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29일 목요일

소통강박증

트위터는 오프 상태로 방치한 지 오래고, 페이스북에선 석달 전 아예 탈퇴해 버렸다. 폰에선 네이버 밴드 앱도 삭제한 터라 카톡방 서너 개와 텔레그램 그룹 하나를 돌리고 있을 뿐이다.
헌데 얼마전 내장메모리가 딸리는 상황에서도 다시 밴드를 설치했다. 관여하고 있는 모임의 운영자급 동료와 몇몇 구성원이 기능상의 편의를 들어 밴드를 개설하고 가입을 요청해오니 혼자 사는 사회가 아닌지라 중과부적…
언제든 접속할 수 있고 통화할 수 있다는 전제는 족쇄로 작용하기도 한다. 미디어의 메시지가 대중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탄환이론(Bullet Theory)이 아니어도 시때 없이 울려대는 까똑 사운드는 관계의 ‘깊이’가 아닌 ‘빈도’의 피상적 단편일 확률이 높다.
정보 과부하, 낮은 기회비용, 상대적 박탈감, 정치적 편향, 평판 관리, 사생활 침해 쯤은 가뿐하게 제끼는 소통강박증…
몇년 전까지 대세였던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사례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기기 오작동이라면 다르겠지만, SNS 피로감에 대화방에서 탈퇴하는 사람들을 어거지로 재초대하지 않는 센스도 요구된다. 어쩌면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처럼 다른 사람과 진정성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방법을 다시 배워야 할 지도 모르겠다.

2015년 1월 28일 수요일

이명박근혜 각하

MBC 월화드라마 「빛나거나 미치거나」를 봤는데, 몸종 길복(신승환)이가 주인 왕소(장혁)를 ‘전하’라 호칭하더군. 뭐 고려 황제의 아들이자 아우이니 합당하게 들린다.
이수광의 백과사전 「지봉유설」에는 “천자를 폐하라 하고, 왕·제후를 전하라 하며, 세자를 저하라 한다. 대신을 각하라 하고, 장신을 휘하 또는 막하라 한다”는 기록이 있다.
격에 따라 구분한 전(殿)·당(堂)·합(閤)·각(閣)·재(齋)·헌(軒)·누(樓)·정(亭)이라는 건물 이름에 아래 하(下)자를 붙여 상대적으로 그 주인을 높임한 2인칭 대명사들이 바로 전하·합하·각하 등이다.

섬돌 폐(陛)자를 써서 황제를 뜻하는 존호 폐하(陛下). 말하는 사람이 섬돌 아래(폐하)에 서서 섬돌 위에 자리한 분을 우러러 뵌다는 의미이며, 만세(萬歲)로써 칭송받는 유교문화권 최고의 제왕이다.

가장 격이 높은 건물인 (殿)은 왕·왕비·상왕·대비·왕대비의 활동 공간으로, 편전·중궁전·대비전·동궁전·교태전(왕자의 탄생을 기원하는 이름) 등이 있다. 또한 불교 사찰에도 대웅전(大雄殿)·극락전(極樂殿) 등이 있다. 계단(殿) 아래에서 뵈어야 하는 전하(殿下)는 황제가 인정한 제후국 왕이나 황자(皇子) 등에게 쓰는 칭호로 천세(千歲)를 불러 올린다.

다른 집보다 땅을 돋아 높게 지은 집·주택을 뜻하는 (邸). 이 곳의 저하(邸下)는 왕세자나 황태손에게 쓰는 경칭으로, 돋아진 땅보다 낮은 곳(아래)에서 뵈어야 하는 귀인이다. 잠저(潛邸)는 나라를 새로 세웠거나 세자가 아닌 종실(宗室) 가운데 즉위한 왕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을 뜻한다.

전(殿)과 비슷한 규모의 (堂)은 후궁이나 왕자·공주들이 사용하던 좀더 사적인 건물로, 장희빈의 취선당(就善堂) 등이 있다. 또한 옥당(玉堂)과 같이 궁궐 안 관리들이 업무를 보던 곳이기도 했다. 명륜당(明倫堂)은 성균관이나 각 지방의 향교에 부설되어 있는 강학당(講學堂)이다. 낙향한 선비들의 시골집에 붙이기도 했는데 여유당(與猶堂)은 정약용의 당호(堂號)이기도 하다. 알다시피 유정(惟政)스님의 당호는 사명당(泗溟堂)이다. 현모양처의 대명사 신인선(申仁善)의 사임당(師任堂)도 당호가 되니, 박씨부인의 피화당(避禍堂)도 넣을 수 있지 않을까. 만권당(萬券堂)은 고려 충선왕이 원나라의 대도(베이징)에 세운 학술연구기관(독서당)이다.
“따놓은 당상”이라는 관용표현이 있다. 당(堂)은 임금과 함께 정사를 논하는 정청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당에 올라가 의자(交椅)에 앉을 수 있는 자격이 있으면 당상(堂上), 그렇지 못하면 당하(堂下)이다. 당상관은 정3품 상계에 해당하는 통정대부(문관)·절충장군(무관)·명선대부(종친)·봉순대부(의빈) 이상의 품계를 가진 사람이고, 당하관은 정3품 하계에 속하는 통훈대부(문관)·어모장군(무관)·창선대부(종친)·정순대부(의빈) 이하의 품계를 지닌 사람이다. 즉 같은 정3품일지라도 누구는 당상관, 누구는 당하관으로 나누어지는 것이다. 관복의 흉배에도 차이가 있어서 문·무관에 따라 당상관은 학이나 호랑이가 2마리, 당하관은 1마리씩 수를 놓았다.

정문 옆에 붙은 쪽문을 뜻하는 (閤)은 전이나 당에 붙은 부속 건물이다. 정1품 벼슬아치나 대원군을 높여 지칭하는 합하(閤下)는 당연히 전하·저하 밑에 자리한다. 예전에 MBC 드라마 「무신」에서 최충헌(주현)을 합하라고 호칭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합(閤)과 비슷하게 (閣)은 대체로 전(殿)과 당(堂)의 부속건물이다. 통명전의 체원합, 경춘전의 동행각 하는 식이다. 대체로 판서(장관급) 이하 고위공직자를 각하(閣下)로 불렀고, 일본에서는 메이지 유신 이후 군 장성 등 고위관료를 갓카(脚下)라 했는데,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최고책임자도 지들 사이에선 총독각하로 통칭했다.

(齋)는 일상적 주거용도 외에도 사적으로 조용하게 독서를 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건물인 경우가 많다. 상대적으로 보다 공무적 기능을 가진 (軒)은 대개 대청마루가 붙어있는 구조이다. 헌종이 총애하던 김씨를 위해 지은 낙선재(樂善齋)가 사랑채라면 그 안채 역할을 하는 것이 석복헌(錫福軒)이다. 우여곡절 끝에 일본에서 돌아온 영친왕·이방자·덕혜옹주가 낙선재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율곡의 생가인 강릉 오죽헌(烏竹軒)도 떠오른다.

주로 연회나 휴식을 목적으로 하는 (樓)는 건물 바닥이 땅에서 사람 한 길 높이 이상인 마루로 형성된 건물이다. 각(閣)과 연결되어 건물 아래 1층을 각, 위의 2층을 누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주합루와 규장각(奎章閣), 징광루와 경훈각이 그 예가 된다. 기쁠 때 왕과 신하가 함께 모여 즐기는 경회루(慶會樓), 성춘향과 이몽룡의 그때그곳 광한루(廣寒樓)가 유명하다. 경복궁의 건청궁 경내 옥호루(玉壺樓)는 명성황후가 난입한 일본 자객들에게 살해당한 비극의 장소로써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요사이엔 동네방네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자(亭)이니 따로 언급하지 않겠다. 갈매기와 벗한다는 황희의 반구정(伴鷗亭)과 갈매기를 길들인다는 한명회의 압구정(鴨鷗亭)이 대비된다.

이상으로 殿堂閤閣齋軒樓亭(전당합각재헌루정)에 따른 폐하(陛下)·전하(殿下)·저하(邸下)·당하(堂下)·합하(閤下)·각하(閣下)의 의미를 정리해 봤는데, 재하(齋下)·헌하(軒下)·누하(樓下)·정하(亭下)라는 호칭은 들어보지 못했다. 누하(樓下)는 다락집의 아래라는 뜻이고, 말누하(抹樓下)는 왕대비·국왕·왕비·왕세자·세자빈·후궁에게 붙이는 경칭이라고 한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주교를 각하(閣下, Your Grace)로 추기경을 예하(猊下, Your Eminence)로 교황을 성하(聖下, Your Holiness)로 높여 부른다.

이 외에도 아래 하(下)자가 따라붙는 단어에는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다.
안하(眼下) : 눈 아래
목하(目下) : 바로 지금
슬하(膝下) : 무릎 아래
족하(足下) : 발 아래. 집안의 아랫사람에게 붙이던 용어로 활용되다가 지금은 조카로 굳어짐
막하(幕下) : 지휘관이 옆에 거느리고 있는 부하 또는 그 지위
휘하(麾下) : 대장기의 아래. 장수의 통솔 아래에 있음을 이르는 말. 요사이엔 부하여군 성희롱 혐의로 먹칠하는 지휘관들이 많다.



최근 이완구 총리 내정자가 박근혜에게 각하라는 호칭을 썼고, 17대 대선후보 시절의 이명박에게는 연기자 이덕화가 미리부터 각하란 칭호를 사용하기도 했다. 옥스포드 사전에 의하면 Excellency는 국가 고위직에 대한 (일반적인) 호칭일 뿐이다. 일본에서조차 외국 정부요인에게만 사용하며, 사회일반에서는 권위주의적인 상황을 비꼴 때 쓴다고 한다.
역사적 맥락을 안다면 오히려 기분 나빠해야 할 말인 것을… 청와대(靑瓦臺)에 거하고 있으니 대하(臺下)라고 하면 우스우려나. 건물 품격만 따져도 최상급은 못되는 각하란 호칭에 유달리 부합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승만 가카, 박정희 가카, 전두환 가카… 그리고 이명박 가카, 박근혜 가카… 둘은 권위주의와 소통불능, 개인우화(Personal Fable), 비전부재, 남북경색, 구라정치, 언론통제, 국민사찰, 노동탄압, 안전불감증, 서민증세, 인치주의(人治主義)도 공유한다. 딱 그 수준만큼의 정치놀음에 익숙한 사람들이니 각하(閣下)란 호칭이 더없이 제대로 어울린다.

2015년 1월 24일 토요일

함안 vs 함양 vs 함평

함함함 시리즈… 경남의 함양·함안, 전남의 함평… ‘함’자로 시작하는 3개 군이 헷갈릴 때가 많아 정리해 둔다.


전남 함평(咸平)
전라남도 서부에 위치한 1읍 8면의 군으로 인구는 2013년 12월 기준으로 35,610명이다.
광주광역시·나주시와 인접하고, 광주와 목포 사이에 끼어 있어 광주·목포 방면으로의 인구유출이 있는 편이다.
태종 9년(1409)에 함풍현(咸豊縣)과 모평현(牟平縣)을 통합하면서 함풍에서 ‘咸’자를, 모평에서 ‘平’자를 따 ‘咸平’이라고 했다.
함평농협이 고구마 수매 약속을 지키지 않자, 지역 농민들이 1976년부터 3년에 걸쳐 함평 고구마 피해보상투쟁을 전개하기도 했다.
1번 국도와 호남선 철도가 함평군의 중심인 함평읍에서 멀리 떨어져 통과하기에 교통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하루 3회 있는 서울-함평 간 고속버스도 직행이 아니라 문장·장성을 경유하므로 함평에서 서울로 가려면 시외버스로 영광이나 광주까지 가서 서울행 고속버스를 타는 편이 유리하다.
전국 지자체 특화 사례 중 가장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되는 함평 나비축제 기간에는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려든다.
KIA 타이거즈의 2군 구장과 골프고등학교가 소재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농민 분규인 함평고구마사건(1976)이 발생한 곳이기도 하다.
함평군청  http://www.hampyeong.go.kr


경남 함안(咸安)
함안은 경상남도 남부 중앙에 있는 1읍 9면의 군으로, 고대에는 변한의 6가야 중 아라가야(阿羅伽倻)의 영역이었다.
법흥왕 때 신라에 병합되면서 아시량군(阿尸良郡)이 설치되었고, 경덕왕 16년(757) 함안군(咸安郡)으로 개칭되었다. 연산군 11년(1506) 도호부(都護府)로 승격되기도 했다.
북쪽으로 낙동강·남강을 끼고 창녕군·의령군과 접하고, 동쪽으로 창원시와 서쪽으로 진주시·의령군에 접한다.
일제강점기 때 농업용수를 마련하기 위해 만든 둘레 4㎞의 입곡저수지 일대에 입곡군립공원이 있다.
대표 특산품인 함안수박은 고창수박, 무등산수박에 비해 브랜드 인지도가 낮은 편이다.
많은 지방 군들이 그렇듯 함안군도 60년대 인구가 12만여명으로 정점을 찍었다가 70~80년대 상당히 감소하여 90년에는 5만명대까지 추락했다. 이후 마산의 영향으로 농촌 지역으로서는 드물게 인구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2014년 9월말 기준 68,685명).
국도로는 5번 국도 및 79번 국도가 지나가지만 시외 교통이 불편하여 웬만한 시외 지역으로 가려면 일단 창원시로 넘어가는 편이 유리하다. 2013년 12월에 서울남부터미널로 가는 노선이 일 4회 신설되었다.
마창진 통합 전후에는 마창진과 함께 통합대상으로 고려되기도 했다.
함안군의 말이산고분군(사적 제515호)은 아라가야 왕과 귀족들의 무덤이 조성되어 있는 고분군으로 약 500년간 찬란했던 아라가야의 고분문화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유적이다. 2013년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회의에서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었다.
함안군청  http://www.haman.go.kr


경남 함양(咸陽)
경상남도의 서북단에 있는 1읍 10면의 군으로 남으로는 하동군, 서로는 전북 남원시, 북으로는 전북 장수군, 동으로는 산청군과 맞닿아 있다.
함양군은 신라 때 속함군(速含郡) 또는 함성이라 칭하였으며 경덕왕 16년(757)때 천령군으로 개칭하였고, 고운(孤雲) 최치원이 군수로 부임해 와서, 풍수설에 따라 위천(渭川) 변에 인공숲인 대관림(大館林)을 조성하였다. 주변의 함양사람들은 함양상림(咸陽上林)에는 뱀과 개미가 없다고 믿는다.
안의면 상원리에 용추폭포와 휴양림으로 알려진 기백산 군립공원이 있다.
고려 현종 1년(1010)에 함양군(含陽郡)으로 개칭하고, 명종 2년(1172)에 함양현으로 강등하였으나, 조선 태조 4년(1395)에 현을 다시 군(郡)으로 승격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행정구역 개편으로 함양과 안의현이 합쳐졌다. 1957년 함양면에서 함양읍으로 승격되었다. 2014년 9월말 기준 인구는 41,099명이다.
철도가 없어 전라선이 지나는 인근의 남원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패턴이 나타나기도 한다.
3번·24번·26번 국도가 있고, 고속도로는 88올림픽고속도로와 통영대전고속도로가 만나는 함양JC가 있는데, 진주시 방면의 노선이 많다.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인 진(秦, BCE 221~BCE 206)나라의 수도가 함양(咸陽)이었다.
함양 지리산자락에 김익완-정찬남 두 분 선생님의 시골집이 있다.
함양군청  http://www.hygn.go.kr

2015년 1월 16일 금요일

파괴자 갤럭투스(Galactus)

2007년 개봉된 영화 「판타스틱4: 실버서퍼의 위협」에서 실버서퍼(Silver Surfer) 노린 라드(Norrin Radd)는 고향별에 두고 온 애인이 오버랩되어 수 스톰(Sue Storm)을 구해주는 회개형 인물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주목하는 근원적인 캐릭터는 우주의 포식자이자 행성 파괴자인 갈락터스(Galactus)이다. 이 무지막지한 우주적 파워는 열을 가진 유기에너지로 행성의 에너지를 흡수함으로써 자신의 생명을 유지해 나가는 존재이다.
실버서퍼는 고향별 젠라 행성이 갈락터스에게 삼켜질 위기에 처하자, 고향별을 살리는 대신 자신이 갈락터스의 부하가 되어 온 우주를 정탐 다니면서 갈락터스가 먹어치울 희생양 별을 찾아다 바치는 앞잡이 역할을 하게 된다. 영화 말미에는 “선택은 항상 존재한다”는 수의 진정성에 감화되어 종살이를 거부하고 비이컨을 타고 돌진하여 자폭을 시전하면서 갈락터스와 함께 소멸하고 만다.
행성을 파괴하여 그 에너지를 흡수해 수많은 생명체들을 몰살시키는 압도적 파워 갈락터스… 열정페이(Passion pay)를 유용하는 사회 현실이 연상되는 건 왜일까.

2015년 1월 5일 월요일

종묘 씨순길

2015년 1월 3일(토), 을미년 새해 첫 씨알순례길 답사지는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神位)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최고 사당(shrine) 종묘(宗廟)… 종묘광장 정비공사로 외대문(外大門) 앞 일대는 꽤나 불편하고 번거로왔다.
새 왕조를 연 이성계와 건국세력은 곧바로 천도(遷都)를 추진하여 전조후시 좌묘우사(前朝後市 左廟右社), 제후칠괘(諸侯七軌)의 주례 고공기(周禮考工記) 원리에 따라 도성을 계획하였다. 고려왕조의 왕씨 조상귀신들이 차지한 자리(개경의 종묘)에 새 왕조의 이씨 귀신들을 함께 모시는 것은 심히 껄끄러운 일이었기에 한양에 새 종묘를 조성하여 1395년(태조 4년)에 경복궁보다 먼저 완공했다.


사적 제125호 종묘는 인류의 문화유산으로서 그 가치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Convention Concerning the Protection of the World Cultural and Natural Heritage)에 의거하여 1995년 12월 9일 유네스코에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세계유산이란 당해 문화재가 세계적으로 특출하고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 인류 전체의 이익을 위해 보호되어야 할 유산을 말한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하늘의 원은 신의 도형이고 땅의 방은 사람의 도형으로 위계가 설정되었다.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우주관에 따라 종묘의 연못은 방형(方形)으로 조성되었고 그 중앙에 원형(圓形)의 석단(石壇)을 쌓아 향나무를 심었다.


팔작지붕의 망묘루(望廟樓) 우측에는 고려 제31대 공민왕과 왕비인 노국대장공주의 영정을 모신 고려공민왕영정봉안지당(高麗恭愍王影幀奉安之堂)이 있다. 공민왕이 친히 그렸다고 전하는 말 그림도 사당 안에 있다. 왕조의 뿌리와 정통성을 상징하는 종묘에 전 왕조의 왕을 모신 이유는 뭘까. 아마도 새 왕조에 대한 민심이반(民心離反)을 잠재우기 위함이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마포구 창전동 광흥창지(廣興倉地) 일대에도 공민왕 사당(恭愍王祠堂)이 있다.(등록문화재 제 231호)


종묘 일간도(宗廟一間圖)는 종묘의궤에 수록되어 있는 신실 한 칸의 배치도이다. 신주를 모신 신주장(神主欌)을 중심으로 서쪽에 책장, 동쪽에 보장이 있다. 신주장 앞의 신탑에는 궤가 놓여 있고 그 앞에 제상과 좌우에 봉선과 황개가 놓여있다.


왕조가 이어져 봉안해야 할 신위(神位 위패)가 늘어남에 따라 몇 차례 건물을 옆으로 증축하여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왕이나 왕비가 승하하면 궁궐에서 3년상을 치른 후에 그 신주를 종묘로 옮겨 모신다. 정전(正殿)에는 공덕이 뛰어난 임금들을 모셨고, 영녕전(永寧殿)에는 태조의 4대조와 사후에 왕으로 추존되었거나 정전에서 신주를 옮겨온 임금들을 모셨다. 정전의 신실 19칸에는 태조를 비롯한 왕과 왕비의 신위 49위를, 영녕전의 신실 16칸에는 신위 34위를 모셔 두었다. 왕위에서 쫓겨난 연산군과 광해군의 신위는 종묘에 모시지 않았다. 임진왜란 때에 소실된 종묘를 재건한 군왕은 광해군이지만 정작 자신의 신주는 모셔지지 못했다.

총 35칸 = 25칸(연산군·광해군 제외) + 9칸(추존왕: 목조·익조·도조·환조ㆍ덕종ㆍ원종ㆍ진종ㆍ장조ㆍ문조) + 1칸(영친왕)

종묘제례(宗廟祭禮)는 국가의 가장 큰 제사로서 정전에서 1년에 5번, 영년전에서는 1년에 2번 열렸으며 왕이 친히 주관했다. 종묘제례에는 왕세자와 문무백관(文武百官)이 참여하였으며, 음악(樂)·노래(歌)·춤(舞)이 일체화한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에 맞추어 진행됐다.
현재 종묘제례는 매년 5월 첫째 일요일에 행하고 있다. 제사 외에도 종묘에서는 국가의 중요한 일을 알리거나 기원하는 의식을 행하기도 했다. 종묘의 모든 건물은 장식과 기교를 배재하여 단순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단순함 속에서 삶과 죽음의 깊은 의미를, 엄숙함 속에서 왕조의 신성한 권위를 읽을 수 있다. 중국이나 베트남과 달리 한국의 종묘는 건축물과 더불어 제례와 제례악의 본모습을 그대로 보존하여 실현하고 있는 유일한 곳이다. 종묘는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은 2001년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등재되었다.


우리나라 목조건축물 중 가장 긴 건물인 종묘정전(국보 제227호)은 동서 109m, 남북 69m의 넓은 월대 위에 맞배지붕을 올려 조선시대 건축물 가운데 가장 절제되고 장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19실의 중앙인 현종대왕을 모신 10실까지는 배흘림기둥으로, 이후부터는 민흘림기둥으로 왕조의 영속성을 지탱하고 있다. 배흘림기둥은 기둥 높이의 1/3정도에서 가장 굵어졌다가 다시 차츰 가늘어지는 기둥(배나온 아저씨)이고, 민흘림기둥은 기둥 위에서 아래로 내려올수록 굵어지는 모양의 기둥(치마입은 여인)으로 둘 다 육중한 지붕을 무리없이 떠받치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어 시각적 안정감을 주는 효과가 있는 듯하다.


정전 옆 악공청(樂工廳)을 둘러보다가 기둥의 모양이 사각에서 원에 이르는 여러 도형들로 구성된 것을 발견했다. 뭔가 이유가 있을 듯한데 관련된 안내문은 찾아볼 수 없었다.


종묘 답사 후에는 유영모(1890~1981), 함석헌(1901~1989) 선생의 씨알사상을 지향하는 씨알재단의 신년하례식에도 참석하여 새해 포부를 나누었다.

2015년 1월 1일 목요일

May the Force Be With Us

으뜸과 처음을 뜻하는 元(원), 수평선(一) 위에 해(日)가 떠오르는 모습을 그린 旦(단)…
하여 元旦(원단)은 시작하는 아침, 한 해의 첫째되는 날로 뜻풀이할 수 있겠지.



지인들이 카톡방에 공유해 준 오메가 일출샷…
적당히 즐기는 애니미즘(animism)은 나쁘지 않지.
May the Force be with me… 을미원단(乙未元旦)의 포스가 나와 함게 하길!
새로운 태양의 기운이 우리와 함께 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