초·중·고)의 학생수는 40%나 줄었다. 일본 정부가 조선학교를 무상교육에서 배제하면서 하락세는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은 (분노하되 증오하지 않는) 재일조선인이 유지해 온 민족 정체성에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
자이니치(ざいにち·在日), 조센징, 범죄자, 김치놈, 야생동물, 고키부리(ゴキブリ·바퀴벌레)라는 일본(인)의 혐오에 더해 어느 편인지를 분명히 하라는 남한과 북조선 2개 조국의 양자택일 강요 속에 여전히 ‘조선사람’이란 정체성을 지켜내면서 조국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으로 부조리에 저항하는 동포에게 깊이 공감하며 특별한 응원을 전한다. 그러나 응원만 하고 넘어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남한과 북조선, 38선 이남과 이북이 모두 달라져야 한다. 이국땅에서 차별당하고 박해받는 재일조선인에 대한 가장 큰 위로와 선물은 조국의 평화롭고 자주적인 통일일 테니까. 남녘과 북녘은 서로 도우며 힘이 돼주어야 한다. 마치 조선학교 운동회에서 발달장애를 가진 강륭세 학생을 동무들이 도왔던 것처럼…
#나는조선사람입니다 #私はチョソンサラムです #조선사람 #재일조선인 #재일동포 #김철민감독 #KDN #어깨동무
「나는 조선사람입니다」는 12월9일 개봉했는데, 15일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개봉하면서 상영관 확보(특히 평일 저녁시간)에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자연스러운 표몰이에 힘을 보태야겠다. 초대해준 김철민 감독님, 애쓰셨고 고맙습니다. |
2021년 12월 5일 일요일
민주화운동 더하기 통일운동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에서 2022년 탁상달력을 보내왔다. 평양탐구학교 2기·3기 수강생들의 모습과 강의 때 접한 평양시 이곳저곳의 일상을 담은 사진이 반갑다.
2기 수료 이후에도 최근까지 「역사도시 평양」(안창모 교수)과 「북한의 패션·방송·관광」(전영선 교수)에 대한 온라인 심화강좌가 이어졌다. 2차례에 걸쳐 펼쳐진 「해설이 있는 NK콘서트」는 C19로 지친 심신에 휴식 같은 선물이 되어주었다. 지금도 박순아의 가야금 선율과 이영훈의 장새납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스태프 선생님들께 거듭 감사드린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20번째 생일을 맞아 진행한 낱말 퍼즐 이벤트에 당첨되어 「한정판 DIY 레고 명함꽂이」를 받았다. 빨간 야구모자를 쓴 미니어처 아이가 가슴에 사업회 심볼을 새긴 하늘색 셔츠를 입고 있는 모습이다.
통일운동과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운동…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 없다.
#같이 #명함꽂이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상]평양탐구학교 2기 개강식(5.25)의 모습. 물론 나도 있다. 왼편 달력은 인천시 평양탐구학교 1기 분들의 모습 [하]<2>「해설이 있는 NK콘서트」 팸플릿 |
“같이 - 걸어온 20년, 가야할 20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설립20주년 기념 카드트레이를 조립해 완성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