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서울사업단(에이럭스 컨소시엄) 온라인 종무식을 끝으로 전국민 디지털역량교육 2021년 활동이 종료됐다.
스마트폰 교육은 폰마다 기종과 버전이 제각각이고 그에 따라 버튼 위치, 켜고 끄는 방법, 로그인 방법, 자판 등 가장 기초적인 것들이 달라서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보조강사와 함께 인내심을 갖고 장시간 꾸준히 반복적으로 교육했다. 그리고 반드시 학습자들이 구글 아이디와 패스워드, 아이튠즈 아이디를 확보하고, 기초적인 기호를 익히도록 이끌어야 했다. 이런 것들은 앱 설치나 스마트폰을 이용한 본인 인증(문자 or Pass 인증)에 필수 점검 사항이기 때문이다.
올해 내가 담당한 학습자들은 주로 60대 이상의 비문해 여성 노년층이었다. 노년엔 아무래도 기억력이 떨어지고 건강문제가 발생한다. 경쟁하는 것을 꺼려하고 (다른 하는 일이 많아 우선순위에서 밀려) 쉽게 포기하며, (학습경험이 없거나 부족하여서) 뭔가 새로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특히 비문해자일 경우엔 그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싫어한다.
지난 7월,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의 제3차 성인문해능력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18세 이상 성인의 약 4.5%인 200만명이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읽기, 쓰기, 셈하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문해능력 ‘수준1’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기본적인 읽기와 쓰기, 셈하기는 가능하지만 일상생활에 활용하기엔 미흡한 ‘수준2’는 185만여명으로 조사됐으며, 단순 일상생활에서는 불편함이 없지만 공공, 경제생활에서는 어려움이 있는 ‘수준3’은 약 503만명으로 파악됐다. 중학 학력 이상의 충분한 문해력을 갖춘 ‘수준4’ 인구는 3,518만명으로 2017년 조사 때보다 2.2%P 상승했다. 성인 문해력은 연령이 높을수록 소득이나 학력이 낮을수록 농산어촌에 거주할수록 낮게 나타나는 것으로 확인됐다. 요컨대 학력과 소득에 따라 문해력 격차가 큰 것이다.
문자를 깨치는 것은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생존과 인간다운 삶을 위해 꼭 필요하다. 디지털 분야 역시 같은 맥락이다. 디지털교육은 문해교육의 연장이다. 한글을 배운 다음 디지털이 아니라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디지털 소외계층은 대부분 자동화기기 사용 경험이 없는데 이는 생존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삼성전자 측에 요청한다. 장애인이 수월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갤럭시폰을 애플 아이폰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장애인 접근성을 강화해주길 바란다. 장애인에 대한 세심한 배려는 당신들이 내세우는 ‘사회공헌’에 가장 부합하는 부분이 될 수 있다. 공공시설에 설치된 자동화기기는 장애인 등 디지털 소외계층의 이용 편의를 위해 화면이나 버튼 위치 등 형태와 기능을 통일해 주면 좋겠다.
C19 상황에서도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집합교육을 이어왔다. 개인 사정으로 전일제나 반일제가 아닌 시간제 강사로 활동했는데 사업단에서 요구하는 물리적인 실적을 달성하는 것이 꽤 버거웠다.
강사의 부족한 부분을 섬세히 채워준 서포터즈 오유선 선생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미안해하며 열심히 따라와 주신 모든 학습자 어르신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어르신들, 우리 생활의 ‘결’ 자체가 달라졌어요. 이전에는 몰라도 괜찮았지만 알면 좋았던 것들이 모르면 안 되는 것으로 바뀌었어요. 이전에는 안 해도 괜찮았지만 하면 좋았던 것들이 안 하면 안 되는 것들이 되었어요. 갑갑할 때 요청하시면 도와드릴게요. 무엇보다 건강 유의하시고 겁내지 않기로 한 약속들 꼭 지켜나가셔요. 소생에게도 교학상장의 시간이었음을 수줍게 고백합니다. 고맙습니다.
2021년 12월 29일 수요일
2021 전국민 디지털역량강화 서울사업단 종무
2021년 12월 24일 금요일
“나는 조선사람입니다” OST 「춤추는 나무」
12월9일(목) 개봉한 영화 “나는 조선사람입니다” OST 「춤추는 나무」… 백자 가수가 글을 쓰고 곡을 짓고 노래했다. 영화를 본 이후 노랫말은 물론이고 멜로디가 좋아 흥얼거리게 된다. 노래를 짓는 솜씨가 좋다. 좋은 노래가 그늘진 땅에 햇볕한줌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만든다.
유튜브 「춤추는 나무」 ― https://youtu.be/yFCPj8maDbo
♬비바람이 불어 내 몸을 흔들어 견딜 수가 없어.
이파리가 떨려 가지가 찢겨 피눈물이 흘러도
곁에 있는 나무와 어깨동무를 하고 든든한 뿌리를 믿고 우린 함께 버티어 왔네.
바람 거세질수록 더욱더 펄럭이리라. 푸르른 나무가 되어 희망의 춤을 추리라♪
외국인을 배척하고 비난하는 정도가 강한 나라가 있다. 특히 갈라파고스로 악명 높은 일본 같은 국가는 외국인 차별 풍조가 뿌리 깊게 남아 있다. 일본에서 중국에서 중남미·북미에서 중앙아시아에서 아프리카에서 오세아니아에서 유럽 이국땅에서 마음 한편의 불안감과 불편함을 안은 채 차별과 편견에 맞서면서 땀과 정성으로 열심히 살아가시는 재외동포 여러분께 안부를 여쭌다.
#나는조선사람입니다 #私はチョソンサラムです #조선사람 #재일조선인 #재일동포 #재외한인 #재외동포 #김철민감독 #어깨동무 #가수백자
2021년 12월 22일 수요일
이재명 의사의 그날
1909년 12월22일 오늘은 이재명 의사가 명동성당 앞에서 역적 3관왕 이완용을 처단하기 위해 의거한 날이다.
평안북도 선천 출신의 이재명(李在明, 1887~1910)은 평양 일신학교를 마친 뒤 1904년 미국 노동이민 모집에 응모해 하와이에서 농장 노동자로 일하다가, 1906년 3월에 공부를 더 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갔다. 안창호가 설립한 공립협회에 가입해 활동하던 그는 1907년 7월24일 한일신협약(제3차 한일협약, 정미 7조약)의 강제 체결소식을 접하고, 매국노를 처단한다는 공립협회의 결의에 따라 같은 해 10월 도쿄와 나가사키를 거쳐 귀국했다.
1909년 1월, 순종 황제의 서도(西道, 평안도) 순시에 동행하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초대 한국통감을 암살할 계획을 세우고 동지들과 함께 평양역 부근에서 대기했으나, 황제의 안전을 우려한 안창호의 만류로 실행하지 못했다. 이후 원산을 거쳐 블라디보스토크로 넘어갔다가 같은 해 10월26일(화)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 척살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고 고무되어 귀국했다.
1909년 12월22일(수), 종현천주교회당(명동성당)에서 콩고 대학살로 악명 높은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12월17일 사망)의 추도미사에 이완용(李完用)이 참석한다는 신문기사를 본 이재명은 군밤장수로 변장하고 문밖에서 대기하다가, 오전 11시30분경 식장에서 나와 인력거에 오른 이완용에게 달려들었다. 인력거꾼 박원문의 제지를 칼로 제압한 뒤, 이완용의 복부를 찔렀다. 이완용이 인력거 아래로 고꾸라지자 어깨 등을 힘주어 찔렀는데, 이에 이완용이 죽었다고 판단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의거 직후, 일본 순사의 군도에 왼쪽 넓적다리를 찔리는 중상을 입고 체포되었다.
이완용은 이재명의 칼에 왼쪽 폐가 관통되어 치명상을 입은 듯했으나, 대한의원(서울대학교병원)으로 후송돼 일본인 외과의사들이 집도한 수술(국내 흉부외과 수술 제1호)과 당시의 최신의료기술이 총동원된 2개월간의 입원 치료 끝에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이완용은 이때 얻은 상처가 천식과 폐렴으로 발전하여 동절기마다 크게 고생했고 훗날 사망(1926) 원인이 된다.
이재명 의사는 이완용 살인미수와 박원문 살해 혐의로 곧 재판정에 섰는데, 공판에서 태연한 안색과 호걸다운 어조로 이완용의 8대 죄악을 들어 통렬히 꾸짖고 나라를 위하여 처단함이 당연함을 재삼 강조하였다. 안병찬(安秉瓚) 변호사는 장인환(張仁煥) 의사가 미국인 스티븐스(Durham W. Stevens)를 저격한 사건을 미국 법정에서 가볍게 언도한 사실 등을 들어 경한 형을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사형을 선고했다.
이재명 의사는 “왜법(倭法)이 불공평하여 나의 생명을 빼앗기는 하나 나의 충혼(忠魂)을 빼앗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죽어 수십만 명의 이재명으로 환생(幻生)하여 기어이 너희 일본을 망하게 하고 말겠다”고 웅변하였다.
1910년 9월13일(화) 이재명 의사는 경성감옥(서대문형무소) 형장에서 조용히 찬송가를 부르고 24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참으로 의기로운 대한사람의 일생이 아닐 수 없다.
명동성당 입구 보도에 이재명 의사의 의거를 기념하는 표지석이 있다. 1909년 12월22일(수) 의거 당일, 눈이 왔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표석문구] 이재명(1890~1910)은 친일 매국노인 이완용을 척살하려 한 독립운동가이다. 평북 선천 출생으로, 1909년 명동성당에서 벨기에 황제의 추도식을 마치고 나오는 이완용을 칼로 찔렀으나, 복부와 어깨에 중상만 입히고 현장에서 체포되어 이듬해 순국하였다. |
2021년 12월 17일 금요일
「나는 조선사람입니다」 KDN 응원상영회 관람
사당동 이수역 7번출구, 골든시네마타워 12층 아트나인 0관.
어제저녁엔 한국다큐멘터리네트워크(KDN)가 준비한 「나는 조선사람입니다」를 관람했다. 1인칭 관찰자인 ‘나’는 2002년 금강산 관광길에서 처음 재일조선인을 만나면서 호감이 발동하여 그로부터 18년 동안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60만 在日朝鮮人 76년의 역사를 충실하게 그려낸다.
2차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은 자국에 남은 한국인들의 일본국적을 박탈하고, 강점 이전의 국호를 따와 ‘조선적’을 부여했다. 재일동포의 국적은 1990년대 이후 일본적>한국적>조선적 순으로 고정됐다. ‘북한적’이라는 행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적은 일본 귀화인을 말하고, 한국적은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는 뜻이다. 朝鮮籍은 국적이라기보다는 민족적 귀속을 나타내는 기호다. 제국주의 일본에 병탄당한 옛 조선의 후손임을 자처하는 이유는 조국의 분단을 인정하지 않고 그렇다고 조국을 침략한 일본 국민이 되는 것도 거부하겠다는 의지의 산물이다. 항일운동 전력이 있는 지도자가 통치하는 북녘과 관동군 장교 출신이 군림하는 남녘의 상황도 조선적 유지에 한몫 했다. 조선적 동포들은 총련(재일조선인총연합회) 소속이 많다. 이들은 특별영주권을 부여받아 일본땅에 거주하지만 일종의 ‘난민’ 취급을 당하면서 참정권, 교육권 등 여러 면에서 사회적 제약이 심하다.
영화는 “1945년 광복 이후 76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재일조선인 그들이 받는 차별의 고통은 과연 끝났는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일본 유학생을 엮은 간첩조작사건과 그 피해자들의 사례를 담아 극단적인 남북대립의 상황에서 이용당해 온 재일조선인의 기구한 사연을 드러내고자 기획한 「간첩의 탄생」 프로젝트가 재일조선인에 대한 일본사회의 뿌리 깊은 불신과 차별 문제로 확대되어 인간 존엄에 대한 울림으로 재탄생했다.
엔딩 크레딧까지 약 100분 소요. 상영 후에는 김철민 감독(게스트), 나바루 감독(모더레이터)이 대담하는 GV시간이 이어졌다. 10시까지 약 50분 동안 12월16일자 KDN응원시사회 오픈채팅방을 통해 10여 개의 질문이 쏟아져 관객들의 높은 관심과 열기가 표출됐다.
1990년대 보통의 국가(普通の国)를 지향하며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떳떳하게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개헌이 필요하다”는 개헌론이 다시 등판하고, 넷우익의 번식과 재특회(재일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모임)의 결성 등 가해자들의 뒤틀린 죄책감과 열등감이 폭주하면서 우파로 급격히 회귀하는 일본 내 정치경제적 변동과 ‘혐한’의 총체적 백래시의 혐오타깃은 재일조선인과 위안부 피해자, 일본인 납치문제, 역사교과서, 독도 문제, 반일 시위 등으로 모아졌다. 재일조선인 6세까지 나오는 시대이건만 차별과 불관용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한편, 지난 10년 새 조선학교(유치부·초·중·고)의 학생수는 40%나 줄었다. 일본 정부가 조선학교를 무상교육에서 배제하면서 하락세는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은 (분노하되 증오하지 않는) 재일조선인이 유지해 온 민족 정체성에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
자이니치(ざいにち·在日), 조센징, 범죄자, 김치놈, 야생동물, 고키부리(ゴキブリ·바퀴벌레)라는 일본(인)의 혐오에 더해 어느 편인지를 분명히 하라는 남한과 북조선 2개 조국의 양자택일 강요 속에 여전히 ‘조선사람’이란 정체성을 지켜내면서 조국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으로 부조리에 저항하는 동포에게 깊이 공감하며 특별한 응원을 전한다. 그러나 응원만 하고 넘어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남한과 북조선, 38선 이남과 이북이 모두 달라져야 한다. 이국땅에서 차별당하고 박해받는 재일조선인에 대한 가장 큰 위로와 선물은 조국의 평화롭고 자주적인 통일일 테니까. 남녘과 북녘은 서로 도우며 힘이 돼주어야 한다. 마치 조선학교 운동회에서 발달장애를 가진 강륭세 학생을 동무들이 도왔던 것처럼…
#나는조선사람입니다 #私はチョソンサラムです #조선사람 #재일조선인 #재일동포 #김철민감독 #KDN #어깨동무
「나는 조선사람입니다」는 12월9일 개봉했는데, 15일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개봉하면서 상영관 확보(특히 평일 저녁시간)에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자연스러운 표몰이에 힘을 보태야겠다. 초대해준 김철민 감독님, 애쓰셨고 고맙습니다. |
2021년 12월 5일 일요일
민주화운동 더하기 통일운동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에서 2022년 탁상달력을 보내왔다. 평양탐구학교 2기·3기 수강생들의 모습과 강의 때 접한 평양시 이곳저곳의 일상을 담은 사진이 반갑다.
2기 수료 이후에도 최근까지 「역사도시 평양」(안창모 교수)과 「북한의 패션·방송·관광」(전영선 교수)에 대한 온라인 심화강좌가 이어졌다. 2차례에 걸쳐 펼쳐진 「해설이 있는 NK콘서트」는 C19로 지친 심신에 휴식 같은 선물이 되어주었다. 지금도 박순아의 가야금 선율과 이영훈의 장새납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스태프 선생님들께 거듭 감사드린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20번째 생일을 맞아 진행한 낱말 퍼즐 이벤트에 당첨되어 「한정판 DIY 레고 명함꽂이」를 받았다. 빨간 야구모자를 쓴 미니어처 아이가 가슴에 사업회 심볼을 새긴 하늘색 셔츠를 입고 있는 모습이다.
통일운동과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운동…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 없다.
#같이 #명함꽂이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상]평양탐구학교 2기 개강식(5.25)의 모습. 물론 나도 있다. 왼편 달력은 인천시 평양탐구학교 1기 분들의 모습 [하]<2>「해설이 있는 NK콘서트」 팸플릿 |
“같이 - 걸어온 20년, 가야할 20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설립20주년 기념 카드트레이를 조립해 완성했다. |
2021년 11월 30일 화요일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을 할 수도 있다
그제 참여 신청했던 <우리가언론사 나도기자단> 임명장이 나왔다. 요 며칠 사이 신청한 50여 명에게 오늘 날짜(2021.11.29)로 한꺼번에 발급된 듯한데… 임명장 발급번호가 ‘2022-03-09’로 모두 같다.
작금의 주류 언론은 힘 있는 자들에 아양 부리는 랩독(Lapdog)이거나 사회적 이슈에 눈을 감는 슬리핑독(Sleeping dog)이거나 심지어 권력화된 스스로를 지키고자 으르렁대는 가드독(Guard dog)에 다름 아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행동하는 양심’을 강조했던 故 김대중 대통령의 어록(2009.6.25)을 옮겨본다.
“나는 이기는 길이 무엇인지, 또 지는 길이 무엇인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반드시 이기는 길도 있고, 또한 지는 길도 있다. 이기는 길은 모든 사람이 공개적으로 정부에 옳은 소리로 비판해야 하겠지만, 그렇게 못하는 사람은 투표를 해서 나쁜 정당에 투표를 하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나쁜 신문을 보지 않고, 또 집회에 나가고 하면 힘이 커진다. 작게는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 된다. 하려고 하면 너무 많다.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을 할 수도 있다.”
와치독(Watch dog)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아래 구글 폼으로 <우리가언론사 나도기자단>에 동참할 수 있다.
https://forms.gle/5YiaG7kvRm1PD5vKA
2021년 11월 24일 수요일
한국에서 가장 비난 받는 전 군부 독재자(South Korea’s Most Vilified Ex-Military Dictator)
1926년 2월11일, ‘역적 3관왕’ 이완용(1858~1926)이 68세로 사망했다. 다음날인 2월12일, 동아일보는 사망소식을 속보로 냈다. 그리고 2월13일자 1면 [횡설수설]란에 “구문공신(口文功臣) 이완용은 염라국에 입적하였으니, 염라국의 장래가 가려(可慮)“라는 3줄짜리 촌평을 썼다. ‘구문’은 ‘흥정을 붙여 받는 돈’이고 ‘가려’는 ‘걱정할 만하다’는 뜻이니 이완용이 마침내 염라국까지 팔아먹을까 걱정된다고 비아냥댄 것이다.
동아일보는 「무슨 낫츠로(낯으로) 이 길을 떠나가나」라는 제목의 부음논설도 게재했다.
“그도 갓다. 그도 필경 붓들려갔다. 보호순사의 겹겹 파수와 금성철벽의 견고한 엄호도 저승차사의 달려듬 한아는(하나는) 어찌하지를 못하였으며 … 누가 팔지 못할 것을 팔아서 능히 누리지 못할 것을 누린 자냐 … 살아서 누린 것이 얼마나 대단하엿든지 이제부터는 바들(받을) 일, 이것이 진실로 기막히지 아니하랴 … 어허! 부둥켰든 그 재물은 그만하면 내노핫지(내놓지)! 앙랄(악랄)하든 이 책벌을 인제부터는 영원히 바다야지(받아야지)!”
그러나 이 1면 톱기사는 당국의 기휘(금지령)에 따라 발매금지처분을 당했고, 동아일보는 해당 기사를 삭제하고 대신 호외로 발행배포했다.
기사는 이완용을 “팔지 못할 것을 팔아서 누리지 못할 것을 누린 자”로 규정했다. 2021년 11월23일, 시대의 명문을 소환한다. 수많은 필부필부(匹夫匹婦)의 피를 팔아서 누리지 못할 것을 누린 잔혹한 독재자(Brutal Dictator) 전두환은 무슨 낯으로 이 길을 떠나가나. 또 ‘죽은 자를 향한 애도’ 운운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2021년 11월 18일 목요일
□+□+□+□=?
외벽에 새로운 그래피티가 등장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지난 토요일(11월13일) 저녁, 수업 후 관철동 홍길동중고서점으로 가보았다.
장모(추정)―王―개사과―전두환으로 이어지는 4컷짜리 벽화가 노란색 바탕에 청색과 녹색으로 그려져 있었다. 작가 닌볼트(ninbolt, 43)는 尹과 관련한 자기 생각을 그래피터답게 글이 아닌 그림으로 표현했다.
이른바 ‘쥴리 벽화’로 홍역을 치른바 있는 서점주이자 건물주인 여정원(58) 씨는 또다시 정치 이슈로 확산하는 것을 꺼려 어제(17일) 나무판으로 벽화를 덮었고, 이에 대해 닌볼트 작가는 나무판 위에 “세상이 예술을 죽였다”는 울분의 커다란 녹색 문구를 써놓았다고 한다.
□+□+□+□=?
이러나저러나 이 수식의 결과값은 자명하지 않을까.
□+□+□+□=최은순+王자+개사과+전두환=? |
지난 7월 말 홍길동중고서점 외벽에는 ‘쥴리의 남자들’ 7人의 이름을 나열하고, ‘쥴리의 꿈! 영부인의 꿈!’이라는 문구와 함께 김건희를 가리키는 듯한 금발여성의 얼굴이 등장하여 서점 일대가 찬반 지지자들로 몸살을 앓은 바 있다. |
2021년 11월 17일 수요일
수능 필적확인 문구
수능 필적확인은 2004년 11월17일(수)에 치른 2005학년도 수능시험에서 고성능 기기를 사용하는 등 대규모 부정행위가 발생한 데 따른 대책으로 2005년 6월 모의평가 때부터 도입됐다. 수험생은 사후 문제가 발생할 때 본인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답안지에 이름과 함께 필적확인 문구를 적어야 한다.
사람마다 필적이 상당히 다른 ㄹ, ㅁ, ㅂ 중 2개 이상이 반드시 포함되며, 글자에 삐침이 있는 ㅊ, ㅌ, ㅎ이 들어간 문구도 자주 등장한다. 또한, 겹받침이 1개 이상 들어가야 한다.
필적확인 문구는 수능 출제위원들이 정하는데 필적을 확인할 수 있는 ‘기술적 요소’가 담긴 문장 중 수험생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12자에서 19자 사이(띄어쓰기 제외)의 문장을 선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역대 수능 필적확인에 가장 많이 인용된 사람은 정지용(3회)과 윤동주(2회)다. 특히 정지용의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란 하늘빛’은 2005년에 이어 2016년에도 한 차례 더 쓰였다.
다음은 역대 대학수학능력시험 필적확인 문구다. 이 땅의 모든 수험생에게 힘찬 응원을 보낸다.
△2006학년도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란 하늘빛’… 정지용 「향수」
△2007학년도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정지용 「향수」
△2008학년도 ‘손금에 맑은 강물이 흐르고’… 윤동주 「소년」
△2009학년도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윤동주 「별 헤는 밤」
△2010학년도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유안진 「지란지교를 꿈꾸며」
△2011학년도 ‘날마다 새로우며 깊어지고 넓어진다’… 정채봉 「첫 마음」
△2012학년도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황동규 「즐거운 편지」
△2013학년도 ‘맑은 햇빛으로 반짝반짝 물들이며’… 정한모 「가을에」
△2014학년도 ‘꽃초롱 불 밝히듯 눈을 밝힐까’… 박정만 「작은 연가」
△2015학년도 ‘햇살도 둥글둥글하게 뭉치는 맑은 날’… 문태주 「돌의 배」
△2016학년도 ‘넓음과 깊음을 가슴에 채우며’… 주요한 「청년이여 노래하라」
△2017학년도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 정지용 「향수」
△2018학년도 ‘큰 바다 넓은 하늘을 우리는 가졌노라’… 김영랑 「바다로 가자」
△2019학년도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김남조 「편지」
△2020학년도 ‘너무 맑고 초롱한 그 중 하나 별이여’… 박두진 「별밭에 누워」
△2021학년도 ‘많고 많은 사람 중에 그대 한 사람’… 나태주 「들길을 걸으며」
2021년 11월 11일 목요일
지혜와 용기의 덕
“민주와 인권의 오월 정신 반듯이 세우겠습니다”
윤이 11월10일(수)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를 방문해 작성한 방명록 문장이다.
전두환 칭찬에 후한 윤이 보기에 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의 정신을 계승하여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하겠다는 사회적 합의는 ‘비뚤어지고 기울고 굽은’ 것이기에 ‘반듯하게’ 똑바로 세우는 작업이 수행돼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는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었다며 5·18을 폄훼한 이종명, 김순례, 김진태 등 자유한국당 인사들과 궤를 같이하는 역사인식이며, 박근혜가 추진했던 국정 역사교과서의 함의와도 맥이 통한다.
최근 윤 캠프의 김경진이 “지식수준과 토론능력으로 대통령 하나? 윤 후보는 올바른 정책을 뚝심 있게 끌고 갈 용기 있는 지도자”라고 평했단다. “국민의 회초리를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게 용기인가?
윤이든 김이든 國民の力 인사들은 플라톤이 강조한 수호자(통치자·방위자) 계층의 덕목(지혜·용기)에 대해 무지한 것이 분명하다.
‘반드시’와 ‘반듯이’, ‘지그시’와 ‘지긋이’… 이번주 문해교실, 검정고시반 학습자들과 국어 과목 어휘 관련 주제로 공부해야겠다. 도덕 과목 역시 덕윤리 단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성적 덕(지혜)과 품성적 덕(용기·절제)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2021년 11월 6일 토요일
거록한 계보
토착왜구의 난생설화는 대저 이러하다.
주한일본공사는 한국통감을 낳고, 한국통감은 조선총독을 낳고, 조선총독은 미군정사령관을 낳고, 미군정사령관은 사사오입과 그 형제들을 낳았다.
런닝맨 사사오입은 다까끼를 낳고, 반인반신 다까끼는 전대갈을 낳고, 이십구만 전대갈은 이메가를 낳고, 다스 이메가는 아몰랑을 낳았으며, 형광등 아몰랑은 야저를 낳으려 한다. 지금 쩍벌 야저는 알을 깨고 나오려고 한다. 그 야저의 이름은 도리혼돈이라고 한다.
2021년 10월 31일 일요일
일본은 세계유산에 「강제동원의 역사」를 전시하라
(협)마을대학종로 페친들과 함께 효창공원에서 영면하고 계신 순국선열을 참배하고, 청파동 식민지역사박물관으로 향했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의 목소리가 담긴 기획전을 관람하고, 친절한 일본인 봉사자의 안내에 따라 일본 산업유산정보센터에 강제동원 역사의 전시를 촉구하며 빠띠 캠페인즈(https://campaigns.kr/campaigns/407/pickets)에 인증샷을 올렸다. 팻말들기 203, 204, 205, 206번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메이지산업혁명유산 시설에서는 수많은 조선인, 중국인, 연합군포로들이 강제노동으로 고통을 당했다. 일본정부는 2015년 메이지산업혁명유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면서 전세계를 향해 강제노동을 기록하겠다고 약속했지만, 6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오히려 2020년 도쿄에 개설된 산업유산정보센터의 전시는 강제노동의 역사를 부정하며 피해자들을 모욕하고 있다.
일본정부와 전범기업은 강제동원 사죄하고 배상하라!!!
#강제동원 #징용공 #식민지역사박물관 #민족문제연구소 #역사의식
2021년 10월 29일 금요일
삶의 역경 Hardship of Life
「삶의 역경」… 터키 사진작가 메흐메트 아슬란이 촬영해 이름 붙인 「Hardship of Life」는 이탈리아 시에나 국제사진전(2021 Siena Awards)에서 올해의 사진으로 선정됐다. 목발에 의지한 아버지가 팔다리 없는 아들을 들어올리는데, 이들 부자는 환한 웃음을 교환하고 있다.
다섯 살배기 꼬마 무스타파는 시리아 내전 당시 거리에 퍼진 신경가스에 노출된 엄마(자이나브)가 임신 중 복용한 약 때문에 양쪽 팔과 다리가 없는 테트라-아멜리아 증후군(Tetra-amelia syndrome)을 가지고 태어났다. 시리아의 폭탄테러로 오른쪽 다리를 잃은 아빠(문지르 알나잘)의 고민은 자신의 잃어버린 다리가 아니라 팔다리 없는 아이의 장래와 가족에 대한 부양이다.
하근찬의 전후소설 「수난이대」에서는 일제에 의해 남양군도 징용에 끌려갔다가 비행장 폭격으로 왼팔이 절단된 아버지 박만도와 6·25전쟁에서 수류탄 폭발로 왼다리를 잃은 아들 박진수 부자의 동행을 눈앞에 우뚝 솟은 용머리재가 내려다보고 있다.
문지르-무스타파 부자가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 용머리재가 되어 응원하고 지켜줘야겠다. 바람은 언제나 이들 부자의 등 뒤에서 불기를…
2021년 10월 26일 화요일
10월26일
10월26일을 비공식 기념일로 풍자하여 부르는 트렌드는 이미 수년이 됐다.
2021년 10월 24일 일요일
가시
지난 3월, 2021 「서울시 문해교육 특성화 프로그램 지원사업」에 선정된 후 4월1일 첫강을 시작으로 그끄제 16강을 마치면서 총 20회 중 이제 4회차만 남겨놓고 있다.
볼런티어 의존도가 높은 NPO다 보니 이런저런 행사에 쓸 펼침막이나 배너 디자인을 자체 해결하고 있는데… 디자인 전공자도 아니고, 렌더링이 더딘 구형 랩톱을 기동하기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되도 않는 작업에 때때로 훅~ 끓어오르기도 한다. 수년간 내 안에서 돋아나 굵어진 가시들을 조심조심 어루만지는 일이 쉽지 않다.
이번 목요일(10월28일) 오후 2시에 예정된 메리츠자산운용 존 리(John Lee) 대표의 강연을 홍보하는 펼침막과 스탠딩 배너를 드로잉해 넘겼다. 전문가 눈에는 어설퍼 보이겠지만 어쩌는 수가 없다. 당일 남북경협국민운동본부에서 줌 미팅아이디를 지원받고, 임수재 감독님이 촬영에 도움을 주신다. 서울평협에서 유튜브 시스템을 협력하고, 평화신문에서 취재를 나올 예정이다.
현시점의 방역수칙으론 식사를 제공하지 않는 결혼식에 최대 199명(99명+접종완료 100명)까지 참여할 수 있다. 헌데 300명이 들어가는 회관 1층 강당에 10%(30명)만 허용하겠다는 관리실의 처사는 수긍이 가질 않는다.
가시 박힌 상처가 벌겋게 부어올라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날이 있다. 주시하는 눈은 많고 몸은 따라주질 않고 에너지는 소진되고… 하여간 ‘성료’란 결과치가 나오면 좋겠다.
정영욱의 「넘어져도 된다 또 쉬어가도 된다」로 위로를 받는다.
당신은 당신 생각만큼
강한 사람이 아니다.
한계를 떠안고 언제까지나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상한 마음을 떠안고,
바라던 곳에
성히 도착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니 당신의 목표와 꿈을 위해서라도
조금의 쉼을 허락하도록 하자.
쉬는 것도 나아가는 것의
과정일 뿐이기에.
내가 잠시 숨을 고른다 해서
무언가 무너지는 것이 아니기에.
펼침막 3종. [상]행복한 내 인생 만들기 [중]한국여성생활연구원 창립43주년 [하]존리의 경제독립으로 가는 길 |
[좌]행복한 내 인생 만들기(웹자보) [우]존리의 경제독립 프로젝트(스탠드형 배너) |
2021년 10월 14일 목요일
목화솜 달린 보부상 패랭이
요사이 디지털역량강화 교육을 나가는 운니동 팔도강산국악예술단에는 재미있는 국악기와 국악소품이 많다. 오늘은 목화솜 달린 보부상 패랭이가 눈에 들어왔다.
예전엔 생선·소금·나무그릇·질그릇·무쇠 등 부피가 크고 값싼 일용품을 지게에 지고 다니면서 판매하는 상인을 부상(負商) 또는 등짐장수라 하고, 비단·명주·모시·면화·가죽 등 부피가 작고 값나가는 품목을 보자기에 싸서 들거나 질빵에 걸머지고 다니며 판매하는 상인을 보상(褓商) 또는 봇짐장수라 했던바… 보부상(褓負商) 혹은 부보상(負褓商)은 봇짐장수(보상)와 등짐장수(부상)를 통틀어 이르는 명칭이다.
그런데 보부상이 등장하는 역사물을 보면 패랭이 양쪽에 목화솜뭉치 2개가 달린 것을 볼 수 있다. 이에 대한 기원썰을 살펴보면…
고려말 도순찰사 이성계가 전라도 황산(荒山)에서 아기발도(阿只拔都)가 지휘하는 왜구와 교전 중 왼쪽 다리에 화살을 맞았는데, 종군하던 백달원의 수하 중 면화상이 지참한 면화로 응급처치를 했다. 나중에 새 왕조를 연 이성계는 이를 기념하여 패랭이 왼쪽에 목화송이를 달도록 했다.
또한, 병자호란을 당한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 중 상처를 입어 출혈이 생겼을 때 보부상 중 솜장수가 가지고 있던 솜으로 지혈을 했다고 한다. 호란 이후 인조가 태조 대의 일을 상기하여 패랭이 우편에 목화송이 하나를 더 달도록 하여 좌우에 목화송이가 부착된 패랭이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1866년(고종3) 흥선대원군이 8도의 부상단과 보상단을 통합 관장하는 보부청(褓負廳)을 설치하고, 1883년(고종20)엔 개항 이후 외국상인의 침투와 상업의 자유화에 밀려 위협을 받게 된 보부상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군국아문(軍國衙門)의 관할 아래 혜상공국(惠商工局)을 설치한다.
하지만 보부상단은 국가의 비호를 받다보니 자연스레 어용화 하기도 했다. 1894년(고종31) 동학농민운동 때 관군과 일본군의 길잡이가 되어 동학군을 진압하는데 일조하고, 1898년(광무2) 황국협회로 이속된 이후엔 독립협회의 만민공동회를 습격하여 독립협회와 함께 해산되었다.
내가 관심을 보이자 팔도강산국악예술단 원장님이 위드 코로나로 가게 되는 11월 야외공연 때 패랭이 쓰고 함께해보자 권유하시는데, 여건이 된다면 한번 시도해볼 생각이다.
2021년 10월 11일 월요일
왕뚜껑과 수박바
손가락만 씻은 왼손바닥엔 네임펜으로 임금王자 그려 넣고, 오른손으론 왕뚜껑이나 휘휘 저어 편의점 도시락과 함께 아점으로 흡입...
신불산 천공(진정)스승 같은 시대의 멘토도 사사하지 못하고 항문침을 맞을 수도 없으니 이렇게라도 히죽거려볼밖에…
경선 결과에 불복하는 표리부동(表裏不同), 면종복배(面從腹背) 더민주 수박들을 씹으며 롯데 수박바로 시원하게 입가심~
2021년 10월 10일 일요일
우중심우(雨中尋牛)길
혜화문(惠化門)을 출발하여 구 서울시장공관, 경신중·고등학교, 최순우(崔 淳雨) 옛집, 이종석(李鍾奭) 별장, 심우장을 거쳐 북정(北井)마을까지 우중심우(雨中尋牛)길…
1879년 충남 홍성 출생의 한유천(韓裕穿)은 법명(法名)이 용운(龍雲), 법호가 만해(萬海)다.
심우장(尋牛莊)은 만해선사가 1933년부터 1944년까지 만년을 보내다가 입적한 정면4칸, 측면1칸의 팔작지붕 한옥이다. 서재 겸 침실로 사용한 왼쪽 1칸 온돌방에는 일창 유치웅(一滄 兪致雄, 1901~1998)이 쓴 尋牛莊 현판이 걸려 있다. 가운데 2칸은 본래 대청마루인데 지금은 온돌방처럼 꾸며 놓았다. 만해선사와 관련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오른쪽 1칸 부엌이 뒤로 돌출해 있어 전체적으로 ㄴ자형 공간배치를 이루고 있다. 온돌방과 대청은 반자(盤子)틀 천장, 부엌은 서까래를 노출시킨 연등(椽背) 천장을 하고 있다.
심우장은 물론 아랫집 윗집 모두 북향(北向)집이다.
수행자가 정진(精進)을 통해 본성을 깨달아 가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일에 비유한 것이 심우(尋牛)다.
①소를 찾는 심우(尋牛) 이후엔 ②소의 흔적을 보는 견적(見跡), ③소를 보는 견우(見牛), ④소를 얻는 득우(得牛), ⑤소를 기르는 목우(牧牛), ⑥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우귀가(騎牛歸家), ⑦소는 잊고 사람만 있는 망우재인(忘牛在人), ⑧사람과 소를 함께 잊는 인우구망(人牛俱忘), ⑨근원으로 되돌아가는 반본환원(返本還源), ⑩손을 드리우고 저자에 들어가는 입전수수(入廛垂手)의 단계를 밟게 된다.
소(牛)로 상징되는 ‘참 나’를 찾아가는 여정은 발심(發心)에서 출발한다. 부처와 조국과 여인… 스님의 소(牛)는 무엇이었을까? 나의 검은소와 흰소는? 탐함, 노여움, 어리석음… 탐진치(貪瞋痴)의 무명(無明) 밝혀 진여(眞如) 깨치게 하소서.
2021년 10월 8일 금요일
미얀마 민주화운동 연대배지 나눔
지난 9월말에 미얀마 민주화운동 연대배지를 무료 배포한다는 공지글을 접하고 문자로 20개를 신청했는데… 오늘 우체국택배로 수령했다.
붉은 바탕의 원형 배지에는 어김없이 세 손가락이 그려져 있다. 세 손가락 경례는 배우 제니퍼 로렌스가 독재국가 판엠(Panem)의 억압받는 시민들을 이끌고 독재권력에 대항하는 소녀 캣니스 에버딘으로 분(扮)하여 열연한 영화 헝거게임(The Hunger Games)에서 △감사 △존경 △사랑하는 이와의 작별을 상징하는 것으로 묘사됐다. 동명의 원작소설과 영화에서 비롯한 세 손가락 경례는 2014년 태국과 홍콩을 거쳐 2021년 현재는 미얀마에서 독재자의 총칼에 굴하지 않는 저항정신의 상징이 되었다. 요컨대 전체주의에 맞서는 결연한 인사법이 곧추세운 세 손가락인 것이다.
80년 5월의 빛고을 총성을 떠올린다. 미얀마 군부쿠데타에 단호히 반대하고 미얀마 국민들의 피땀 어린 저항을 지지하며 응원한다.
‘미얀마의 전두환’으로 악명 높은 도살자 민아웅흘라잉(Min Aung Hlaing)은 知足願云止(지족원운지)… 만족함을 알고 그만두기를 바라노라!!!
오늘 수업에 참여한 학습자 분들에게 배지를 분양하고, 하나는 내 배낭에 부착했다. 배지를 나눔해주신 미얀마투데이 최진배 대표님께 감사드린다.
※후원: 농협 355-0077-2701-63 (미얀마 투데이)
#SaveMyanmar #standwithMyanmar #StopCoup #JusticeinMyanmar
2021년 10월 4일 월요일
혜화동성당 방학동묘지… 소설가 이무영, 염상섭 묘
시차가 있긴 하지만 오래전에 혜화동성당 방학동묘지에 부모님을 모셨다. 이번에 동생과 추석성묘를 갔다가 예년에 주차하던 곳에서 조금더 올라가 보았는데 이무영, 염상섭… 문인 두 사람의 묘표(墓表)를 발견했다.
경주이씨 이갑용(李甲龍, 1908~1960)은 충북 음성 태생으로 아명은 이용구(李龍九)다. 필명으로 무영(無影), 탄금대인(彈琴臺人), 이산(李山)을 사용했다. 휘문고등보통학교에 다니다가 중퇴하고 도일하여 일본인 소설가 집에서 숙식하며 4년 동안 작가수업을 받고, 1926년 장편 「의지할 곳 없는 청춘」으로 등단했다. 1929년 귀국 후 동아일보 기자, 1931년 극예술연구회, 1933년 九人會 동인으로 활동했다.
1939년 경기도 시흥에 정착, 농사를 지으면서 귀농지식인 김수택을 주인공으로 1930년대 농촌 현실을 묘사한 단편 「제1과 제1장」과 속편 「흙의 노예」로 유명해졌다.
흔히 농민문학의 대표작가로 회자하지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2009.11)와 친일인명사전(2009.11)에 일제 침략전쟁과 전사자 찬양, 지원병 징병 선전선동, 침략전쟁 수행을 위한 조선인의 협력독려 등 일제의 전시식민정책에 적극 협력한 그의 친일활동상과 친일문학의 구체적 내용이 적시돼 있다. 4·19혁명 이틀 후인 1960년 4월21일 뇌일혈로 숨졌다(52세).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부인 고일신(高日新)의 영향으로 세례를 받은 것으로 추정한다.
파주염씨 염상섭(廉尙燮, 1897~1963)은 종로구 체부동 출신이다.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고 1912년 일본 유학길에 올라 게이오(慶應)대학 사학과에서 수학 중 병으로 자퇴했다. 1919년 3월19일 직접 작성한 재오사카 한국인노동자대표 명의의 독립선언서를 발표하려다가 거사 하루 전에 발각, 피체돼 3개월간 복역했다. 이 사건이 이슈가 되어 귀국 후 1기 특채로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에 채용됐다. 1920년 폐허 동인으로 문학활동을 시작하고 1921년 개벽紙에 우리나라 최초의 자연주의 소설로 평가받는 단편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발표했다. 천주교 세례명은 바오로. 늘 술에 취해 갈지자로 걸었기에 횡보(橫步)란 별호를 얻게 됐다는 썰이 그럴듯하다.
여로형 중편소설 「만세전」(1922)에는 봉건적 무지함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일제에 굴종하면서 살아가는 전혀 희망이 없는 듯이 보이는 식민지 조선인의 모습과 어떠한 저항도 못하며 처참함을 느끼는 1인칭 주인공 이인화가 ‘무덤이다. 구더기가 끓는 무덤이다’와 같은 격한 표현을 내뱉는다. 그래서인지 3·1만세운동 직전의 비참한 조선사회를 보여주는 제목 「萬歲前」(시대일보)의 원제는 「묘지(墓地)」(신생활)이다.
장편 세태소설 「三代」는 조의관, 조상훈, 조덕기로 이어지는 1930년대 경성의 보수적인 중산층 가족사를 중심으로 재산상속 문제와 세대갈등을 통해 식민지 조선의 자화상을 그려냈다. 그나마 새로운 세대에 시대적 과제 해결의 희망을 걸고 있는 점이 위안이 된다.
백릉 채만식이 윤용구(선친)-윤두섭(향교 직원)-윤창식(주사)·윤태식(서자)-윤종수·윤종학(동경유학)-윤경손(증손자)으로 이어지는 윤씨 5대를 다룬 가족사 소설 「태평천하(太平天下)」와 비교하는 것도 흥미롭다.
혜화동성당은 세 곳(포천, 방학동, 도봉동)의 묘원이 있다. 이중 혜화동성당 방학동묘지 안에는…
시인 효공(曉空) 박지수(朴智帥) 묘 ― 국가유공자 최형억(崔亨億) 묘 ― 기업인 홍순모(洪淳摸) 묘 ― 소설가 횡보 염상섭 묘 ― 박준규(쌍칼)의 부친 영화배우 박노식(朴魯植) 가족묘 ― 한의사 두암(斗庵) 한동석(韓東錫) 묘 ― 시인 다묵(多黙) 강운회(姜雲會) 묘 ― 한국 및 전 일본 빤담급 참피온 권투선수 고봉아(高峰兒) 묘 ― 소설가 이무영 묘 ― 바이올리니스트 김형량(金亨亮)과 부인 소프라노 정훈모(鄭勳謨) 가족묘 ― 독립유공자 강순남(姜順南) 묘 ― 「인생극장」(영화 「장군의 아들」 원작)을 쓴 소설가 백파(伯坡) 홍성유(洪性裕) 묘가 있다. 인근의 정의공주 묘, 연산군 묘와 함께 날 좋은 날 탐방을 해도 괜찮을 듯.
2021년 9월 30일 목요일
TV쇼 진품명품 「님의 침묵」 초간본
지난 일요일(2021.9.26) 오랜만에 TV쇼 진품명품(1292회)을 시청했다. 소개된 작품 중 마지막 3번째 의뢰품인 만해 한용운(1879~1944)의 「님의 沈默」 초간본이 가장 흥미로웠다.
이날 등장한 의뢰품은 1926년 회동서관에서 출간한 초판본이었다. 1933년 조선어학회가 제정한 한글맞춤법통일안 이전에 나온 초판본에서는 긔룬(그리운), 숭(흉), 새암(샘) 같은 고향 충청도 방언과 ‘알ㅅ수업서요’와 같은 한용운 특유의 시어를 확인할 수 있다. 1934년에 발행된 재판본부터는 한글맞춤법통일안에 맞춰 방언이나 개인적인 시어들이 수정되었기에 초간본 어조의 참맛은 많이 잃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나온 초판본 시집은 당시 300부 정도 제작됐는데 지금은 10~20권 정도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돼 희소성을 더하고 있다(최종 감정가 8천만원).
시집은 창작동기를 밝힌 ‘군말’로 시작하여 후기격인 ‘讀者에게’로 끝맺고 있다. 첫 시는 ‘님의 침묵’이고 마지막 시는 ‘사랑의 끝판’이다. 특히, 처음 접하는 ‘군말’의 내용이 새로웠다.
“님만 님이 아니라 긔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의 님이 봄비라면 마치니의 님은 이태리다.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이 긔루어서 이 시를 쓴다.”
김영복 서예·고서 감정위원은 작품 해설 중에 한용운 스님이 입적할 때까지 11년을 살았던 성북동 심우장(尋牛莊)이 남향을 하면 조선총독부와 마주 보게 되는 까닭에 일부러 북향으로 지었다는 일화를 소개했는데… 실상 심우장에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지형 자체가 북사면이어서 남향으로 집을 짓기가 여의치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님의 불굴의 의지와 지사적 풍모가 훼손될 일은 없다.
레이첼 카슨은 봄의 침묵을, 폴 사이먼은 소리의 침묵을, 토머스 해리스는 양들의 침묵을, 폴 데이비스는 우주의 침묵을, 엔도 슈샤쿠는 하느님의 침묵을 그리고 한용운은 님의 침묵을…
스님은 종교적인 절대자로, 일제에 빼앗긴 조국으로, 사랑하는 여인으로 님을 형상화했다. 님의 부재 상황과 그로 인한 슬픔은 해방 70년이 훌쩍 넘도록 해소되지 않고 있다. 허나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붓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다.
일제강점기에 간행된 붉은색 표지의 「님의 침묵」 초판본(大正15년 5월15일) |
2021년 8월 3일 화요일
노락당… 아들이 왕이 되어 노자는 즐겁다
2021년 운현궁 2번째 한정판 입장권. 지난 7월의 노안당(老安堂)에 이어 8월에는 노락당(老樂堂) 전경이 인쇄됐다.
노락당은 여흥부대부인 민씨의 공간이다. 운현궁의 중심 건물답게 정면 10칸, 측면 3칸의 큰 규모를 자랑한다. 무엇보다 중앙의 대청을 중심으로 동서 양측으로 2개씩의 온돌방을, 앞뒤로는 퇴간을 두어 궁궐 내전의 평면구성과 맥을 같이 한다.
기둥머리 부분은 익공과 창방이 십자로 짜인 사괘 맞춤 형식이다. 그 위에 주두가 놓이고 퇴량이 얹히는 초익공 양식의 공포가 짜여 있는데, 현재 운현궁 내에서는 노락당에만 공포가 구성돼 있어 가장 높은 위계를 드러낸다.
동쪽 부엌(상부다락) 뒤편으로 흥선의 적장손 이준용의 저택이었던 양관(洋館)이 보인다. 예전에는 양관으로 연결됐던 복도각이 있었다고 한다. 양관은 2016~2017년 빅히트했던 tvN 드라마 「도깨비」에서 도깨비(공유 분)와 저승사자(이동욱 분)가 거주하는 집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노락당의 편액 글씨는 추사 김정희의 의발을 전수받은 제자로 칭해지는 무인 신관호(申觀浩 1810~1888, 이후 신헌申櫶으로 개명)가 썼다.
‘노락당(老樂堂)’을 “아들이 왕이 되어 노자(老子, 흥선대원군 본인)는 즐겁다”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1866년(고종3) 병인년 3월에 열다섯 이명복은 노락당에서 열여섯 민자영과 친영례(親迎禮, 신랑이 신부의 집에 가서 신부를 데리고 신랑의 집으로 온 다음에 올리는 예식)를 거행했다.
병인년 정월에 병인박해가 시작됐고, 그 반동으로 11월에 병인양요가 일어났다. 같은해 7월에는 통상을 요구하며 행패를 부리던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General Sherman)號가 소각됐다. 그야말로 격동의 시국이었다.
2021년 7월 25일 일요일
한국전쟁, 쉼표에서 마침표로! 🌿 인증샷
2021년 7월 20일 화요일
제1500차 수요시위 공동주관인 참여
7월14일 수요일… 사전에 인터넷으로 지원한 11개국 1500명 공동주관인의 일인으로 제1500차 수요시위에 유튜브 라이브로 참여했다. 1992년 1월8일부터 2021년 7월14일까지 1500차, 10500일, 29년 동안 매주 수요일을 맞았지만 여전히 무도한 일본정부는 1500번의 외침을 무시하고 오히려 역사적 진실을 지속적으로 외면·왜곡하고 있다.
정의기억연대 채널(https://www.youtube.com/c/thekoreancouncil)을 보니 종로구 수송동 현장이 꽤 소란스러워 보였는데, 나중에 듣고 보니 수꼴들이 몰려와 악다구니를 써댔단다. 본국의 지침이 있었던 게지.
수요시위 유튜브 중계화면에서 나비모양 현수막에 인쇄된 1552명의 공동주관자 중 자기 이름을 찾아 캡처한 후 지정된 해시태그를 달아 SNS에 인증하면 추첨을 통해 나비뱃지를 증정하는 이벤트가 있었는데… 이미 뱃지를 지니고 있기도 하고, 뱃지를 받으려고 참여한 건 아니니 상관은 없다.
올 8월14일이면 故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 30년, 기림일을 맞게 된다.
정의기억연대의 표현처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위이자 가장 슬픈 시위이며 가장 자랑스러운 시위는 청산하지 못한 역사를 바로 세우는 그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연대의 힘은 바위처럼 강하다!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다.”
#수요시위 #수요시위를지키는사람들 #강제동원사죄하라 #바위처럼 #1500차수요시위 #1500thWednesdayDemonstration #1500回水曜デモ
우리는 일본정부에 △전쟁범죄 인정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진상 규명 △피해자 법적 배상 △범죄 책임자 처벌 △역사교과서 기록 및 교육 △추모관 및 사료관 건립을 촉구한다. |
1500차 수요시위에서는 국내외 청소년 및 성인을 대상으로 한 「나와 수요시위」 에세이 공모전 수장작 15편 중 3편이 낭독됐다. |
1500차 수요시위에 함께한 11개국(대한민국, 일본, 대만, 인도네시아, 미국, 캐나다, 독일, 프랑스, 호주, 뉴질랜드, 아랍에미리트) 1552 공동주관인 명단 |
제1500차 수요시위 이튿날(7.15) 남산 국치길을 탐방했다. 기억의 터 ‘대지의 눈’에 새겨진 그림은 故 김순덕 할머니의 「끌려감」이다. |
2021년 7월 19일 월요일
「남북철도잇기 한반도평화대행진」 68일차
7월18일 일요일 오전… 벼르던 「남북철도 잇기 한반도 평화 대행진」에 함께했다. 68일차 일정이다.
「남북철도잇기 한반도평화대행진」은 남과 북의 철도 연결을 상징하는 조형물을 참여 시민들이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판문점 선언(2018) 채택일인 4월27일 부산역 광장을 출발하여 휴전협정(1953) 체결일인 7월27일 임진각까지 걸어서 행진하는 장거리, 장시간 행사로 진행돼 왔다.
하지만 수도권 방역 4단계 격상과 돌발상황을 의식하는 경찰의 강력한 통제로 7월14일부터는 1인 행진(이동형 1인 피케팅)으로 전환돼 진행하고 있다. 피켓과 손깃발을 들고 100m 내외 간격의 거리두기로 순차적으로 출발하여 시민들과 눈 맞추며 인도 보도블록을 걷는 방식이다.
18일 코스는 오전10시, 광화문역 8번 출구를 출발하여 세종대왕동상 → 서울광장 → 삼성본관빌딩을 거쳐 서대문역 쌀박물관 앞에서 종산(경찰 표현)했다.
내 인생 언제 경찰 칸보이와 에스코트를 받아볼 것인가. 든든하다.
소나기를 피하랴. 폭염인들 무서우랴. 껍데기 쇠붙이야 깝치지 마라. 흙먼지 모두 마시면서 한라에서 백두까지 내 땅에 내가 간다.
#남북철도잇기한반도평화대행진 #남북철도잇기 #남북철도 #대북제재해제 #판문점선언이행
2021년 7월 11일 일요일
백두산 밀레니엄 분화
투모로우 워(The Tomorrow War)… 모처럼 여유로운 주말 오후, SF영화 한 편을 때려봤다.
내용은 딸바보 아빠 댄(크리스 프랫 분)의 고군분투로 무려 1000년을 동토층 지하에서 암약해 온 괴물 에이리언(화이트 스파이크스)을 퇴치하고 디스토피아 미래를 막아낸다는 설정이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모자관계가 부녀관계로 바꼈을 뿐 세계관은 비슷하다. 스토리도 액션도 엉성하지만, 킬링타임용으로 즐기기에 무난한 편이다.
1시간 16분 무렵에 태극기가 펄럭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1시간 44분경에 백두산 폭발 얘기가 나온다. 댄의 제자 마틴의 대사에 따르면 백두산은 서기 946년에 핵폭탄 1000개가 넘는 힘으로 폭발했다. 전 세계 절반을 재로 뒤덮었고, 오늘날에도 그 화산재가 얼음 속에 묻혀 있는 걸 볼 수 있단다.
실제로 지금의 백두산 천지를 형성한 946년의 분화는 유사 이래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 중 하나로 밀레니엄 분화(Millennium eruption) 사건이라 칭한다. 서기 79년 폼페이를 멸망시켰던 이탈리아 베수비오 화산 폭발 때보다 분출량이 50배 이상 많은 대분화였다. 백두산의 대규모 폭발은 당시 발해의 부흥운동이 결국 실패로 돌아가는 결과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다.
위에서 다섯 번째에 태극이가 펄럭이고 있다. |
♪♬ 한 민족인 형제인 우리가 서로를 겨누고 있고 우리가 만든 큰 욕심에 내가 먼저 죽는걸. 진정 너는 알고는 있나… 언젠가 나의 작은 땅에 경계선이 사라지는 날 많은 사람이 마음속에 희망들을 가득 담겠지… 젊은 우리 힘들이 모이면 세상을 흔들 수 있고 우리가 서로 손을 잡은 것으로 큰 힘인데 우리 몸을 반을 가른 채 현실 없이 살아갈 건가… 갈려진 땅에 친구들을 언제쯤 볼 수가 있을까. 망설일 시간에 우리를 잃어요…♫𝅘𝅥𝅯 「발해를 꿈꾸며」
미국 아마존 오리지널 영화 한 편으로 1994년의 서태지를 소환하게 된다.
2021년 7월 3일 토요일
운현궁 한정판 입장권 배부
흥선대원군의 사가인 서울 운현궁(雲峴宮, 사적 제257호)이 7월1일(목)부터 12월31일(금)까지 한시적으로 한정판(limited edition) 방문기념 입장권을 6개월간 무료로 배부한다. 그동안 운현궁은 별도의 입장료가 없었던 만큼 입장권도 발부하지 않다가 이번에 매달 선착순 1만 명에 희소아이템 입장권을 배부하는 이벤트를 시작했다.
입장권은 「운현궁 관람 안내 책자」에 담기지 않은 또 다른 운현궁의 정보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제 아침나절, 운니동 외부 강의 나가는 길에 잠깐 들러 입장권을 받고 경내를 둘러보았다. 7월 입장권은 노안당(老安堂) 방에서 남쪽 담장 너머 덕성여대 종로캠퍼스 방면을 바라본 모습이 담겨 있다. 최대한 비슷한 각도를 찾아 셔터를 눌렀다. 12월까지는 근처에 강의가 잡혀 있으니 매월 초에 운현궁의 색다른 멋을 담은 ‘작품 입장권’을 만나볼 수 있을 듯하다. 소확행이다.
노안당(老安堂)은 운현궁의 사랑채로 흥선대원군의 주된 거처였다. 노안은 「논어」 가운데 ‘노자(老子)를 안지(安之) 하며’라는 구절에서 따왔는데 ‘노인을 공경하며 편안하게 한다.’라는 뜻이다. 노안당은 노락당(老樂堂)과 함께 1864년(고종 1) 3월에 상량하고, 같은 해 완공하였다. |
서울 운현궁, 7월(2021년) 한정판 입장권 |
2021년 6월 28일 월요일
이념을 담은 평양의 도시공간
6월22일(화) 평양탐구학교 2기 5회차에선 경기대학교에서 건축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안창모 교수가 「도시와 건축으로 읽는 평양」을 주제로 이데올로기가 도시구조를 어떻게 다르게 만들 수 있는지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다.
서울은 조선시대 이후 제1의 도시로 山을 품에 안고 내사산으로 둘러싸인 역사도시다. 반면, 평양은 고구려의 수도 이후 제2의 도시로서의 위상을 갖고 있으며, 川을 품에 안고 대동강과 보통강으로 둘러싸인 계획도시다.
안 교수는 서울-평양 두 도시의 심장부인 광화문광장과 김일성광장을 비교·대조하는 것으로 서울과 평양의 도시공간 변화를 가늠할 수 있다고 했다.
서울은 6·25전쟁의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상대적으로 옛 모습을 유지한 상태에서 미국의 지원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갖추었다. 반면, 평양은 심각한 전쟁 피해로 인해 어떤 면에서는 새로운 이념으로 새로운 도시를 건설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사회주의 도시는 “자본주의 대도시는 모든 사회악의 온상”이라는 로버트 오웬(R. Owen)의 관점 등 자본주의 도시에 대한 반성에서 구상됐다. 사회주의 도시계획은 대도시화를 지양하고 작은 규모의 도시를 선호하며, 녹지 영역을 적극적으로 구성한다.
1924년 집권한 스탈린은, 구시대와의 결별을 부르짖으며 사회주의 예술로 각광받던 러시아 구성주의(Constructivism)를 형식화되었다고 비판하고 그리스·로마 건축에 기초한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을 수용하면서 과거로 회귀했다.
해방이후 소련의 지원으로 성립된 김일성정권에서 김일성종합대학, 김일성종합병원, 만경대혁명학원, 해방호텔 등이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다.
모스크바 건축대학 출신의 김정희(1921~1975)는 절대권력자의 요청을 받고 평양이 현재의 물리적 형태를 갖추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전후복구를 위한 1953년의 마스터플랜에서 평양 도심의 구성은 국가기관을 앉히기보다는 근로자의 더 나은 삶을 위한 물리적인 형식으로 상징화되었다.
1970년대 들어 마르크스-레닌주의는 1950년대에 주창된 주체사상으로 대체되었는데, 이는 건축양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 준공된 평양의 인민문화궁전(1974)이나 묘향산의 국제친선전람관(1978) 등은 소련과 동구권의영향에서 벗어나 전통을 강조하는 민족건축양식에 입각해 설계되었다. 평양의 도시 기반 시설 대부분이 전후복구 때부터 1970년대에 걸쳐 건설되었다.
평양의 공공프로젝트 : 김일성종합대학, 중앙종합병원, 만경대혁명학원, 해방호텔 ⇒ 신고전주의 건축양식. 스탈린이 구성주의를 버리고 고전주의 건축으로 회귀한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김일성은 신고전주의양식에서 민족건축양식으로 전환했다. |
매체를 통해 걸러지는 평양의 모습이 한가로워 보이는 이유는 이데올로기의 우월성을 드러내는 쾌적한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발상 이외에도, 또다시 전쟁상황이 닥칠 경우 폭격 등으로부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건물을 일정 간격을 두고 세웠기 때문이다.
강의를 통해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건축적 스케치를 통한 도시에 대한 제안이라든가 부아쟁 계획(Plan Voisin) 같은 용어와 개념을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6·25전쟁 시의 폭탄세례로 초토화된 평양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구현된 사회주의 도시의 특징을 객관적으로 파악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더하여 하나의 역사적 뿌리와 문화적 전통을 가진 민족이 상이한 이데올로기로 인해 도시와 건축이라는 생활양식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도 각인됐다. 서로의 모습과 차이를 인정하는 일부터 선행돼야겠다. 젠장… 다시 출발점이다.
스태프 선생님들이 마련해주신 유부초밥과 컵과일… 맛 좋습니다. |
2021년 6월 21일 월요일
KSM이 마련한 「해설이 있는 NK콘서트」
6월15일(화) 평양탐구학교 4차시는 통일TV 진천규 대표가 「평양 여행가서 무엇을 먹을까?」란 타이틀로 △평양은 통화 중 △종횡무진 달리는 택시 △밝게 뛰어노는 아이들 △북녘의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2017년과 2018년에 북녘을 다녀온 진 대표에 따르면 평양시민들은 음식점·백화점·버스·지하철 등지에서 통화는 물론 사진을 찍고 게임도 즐기며 일상적으로 휴대폰을 사용한다. 식당에서는 봉사원이 태블릿PC를 통해 주문을 받고, 평양국제공항·평양호텔에서는 와이파이를 통해 남녘과 미국에 이메일을 보내면서 업무를 보았다고도 했다.
평양은 버스, 지하철, 전차(궤도·무궤도), 택시… 이렇게 4종류의 대중교통 수단이 있다. 출퇴근 시간에는 꽤 많은 차량이 이동하고, 5원 하는 버스와 지하철도 만원이라고 한다. 북녘을 방문하는 외지인(또는 외국인)은 자유롭게 택시를 탈 수 없는데, 안내원에게 이야기하여 안내원과 동행하는 ‘참관’을 할 수 있다. 진 대표가 참관한 택시 운전원은 하루 평균 40~50명을 봉사한다고 밝혔다고 한다.
진 대표는 미제를 때려잡기 위해 군사훈련을 하거나 꽃제비로 연명하고 있는 모습까지는 아니지만 북녘 아이들이 어딘가 불안하고 움츠린 모습일 거라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취재 중 마주한 아이들은 자신감이 넘치고 오히려 당돌한 모습까지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학교가 파하면 남녘처럼 학원을 전전하는 모습 없이 친구들과 어울려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평양의 4대 음식으로는 평양냉면, 녹두지짐이(빈대떡), 평양온반, 대동강숭어국이 꼽힌다.
평양냉면에는 고기쟁반국수, 쟁반냉면, 냉면이 있다. 명예화 지배인에 따르면 옥류관 평양냉면은 하루에 1만기(器)를 봉사한다는데, 한 사람이 200g짜리를 두 그릇을 먹는 경우도 많기에 하루에 6~7천명 분을 봉사한다고 한다. 옥류관 앞에는 많은 차가 주차돼 있고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도 늘어서 있다. 시민들은 직장단위, 지역단위로 미리 발급받은 식권을 내고 입장하게 된다.
옥류관의 쟁반냉면과 쉬움떡(술떡), 청류관의 숯불구이와 대동강숭어국, 려명거리 온반집의 온반(따뜻한 밥), 경흥맥주집 스탠딩홀의 대동강생맥주, 이딸리아료리전문식당과 별무리차집의 삐쟈와 스빠게띠… 하나같이 맛보고 싶은 평양음식들이다.
진천규 대표는 북한을 방문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으로 무엇보다 언어가 통해서 좋았고, 음식이 입에 맞아서 좋았다고 했다.
옥류관 주요 요리의 정량표. ‘료리기당’은 ‘요리 한 그릇 당’이라는 뜻이다. |
2층에서 내려본 청류관 홀 모습. 유명식당의 총책임자나 지배인은 대부분 여성이다. |
6월16일(수) 저녁에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마련한 「해설이 있는 NK콘서트」를 직관했다.
가야금 연주자로 나선 박순아 씨는 오사카에서 나고 자란 재일교포 3세로 조총련계 민족학교를 다니며 10살 때 처음 가야금을 접했다. 도쿄조선대학교 사범학부음악과에서 공부하고 국립평양음악무용대학에서 북한 명인들로부터 가야금을 사사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고대 남녘사람 우륵(于勒) 선생이 창안한 가얏고가 재일동포의 손사위로 북녘노래 ‘봄소식’을 전해준다. 그가 타는 25현 가야금 선율은 박순아라는 이름처럼 순(順)하고 우아(雅)했다.
장새납은 1970년대에 새납(태평소)을 개량 발전시킨 북녘의 목관악기로 새납보다 길다. 이영훈의 장새납 소리는 풍부한 표현력과 호탕한 음색으로 푸르지오아트홀을 가득 채우며 관객의 갈채와 호응을 이끌어냈다. 공연은 2018년 남녘 가수들의 방북공연 「봄이 왔다」가 눈앞에서 재현된 모습이었다. 음악의 힘은 철조망도 막지 못한다.
해설이 있는 NK콘서트. 배인교 교수의 북한음악 개괄을 다시 읽어봐야겠다. |
2021년 6월 14일 월요일
당신이 지금 궁금한 ‘요즘 평양’
8일(화) 평양탐구학교 3회차에는 제주도 출신의 호주교포 정재연 씨의 좌충우돌 평양 여행기가 펼쳐졌다. 2018년 개봉한 윤종빈 감독의 영화 「공작」(황정민·이성민·조진웅·주지훈)을 보고선 북한여행을 결심했다는데, 가족과 지인들의 만류가 컸다고…
김포공항에서 2시간 걸려 베이징공항으로 이동한 다음, 북한 비자가 없는 상태에서 중국 144시간 무비자 체류 허가후 비로소 발급 받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관광증’ 국적란(민족별)에 ‘조선’이라고 기재돼 있어 깜놀했다고…
최하위 평점으로 알려진 고려항공에 탑승하여 무슨 고기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패티와 마치 흘린 것처럼 몇 가닥 들어가는 야채로 유명한 ‘미스터리 버거’ 기내식도 맛보면서 90분 걸려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고…
북한 여행시 가져갈 수 있는 것들엔 스마트폰, 아이패드, 노트북 같은 디지털기기가 포함돼 있는데, 호텔 내에서 와이파이도 쓸 수 있고, 공항에서 SIM카드를 구입하면 국제전화도 가능하다. 반면, 북한화폐나 남한책(특히 한글로 쓰인 책, 종교서적 등)은 가져갈 수 없다고 한다.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은 △북한 사회주의에 대한 존중 △종교행위 No △단독행위 No △지도자에 대한 존중이다. 사진촬영 때는 주의사항이 많고, 정해진 시간 내에 쇼핑을 끝내야 한다.
미스 정(북녘 사람들의 호칭)은 △평해튼 려명거리와 저녁 마실 △25,550개의 돌이 들어간 세계에서 2번째로 높은 170m 석탑, 주체사상탑 △마실거리(코코아탄산단물·커피·7가지의 대동강맥주 등)와 먹거리(물을 넣은 비빔밥·평양랭면·오리고기·단설기·튀기·신젖·닭알·닭알아이스크림·땅콩사탕 등) △몸까기(다이어트) 특별봉사 △1973년 개통한 3개 노선 17개 역의 평양지하철과 세계에서 가장 깊은 110m 승강장 △화장품과 미용, 영화관 체험 △배그네(바이킹) 이름이 독특한 놀이공원, 개선청년공원 △남측의 판문점과 북측의 판문각 그리고 정전협정서약서 원본 △대성산혁명열사릉의 헌화 △한편으론 추레한 평양의 이면과 관찰·감시하는 눈 △북한 주민들과 함께 지낸 함경북도 홈스테이 등을 소개하며 영화 속으로 들어간 듯이 소회를 이어갔다.
요컨대 긴장과 두려움, 설렘이 잘 드러난 토크콘서트였다. 미스 정의 말대로 대통령을 탄핵하는 체제와 지도자를 신적인 존재로 대하는 체제가 통일을 이룬다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 허나 분명한 것은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것이다. 민족도 하나, 핏줄도 하나, 땅도 하나이지 않은가. 감동과 아쉬움으로 울컥했던 감상 한 쪼가리를 뒤늦게 풀어놓는다.
#평양탐구학교
“그 무서운 데를 어떻게 갈 생각을 했을까, 겁도 없이. 빨갱이들이잖아. 너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 줄 알아? 겉으로는 웃어도 속으로는 쳐들어올 생각만 한다고.”(할머니) “가서 한국말 하지 말고 영어로만 말해. 튀는 행동 하지 말고 질문도 하지 말고 그냥 주는 밥 먹고 조용히 있다 와. 한국말 절대 쓰지 말아. 알았지?”(엄마) |
「평양, 제가 한번 가보겠습니다(당신이 지금 궁금한 ‘요즘 평양’)」, 정재연, 넥서스BOOKS, 2019 |
2021년 6월 10일 목요일
디지털 역량강화 위한 ‘중구 제1디지털배움터’ 설치
한국여성생활연구원(원장 정찬남)은 3일(목) 중구 명동 교육장에서 디지털역량교육 서울사업단(에이럭스, 대표 이치헌)과 업무협약식을 갖고 ‘중구 제1디지털배움터’를 개소했다고 밝혔다.
디지털 역량강화 교육은 국민 누구나 집 근처 주민센터나 도서관, 복지관, 경로당 등 생활 SOC 공간에 설치된 디지털배움터에서 수준별 맞춤형 교육을 받고 디지털 역량을 높이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코로나19로 온라인 교육, 재택근무 등 일상이 비대면 방식의 디지털 환경으로 빠르게 변화함에 따라 디지털 격차가 사회·경제적 격차로 심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지난해 과기정통부와 17개 광역시·도가 함께 추진하여 좋은 평가를 받았다.
2년차를 맞은 올해 서울 지역의 디지털 역량강화 교육은 과기정통부와 서울시,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이 공동으로 주관하고, ㈜에이럭스가 교육수행을 맡아 지난 5월부터 진행하고 있다.
교육과정은 교육대상자 유형(고령층·다문화·장애인·경력단절자·재취업특화·중장년재취업희망자·청년취업희망자·창업예정자·기타)에 따른 맞춤형 교육을 위해 △디지털 기초(8) △디지털 생활(11) △디지털 심화(3) △디지털 특별(4) 과정으로 구성돼 있다.
세부 교육 내용은 스마트 기기, 비대면 화상회의 솔루션, SNS 등의 기본 활용법부터 교통, 금융, 전자정부 등 다양한 디지털 편의 서비스까지 생활 속 디지털 역량을 키우는 종합 프로그램으로 마련됐다.
교육은 코로나19 방역지침을 준수하고 △배움터 집합교육 △1:1 방문교육 △비대면 온라인교육으로 진행되며, 디지털배움터 강의에 참여하고자 하는 시민은 콜센터(1800-0096) 또는 홈페이지(www.디지털배움터.kr)를 통해 신청하면 된다.
정찬남 원장은 “이번에 우리 연구원에 설치한 서울 디지털 역량강화 교육 프로그램이 디지털 격차로 소외되거나 생활에 불편을 겪는 분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디지털배움터를 찾아오는 분들이 원하는 교육을 편하게 받을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라고 전했다.
3일 오전, 중구 제1디지털배움터(한국여성생활연구원) 개소식 모습 |
덧붙이는 글 | 이 포스트는 크와뉴스에도 실렸습니다.
2021년 6월 7일 월요일
광나루 건너서 보루 길을…
6일(日) 오전 11시, 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가 진행하는 「서울-평양, 고구려로 만나다」 첫 현장탐방으로 아차산의 고구려 보루들을 만나고 왔다.
낙타고개에서 해맞이광장으로 올라가는 등산로의 산불진화장비 보관함(26) 앞쪽에 돌무덤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고구려가 아닌 신라의 부부합장묘로 추정된다는데 10㎝ 정도만 걷어내면 바닥이 나온다는 설명을 들었다.
사실 나는 돌무지무덤(積石塚적석총), 돌덧널무덤(石槨墓석곽묘), 돌널무덤(石棺墓석관묘), 고인돌무덤(支石墓지석묘), 돌방무덤(石室墓석실묘) 등 돌무덤(石墓석묘) 종류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 [아래]아차산 3보루 왼편에도 돌무덤 흔적이 보인다. |
조금 더 올라가니 왼편으로 지면에서 살짝 넓게 패인 공간이 나온다. 1보루가 있었던 곳이다. 30㎝만 파내려가도 유물이 나온다고 한다. 지금은 등산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음식을 나누고 있는 쉼터로 변모한 모습이다. 당장은 추가 발굴계획이 없다고 했다. 발굴 최소화… 발굴 자체가 파괴행위일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우측 건너편에 5보루가 보인다.
아차산 5보루는 현재 출입이 제한돼 있다. |
고구려인들은 성을 쌓으면 말 하나 지나갈 정도로 쌓기 때문에 아차산에서도 마도(馬道)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고… 그리고 등산로에 보이는 돌들이 다 성돌이라고… 결국 유적은 보이는 사람에게만 보인다는 거다.
산 아래 평지에는 백제 유물이, 고구려 유물은 주로 산지에서 발견된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됐다.
용마산 1,2보루 너머가 능리, 지금의 능동 일대다. 최종택 교수는 6세기 전반 말객이 지휘하는 고구려 둔전병이 이곳 아차산 라인에 1천명, 건너편 용마산 라인에 1천명 주둔했을 것으로 추산했다.
남쪽으로 펼쳐진 강변 앞쪽에 아차산성(아단성)이 보인다. |
용마산 1,2보루 전경 |
1997년 봄, 무려 15세기 동안 묻혀 있던 아차산 4보루 발굴 조사를 계기로 양주와 임진강 일대, 대전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고구려 성들이 추가로 확인되었고, 2004년에 20개의 아차산 일대 보루군(堡壘群)은 사적 제455호로 지정됐다.
탐방단은 최종택 교수의 방어시설, 저수시설 등 유구배치에 대한 설명을 듣고 아차산 4보루 성벽을 돌아보았다. 건조한 겨울철엔 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말단 병졸이 산길을 따라 내려오기도 했을 거라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1997년 아차산 보루 중 처음 발굴된 아차산4보루 모습 |
하산길에는 3보루 유적지에서 방앗간 시설을 확인했다. 방아채를 받쳐주는 화강암 지지대인 볼씨는 놀랍게도 등산로 한가운데 있어 지금도 등산객들의 발길에 차이고 있다.
3보루의 방아시설 중 하나인 디딜방아 볼씨(방아를 받치는 쌀개를 지지하기 위해 박아 놓은 돌). 사진에서 방아확(곡물을 빻는 둥근 홈이 난 돌)은 보이지 않는다. |
백제군의 반격을 받은 고구려는 500년 무렵 한강이북 아차산에 보루를 축조하고 방어선을 구축했다. 이 보루군은 고구려가 한강 유역에서 퇴각한 551년경 폐기되기까지 고구려의 남쪽 최전방 군사기지 역할을 수행했다.
[위] 최종택 교수님 설명에 귀 기울이고 있는 장면을 포착해준 김현주님의 센스 만점 샷… 고맙습니다. [아래] 15~16세기 전 광개토왕, 장수왕, 문자명왕이 바라보았을 한강이남땅 |
신라나 백제에 비교해 상대적으로 유물·유적이 적은 남녘의 고구려 자취를 발로 확인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좀 더 알고 싶은 욕구가 새록새록~ 다음 아차산성 탐방 일정(6월27일)이 기다려진다.
나다움을 찾아 남다른 방식으로 전달해야
2시부터 2시간 동안 전국민 디지털역량강화교육 서울사업단(에이럭스)에서 마련한 ‘디지털배움터 릴레이 온택트 특강’을 유튜브 스트리밍으로 들었다.
SK텔레콤 5GX 미디어사업CoE 임성희 박사가 「디지털 시대의 콘텐츠 비즈니스 성공 방정식」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주었다. 임 박사는 ‘BTS가 글로벌 음악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로 △진정성 △연결 △스토리의 3가지 요소를 꼽았다.
요컨대 “진정” 나다운 것을 찾아내서, 독특한 “세계관과 스토리”로 팬(고객·수요자)들과 소통하며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가는 요소가 진정성이다. 새삼스럽지만 정치권이나 기업 마케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왼편 스크린에 내 모습도 나온다. 디지털배움터 강사/서포터즈는 다자화면으로 카메라 앵글에 계속 잡히기 때문에 강의시간에는 집중 및 호응 부탁한다는 서울사업단의 요청에 나름대로 경직모드였다. 방송 카메라를 들이대면 아무래도 긴장하고 의식하게 된다.
말미에 임 박사가 15초짜리 영상 플랫폼 틱톡(TikTok)의 파워를 앞으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는데, 음… 이젠 틱톡러에도 도전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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