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30일 월요일

협동조합 마을대학종로 서촌 인문기행

28일 토요일 오후… 마을대학종로 협동조합에 가입한 후 첫 옥외행사로 서촌을 투어했다.
사극에서 신하들이 임금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전하, 종사를 돌보소서!” 할 때 나오는 종사는 종묘사직(宗廟社稷)의 준말로 왕실과 나라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일제는 사직단 주변을 훼손하고 공원화하여 지금도 이곳을 사직공원으로 부르고 있다. 곡신의 신을 모시는 직단(稷壇)과 달리 토지의 신을 모시는 사단(社壇)에는 석주(石柱)라는 둥근 공모양의 돌이 황토에 박혀 있다.


천연기념물 제4호였던 통의동 백송을 지나 영추문 맞은편의 보안여관을 둘러봤다. 이곳은 1930년대의 문예동인지 <시인부락>의 창간장소로 알려진 문인과 화가들의 산실이다.


창성동 미로미로(迷路美路) 골목은 구들장과 기왓장으로 꾸며진 데코가 예쁘다. ‘세계정교 발상지’란 푯말도 보였는데, 세스팔다스 계옴마루(Thesparldoes Gyeohmmahroo)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일명 ‘하정효 가옥’으로 불리는 이곳 주택 담벼락은 노란색과 연두색을 섞어놓은 듯한 다소 그로테스크한 색으로 칠해져 있다.


쌍홍문 터는 임천조씨 조원의 아들 조희정, 조희철 형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선조가 세운 정려문이 있던 곳이다. 효자동 한국전통주연구소에서 술지게미를 얻어 챙겨왔다. 모주 만드는 레시피를 찾아봐야 한다.
신교동 길에는 ‘(주)정말필요한회사’라는 재미있는 상호도 보였다. 서울농학교와 서울맹학교의 담장 벽화가 아름답다.


우리나라 독립운동가 관련 기념관 54개 중 유일하게 개인이 운영하는 우당기념관. 1층은 기념관이고 2층은 개인집이다. 현 시점에선 이회영, 이상룡 같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이제 더이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군인아파트로 변모한 자수궁 터를 지나 최상위 레벨의 친일파 윤덕영의 벽수산장 터, 윤덕영첩 구옥을 경유하여 상촌재에서 투어 마무리.



2017년 10월 23일 월요일

오감으로 전해지는 다채로운 인도음악

21일 토요일 저녁, 배명숙 선생님의 초대로 제3회 사랑-인도문화축제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정찬남 원장님과 함께 9호선 국회의사당역에서 KBS아트홀로 향했다.
2017년 공연은 25년 간 한국과 인도를 오가며 양국의 문화교류에 일조하고 있는 류시화 시인이 큰 힘을 보탰다고 한다. 객석 앞자리 중앙에는 카슈미르 분쟁을 빚고 있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주한대사가 나란히 착석하여 화합의 의미가 더했다. 아이쉬와라 라이가 주연한 영화 조다 악바르(Jodhaa Akbar)를 통해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었던 인도음악을 현장에서 체험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설레었다.


첫 순서는 노름마치 팀이 동해안별신굿을 테마로 태평소 선율과 징, 북, 꽹과리가 어우러진 타악연주로 흥을 돋구었다. 이어서 바리, 프라빈, 만주나띠 3인의 혼성 트리오로 구성된 인도의 트라얌(Trayam) 팀은 인도전통의 창과 앙상블로 깊은 울림을 주었다. 우리의 판소리와 다르게 연주와 창을 모두 앉아서 연행하는 좌창(座唱) 형식이어서 특이했다.
세 번째는 인도 현대무용의 선구자인 아스타드 데부(Astad Deboo)의 ‘존재의 춤’으로 불리는 독무가 펼쳐졌다. 인생 최고의 가치를 묻는 질문에 종심(從心)의 노 명장은 ‘어니스티’라고 답변하더군. 전율…


이후 한국과 인도의 연주자 8인과 아스타드 데부의 협업 공연으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Sarang은 힌디어로 ‘다채로운, 아름다운’을 뜻한다고 한다. 예정시간을 넘겨 9시 30분까지 진행된 쎄임쎄임벗디퍼런트(Same Same but Different)는 다채로웠고, 빽빽한 그물의 삼라(森羅)에 온갖 모습의 만상(萬象)이 어우러져 오감이 호사를 누린 정서 공유의 무대였다.

2017년 10월 16일 월요일

동작동 국립묘지 역사문화트레킹

지난 토요일(10월 14일) 제36차 역사문화트레킹은 국립서울현충원과 남관왕묘를 둘러보는 코스였다. 4호선 동작역 4번출구로 나와 육교를 건너서 9호선 8번출구 방향으로 500여 미터를 걸어 현충원 입구에 도착했다.
M1 카빈 소총과 M16을 든 충성분수대의 군인상이 인상적이었다.


현충문 지붕 위에는 경복궁 근정전(勤政殿)과 같은 7개의 잡상이 올라가 있었다. 현충탑 앞 제단에서 향을 올리고, 열십자 통로의 위패봉안관을 경건한 마음으로 둘러보았다.


장병묘역… 전장을 누볐던 부하들과 사후까지 함께 하고자 했던 채명신 중장의 의기가 느껴져 숙연한 생각이 든다.


애국지사묘역 하단 우측… 헤이그 이위종 참서관의 숙부인 이범윤(1863~1940) 간도관리사,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에 함께 한 우덕순(1876~1950) 의사, 제3대 총독으로 부임하던 사이토 마코토에게 투폭한 대한노인단의 강우규(1855~1920) 의사, 제국신문 창간자이자 태화관 독립선언서 낭독자인 이종일(1858~1925) 선생, 종로경찰서에 투폭 후 효제동 일대에서 일경을 상대로 전설의 1대 1000 총격전을 벌인 김상옥(1890~1923) 의사, 2015년에 1200만을 돌파한 영화 <암살>에서 전지현이 열연했던 모델 남자현(1872~1933) 지사의 묘소를 참배하였다.



애국지사묘역 하단 좌측으로 이동… 캐나다의 감리교 선교사로 화성 제암리 학살사건의 참상을 보도한 석호필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Frank William Schofield, 1889~1970) 박사, 고종의 강제퇴위와 군대해산을 당하여 자결한 박승환(1869~1907) 시위대 제1대대장, 태백산 호랑이 신돌석(1878~1908) 의병장의 묘소를 참배하였다.


애국지사묘역 상단 우측으로 이동…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아나키스트 이회영(1867~1932) 선생, 남만주 일대 조선혁명군의 총사령 양세봉(1896년~1934) 장군, 조선통감부 외교고문 더럼 화이트 스티븐스(Durham White Stevens)를 공격한 전명운(1884~1947), 장인환(1876~1930) 의사의 묘소를 참배하였다.


임정요인묘역으로 이동… 독립군 비행사를 양성한 노백린(1875~1926) 장군, 서로군정서와 정의부의 참모장을 지낸 김동삼(1878~1937) 지사, 북만주 한국독립군과 임시정부 한국광복군 총사령 지청천(1888~1957) 장군, 배설(어니스트 베델)과 함께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양기탁(1871~1938) 선생,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을 지낸 한국독립운동지혈사의 박은식(1859~1925) 선생, 임시정부의 첫 국무령 이상룡(1858~1932) 선생의 묘소를 참배하였다.



국가유공자 제2묘역으로 이동… 한글연구에 헌신한 한힌샘 주시경(1876~1914) 선생, 애국가 작곡자와 일제 협력자의 양가감정을 갖게 하는 안익태(1906~1965)의 묘소를 둘러보았다.


2009년 8월 서거한 김대중 대통령 묘역은 이승만이나 박정희의 그것에 비해 상당히 협소하다. 최근엔 언론보도를 통해서 MB정권 시절 DJ의 노벨평화상 수상 취소 청원을 도모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김대중 묘역 바로 옆 1시 방향으로 중종의 후궁이자 선조의 조모인 창빈안씨(昌嬪安氏)의 묘가 있다. 하성군 균(鈞)은 왕좌에 오른 후 아버지 덕흥군 이초(李岹)를 덕흥대원군으로, 할머니 숙용 안씨를 정1품 창빈으로 추존하여 각각 덕릉과 동작릉으로 능호를 올리려고 시도하였다 한다. 서달산을 주산으로 하여 공작이 날개를 펴고 있는 형상의 명당이라는데 좋아보이기는 했다. 그런데 알림판의 ‘Lady Changbin An’이라는 영어 표현이 맞는 건지 모르겠다. 2012년 개봉한 조여정 주연의 영화 <후궁: 제왕의 첩>에서는 ‘The Concubine’이라 표현하더구만…


통일신라 말기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갈궁사(葛弓寺)는 조선 선조 때 창빈안씨의 원찰로 지정되면서 화장사(華藏寺)로 개칭되었고, 1983년에 다시 호국지장사(護國地藏寺)로 변칭되었다. 능인보전(能仁寶殿) 옆으로 지장보살입상이 자리하고 그 뒤편으로 3천의 작은 지장보살이 좌열해 있다.


현충원 사당출입문으로 내려오면 정유재란 시기인 선조 31년(1598)에 건립된 남관왕묘(南關王廟)로 갈 수 있다. 보통은 남묘(南廟) 현판이 달린 정문이 빼꼼히 열려 있다. 정문 안쪽에는 관성묘(關聖廟) 편액이 걸려 있다.


정전에는 현성전(顯聖殿) 현판이 달려있는데, 이건 동묘(東廟)에서도 본 거 같다. 경내에 금잡인(禁雜人), 재단법인(財團法人), 대소인원개하마(大小人員皆下馬)가 새겨진 석물이 보인다. 남묘는 일제강점기 때 남묘유지사(南廟維持社)라는 단체로 불하되었다고 하는데 이후의 소유권 문제는 자세히 모르겠다. 하여간 개인주택화 되어있는 듯하니 방문시에는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이번 서울현충원 트레킹은 유난히 노쇼(No-Show)가 많아 허탈하다. 분명 을(乙)이 아닐진대 갑질을 당한 공허하고도 처참한 기분…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으니 결국은 소정의 참가비를 책정하고 사전에 입금을 받는 방향으로 가야할까보다. 그도 아니면 사전답사 없는 혼행으로 다니면 그만이지. 외로움보다는 고독이 훨 익숙하니까…

2017년 10월 7일 토요일

함양기행

추석연휴 중반 목금토 2박3일을 함양의 지리산자락에서 자연인으로 보내다 왔다.
강변역 동서울터미널에서 함양시외버스터미널까지 함양지리산고속 버스요금은 1만8천원이다. 하행선 도로에 정체가 심하여 서상, 안의, 수동을 경유하는 노선에서 2시간이 연착되어 총 5시간 20분이 소요됐다.


지리산함양시장은 상설시장이면서도 매달 2일·7일·12일·17일·22일·27일에 5일장이 서는데 추석 당일(10월 4일)이 지난 시점이어서 상당수 가게들이 문을 닫고 있었다.


함양읍내에서 출발하여 37번 국도와 중기길을 따라 도착한 곳은 경남 함양군 백전면 운산리 770번지이다. 백전면 뿐만 아니라 서남쪽으로 이웃한 전북 남원시 산내면에도 중기마을이 있다. 구글맵스로 검색해 보니 전남 구례군 산동면 수기리, 경남 하동군 화개면, 전북 진안군 진안읍 운산리에도 중기마을이 있다.


추석 이틀 후인 6일 금요일(음력 8월17일)은 정찬남 교수님의 생신날이어서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참치미역국으로 함께 조반을 들었다.


마당밭 왼편의 수은행나무 지척에 암은행나무가 있어 은행이 많이 달렸나 보다. 호프집에서는 20~30알에 몇 천원짜리 귀한 술안주다.


조율이시(棗栗梨枾) 중 배(梨)만 없다. 잠깐 사이에 대추, 모과, 호두, 오가피가 한가득이다. 호두나무에 호두 달린 것이 정말이지 신기하다.



쑥부쟁이와 개망초가 마당 한켠을 차지했다. 쑥부쟁이는 구절초와 꽃잎이 비슷하여 헷갈리지만 잎이 달라서 구별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엔 생태계교란종인 미국산 쑥부쟁이가 늘고 있다고 한다.


마을 신자들이 건립한 운산공소는 매주 오전 9시에 공소예절을 갖는다. 둘째주에만 저녁 7시에 미사가 봉헌된다. 부산을 제외한 경남일대를 관장하는 마산교구에는 51곳의 공소가 현존하고 있다. 아담한 외부와 단출한 성당 내부가 친근함을 더해준다.



ㅎㅎ휴먼스쿨 2관격인 이채로운 자연인의 집… 대문 우편에 인분을 먹이는 똥돼지 뒷간이 남아있다.


1913년에 본당이 설립된 함양성당은 100주년을 맞은 2012년에 새 성전을 봉헌했다. 1층은 강당이고, 성당은 2층으로 올라가는 구조로 되어 있다. 스테인드글라스로 꾸며진 십자가의 길 14처가 아름답다.



시간이 짧았던 터라 최치원이 조성한 것으로 유명한 함양상림(천연기념물 제154호)은 차량으로 스치듯 한바퀴 돌아보는 선에서 그쳤고, 함양 읍내의 학사루 등 문화유산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휴먼스쿨은 오랜 세월동안 인간성 회복, 도덕, 평화, 정의사회 구현을 위해 경주해온 김익완 사부님이 1996년 설립하셨다. MRA 전북 워커, 앰네스티 전북 간사로 활동해 오셨으며 지금도 통일을 준비하는 사람들(통준사) 공동대표로 후생들의 본보기가 되어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