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은 비교적 오래 계속되지 않고 두 달만에 끝났으면서도 임진왜란과는 다른 각도에서 깊은 상처를 남겼다.
세손과 비빈들이 피난갔던 강화도가 함락됐다는 소식과 함께 47일간 버티어 온 인조가 삼전도로 나가 항복하기까지의 경과는.. 발설하기가 무척 어려웠지만 비화로 덮어두지 못하고 경험자의 증언을 통해 널리 알리고 그 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었을 터였다.
청의 실제적 파워와 명에 대한 명목적 의리 가운데 그 어느 쪽에도 의존하지 않고, 민족의 위기를 타개할 역량을 발휘하자는 여망은 해결하기 어려운 논란의 소용돌이를 피하기 위해서도 지면상에 표현되어야만 했다.
때문에 병자호란 때의 일을 기록한 글은 풍성하고 다양하다.
남한산성에서 직접 수난을 겪은 사람들의 실기는 실제로 있었던 일을 충실하게 기술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다. 김상헌의 <남한기략>은 난의 경과를 간략하게 정리한 일기이고, 최명길의 <병자봉사>는 자신의 주장을 임글에게 올린 글이다. 그 중에서도 <산성일기>라고 통칭되는 문헌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음은 물론이다.
홍익한, 윤집, 오달제 척화파 3학사는 심양으로 잡혀가 처형되었지만, 당상관 김상헌은 끌려가 고초는 겪었을지언정 처형되지는 않아서 자기의 처지와 심경을 술회할 수 있었다. 조선땅을 떠나면서 읊었던 유명한 시조 ‘가노라 삼각산아~’는 북한에서도 애국적 기개를 점층적으로 강조한 작품으로 높이 평가하고 있단다.
소설은 비교적 잘 읽혔지만, 읽는 내내 답답했다.
“임금이 남한산성에 있다”는 사관의 반복되는 기록이 지루함을 더한다.
척화신으로 오랑캐의 칼날을 받겠다고 상소한 서른살 먹은 교리 윤집과 스물일곱의 수찬 오달제....
예조판서 김상헌이 일개 대장장이 서날쇠에게 남한산성 밖의 조선군들에게 연통의 세작을 청하며 나누는 대화가 인상깊다.
김상헌: 다녀오겠느냐?
서날쇠: 조정의 막중대사를 대장장이에게 맡기시렵니까?
김상헌: 민망한 일이다. 하지만 성이 위태로우니 충절에 구천이 있겠느냐?
서날쇠: 먹고 살며 가두고 때리는 일에는 귀천이 있었소이다.
김상헌: 이러지 마라. 네 말을 내가 안다. 나중에 네가 사대부들의 죄를 묻더라도 지금은 내 뜻을 따라다오.
서날쇠: 소인이 임금의 문서를 지닌 채 적에게 사로잡히면 어찌 하시겠습니까?
김상헌: 안 될 말이다. 그러니 너에게 간청하는 것이다.
서날쇠: 대감, 어찌 대장장이를 믿으십니까? 삼전도에는 적에게 붙은 사대부들도 만다던데......
김상헌: 그렇다. 그러니 너에게 말하는 것 아니냐.
서날쇠: 나라에서 하라시니, 천한 백성이 어쩌겠습니까.
김상헌은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수치심.... 아이러니하게도 5.18과 5공에 대한 김훈의 태도와 오버랩된다.
중국으로서는 굴기에 대한 대우를 받고자 하는 욕망은 점차적으로 증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나치게 미국이라는 백그라운드(?)를 믿고서 중국이나 아랍권을 자극하는 모양새를 고집하며 긴장감을 조성하는 정책은 한번 더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역사의 교훈은 번번히 무시되기 일쑤지만, 그래도 역사는 가장 훌륭한 거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