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31일 일요일

일본은 세계유산에 「강제동원의 역사」를 전시하라

(협)마을대학종로 페친들과 함께 효창공원에서 영면하고 계신 순국선열을 참배하고, 청파동 식민지역사박물관으로 향했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의 목소리가 담긴 기획전을 관람하고, 친절한 일본인 봉사자의 안내에 따라 일본 산업유산정보센터에 강제동원 역사의 전시를 촉구하며 빠띠 캠페인즈(https://campaigns.kr/campaigns/407/pickets)에 인증샷을 올렸다. 팻말들기 203, 204, 205, 206번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메이지산업혁명유산 시설에서는 수많은 조선인, 중국인, 연합군포로들이 강제노동으로 고통을 당했다. 일본정부는 2015년 메이지산업혁명유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면서 전세계를 향해 강제노동을 기록하겠다고 약속했지만, 6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오히려 2020년 도쿄에 개설된 산업유산정보센터의 전시는 강제노동의 역사를 부정하며 피해자들을 모욕하고 있다.

일본정부와 전범기업은 강제동원 사죄하고 배상하라!!!

#강제동원 #징용공 #식민지역사박물관 #민족문제연구소 #역사의식





2021년 10월 29일 금요일

삶의 역경 Hardship of Life

「삶의 역경」… 터키 사진작가 메흐메트 아슬란이 촬영해 이름 붙인 「Hardship of Life」는 이탈리아 시에나 국제사진전(2021 Siena Awards)에서 올해의 사진으로 선정됐다. 목발에 의지한 아버지가 팔다리 없는 아들을 들어올리는데, 이들 부자는 환한 웃음을 교환하고 있다.

다섯 살배기 꼬마 무스타파는 시리아 내전 당시 거리에 퍼진 신경가스에 노출된 엄마(자이나브)가 임신 중 복용한 약 때문에 양쪽 팔과 다리가 없는 테트라-아멜리아 증후군(Tetra-amelia syndrome)을 가지고 태어났다. 시리아의 폭탄테러로 오른쪽 다리를 잃은 아빠(문지르 알나잘)의 고민은 자신의 잃어버린 다리가 아니라 팔다리 없는 아이의 장래와 가족에 대한 부양이다.

하근찬의 전후소설 「수난이대」에서는 일제에 의해 남양군도 징용에 끌려갔다가 비행장 폭격으로 왼팔이 절단된 아버지 박만도와 6·25전쟁에서 수류탄 폭발로 왼다리를 잃은 아들 박진수 부자의 동행을 눈앞에 우뚝 솟은 용머리재가 내려다보고 있다.

문지르-무스타파 부자가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 용머리재가 되어 응원하고 지켜줘야겠다. 바람은 언제나 이들 부자의 등 뒤에서 불기를… 


2021년 10월 26일 화요일

10월26일

10월26일을 비공식 기념일로 풍자하여 부르는 트렌드는 이미 수년이 됐다.


△1597년 10월26일.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한 이순신 제독의 조선수군 13척이 명량(鳴梁)해협에서 일본수군 133척 이상과 맞붙어 격퇴. 이후 조선수군 재건.
△1909년 10월26일. 대한의군참모중장 안중근 의사가 흑룡강성 하얼빈역에서 초대 한국통감 이토 히로부미 격살. 피체된 안 의사는 이듬해 3월26일 요녕성 뤼순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순국.
△1920년 10월26일. 서일, 김좌진, 홍범도 등이 지휘하는 독립군 연합부대가 10월21일부터 6일 동안 길림성 화룡현 청산리(靑山里) 등지에서 교전하여 일본제국 육군부대 격파. 봉오동전투(1920.6.4~7) 패배 이후부터 일본군은 간도 등지에서 조선인 수만 명을 무차별 학살(경신참변)하는 작전을 전개.
△1979년 10월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청와대 앞 궁정동 안가(현 무궁화동산)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하여 유신체제에 종지부.

과거는 그대로 반복되지는 않을지라도, 분명 그 운율은 반복된다. -마크 트웨인

2021년 10월 24일 일요일

가시

지난 3월, 2021 「서울시 문해교육 특성화 프로그램 지원사업」에 선정된 후 4월1일 첫강을 시작으로 그끄제 16강을 마치면서 총 20회 중 이제 4회차만 남겨놓고 있다.

볼런티어 의존도가 높은 NPO다 보니 이런저런 행사에 쓸 펼침막이나 배너 디자인을 자체 해결하고 있는데… 디자인 전공자도 아니고, 렌더링이 더딘 구형 랩톱을 기동하기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되도 않는 작업에 때때로 훅~ 끓어오르기도 한다. 수년간 내 안에서 돋아나 굵어진 가시들을 조심조심 어루만지는 일이 쉽지 않다.

이번 목요일(10월28일) 오후 2시에 예정된 메리츠자산운용 존 리(John Lee) 대표의 강연을 홍보하는 펼침막과 스탠딩 배너를 드로잉해 넘겼다. 전문가 눈에는 어설퍼 보이겠지만 어쩌는 수가 없다. 당일 남북경협국민운동본부에서 줌 미팅아이디를 지원받고, 임수재 감독님이 촬영에 도움을 주신다. 서울평협에서 유튜브 시스템을 협력하고, 평화신문에서 취재를 나올 예정이다.

현시점의 방역수칙으론 식사를 제공하지 않는 결혼식에 최대 199명(99명+접종완료 100명)까지 참여할 수 있다. 헌데 300명이 들어가는 회관 1층 강당에 10%(30명)만 허용하겠다는 관리실의 처사는 수긍이 가질 않는다.

가시 박힌 상처가 벌겋게 부어올라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날이 있다. 주시하는 눈은 많고 몸은 따라주질 않고 에너지는 소진되고… 하여간 ‘성료’란 결과치가 나오면 좋겠다.

정영욱의 「넘어져도 된다 또 쉬어가도 된다」로 위로를 받는다.


당신은 당신 생각만큼

강한 사람이 아니다.

한계를 떠안고 언제까지나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상한 마음을 떠안고,

바라던 곳에

성히 도착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니 당신의 목표와 꿈을 위해서라도

조금의 쉼을 허락하도록 하자.

쉬는 것도 나아가는 것의

과정일 뿐이기에.

내가 잠시 숨을 고른다 해서

무언가 무너지는 것이 아니기에.


펼침막 3종.  [상]행복한 내 인생 만들기  [중]한국여성생활연구원 창립43주년  [하]존리의 경제독립으로 가는 길

[좌]행복한 내 인생 만들기(웹자보)  [우]존리의 경제독립 프로젝트(스탠드형 배너)


2021년 10월 14일 목요일

목화솜 달린 보부상 패랭이

요사이 디지털역량강화 교육을 나가는 운니동 팔도강산국악예술단에는 재미있는 국악기와 국악소품이 많다. 오늘은 목화솜 달린 보부상 패랭이가 눈에 들어왔다.

예전엔 생선·소금·나무그릇·질그릇·무쇠 등 부피가 크고 값싼 일용품을 지게에 지고 다니면서 판매하는 상인을 부상(負商) 또는 등짐장수라 하고, 비단·명주·모시·면화·가죽 등 부피가 작고 값나가는 품목을 보자기에 싸서 들거나 질빵에 걸머지고 다니며 판매하는 상인을 보상(褓商) 또는 봇짐장수라 했던바… 보부상(褓負商) 혹은 부보상(負褓商)은 봇짐장수(보상)와 등짐장수(부상)를 통틀어 이르는 명칭이다.

그런데 보부상이 등장하는 역사물을 보면 패랭이 양쪽에 목화솜뭉치 2개가 달린 것을 볼 수 있다. 이에 대한 기원썰을 살펴보면…

고려말 도순찰사 이성계가 전라도 황산(荒山)에서 아기발도(阿只拔都)가 지휘하는 왜구와 교전 중 왼쪽 다리에 화살을 맞았는데, 종군하던 백달원의 수하 중 면화상이 지참한 면화로 응급처치를 했다. 나중에 새 왕조를 연 이성계는 이를 기념하여 패랭이 왼쪽에 목화송이를 달도록 했다.

또한, 병자호란을 당한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 중 상처를 입어 출혈이 생겼을 때 보부상 중 솜장수가 가지고 있던 솜으로 지혈을 했다고 한다. 호란 이후 인조가 태조 대의 일을 상기하여 패랭이 우편에 목화송이 하나를 더 달도록 하여 좌우에 목화송이가 부착된 패랭이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1866년(고종3) 흥선대원군이 8도의 부상단과 보상단을 통합 관장하는 보부청(褓負廳)을 설치하고, 1883년(고종20)엔 개항 이후 외국상인의 침투와 상업의 자유화에 밀려 위협을 받게 된 보부상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군국아문(軍國衙門)의 관할 아래 혜상공국(惠商工局)을 설치한다.

하지만 보부상단은 국가의 비호를 받다보니 자연스레 어용화 하기도 했다. 1894년(고종31) 동학농민운동 때 관군과 일본군의 길잡이가 되어 동학군을 진압하는데 일조하고, 1898년(광무2) 황국협회로 이속된 이후엔 독립협회의 만민공동회를 습격하여 독립협회와 함께 해산되었다.

내가 관심을 보이자 팔도강산국악예술단 원장님이 위드 코로나로 가게 되는 11월 야외공연 때 패랭이 쓰고 함께해보자 권유하시는데, 여건이 된다면 한번 시도해볼 생각이다.


왕들의 목숨을 두 번이나 구해주며 특별한 패랭이를 얻게 된 보부상. 패랭이 양쪽의 목화송이는 보부상의 상징이다. 목화솜 달린 패랭이의 하얀끈을 턱 아래쪽으로 묶어 고정하기가 쉽지 않다. 몇년 전 KBS 2TV 수목드라마 「장사의 神―객주 2015」는 폐문한 천가객주의 후계자가 시장의 밑바닥 여리꾼(삐끼)으로 시작해 상단의 행수와 대객주를 거쳐 보부상들의 우두머리에 오르는 성공스토리를 다뤘다. 국운까지 내다보며 진력하는 도접장 천봉삼(장혁 扮)과 같은 진정한 화천대유(火天大有), 천화동인(天火同人)하는 기업인이 요원하게 느껴진다.


2021년 10월 11일 월요일

왕뚜껑과 수박바

손가락만 씻은 왼손바닥엔 네임펜으로 임금王자 그려 넣고, 오른손으론 왕뚜껑이나 휘휘 저어 편의점 도시락과 함께 아점으로 흡입...

신불산 천공(진정)스승 같은 시대의 멘토도 사사하지 못하고 항문침을 맞을 수도 없으니 이렇게라도 히죽거려볼밖에…

경선 결과에 불복하는 표리부동(表裏不同), 면종복배(面從腹背) 더민주 수박들을 씹으며 롯데 수박바로 시원하게 입가심~ 



2021년 10월 10일 일요일

우중심우(雨中尋牛)길

 혜화문(惠化門)을 출발하여 구 서울시장공관, 경신중·고등학교, 최순우(崔 淳雨) 옛집, 이종석(李鍾奭) 별장, 심우장을 거쳐 북정(北井)마을까지 우중심우(雨中尋牛)길…


1879년 충남 홍성 출생의 한유천(韓裕穿)은 법명(法名)이 용운(龍雲), 법호가 만해(萬海)다.

심우장(尋牛莊)은 만해선사가 1933년부터 1944년까지 만년을 보내다가 입적한 정면4칸, 측면1칸의 팔작지붕 한옥이다. 서재 겸 침실로 사용한 왼쪽 1칸 온돌방에는 일창 유치웅(一滄 兪致雄, 1901~1998)이 쓴 尋牛莊 현판이 걸려 있다. 가운데 2칸은 본래 대청마루인데 지금은 온돌방처럼 꾸며 놓았다. 만해선사와 관련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오른쪽 1칸 부엌이 뒤로 돌출해 있어 전체적으로 ㄴ자형 공간배치를 이루고 있다. 온돌방과 대청은 반자(盤子)틀 천장, 부엌은 서까래를 노출시킨 연등(椽背) 천장을 하고 있다.

심우장은 물론 아랫집 윗집 모두 북향(北向)집이다.


수행자가 정진(精進)을 통해 본성을 깨달아 가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일에 비유한 것이 심우(尋牛)다.

①소를 찾는 심우(尋牛) 이후엔 ②소의 흔적을 보는 견적(見跡), ③소를 보는 견우(見牛), ④소를 얻는 득우(得牛), ⑤소를 기르는 목우(牧牛), ⑥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우귀가(騎牛歸家), ⑦소는 잊고 사람만 있는 망우재인(忘牛在人), ⑧사람과 소를 함께 잊는 인우구망(人牛俱忘), ⑨근원으로 되돌아가는 반본환원(返本還源), ⑩손을 드리우고 저자에 들어가는 입전수수(入廛垂手)의 단계를 밟게 된다.


소(牛)로 상징되는 ‘참 나’를 찾아가는 여정은 발심(發心)에서 출발한다. 부처와 조국과 여인… 스님의 소(牛)는 무엇이었을까? 나의 검은소와 흰소는? 탐함, 노여움, 어리석음… 탐진치(貪瞋痴)의 무명(無明) 밝혀 진여(眞如) 깨치게 하소서.

2021년 10월 8일 금요일

미얀마 민주화운동 연대배지 나눔

지난 9월말에 미얀마 민주화운동 연대배지를 무료 배포한다는 공지글을 접하고 문자로 20개를 신청했는데… 오늘 우체국택배로 수령했다.

붉은 바탕의 원형 배지에는 어김없이 세 손가락이 그려져 있다. 세 손가락 경례는 배우 제니퍼 로렌스가 독재국가 판엠(Panem)의 억압받는 시민들을 이끌고 독재권력에 대항하는 소녀 캣니스 에버딘으로 분(扮)하여 열연한 영화 헝거게임(The Hunger Games)에서 △감사 △존경 △사랑하는 이와의 작별을 상징하는 것으로 묘사됐다. 동명의 원작소설과 영화에서 비롯한 세 손가락 경례는 2014년 태국과 홍콩을 거쳐 2021년 현재는 미얀마에서 독재자의 총칼에 굴하지 않는 저항정신의 상징이 되었다. 요컨대 전체주의에 맞서는 결연한 인사법이 곧추세운 세 손가락인 것이다.


80년 5월의 빛고을 총성을 떠올린다. 미얀마 군부쿠데타에 단호히 반대하고 미얀마 국민들의 피땀 어린 저항을 지지하며 응원한다.

‘미얀마의 전두환’으로 악명 높은 도살자 민아웅흘라잉(Min Aung Hlaing)은 知足願云止(지족원운지)… 만족함을 알고 그만두기를 바라노라!!!

오늘 수업에 참여한 학습자 분들에게 배지를 분양하고, 하나는 내 배낭에 부착했다. 배지를 나눔해주신 미얀마투데이 최진배 대표님께 감사드린다.

※후원: 농협 355-0077-2701-63 (미얀마 투데이)


#SaveMyanmar #standwithMyanmar #StopCoup #JusticeinMyanmar



2021년 10월 4일 월요일

혜화동성당 방학동묘지… 소설가 이무영, 염상섭 묘

시차가 있긴 하지만 오래전에 혜화동성당 방학동묘지에 부모님을 모셨다. 이번에 동생과 추석성묘를 갔다가 예년에 주차하던 곳에서 조금더 올라가 보았는데 이무영, 염상섭… 문인 두 사람의 묘표(墓表)를 발견했다.

경주이씨 이갑용(李甲龍, 1908~1960)은 충북 음성 태생으로 아명은 이용구(李龍九)다. 필명으로 무영(無影), 탄금대인(彈琴臺人), 이산(李山)을 사용했다. 휘문고등보통학교에 다니다가 중퇴하고 도일하여 일본인 소설가 집에서 숙식하며 4년 동안 작가수업을 받고, 1926년 장편 「의지할 곳 없는 청춘」으로 등단했다. 1929년 귀국 후 동아일보 기자, 1931년 극예술연구회, 1933년 九人會 동인으로 활동했다.

1939년 경기도 시흥에 정착, 농사를 지으면서 귀농지식인 김수택을 주인공으로 1930년대 농촌 현실을 묘사한 단편 「제1과 제1장」과 속편 「흙의 노예」로 유명해졌다.

흔히 농민문학의 대표작가로 회자하지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2009.11)와 친일인명사전(2009.11)에 일제 침략전쟁과 전사자 찬양, 지원병 징병 선전선동, 침략전쟁 수행을 위한 조선인의 협력독려 등 일제의 전시식민정책에 적극 협력한 그의 친일활동상과 친일문학의 구체적 내용이 적시돼 있다. 4·19혁명 이틀 후인 1960년 4월21일 뇌일혈로 숨졌다(52세).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부인 고일신(高日新)의 영향으로 세례를 받은 것으로 추정한다.


파주염씨 염상섭(廉尙燮, 1897~1963)은 종로구 체부동 출신이다.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고 1912년 일본 유학길에 올라 게이오(慶應)대학 사학과에서 수학 중 병으로 자퇴했다. 1919년 3월19일 직접 작성한 재오사카 한국인노동자대표 명의의 독립선언서를 발표하려다가 거사 하루 전에 발각, 피체돼 3개월간 복역했다. 이 사건이 이슈가 되어 귀국 후 1기 특채로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에 채용됐다. 1920년 폐허 동인으로 문학활동을 시작하고 1921년 개벽紙에 우리나라 최초의 자연주의 소설로 평가받는 단편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발표했다. 천주교 세례명은 바오로. 늘 술에 취해 갈지자로 걸었기에 횡보(橫步)란 별호를 얻게 됐다는 썰이 그럴듯하다.

여로형 중편소설 「만세전」(1922)에는 봉건적 무지함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일제에 굴종하면서 살아가는 전혀 희망이 없는 듯이 보이는 식민지 조선인의 모습과 어떠한 저항도 못하며 처참함을 느끼는 1인칭 주인공 이인화가 ‘무덤이다. 구더기가 끓는 무덤이다’와 같은 격한 표현을 내뱉는다. 그래서인지 3·1만세운동 직전의 비참한 조선사회를 보여주는 제목 「萬歲前」(시대일보)의 원제는 「묘지(墓地)」(신생활)이다.

장편 세태소설 「三代」는 조의관, 조상훈, 조덕기로 이어지는 1930년대 경성의 보수적인 중산층 가족사를 중심으로 재산상속 문제와 세대갈등을 통해 식민지 조선의 자화상을 그려냈다. 그나마 새로운 세대에 시대적 과제 해결의 희망을 걸고 있는 점이 위안이 된다.

백릉 채만식이 윤용구(선친)-윤두섭(향교 직원)-윤창식(주사)·윤태식(서자)-윤종수·윤종학(동경유학)-윤경손(증손자)으로 이어지는 윤씨 5대를 다룬 가족사 소설 「태평천하(太平天下)」와 비교하는 것도 흥미롭다.

혜화동성당은 세 곳(포천, 방학동, 도봉동)의 묘원이 있다. 이중 혜화동성당 방학동묘지 안에는…

시인 효공(曉空) 박지수(朴智帥) 묘 ― 국가유공자 최형억(崔亨億) 묘 ― 기업인 홍순모(洪淳摸) 묘 ― 소설가 횡보 염상섭 묘 ― 박준규(쌍칼)의 부친 영화배우 박노식(朴魯植) 가족묘 ― 한의사 두암(斗庵) 한동석(韓東錫) 묘 ― 시인 다묵(多黙) 강운회(姜雲會) 묘 ― 한국 및 전 일본 빤담급 참피온 권투선수 고봉아(高峰兒) 묘 ― 소설가 이무영 묘 ― 바이올리니스트 김형량(金亨亮)과 부인 소프라노 정훈모(鄭勳謨) 가족묘 ― 독립유공자 강순남(姜順南) 묘 ― 「인생극장」(영화 「장군의 아들」 원작)을 쓴 소설가 백파(伯坡) 홍성유(洪性裕) 묘가 있다. 인근의 정의공주 묘, 연산군 묘와 함께 날 좋은 날 탐방을 해도 괜찮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