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12일 월요일

지역마다 달리 불려지는 태풍의 이름

1st _ 중심최대풍속이 17 m/s 이상인, 폭풍우를 동반하는 열대저기압.
지역마다 사용하는 언어가 다른 이유로 태풍도 지역마다 달리 불려진다.
아시아권에서는 타이푼(Typhoon 颱風),
북대서양, 카리브해, 멕시코만, 북태평양 동부에서는 허리케인(Hurricane)으로,
인도양, 아라비아해, 벵골만에서 발생하는 것은 사이클론(Cyclone)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오스트레일리아 연안에서 발생하는 태풍을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은 윌리윌리(Willy Willy)라고 하지는 않는다고. 윌리윌리는 원주민이 회오리바람을 일컫던 말이며 태풍을 뜻하는 것은 아니란 것. 호주에서는 태풍을 단지 Tropical cyclone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2nd _ 16세기 장로교를 창시한 프랑스의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가 장 칼뱅(1509~64)은 유럽 각 나라의 언어마다 조금씩 다르게 불린다.

프랑스어: Jean Calvin(장 깔뱅)
영어: John Calvin(존 캘빈, 존 칼빈)독일어:Johann Calvin(요한 칼빈)
라틴어: Ioanis Calvinus(요아니스 칼비누스, 칼뱅을 칼빈이라고 부르는 것은 칼뱅의 라틴이름에 기인한다.)
네덜란드어: Johannes Calvijn(요하네스 깔페인)


3rd _ 에스키모는 아메리카 인디언의 말로 ‘날고기를 먹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며, 여름에는 가죽으로 된 천막에 살고 겨울에는 뗏장으로 만든 집에서 산다. 이글루가 그들의 삶터는 아니고 겨울 사냥을 나갔을 때 잠시 머무르는 숙소라고 한다.
에스키모족은 절대로 자신을 ‘에스키모’라고 부르지 않는다. 자신들은 ‘이누이트’(인간)라 부른다. 이누이트족은 왜 우리를 에스키모라고 부르느냐고 세계를 향해 항의를 하지만 아직도 세계에서 통하는 이름은 이누이트가 아니라 에스키모다.


Feed back _ 윌리윌리는 오스트레일리아 북부 해상에서 연간 4회 정도 발생하며, 태풍이나 허리케인보다 규모가 훨씬 작다. 윌리란 원주민 말로 ‘우울’ 또는 ‘공포’라는 뜻이다. ‘윌리윌리’라고 거듭해서 부르는 것은 그 뜻을 강조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최근에는 ‘윌리윌리’라는 용어 대신 ‘사이클론’으로 부르고 있는데, 호주 사람들이 뭐라고 부르든지 간에 우리는 원주민들의 용어를 존중하여 그냥 ‘윌리윌리’라고 부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2011년 9월 6일 화요일

우리 강아지를 찾습니다


개는 인간에게 가장 친근한 동물이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가구는 전체의 약 5분의 1에 달하며 이 중 90% 이상이 개다. 하지만 해마다 버려지거나 주인을 잃고 헤매는 반려동물은 8만마리를 넘어선다. 한때 사랑받던 견공들은 싫증이 나서, 병에 걸려서, 털이 많이 빠져서… 등의 이유로 버려지고 있다. 이 녀석들은 거리의 개가 되어 쓰레기통을 뒤지는 신세가 되고, 결국 차에 치여 죽거나 보호소로 들어가게 된다. 법정 의무보호기간인 10일 동안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입양 대상이 되고, 이후 새 주인을 만나지 못하면 안락사를 당함으로써 생을 마감한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사용되고 버려지는 동물들은 개 만이 아니다. 화장품 회사들은 신제품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토끼 눈에 3000번이나 마스카라를 바르고, 토끼는 고통 속에 눈이 멀고 결국 죽음을 맞는다. 개·토끼·쥐·돼지 등 실험대에 오른 동물의 수는 한 해에 500만마리에 이른다.

애완(愛玩·pet)은 ‘가까이 두고 귀여워하며 기른다’는 뜻이지만, 반려(伴侶·company)는 ‘함께 살아가는 가족’이라는 의미다. 개를 키우는 건 가족이 하나 더 생기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일을 너무 쉽게 결정한다. 입양이 쉬우니 버리는 것도 쉬운 거다.


“우리 강아지를 찾습니다”… 아침 나절에 당현천 길을 산책하다가 보게 된 유인물.
‘우리 강아지’라는 단어에서 주인의 애절함이 배어난다. 나 역시 몇년 전 강아지를 잃어버렸다가 되찾은 기억이 있기 때문에 그 애틋한 심정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런 불상사를 대비해서 평소에 정면·옆면 해서 다각도로 사진도 제대로 잘 찍어두어야 한다.
뽀삐가 하루빨리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2011년 9월 4일 일요일

손큰 피자

어제 중1 아이들 보충이 있어 출근하는 길에 롯데마트에 들러 ‘손큰 피자’를 사갔지. 놀토가 아닌데다 1시 30분부터 오라고 했으니 혹시라도 점심을 못먹고 오는 녀석들이 있으면 함께 먹으려고 샀는데, 가격이 11,500원으로 1.5ℓ 콜라 페트병 하나 추가해서 12,430원. 정말 무지 싸더군.


이마트 피자가 처음 출시됐을 때는 대기표를 받고 몇시간씩 기다려야 했다는데, 이건 뭐 매장에서 말만 하면 바로 내주더군. 이렇게 큰 사이즈는 몇년 전 코스트코에서 처음 접해봤지만, 이제는 일상 풍경. 그만큼 대형마트 주변 동네 피자가게들에게는 직접적인 타격이 불가피할 터. 50㎝ 자를 놓고 찍은 사진인데, 대략 지름이 45~46㎝는 되어 보임. 손큰 피자… 정말 브랜드 네이밍 하나는 잘도 뽑아냈군.


‘대기업의 중소 영세사업자 사업영역 침범’이란 곱지 않는 시선은 많이 희석됐지.
대다수 소비자들이 대형 유통업체 간의 가격전쟁을 즐겁게 관전하고 있는 가운데, 너무 저렴하게 팔아서 마진이 줄어든 힘센 ‘갑’은 구입 원가 절감으로 보충하려 할 것이고, 납품업체인 여러 마이너 ‘을’들은 그만큼 고통과 압박을 감내해야 하는 시스템이 전지구적으로 퍼져있는 형국. 피자나 햄버거가 사회 구조적인 면이나 생태, 건강 측면에서 그리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지만 싸고 맛있고 빠르기 때문에 먹게 되는 것도 사실. 길들여진 식습관, 마비된 밈(meme)이란 역시 무서운 것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