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좋은 이유는 뭘까요. 푸른하늘과 선선한 바람, 한낮의 따뜻한 햇살…
아래글은 제가 고등학교 2학년때 활동하던 써클지(빠스카紙)에 실은 글입니다.
낙엽 소나타… 무슨 드라마 제목 같죠?^^
이렇게 보니까 유치한 구석이 많지만… 일면 지금 현재 아쉬운 부분도 있네요.
성당활동도 열심이었고, 등산도 자주 했었고…… 언젠가는 회귀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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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산을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여건이 갖춰지면 휴일이나 방학을 이용하여 자주 배낭을 멘다. 당일도 좋고 1박2일도 좋다. 한 봉지의 쌀과 약간의 경비면 족하다. 젊은날의 여행이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10월 27일, 모처럼의 여가에 등산계획을 세웠다. 우리들은 성당에 모였다.
성철이, 자율이, 수현이, 정우, 소연이 그리고 나. 모두 6명. 마침, 예비자 교리반 성지순례에 가시는 보좌 신부님께 「보조비」라는 명목으로 거액의 money를 받았다. 보고도 없이 놀러다닌다고 알밤 한대씩을 맞고서……
명륜동에서 6번 버스를 탔다. 여행을 할 때마다 나는 새롭게 태어나는 나를 느낀다. 생각이 새로워지고 삶이 새로와짐을 느낀다. 북한산 종점에서, 벌써 가 계셨던 엠마 선생님과 합류했다.
한 걸음. 복잡한 신변잡기를 뒤로 남기고, 첫 발자국을 내딛는다. 정상을 향하여.
우리에게 「가을의 사색」을 주기에 충분히 맑은 하늘과 바람이 불어 주었다.
‘어이구, 힘들어! 뭔, 여자애가 저리 빠르지!’ S자의 고도를 잘도 올라간다. 앞서가는 수현이를 쫓느라 내 다리는 쉴 틈이 없다.
20분간 휴식이란다. 아까 마음씨 좋아보이는 아주머니에게서 산 귤 한봉지가 어느새 껍데기만 가득했다. ‘큰일났구나!’ 다른 사람 몰래 휴지통에 넣었다.
다시 서편으로 출발. 현판을 보니 「도선사」라. 굉장히 큰 절이었다. 믿기지 않았지만, 옛날 석가모니가 도통했다던 보리수의 손자의 손자의 손자라는 보리수가 있었다. 경내를 둘러보고 목을 축인 다음 본격적인 산행의 시작인데, 정우와 소연이가 가봐야 한다고 한다. ‘뭐, 내일 10단위짜리 시험이 있다나. 그런 놈이 뭣하러 따라왔어? 약속이 있다는 소연이를 억지로 데려와 가지고는 요렇게 빠져 나가려고! 그래, 그래. 너희 둘이 다방에 가던, 디스코장에 가던 마음대로 해라!’ 모두들 아쉬워했지나, 쌀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내가 호통을 쳐 돌려보냈다. 미안한 감이 들긴 했지만……
저 건너 다람쥐 한 마리가 달려간다. 조금 뛰고는 좌우를 살피고 또 얼마간 뛰고는 주춤거리는 모습이 참 귀엽다. 내가 선봉을 섰다. 한 계절의 아름다운 추억을 되새기는 수많은 낙엽이 밟힌다. 산의 풍모는 나를 지치게만 두지 않았다. 산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듯, 눈을 크게 뜨고 구경하면서, 다음 장면을 보기 위해 앞으로 앞으로 갈 뿐이다. 갈림길로부터 북으로 올라간다. 육칠십도의 급경사가 무척 힘들다. 우리는 기다시피 움푹 패인 곳을 조심스레 디디면서도 숨이 찼다. 양 옆과 앞뒤에 늘어진 붉고 노란, 나무의 빛깔들이 느껴질 뿐 도대체 하늘이란 것이 보이지 않았다. 엠마 선생님의 춤 솜씨는 여기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위에서 보니 나뭇가지가 휘어지는 건 아랑곳없이 요리조리 잘도 올라오신다. 절로 웃음이 나왔다. 다람쥐들의 낮잠터 같은 넓고 평평한 바위가 군색스럽지 않아 좋았다.
드디어 정상. 멀리 서울을 호위하는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때론 흐려지고 때론 맑아지는 넓은 세상이 내 발밑에 있다. 심호흡을 하고서 “야 호!……”
허공을 가르는 산웅들의 외침. 소라빛 하늘이 그 음악을 되돌려 주었다.
방향을 바꾸어 야영장으로 향했다. 웬 사람이 그리도 많은지. 우리는 서쪽으로 회전했다. 말라가는 잡초위에 자리를 잡았다. 짐을 풀고, 버너다 코펠이다로 무척 어지럽다. ‘아차차, 물이 없구나!’ 남자 셋은 찌개와 찬거리를 마련한다. 그동안 엠마 선생님과 수현이는 물 준비와 쌀을 씻으러 가고.
그런데, 쌀 당번들은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도 소식이 없다. 30분이 지나자 자율이의 입에서 ‘씩~씩~’ 소리가 났다. 성철이의 ‘귀신이 잡아갔나. 제기랄!’ 소리도 제법 크다. 나도 ‘꼬르륵~’ 소리를 참으며 한해 먼저 태어난 체면을 지키려고 애썼다.
산의 묘미 중에는 모르는 사람과도 쉽게 친해지는 힘이 있나 보다. 우리의 이런 모습이 딱해서인지 옆팀의 아주머니가 (자신들도 모자라는) 물을 나누어 주셨다. 찌개는 충분히 끓일 양이다. 봉지채인 쌀을 들고 쌀당번 두분이 염치좋게 들어선 것이 그때였다. 씻지도 않은 쌀로 밥을 짓는다. 나참! 그러나 안먹으면 손해지. ‘지글짝 보글짝 지글보글 짝짝’
냄새만 맡아도 찌개맛을 알 수 있었다. 산에서의 식사는 별미중의 별미다. 매운 것을 좋아하는 나는 혼자만 많이 먹으려고, 고추장을 몇 숟갈씩 퍼 넣었으나 웬걸, 다들 잘 먹는다. 무척 배가 고팠었나 보다. 커피 한잔씩을 타먹고 「전국노래자랑」을 벌였다. 오고가는 등산객들이 귀를 막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
날은 시나브로 어두워진다. 청소를 한후 하산하기 시작했다.
정릉쪽으로 가려다 4.19탑으로 선회했다. 고개를 들어 잎새 사이의 하늘을 본다. 바로 머리위에서 그들은 조용히 자신을 불사르고 있다. 황혼을 느낀 부스러진 낙엽떼들은 정신없이 우리의 발자국 뒤를 쫓아오고 열두쪽 치마만큼이나 크게 내둘린 하늘은 보라색 구름떼들을 몰고 갔다. 설익은 가을을 안고가는 내 마음에도 조물주의 찬미가 솟았다.
‘사랑의 하느님,우리를 도우사 우리의 삶의 상황이 어떤 것이든지 당신이 항상 주관하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소소.’
잠깐 쉬면서 「천지 생기기 전」, 「주하느님 크시도다」를 불렀다.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자연은 이처럼 있어야 할 자리에 당연하다는 듯이 있는데 우리 인간들은 어떠한가?
갑자기 급경사다. 조심스레 40여분을 내려가니 4.19탑. 세월의 끄트머리에 매달린 바람이 속웃음을 흘린다. 이젠 사방이 어둡다.
성당에 도착한 시간이 7시. 보좌 신부님께 “잘 다녀왔습니다.” 인사를 하려고 문을 두드렸으나 계시지 않았다. 간단히 저녁을 하고 아쉽게 보람찬 일정을 마쳤다.
봄이 우리에게 무엇이었으며 여름이 왜 있어야 했던가를, 겨울과의 순회를 새삼 생각게하는 그렇게, 찾아본 가을의 나들이었다.
그리고 알았다.
가을은 기다린 사람에게 그 기다린 만큼만 온다는 것을……
스테파노/19대, 기행문Ⅰ「낙엽 소나타」(Pascha 13호, 1987), 37-39쪽